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아, 내 이야기는 니가 써야지~”

칠순을 넘긴 패티 김(73)에게 조영남(66)은 ‘영원한 동생’이다. 어느 날 느닷없이, 얼떨결에, 농담처럼 이야기하다 ‘자서전 대필 작가’로 또다시 ‘딴짓’을 하게 됐다.

매일 라디오 생방송을 하랴, 주중에는 TV 녹화하랴, 여기저기 강연 나가랴 눈코 뜰새 없이 바쁜 와중에 지금도 주초면 어김없이 패티 김을 만나 지나간 삶의 이야기를 듣는다. 다음달 중순이면 ‘탈고’를 해야 하니 쓸 만큼 다 써놓았다.

조영남은 분명 가수다. 그러나 얼마나 ‘딴짓’을 즐기면 지난해 2월에는 서울 소공동 롯데갤러리 본점 에비뉴얼에서 ‘딴짓 예찬’이란 이름을 걸고 그림 전시회까지 가졌을까.

노래면 노래, 글이면 글, 그림이면 그림. 여기에다 마이크를 잡으면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털털한 입담으로 방송 진행을 척척 해냈다. “예술에 정답이 없다, 마음껏 즐기자”는 진짜 ‘문화 자유인’이다.

조영남은 24일 한국화랑협회 주최로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리고 있는 ‘2011한국국제아트페어(KIAF)’의 ‘VIP 프로그램’에 강사로 섰다. KBS 2TV에서 ‘명작 스캔들’을 공동 진행하는 명지대 김정운 교수와 함께 ‘명품을 만나다’라는 주제로 강연했다.

스스로 ‘화수’라고 말한다. 자칭 가수, 화가, 문필가가 바로 조영남이다. 그림에 대해 애호가들 앞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아주 자연스럽다. ‘팝 아트’적 기법으로 거장 피카소, 몬드리안, 머레이를 패러디한다. 음악이란 키워드와 접목시킨 그림은 물론 화투, 바둑알, 소쿠리 등을 소재로 삼아 즐겨 작업하고 있다. 시인 이상도 작품의 소재로 끌어들였다.

2000년 작품인 ‘미술과 음악’은 큐비즘적인 기법으로 ‘그림과 노래는 일란성 쌍둥이’란 생각을 고스란히 녹여 캔버스 위에다 오선지와 음표로 담아내고 있다. 미술사에 대한 식견을 바탕에 깔고 있기에 어떤 미술 행사에서도 대중적으로 인기 있는 이야기꾼으로 대접 받는다.

화투의 12월을 나타내는 ‘비광’이란 제목으로 그린 그림 속에 죠셉 보이스의 외투와 얄궂은 중절모자를 빌려 입은 자화상에선 ‘딴짓거리’를 즐기는 조영남의 이미지를 그대로 읽을 수 있다.

조영남은 서울대 재학시절인 1970년부터 미술하는 친구들과 어울려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1973년 첫 개인전을 가졌다.

‘화수’에게 ‘딴짓’은 단지 표현 수단의 이동일 뿐이다.

글 쓰는 일도 ‘딴짓거리’지만 즐겁게, 기꺼이 하고 있다. 문필가 조영남의 필력은 왕성하다.

올해만 해도 지난 6월 발 빠르게 ‘쎄시봉 시대’란 책을 이나리씨와 공동으로 출판했고, 8월에는 하성란, 윤대녕, 공선옥, 김별아, 김인숙 등 문인들과 함께 고(故) 이윤기씨를 기리는 문집 ‘신화 속으로 떠난 이윤기를 그리며, 봄날은 간다’에다 ‘모순에 어긋나는 약속’이란 글을 담았다. 그리고 지금은 ‘패티 김 자서전’을 쓰고 있다.

지난해 ‘천재 시인’ 이상 탄생 100주년을 맞아 ‘내가 죽기 전에 꼭 쓰고 싶었던 해설서’란 꼬리표를 붙인 ‘이상은 이상 이상이었다’를 출간했다. ‘천하제일 잡놈 조영남의 수다’(2009), ‘예수의 샅바를 잡다’(2008), ‘현대인도 못 알아먹는 현대 미술’, ‘어느 날 사랑이’, ‘조영남의 사랑과 예술 이야기’(이상 2007), ‘죽을 각오로 쓴 친일 선언’(2005) 등 1988년 ‘한국 청년이 본 예수’ 이후 다양한 글쓰기를 하고 있다.

‘딴짓거리’를 즐기는 것은 ‘팔자소관’이라 말한다. 타고난 DNA가 그렇다고 이야기한다. 예술적 영감은 “단연 젊고, 예쁘고, 착하고, 돈 많은 여자들”이라고 답한다. 사랑이 가장 큰 예술적 영감이자 예술가답게 살아가는 원천이란다.

매주 수요일 밤마다 KBS 2TV에서 문단의 대표적인 ‘구라’로 알려진 소설가 황석영, 넌버벌 퍼포먼스 ‘난타’의 제작자이자 성신여대 교수인 송승환, 방송인 김용만과 함께 진행하는 ‘빅 브라더스’에선 소녀시대의 태연에게 ‘기습 뽀뽀’를 했다고 네티즌들의 구설수에 올랐다. 할아버지 같은 ‘애정’을 표현한 것이었으리라.

조영남은 40년 가까이 노래했지만 히트곡이 많지 않은 가수다. 영국 가수 톰 존스의 ‘딜라일라’를 번안해 부르면서 유명세를 탔지만 정작 자기 노래로 알려진 것은 영호남 경계 마을의 시장 풍경을 흥겹게 표현한 ‘화개 장터’정도다.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지르는~ 중략~ 구경 한번 와 보세요. 있을 건 다 있구요, 화개장터~’를 자신의 장례식에서 부를 수 없는 것 아니냐는 우스개 소리도 스스럼 없이 한다.

그리고 스스로 선택하고, 세상에 떠벌린 장례식용 노래가 ‘모란 동백’이다. 그림 솜씨도 널리 알려진 시인 이제하가 노랫말을 쓰고, 곡을 붙인 것이다.

‘모란은 벌써 지고 없는데 / 먼 산에 뻐꾸기 울면 / 상냥한 얼굴 모란 아가씨 / 꿈 속에 찾아오네 / 세상은 바람 불고 고달파라 / 나 어느 변방에 떠돌다 떠돌다 / 어느 나무 그늘에 고요히 고요히 잠든다 해도 / 또 한번 모란이 필 때까지 / 나를 잊지 말아요.

동백은 벌써 지고 없는데 / 들녘에 눈이 내리면 / 상냥한 얼굴 동백 아가씨 / 꿈 속에 웃고 있네 / 세상은 바람 불고 덧없어라 / 나 어느 바다에 떠돌다 떠돌다 / 어느 모랫벌에 외로이 외로이 잠든다 해도 / 또 한번 동백이 필 때까지 나를 잊지 말아요 / 또 한번 모란이 필 때까지 나를 잊지 말아요.’

‘딴짓’을 예찬하는 ‘화수’의 세월도 간다.



이창호 기자 chang@sp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