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심보선 두 번째 시집 '눈앞에 없는 사람' 출간처음엔 사랑시, 다시 보면 사회적 고민 담은 듯… 90년대와 2000년대 감각 동시에 담아내

심보선 시인이 두 번째 시집 '눈앞에 없는 사람'을 펴냈다. 등단 14년 만에 묶은 첫 시집 '슬픔이 없는 십오 초'로 대중의 폭 넓은 사랑을 받았던 시인은 이번 시집 첫 장에 이렇게 썼다.

'Mundi에게'

"문디가 무슨 뜻이냐?"고 묻는 기자에게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라틴어로 세계란 뜻인데, 제가 연인을 부르는 호칭이기도 해요. 저한테 둘 다의 의미죠." 그리고 말했다.

"원래 문디가 표제였어요"

이 'Mundi'란 말에 그의 시가 그리는 거의 모든 풍경이 들어 있다.

그의 첫 시집 '슬픔이 없는 십오 초'가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 사람들은 두 가지 점에서 놀라워했다. 첫째, 그가 등단 14년 만에 첫 시집을 냈다는 사실. 둘째, 그 시집이 미묘하고도 세련된 화법을 구사한다는 사실. 기자의 경험을 말하자면 재작년 출간된 '고은 전집'을 탐내던 선배도, 전위시의 지존 조연호의 시를 좋아하는 후배도 모두 즐겨 읽었던 공통분모가 심보선 시인의 시였다. (이렇게 둘 사이를 공명할 수 있는 시인은 위로는 마종기, 아래로는 문태준 정도다) 이를테면 이런 시다.

'착한 그대여/ 내가 그대 심장을 정확히 겨누어 쏜 총알을/ 잘 익은 밥알로 잘도 받아먹는 그대여/ 선한 천성(天性)의 소리가 있다면/ 그것은 이를테면/ 내가 죽 한 그릇 뚝딱 비울 때까지 나를 바라보며/ 그대가 속으로 천천히 열까지 세는 소리/ 안들려도 잘 들리는 소리/ 기어이/ 들리고야 마는 소리/ 단단한 이마를 뚫고 맘속의 독한 죽을 휘젓는 소리' (시 '식후에 이별하다' 중에서)

1994년 등단한 시인은 허수경, 함성호 등이 속한 '21세기 전망'의 동인이다. 한동안 동인 활동을 하다 그는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고, 사회학자가 되어 돌아왔다. 그리고 2008년에 첫 시집을 냈다.

이 두 시간 사이 그의 시가 있다. 심보선의 시는 90년대와 2000년대 감각을 동시에 담아낸다. 평론가 이광호의 말을 빌리자면, "건조하고 무심한 슬픔과 부드러운 유머와 자기를 드러내지 않는 직관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세계"다.

시를 읽지 않는 시대라지만, 심보선의 시만큼은 꽤 많은 독자들이 알고 있는데, 이유는 그의 시는 처음에 사랑시로 읽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시 보면 얼핏 사회적 고민을 담고 있는 것처럼도 보인다.

기자는 그에게 "낮에는 데모하고, 밤에는 유재하 음반 듣던 90년대 청년 감수성"이라 감상평을 전했다. 사랑(유재하)과 세계(데모)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감각이란 뜻이다. 책 첫 장에 쓴 'Mundi'와 '들'(1부 제목)과 '둘'(2부 제목)로 나눈 두 번째 시집은 이 연장선에 있다. 두 번째 시집을 낸 소감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했다.

"첫 시집은 혼자 쓴 거 같고, 두 번째 시집은 같이 쓴 것 같아요. 그 '같이'에는 문우들도 있고, 연인도 있고, 제가 (사회활동) 현장에서 만난 사람도 있죠. 첫 시집의 감성이 슬픔 쪽에 가깝다면, 두 번째 시집은 슬픔과 기쁨 둘 사이에서 거리 조절을 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요."

'나는 어쩌다 보니 살게 된 것이 아니다./ 나는 어쩌다 보니 쓰게 된 것이 아니다./ 나는 어쩌다 보니 사랑하게 된 것이 아니다./이 사실을 나는 홀로 깨달을 수 없다./ 언제나 누군가와 함께……'

두 번째 시집에서 그가 가장 좋아한다는 시 '인중을 긁적이며'는 연인과 세계, 사랑과 사회, 슬픔과 기쁨 사이에서 공명하는 시인의 감수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이 시집에서 이 시와 함께 좋아하는 시로 '매혹'을 꼽았다.

'매혹 이후/ 한 사람의 눈빛은 눈앞에 없는 이에 의해 빚어진다// 매혹 이후/ 한 사람의 눈빛은 눈앞에 없는 이에게 영원히 빚진 것이다'

시인은 이 시의 한 구절에서 빌려와 두 번째 시집의 제목으로 이렇게 다듬었다.

눈앞에 없는 사람

한 권의 시집은 한 장의 앨범과 비슷하다. 시의 앞뒤 배치에 따라 여운도 달라진다. 기자는 "1부인 '들'이 사회 공동체에 관한 시선을 말하는 시라면, 2부 '둘'에서는 사랑에 대해 얘기하는 것 같다"고 감상평을 전했다.

"결국 그런 유형으로 나뉘어 지기는 했어요. 근데 1부, 2부를 그렇게 떨어뜨려 생각하고 싶진 않아요. 공동체 속에 어떤 사랑이 있는 거고, 사랑 속에 공동체가 있죠."

그의 말처럼 이 시들은 오롯이 사랑이나 사회적 시선으로만 읽을 수 없다. 그는 첫 시집을 낸 전후 문인들과 꽤 많은 사회활동을 했고, 시나 산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두 번째 시집에 실린 '거기 나지막한 돌 하나라도 있다면'은 용산참사 2주기에 쓰인 시다. 최근 그는 한진중공업 파업 사태를 맞아 희망버스를 타고 3번 부산을 다녀왔다. "희망버스는 시인으로 탄 건가? 시민으로 탄 건가?"란 질문에 그는 "둘 다" 라고 대답했다.

"시인일 때도 있고 시민일 때도 있죠. 헌데 시인과 시민 역할이 나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아요."

'Hey Jude, don't make it bad 주드(시민 여러분), 비관하지 말아요/ Take a sad song and make it better 슬픈 노래를(현실을) 더 낫게 만들면 되잖아요/ Remember to let her into your heart 그녀를(김진숙을) 마음속 깊이 받아들여요/ Then you can start to make it better 그러면 당신은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기 시작하는 거예요/ Hey, Jude, don't be afraid 주드(시민 여러분), 두려워 마요/ You were made to go out and get her 당신은 나가서 그녀를(김진숙을) 구하도록 운명 지어졌으니까요/ The minute you let her under your skin 당신이 그녀를(김진숙을) 잊지 않는 순간부터/ Then you begin to make it better 당신은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가 '현대문학' 8월호에 발표한 시 '헤이 주드'의 도입부다. 원곡의 노랫말을 한 문장씩 적고, 거기에 자신의 해석을 한 줄씩 보탰다. "용산참사나 희망버스 같은 사회활동이 시 쓰는데 영향을 주느냐?"란 질문에 그는 꽤 사회학자 같은 포즈로 대답했다.

"사회 활동이라는 게 대단한 게 아니라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다 시작하고, 영향받는 것 같아요. 사회학적으로 봐도 그렇거든요. 집합행동을 분석하다보면 비공식적 인간관계가 작동하고, 사회자본이 굉장한 역할을 해요. 소위 농성을 할 때 친구나 친구의 친구에 의해 동원되고, 이렇게 나온 사람들이 모여 집단이 되는 거거든요. 거기서 제 글이나 말이 나오는 거겠죠. 제가 축적해온 글 성향과 사회 활동이 영향을 주고 받겠죠."

요즘에는 에세이스트로 유명한 CBS 정혜윤 PD와 행복에 관한 책을 함께 쓰고 있단다. 정 PD가 사람들을 인터뷰하면, 심씨는 이 인터뷰를 토대로 우리사회 행복을 사회학자의 시선으로 분석하는 내용이라고. 그에게 마지막으로 물었다. 용산참사, 희망버스 같은 정치적 사건에 문인으로 활동하는 것은 어떤 의미냐고.

"어떤 식의 호명이든 구속이라고 생각해요. 그 호명에 반응하는 것도 구속에 동의하는 것이고. 호명에 일일이 신경 쓰면 글쓰기나 생활에 제약을 받을 수 밖에 없어요. 솔직히 그 호명으로부터 제가 자유로울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고요. 하지만 그 호명 사이에 틈이 있고, 그 틈 사이에서 새로운 관계나 가능성이 생긴다고 생각해요."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