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캣츠'의 인순이, 박해미, 홍지민30대ㆍ40대ㆍ50대 사연과 후억 녹여 자신만의 '그리자벨라' 선보여

왼쪽부터 홍지민, 인순이, 박해미
난리법석 고양이들이 또 다시 돌아왔다. 소위 '4대 뮤지컬' 중에서도 가장 오래됐지만(1981년 초연), 가장 젊고 신선한 에너지를 뿜어내는 '캣츠'가 17일부터 서울 무대에 오른다.

'캣츠'는 다양한 볼거리와 신나는 넘버가 많은 화려한 뮤지컬이다. 무엇보다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많다. 멋쟁이 고양이, 낭만 고양이, 도둑 고양이, 마법사 고양이 등 개성 넘치는 30여 마리의 고양이들이 보여주는 에피소드들은 그 자체가 하나의 뮤지컬이라고 할 만큼 다채롭다.

그런데 '캣츠'에서 가장 많은 주목을 받는 것은 이런 화려한 고양이 스타들이 아니라 늙고 추레한 고양이 '그리자벨라'다. 출연량이나 대사도 적지만 힘겹게 '메모리(Memory)'를 부르는 순간, 그리자벨라는 모든 고양이들과 관객의 시선을 한몸에 받으며 '캣츠' 최고의 스타가 된다. 고난도의 춤실력이나 환상적인 몸매를 갖춘 다른 고양이들보다 그리자벨라의 캐스팅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이번 공연에서 그 막중한 부담감은 TV 시청자들에게도 익숙해진 뮤지컬배우 박해미와 홍지민, 그리고 최근 '우리들의 일밤'의 '나는 가수다'로 또 한번 내공을 발산하고 있는 가수 인순이가 나눠지게 됐다. 나이도, 경력도, 살아온 인생도 제각각인 이들은 어떻게 그리자벨라에 가까워지고 있을까.

우선 50대 는 이 역에 너무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다시 한번 꿈을 위해 일어서자'고 독려하는 'Memory'의 가사나 그리자벨라의 캐릭터 자체가 '거위의 꿈'을 부르는 인순이의 인생을 자동연상시키기 때문. 그녀는 "사실 '캣츠'는 그냥 '고양이 이야기'로 생각했었는데 그건 착각이었다"고 털어놓으며 "이제 내가 느끼는 '캣츠'는 용서와 화해, 내려놓음과 치유가 있는 굉장히 철학적인 작품"이라고 설명한다.

인순이의 그리자벨라
현재 '나가수' 외에도 지난달 개막한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개막식에서 주제가를 부르는가 하면 콘서트도 계획 중인 인순이는 바쁜 일정에도 '캣츠' 출연을 결정했다.

"엎친 데 덮친 격이라는 말이 있는데, 좋은 의미로 말하자면 요새 일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한꺼번에 오는 것 같다"고 말하는 인순이는 "지금 하지 않는다면 나중에 나를 다시 불러줄까 싶었다"며 출연 이유를 밝혔다.

30대의 홍지민은 이번의 늙고 퇴락한 그리자벨라 역을 소화하기에는 평소의 밝고 에너제틱한 이미지가 오히려 방해가 될 수 있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그래서 그녀가 집중하고 있는 것은 끊임없는 연습과 거기서 나오는 특유의 감성 연기다.

4년 전부터 부쩍 늘어난 방송 출연 때문에 그녀는 "원래 그런 성격이 아닌데, 요즘엔 무대가 무섭다"라고까지 말한다. '연습량이 무대에서의 모습을 결정한다'는 지론을 가지고 있기에 "스스로 만족할 만큼 연습이 충분히 되어 있지 않을 때는 '나가수'의 청중평가단의 시선처럼 뮤지컬 관객들의 시선도 무섭다"는 고백이다. 그래서 홍지민은 "바쁠수록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초심을 다잡아준 '캣츠'는 참 좋은 타이밍에 온 작품"이라고 웃는다.

반면 40대의 박해미는 "지민씨는 젊음과 에너지가 있어서 본인 만의 그리자벨라가 분명히 있고, 인순이 선배도 50년 인생의 연륜이 있어서 연출가의 말을 바로 바로 흡수한다"고 평하며 "그런데 내 그리자벨라는 섹시하기만 하다(웃음). TV에서는 그냥 아줌마로 나오지만 무대에선 고양이털을 뒤집어써도 섹시하게 나온다"며 특유의 넉살을 부린다.

박해미의 그리자벨라
"연습을 열심히 하는 타입은 아니다. 연습 전에 하는 워밍업도 나만 참여를 안 해서 연출진도 나를 이상하게 볼 정도였다"고 자신의 게으름을 털어놓는 박해미는 "그래도 이제까지 무대에 계속 설 수 있었던 건, 무대에서는 진짜 죽을 힘을 다하기 때문이다. 아주 똥을 싼다!(웃음)"며 자신만의 개성을 설명한다.

폭발적인 성량을 자랑하는 세 사람이 캐스팅된 이유는 바로 'Memory'를 소화할 수 있는 역량과 연결된다. 창법도, 음색도 다른 세 사람은 각자 어떤 그리자벨라를 만들어 메모리를 소화할까.

인순이는 "관객의 기대치를 알지만 제대로 표현하기가 정말 어렵다"고 고충을 토로한다. 기본적으로 '고양이처럼' 몸을 웅크리고 불러야 하는데다, 그리자벨라 특유의 더 구부정한 자세가 있기 때문. 인순이는 "꼿꼿하게 선 자세에서 불러야 고음이 쭉 나오는데, 허리는 구부리고 손은 앞으로 내미는 '불쌍한' 자세로 '사일런~스' 하고 고음을 내야 할 땐 진짜 미칠 것 같다"며 웃음을 자아낸다.

홍지민 역시 우리말로 번역된 이번 'Memory'가 소화하기 어려운 곡이라는 데 동의한다. "전에 영어 버전으로 굉장히 많이 불렀었는데도 그렇다. '이렇게 어려운 곡이었나' 하며 좌절하기도 했다. 단순한 가창력의 문제보다 시적인 느낌과 철학적 메시지를 전달하면서 완급 조절을 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설명한다.

반면 이 곡이 어느 순간 지겨워져서 오랫동안 '싫어하는 곡'이었다는 박해미는 "이번에도 처음엔 부르기 싫어서 음악감독과 갈등도 있고 생전 안 받던 보컬 트레이닝까지 받았는데도 해법을 찾지 못했다"며 연습 과정의 어려움을 밝힌다. 하지만 그녀는 혼자 방황한 끝에 결국 적절한 포인트를 찾아내서 지금은 연출진들한테 '서프라이즈!'라는 평가를 받아냈다.

홍지민의 그리자벨라
하지만 이 한 곡을 소화했다고 해서 그리자벨라가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세 사람도 그걸 알고 있다. 게다가 그리자벨라 하나로 '캣츠'가 완성되는 것도 아니다. 인순이는 "그리자벨라는 '캣츠'의 주인공이 아니라 수많은 고양이들 중 하나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만큼 모든 고양이가 저마다의 사연을 가지고 있고, 그 안에서 모두 주인공인 뮤지컬이 '캣츠'다.

오랜 시간을 거쳐 가장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세 사람의 그리자벨라는 그래서 더욱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들의 어떤 사연과 추억이 어떻게 그리자벨라에 녹아들까. 세 사람의 'Memory'는 무대 밖에서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