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가자, 장미여관…' 이파니섹시하거나 순수하거나… 복잡하고 미묘한 사라 "있는 그대로 연기할 것이혼-생활고-성형 "아들 얼굴 보면 힘나요"

혼자라는 것, 돈이 없다는 것 그리고 사랑, 살아간다는 것-.

'20대 돌싱' 이파니(25)는 어릴 때부터 생각이 많았다. 경상남도 울산에서 외동딸로 태어났지만 어려운 가정 형편 탓에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서울 할머니 손에서 컸다. 또래의 아이들보다 너무 빨리 세상을 경험했고, 너무 빨리 알았다.

지금은 당당하다. 솔직하다. 사춘기의 방황, 갓 스물의 사랑, 연예 활동 등을 서슴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이야기한다.

오는 22일부터 서울 종로구 동숭동의 대학로 비너스홀에서 막을 올리는 연극 '가자, 장미여관으로'의 주인공 '사라'역을 맡은 이파니를 지난 4일 저녁 연습장에서 만났다.

- 지난해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에 이어 두번째 연극이다.

"앞에 했던 사라랑 연결되니까 조금은 편하게 준비하고 있어요. 그 때는 2주만에 얼렁뚱땅 무대에서 연기했는데 이젠 조금 보는 눈이 생긴 것 같아요. 사라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 지 필이 온다고나 할까요."

- '야한 소설', '야한 글'로 대표되는 마광수 교수의 글을 무대로 옮긴 작품인데 이파니가 연기하는 '사라'는 어떤 인물인가.

"사라는 섹시미와 순수함, 마조(히즘)적인 분위기와 고상함 등 복잡하고 묘한 여성의 심리를 모두 내포하고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해요. 지난 번엔 색기를 부린다고 부렸지만 어설펐어요. 이번엔 맛깔 나는 색기를 보여줄 거에요. 필 자체가 달라졌어요. 귀여움은 섹시한 것 같아도 지루하잖아요. '야한 여자'를 공연할 때 마 선생님께서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라는 조언을 하셨는데 그 말 뜻을 알 것 같아요."

이파니는 지난해 연극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를 공연할 때 몇 번 극장을 찾아왔던 마광수 교수와 소주 잔을 나누기도 했다. 그 자리에서 많은 이야기를 했고, 생각이 잘 맞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 뒤 방송은 물론 어떤 자리에서도 이혼, 육아, 성형 수술 등에 대한 자기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 놓고 있다.

- 이십대 중반의 애 딸린 젊은 이혼녀로서 주위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을텐데.

"내가 부끄러운 일을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어느 날부터 그냥 있는 그대로 보여주자고 마음 먹었어요. 아이와 함께 살아가면서 내가 당당하지 못하면 아이도 당당하지 못할 것이란 것을 느꼈어요. 그래서 솔직하게 이야기했더니 어떻게 저런 이야기를 방송에서까지 막 할 수 있느냐는 수근거림이 있었지만 오히려 아무 파장이나 문제가 일어나지 않았어요."

- 젊은 여자 혼자 아이를 키운다는 것이 참 어려운 일이다. 그것도 대중들을 상대하는 연예인으로서.

"당연히 편견이 있지요. 슬프고, 외롭고, 죽고 싶고. 자살 시도도 했을 만큼 정말 힘든 시간이 많았지만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은 아들 때문이에요. 어차피 한번 죽으면 죽는데 신세 한탄만 하면서 아깝게 보내지 말고 얼른얼른 빨리 일을 해야지라고 생각했어요. 나에겐 자식이 있으니까요."

이파니의 아들 '건'은 올해 다섯살이다. 엄마와 함께 산다. 집안 어른들에게 육아를 부탁할 수도 있지만 꼭 곁에 두고 싶었다. 밤에만 보더라도 '나는 아이와 함께 살아야 한다'한다고 결심했다.

이파니는 부모 곁을 떠나 서울에 살면서 외롭고 힘겨웠다. 중학교 때부터 반 독립 생활을 하느라 온갖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다. 등록금도 만들어야 했다. 결국 고등학교 2학년 때는 학비를 더 이상 낼 수 없어 휴학(이파니는 '자퇴'라는 표현을 쓴다)을 했다.

- 사춘기가 무척 힘들었겠다.

"엄마 아빠가 모두 돈 벌러 나가느라 제대로 키울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어요. 그래서 할머니에게 맡겨 졌고, 경제력이 없는 할머니로서도 학교 생활을 돌봐줄 수 없었지요. 고등학교는 2학년 때 자퇴했다가 나중에 연예인이 된 뒤 다시 복학해서 다녔어요. 주위 사람들은 연예인이 어린 아이들하고 같이 고등학교 다닌다고 이상한 눈으로 봤지만 나는 너무 재미있었어요. 일찍 결혼하고, 아이 낳고, 이혼하느라 대학 생활도 제대로 못했고요."

이파니는 2006년 제1회 플레이보이 모델 선발대회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하며 대중들에게 알려졌다. 큰 키와 늘씬한 몸매, 작은 얼굴이 심사위원들의 눈을 사로 잡았다.

- 만 19세에 모델 대회에 참가해 신데렐라처럼 등장했다.

"연예인에는 관심도 없었어요. 첫 사랑 남자 애가 연예인을 하고 싶다고 하길래 조금 관심을 가졌지만 정말 아무 것도 몰랐어요. 워낙 외롭게 사춘기를 보내서 빨리 결혼하자고 했더니 자기는 먼저 꼭 연예인이 돼야 한다며 저를 버렸어요. 얼마나 화가 났던지 니가 하는 연예인이면 나도 할 수 있다는 오기가 생겨서 관심을 갖게 됐어요. 여자의 복수심 같은 것이 발동한 거에요."

- 쉽게 연예인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텐데.

"그래서 슈퍼 모델, 잡지 모델, 엑스트라 등 닥치는 대로 연예계 주변을 두드렸어요. KBS 별관에 새벽 6시30분에 나가면 엑스트라들의 인력 시장이 열리는데 날마다 가다시피 했어요. 플레이보이 모델 선발 대회 때도 길거리에서 찍은 사진을 '뽀샵'해서 붙이고 서류를 냈더니 떨어졌지만 우연히 관계자들과 미팅하는 자리에서 발탁돼 참가할 수 있었어요. 정말 1등을 할 줄 몰랐어요."

이파니는 새벽 인력시장에서 드라마 촬영 팀에 눈에 들어 드라마 '루루 공주'에서 어제는 간호사, 오늘은 술집 여자, 내일은 식당 종업원 등으로 배역을 바꿔가며 출연했다. '프라하의 연인'을 찍을 때는 걸어가는 다리만 나오는 엑스트라도 했다. 그래도 "땜빵을 많이 한 건 운이 좋은 편이었다"고 기억한다.

- 모델 대회 1등을 차지한 뒤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을 것이다.

"정말 많이 변했어요. 오라는 곳도 많아졌고. 저 역시 거만해질 대로 거만해졌고. 엄청 거만을 떨다 보니 어느 날 회사(기획사) 사람들이 등을 돌렸어요. 한편으론 나를 버리고 떠난 첫 사랑이 돌아올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아서 슬펐고요. 그렇게 물 먹고 있던 사이에 또 다른 사랑이 찾아왔어요. 저의 힘든 과정을 모두 지켜봤던 남자였어요. 연예계를 조금 알게 되고, 몰랐던 것을 알게 되니까 이 일을 하고 싶지 않아졌어요. 한편으론 나를 물 먹인 회사에 보란 듯이 뭔가 해주고 싶었는데 잘 됐다 싶어서 결혼을 했어요."

- 결혼하고, 가정을 꾸려 나가려면 경제력이 필수인데.

"젊으니까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서로 좋아했고, 둘이 살 때는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이 없었어요. 적지만 그 때 그 때 조금씩 벌어도 살 수 있었거든요. 그런데 아이가 생기고 나니까 너무 힘들었어요. 아이 분유 값이 없을 정도였어요. 저도 크게 생각을 잘못했지요. 임신을 하면 모델로서도 활동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행사에도 불러주지 않는다는 것을 몰랐어요. 돈줄이 끊어진다는 것을 몰랐으니 얼마나 생각이 짧았었는지. 너무 어렸고, 철이 없었어요. 결국 아이 백일 잔치를 한 뒤 결혼 생활 1년6개월 정도 지나서 이혼했어요. "

혼자였다. 아이와 함께 살기 위해 돈을 벌어야 했다. 72kg이던 몸무게를 2개월 만에 42kg까지 빼고 화보 촬영에 응했다. 어떤 일을 하든 거만을 떨지 않았다. 더 열심히 일했다. 2007년 말부터 방송에 출연할 수 있는 기회도 생겼다. 케이블방송 XTM의 드라마 '악녀쟁투'에 출연했고, 공중파의 각종 예능 프로에도 나갔다.

더 이상 기획사에 의존하지 않고 있다. 나쁜 꼴을 많이 당한 탓이다. 2년째 혼자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당당하게 살아가고 있다.

이파니는 아래 윗니가 잘 맞지 않는단다. 그래서 앞니가 약해졌고 라미네이트를 입혀 놓았단다.얼마 전 라미네이트가 깨져 고치려고 치과에 갔더니 양악 수술을 권하길래 "이뻐지고 좋은 점이 많다"는 말에 그 자리에서 "오케이"하고 얼굴 모습을 조금 고쳤다.

- 양악 수술 후유증으로 가끔 침을 흘린다는 이야기가 돌던데.

"아니에요. 양악 수술을 하고 얼마 안 돼서'비타민'이란 프로에 나갔는데 침을 흘리는 등 후유증이 있을 수 있다는 방송이 나갔어요. 그게 이상하게 서로 뒤섞어 인터넷에서 떠돌다 보니 잘못 알려진 거에요. 시술한 병원으로부터 고소 당할 뻔 했어요."

살아 있다는 것, 살아간다는 것.

'돌아온 싱글' 이파니는 이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다.

"야한 연극 아닌 일상의 이야기"

●'가자, 장미…' 강철옹 연출

연극 '가자, 장미여관으로'는 마광수 교수의 시집을 바탕으로 쓴 영화 시나리오를 무대로 옮긴 것이다.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힙합가수 지망생 '사라'가 장미여관에서 죽어가는 것을 목격한 '마광수'가 사회 유력인사이면서 살해용의자인 사람들을 불러 모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강철웅 연출이 이끌어 간다.

플레이보이 모델 출신의 '돌싱' 이파니가 파격적인 춤과 노래를 부르며 섹시미를 풍기고, 학생과 선생의 정사 장면을 삽입하는 등 '야한 연극'을 표방하고 있다.

강철웅 연출은 "야한 이야기가 아니라 일상에서 일어나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이라며 "전통적인 연극적 요소를 배제하고 영화적 기법으로 관객에게 다가가는 작품"이라고 밝혔다. 영화의 장면 장면을 보듯 사실적인 연기를 이어간다는 것이다. 또 "관객에겐 대사보다는 각 장면이 그림으로 보여지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1997년 3월 '속 마지막 시도'란 연극을 무대에 올렸다가 외설과 과다 노출을 이유로 '공연음란죄'로 구속됐던 강철웅 연출은 당시 극단 극예술집단의 대표였다.

1994년 3월부터 서울 종로구 동숭동 파워1 소극장에서 '마지막 시도'를 공연, 2년 동안 관객 20여 만명을 동원하고 순이익 10억원 이상을 올리며 흥행몰이를 했다. 그러나 정통 연극인들과 부딪쳤고, 당시 한국연극협회 정진수 이사장은 "마지막 시도는 관객의 말초적 신경을 자극해 돈벌이에 급급한 음란쇼"라며 비난을 퍼부었다.

결국 경찰은 '교수 부인이 침대 위에 전라로 누워 있는 장면, 신음소리, 성 보조기구를 통한 자위 행위 장면'이 음란 행위에 해당된다며 극단 대표와 연출가를 구속해 법정에 세웠다.

강 연출은 "당시 내가 했던 연극은 법의 잣대로 재단할 사안이 아니었는데 '공연 음란죄'라는 것을 만들어 죄인으로 만들었다"며 "외설에 관한 표현의 문제를 개인과 단체의 싸움으로 몰아가 불행한 일이 벌어졌다"고 밝혔다.

10여 년을 야인으로 보냈고. 2009년 말 '교수와 여제자', 지난해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를 연이어 만드는 등 줄기차게 '야한 연극'을 고집하고 있다.

"고 김기영 영화감독을 스승으로 영화적 어법을 배웠다"는 그는 "이번 연극은 뮤지컬 요소를 도입하는 등 변화를 시도하면서 에로티시즘을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로 풀어낸 것에 만족한다"고 말했다.



글=이창호기자 chang@sp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