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조종 서울국제친선협회 부회장/아사카와 다쿠미 현창회 부회장 출간, 조선인, 조선문화 사랑한 헌신적 삶 입체적 조명

"이 책이 시대와 국경을 뛰어넘는 새로운 한ㆍ일관계를 정립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최근 <한국을 사랑한 일본인 - 의 삶과 사랑>(부코)을 펴낸 백조종 서울국제친선협회(SIFO) 부회장은 1일 (1891-1931) 80주기와 그를 기리는 학술대회(9월 5일, 프레스센터)에 맞춰 나온 책을 건네며 말을 이었다.

"대다수 한국인들은 다쿠미 선생에 대해 잘 몰라요. 내가 다쿠미 선생에 가졌던 무한한 존경과 흠모를 한일 양국의 미래와 세계의 평화를 짊어질 두 나라 젊은 세대에게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에서 책을 냈습니다."

<한국을 사랑한 일본인>은 의 여러 면들을 감동적으로 전한다. 다쿠미는 1914년 24세의 나이에 조선총독부 산림과 임업시험장에서 근무를 시작해 41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조선인과 조선문화를 사랑한 일본인이다.

일제의 탄압이 극심했던 시절에도 조선인들에게 친절을 베풀고, 어려운 조선인을 도왔으며, 조선인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마련해주기도 했다. 그는 조선인 마을에서 온돌방에 살았고, 바지저고리 차림에 망건을 쓰고 외출할 정도로 '조선인'으로 생활했다.

아사카와 다쿠미
그는 임업 전문가로 조선의 민둥산을 푸르게 하는 것이 소명이라 여겨 전국을 다니며 맞는 수종을 고르고 식목을 거듭했다. 자연 상태 흙의 힘을 이용하는 '노천매장법'방식으로 조선오엽송 종자를 싹 틔우는 방법도 개발해 현재 한국의 인공림 37%가 그가 공을 들인 나무라는 평가도 따른다.

특히 다쿠미는 조선 공예를 사랑해 문화라 여겨지지 않았던 조선의 소반문화를 정립해 <조선의 소반>이란 책을 집필했으며, 일본에서 조선민예의 선구자로 불리는 야나기 무네요시(1889-1961)와 함께 조선의 민예 운동을 이끌며 1924년 경복궁에 '조선민족미술관'을 설립하기도 했다.

그의 친형은 '조선 도자기의 신'인 아사카와 노리타가(1884~1964)로 다쿠미는 조선 각지의 가마터에서 도자기와 파편을 구해 형에게 전하는 한편 스스로 도자기 연구에도 몰두해 사후에는 조선 도자기 연구서인 <조선도자명고>가 출간됐다.

다쿠미는 1923년 일본의 관동대지진 때 무자비한 조선인 학살이 자행되자 이를 극력 비판했으며, 조선은 독자적인 문화를 이룩해 왔음을 주창하고 조선에 대한 멸시와 동화정책을 비난했다.

다쿠미는 사람을 대할 때 빈부귀천을 따지지 않았고 국적도 종교도 초월했다. 그가 생을 마감할 때 평소 그를 따르던 수많은 조선인들이 서로 상여를 매겠다고 나서 청량리의 교통이 마비됐다고도 한다.

조선의 땅에 묻히기를 원했던 다쿠미의 유언대로 그의 묘소는 서울 중랑구 망우동 공동묘지에 있으며, 국립산림과학원 임직원과 그를 기리는 한국인에 의해 관리되고 있다. 묘비 문구는 아직도 한국인들이 그를 추모하는 이유를 알게 한다.

"한국의 산과 민예를 사랑하고
한국인의 마음속에 살다간 일본인
여기 한국의 흙이 되다"

책 <한국을 사랑한 일본인>은 를 기억하는 한일 양국의 지식인, 동호인과 작고인의 글, 그리고 미래를 짊어지고 나갈 고교생들의 글을 담았다. 한국에서 35편, 일본에서 32편 등 모두 109명이 참여해 87편의 글로 400쪽을 넘겨 나왔다.

내용은 다쿠미의 삶, 식민지에서의 인간적 면모, 공예와 박물관으로 상징되는 조선문화에 대한 사랑, 한일간의 교류, 문헌과 논문 등을 통해 다쿠미를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야나기 무네요시는 다쿠미를 "한국을 내면으로부터 알고 있는 사람"이라 평했고, 정양모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은 "(다쿠미의 저서는)우리 공예와 도자사를 연구하는 사람에게 보물 같은 책"이라고 했다.

서울 중랑구 망우동 공원묘지의 아사카와 다쿠미의 묘비문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은 서문에서 "의 헌신적인 조선사랑은 한일 간 미래가 희망적이라는 믿음을 준다"며 "그의 선지자적 사상과 삶을 선양해 양국간 아픈 역사의 상처를 치유하고 우의를 다지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했다.

그를 기리는 5일 학술대회에서는 '시대의 국경을 넘은 사랑: 의 임업과 한국민속공예에 관한 연구'를 주제로 '조선의 문화를 보존하기 위한 의 헌신'을 한일 학자들이 함께 조명한다. 한편, 를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 <백자의 사람>이 합천과 부안 등지에서 촬영 중이며 이는 내년 개봉 예정이라고 한다.

저자인 백조종씨는 "조선에 산다는 것 자체가 조선인에게 미안해 몇 번이나 일본으로 돌아가려 했던 는 조선의 흙으로 남아 생전의 기도처럼 죽어서도 한국을 위해 자신의 할 일을 훌륭히 해내고 있다'고 말한다.

와의 인연은

"서울과 도쿄가 자매도시여서 90년대 도쿄도청에 국제교류원으로 파견 근무를 할 때 다쿠미 선생에 대해 알았는데 본격적인 관심을 가진 것은 97년 행정자치부에서 '한국지방자치단체국제화 재단'이 발족되고 일본으로 파견을 가면서다. 그때 다쿠미 선생의 고향인 다카네 정과 한국에서 그가 젊은 시절에 근무한 산림연구소 시험장이 있었던 포천군을 자매 결연하는 일을 진행하게 됐는데 이런 과정에서 깊은 인연을 맺게 됐다."

서울 중랑구 망우동 공원묘지의 아사카와 다쿠미의 묘소
의 삶에서 특히 존경하는 부분은

"다쿠미 선생은 민예운동을 '좋은 시대를 만드는 운동'이라 여겨 '민중이 각성하여 스스로 생각해 내고 스스로 키워나가는'전인적 운동으로 이끌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는 조선 공예를 속속들이 이해하고 있고 애정과 함께 조선의 상황을 예리하게 꿰뚫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또한 다쿠미 선생은 오상순, 염상섭 등 <폐허> 동인 같은 지식인과 하층민을 똑같은 '조선인'으로 대하는 인간애를 보여주었는데 존경할 부분들이다."

와 관련한 앞으로의 계획은

"다쿠미 선생의 선행을 널리 알리는데 맡은 소임을 다하고, 특히 한일 양국 국민이 서로 존중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성숙한 지구촌 시민으로 발전해 나가는 데 일정한 기여를 하고 싶다"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