2011년 미스코리아 진 이성혜미국서 학창시절 한국인 자긍심 깊어져… 해외 봉사활동 꾸준히

'한국의 미를 세계에 알리겠습니다.' 미스코리아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수상 소감이다. 실제로 50여 년을 지나온 세월 동안 진·선·미로 당선된 많은 후보들의 입을 스쳐간 말이기도 하다.

올해 55주년을 맞은 '2011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의 주인공이라고 다를 수 있을까? 단아한 매력이 빛나는 2011년 미스코리아 진 이성혜(23·파슨스 패션디자인 2)도 옛 선배들의 말을 몸에 담으려는 듯 했다. 하지만 더 당차고 씩씩하며 현명하게 한국의 미를 세계에 알리겠다는 의지를 전했다.

그녀는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에 출전한 이유'와 '미스코리아로서 해보고 싶은 꿈'을 "한국의 미를 세계에 알리고 싶다"는 말로 대신했다. 그 안에는 뭔지 모를 소중한 의미가 담겨있는 듯했다.

이성혜는 초등학교 시절 미국으로 건너가 학창시절을 보냈다. 만만치 않은 미국 생활을 하면서도 가슴 속에 품고 있던 건 바로 '한국인'이라는 자긍심이었다고. 아름다운 문화를 지닌 한국에 대한 애정은 타국 생활을 하면서 더 깊어졌고 더 강해졌다.

"해외에서 생활하면서 느낀 점은 외국 사람들이 한국에 대해 많이 알지 못한다는 것이었죠. 제가 느끼고 즐기는 한국을 그들에게 전해주고 싶었어요. 직접적으로 기회가 많지 않았는데 미스코리아 진으로 당선됐으니, 앞으로 그 기회들은 많아질 것이라고 생각해요."

차분한 어조였지만 그 뜻만은 확실했다. 미스코리아가 한국을 대표하는 '미의 사절단'이라고 하니, 어쩌면 진의 역할은 그것을 뛰어넘는 게 당연한 건지도 모른다. 그는 미스코리아로서 힘찬 출발을 위해 인생의 또 다른 전환점에 서있다.

이성혜는 3일 미스코리아 본선 대회를 마치자마자 4일 강원도 동강으로 건너갔다. 2박3일의 합숙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미스코리아 행보를 시작하기 위해서 말이다.

미스코리아 진에 당선되자마자 또 다시 합숙이다. 강원도 동강에선 어떤 일정이 있는가.

"미스코리아로 당선된 7명이 함께 내려와 있어요. 기본적인 소양을 위해 강의도 듣고, 면담도 받았죠. 미스코리아로서 앞으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교육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대회가 끝나고 인터넷과 각 언론에선 '미스코리아 이성혜'에 대한 신상 털기가 시작됐다. 언짢을 수도 있을 텐데.

"신경이 쓰이거나 부담된다기 보다는 한국을 대표하는 자리에 있고, 공인되었으니 앞으로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더 커요. 저 스스로 전환점을 잘 지나야 이 자리가 더 합당하게 되지 않겠어요?(웃음)"

미스코리아 대회를 준비하면서 가장 힘든 점이 있었나.

"가치가 있는 것일수록 그만한 대가를 지불한다는 말이 있어요. 거의 한 달 동안 합숙기간을 거치면서 인내하는 법을 많이 배운 것 같아요. 체력적으로나 심정적으로요. 특히 내면적으로는 얻었던 게 많은 시간이었어요. 많은 사람들과 지내면서 양보하는 법, 배려하는 법, 기다리는 법 등을 깨우칠 수 있었죠. 더 성숙해진 계기였어요."

최근 수영복 심사에 대한 부분이 축소됐다. 그래도 불편하진 않았나.

"여성의 특권은 자신을 꾸미고 그것을 누리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의 시각과 가치관에 따라 달라질 수는 있다고 봐요. 그래도 한국 사회에서 미스코리아가 만들어져서 지금까지 이어오는 동안 수영복 심사는 있었잖아요. 이제는 다른 관점에서 봐주셨으면 해요. 성 상품화나 선정성이 아니라 여성의 아름다움이라는 새로운 시각으로 말이죠."

패션을 전공하는 학생이다. 디자이너가 꿈이라는데 미스코리아 타이틀이 어떤 영향을 미칠까.

"디자이너는 아름다운 작품을 만드는 사람들이잖아요. 미스코리아는 미의 사절단으로서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경험을 쌓게 되죠. 그러면서 창의성도 기를 수 있고요. 나중에는 이런 경험들로 인해 깊이 있는 디자인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해요.

미스코리아 출신 방송인이 많은데, 방송진출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나.

"방송진출에 대해 아예 계획이 없다고는 하지 않을게요. 다만 그것이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지금으로서는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하지만 미스코리아로서 한국을 널리 알리는 기회가 생기면 긍정적으로 출연을 검토해 보려고 해요."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 등에서 봉사활동을 꾸준히 해왔다고 들었다. 어떤 활동이었나.

"중학교 시절부터 제가 속한 공동체에서 선교활동을 했어요. 1년에 두 번씩 봉사활동과 교육활동을 했죠. 의료선교로는 봉사활동을, 교육선교로는 재능을 기부하는 식으로 활동하는 것이었어요. 예고에서 음악을 전공해서 음악이나 한국무용, 영어 등을 아이들에게 가르쳐주곤 했죠. 특히 아이들은 북과 장구를 무척 좋아했어요."

미스코리아기 되기 한 달여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합숙기간 동안 예가원이라는 노인요양시설 기관을 간 적이 있어요. 그곳에 도착했을 때 외할머니께서 위독하시다는 연락을 받았지만, 미스코리아 일정을 진행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때 그 곳에서 외할머니와 외모가 너무도 닮은 한 할머니를 뵙게 됐어요. 대화도 하면서 오히려 제가 그 분께 위로를 받았지요. 대회가 끝나면 꼭 다시 찾아 뵙겠다고 약속 드렸어요. 할머니께서 기다리고 계실 테니 다시 가보려고 해요."



강은영 기자 kiss@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