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황인숙 첫 소설 출간따뜻하게 펼쳐지는 소소한 에피소드, 일상 속 아름다움의 발견

시인 황인숙씨가 첫 소설 <도둑괭이 공주>를 냈다. 길고양이를 돌보는 '도둑괭이 공주' 화열을 주인공으로, 그녀 주변 사람들의 따뜻한 이야기를 그린 장편소설이다.

밝고 명랑하지만 내면에 그늘을 지닌 화열의 성정이나 고양이로 인연 맺은 사람들을 통해 이 소녀가 치유 받는 과정은 작가 황인숙의 모습과 나란히 포개진다.

아름다움은 어디서 오는가

"있잖아, 수전 손택."

기획회의가 끝난 월요일 오후, 점심을 먹다가 말했다. 이날따라 식당은 나이듦과 늙음에 대한 공포를 한 마디씩 성토하는 자리가 됐는데, 대화가 꼬리에 꼬리를 물다 "나이든 여자가 아름답다는 건 가능한 것인가?"를 고민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아름다움의 기준은 각자 다르겠지만, 기자는 청순미나 관능미보다 원숙미를 더 좋아한다. 그것은 한 인간이 살아온 시간을 담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래서 기자는 손택의 깊은 눈과 고독한 표정을 사랑한다.

"그렇게 설명해야 하는 아름다움은 싫다고."

기자의 미의식에 대해 동료가 말했다.

시인 황인숙을 말할 때, 사람들은 몇 가지 이미지를 떠올린다. 길고 까만 머리, 생기발랄한 목소리, 고양이, 생명력 넘치는 문장들. 이 파편들이 모여 시인의 상을 만든다. 가볍고 발랄한 언어로 세계를 자유롭게 유영하던 그녀는 이제 삶의 무거움과 고통도 노래한다. 이를테면 이렇게.

'얏호, 함성을 지르며/ 자유의 섬뜩한 덫을 끌며/ 팅!팅!팅!/ 시퍼런 용수철을/ 튕긴다' ('새는 하늘을 자유롭게 풀어놓고', <새는 하늘을 자유롭게 풀어놓고> 1988)

'그들은/ 축축하고 추운 긴 복도다./ 파리한 물고기 같은 달을 향해/ 기울어져 있다./ 한구석에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묶여 있다./ 발을 멈추고 쓰다듬자/ 요요처럼 내 손에 탁탁 붙는 새끼 고양이여./ 그들은 멀거니 본다./ 새끼 고양이 혹은 내 손길을./ 항상 비껴선 복도여./ 도무지 손길에 익숙지 못한 존재여.' ('고아원', <나의 침울한, 소중한 이여> 1998)

공중을 날아오를 것 같던 그 노래들은 이제 삶의 무거움에 곧잘 바닥으로 내려앉지만 목소리는 여전히 천진하다. 손택의 원숙함이 시간을 통과한 아름다움이라면, 시인 황인숙의 투명함은 시간을 초월한 어디쯤에 있다.

첫 장편소설을 내고 술을 마시던 날, 기자는 이 책의 편집자이자 후배인 시인 김민정씨의 연락을 받고 카페 '마리안느'로 갔다. 소설가 이제하씨가 운영하는 이 카페에는 종종 중견 작가들이 책걸이를 하는데, 이날도 시인 조용미, 김경미, 소설가 이명랑, 김숨, 평론가 박혜경씨를 비롯해 여러 문인들이 한아름 선물을 들고 그녀를 찾아왔다. 기자를 보고 그녀가 말했다.

"어머! 왔어요~!"

황인숙에게 아직 이런 감탄사가 하나도 어색하지 않다. 그 낭만적 말투와 투명한 표정을 글 뿐 아니라 실체로 발견했을 때, 기자는 그녀가 진짜 시인이라고 생각했다.

요즘은 소설가 김숨, 번역가 권경희씨와 발레를 배우고 있단다. 일요일 저녁, 무악재 역 근처에서 스트레칭과 기본동작을 배우는데 "척추가 곧아져서 지금 내 나이에도 2센티미터는 더 키 클 수 있다"며 한참을 얘기했다.

"내가 하나에 빠지면 편집증처럼 집중할 때가 있는데, 그게 평생을 갈 때가 있어요."

이 평생을 가는 관심거리 중 하나가 바로 고양이일텐데, 그녀는 등단작 '나는 고양이로 태어나리라'를 비롯해 여러 시집과 산문집 <해방촌 고양이> 등에서 꾸준히 고양이를 다뤄 '고양이 시인'으로 불리기도 한다.

나는 고양이로 태어나리라

"내가 소설 쓰고 싶다고 편집자한테 연락했어요. 근데 전작하면 끝을 못 맺을 것 같으니까 연재 지면을 달라고 했죠."

<도둑괭이 공주>는 문학동네 카페에 연재됐는데, 카페에 연재된 소설 중 가장 오랫동안, 가장 많은 분량을 연재한 소설 중 하나가 됐다.

이야기는 동네 버려진 고양이들을 먹여 살리는 스무 살 화열의 시선으로 시작된다.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며 혼자 사는 그녀는 사람들의 눈총 속에서도 길고양이들에게 먹이 주는 일을 빼먹지 않는다. 화열은 이렇게 길고양이들을 돌보지만, 그 돌봄을 통해 그녀 역시 치유 받는다.

사업 실패 후 사라진 아버지, 세상물정 모르며 살다 자식을 떠난 어머니 사이에서 화열은 제대로 정 한번 받아보지 못하고 자랐다. 사람에게 버림받은 후 사람을 잘 믿지 못하는 길고양이들의 불안 역시 화열의 그것과 닮아 있다.

'끝까지 책임지지도 못할 텐데 고양이가 스스로 살아갈 힘마저 잃게 해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 고양이들이 내게 길들 것이 두려웠다.' (68페이지)

하지만 비탈 동네의 길고양이 베티와 고양이들에게 마음을 열면서 화열은 혜조언니, 바리 이모님, 양야옹 언니, 그럭저럭 오빠 등 이웃들을 알게 된다. 또 베티의 밥을 주다 치킨 배달원 필용을 만나 풋풋한 사랑을 시작한다.

소설의 구상과 기획을 묻는 기자에게 작가는 "이전에 썼던 시, 산문, 일상에서 밑천을 다 끌어다 쓴 것"이라며 웃었다. 실제로 독자는 소설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고양이 엄마, 화열에게 작가 황인숙을 대입시키게 된다. 작가는 사료와 간식 캔, 햇반 그릇을 들고 매일 같은 시각, 같은 장소에서 길고양이들에게 밥을 주고 있다.

동네 한 아주머니가 이사를 가며 간곡히 맡긴 부탁을 들어주다보니 어느새 그렇게 됐단다. "도대체 성실과 거리가 먼" 체질에 하루도 빼먹지 않고 5년 동안 고양이를 돌보고 있다.

'어차피 주는 밥, 불안하고 시무룩한 마음을 떨치고 기꺼이, 행복한 마음으로 줘야겠다. 밥 먹는 그 시간이라도 고양이들에게 오직 행복한 기운이 전해지도록. 내가 행복해야 고양이들도 행복해진다. 내가 행복해질 길은 좋은 글을 쓰는 것이다.' (작가의 말 중에서)

"좀 더 문학적인 소설을 쓰고 싶었다"며 아쉬워하는 작가에게, 원고를 받았던 시인 김민정씨가 말했다.

"근데, 시인들이 쓴 소설은 매일 한 문장이 남아."

대개의 시인들이 그러하겠지만, 특히 황인숙은 일상의 풍경을 통해 날카로운 아름다움을 빚어내는 시를 썼다. 그녀의 시는 독자를 불편한 상황에 던지거나 정념으로 이끌지 않고 감성을 움직인다. 이 글맛이 소설에도 묻어난다.

황인숙의 첫 소설은 거대한 문학적 알레고리나 비장한 메시지 없이 소소한 에피소드들이 따뜻하게 펼쳐진다. 삶의 기쁨과 슬픔을 담백하게 담아낸 것이 이 책의 미덕이다. 작은 틈을 통해 성찰을 건져 올리는 것이 이 시인의 주특기였음을 기억하는 독자라면 시인의 첫 소설 역시 기대할 만하다.

아름다움은 켜켜이 쌓인 시간 속에도 있지만, 무심한 일상 속 찰나에도 있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