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SK 감독 이만수

이제 감독이다. 힘겨운 시간 동안 따라다니던 '대행'이란 꼬리표를 떼냈다.

못 다한 이야기가 참 많았다. 두달 십삼일-. 얼마나 힘들었으면 대행으로 지낸 시간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을까.

프로야구 SK 와이번스 이만수(53) 감독을 만났다. 취임식을 갖기 하루 전이었던 지난 2일 오후 인천 문학구장을 찾아가 솔직한 이야기를 들었다.

- 축하합니다. 그동안 마음 고생이 심했을텐데.

"정말 힘들었어요. 상대 팀과 야구를 하는 것이 아니라 팬들의 반감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 지 더 큰 숙제였어요. 눈 앞이 캄캄했습니다. 날마다 그랬어요. 선수들도 무척 힘들어 했고요. 집사람도 많이 울었어요. 실망감도 컸던 것 같아요. 얼마 동안 외출을 할 수 없을 정도였으니까요. 하도 오랫동안 팬들의 반발이 계속되니까 유명인들이 왜 자살을 하는지 알 것 같더라고요. 너무나 힘든 시간이었어요."

지난 8월17일 SK 김성근 감독이 "시즌 종료 후 감독직에서 물러나겠다"는 폭탄 선언을 했다. 구단은 곧바로 수습에 나섰다. 다음날(18일) 김성근 감독을 전격 해임하고, 이만수 2군 감독을 대행으로 임명해 남은 시즌을 치른다고 발표했다. 대전에서 한화와 2군 경기를 하던 이만수는 구단의 부름을 받고 부랴부랴 상경했다.

사상 초유의 일이 문학구장에서 또 벌어졌다. 어느 팀에서도 하지 않았던 감독대행의 공식 기자회견이 열린 것이다. 이게 불씨가 됐다.

- 첫 기자회견 이후 언론의 뭇매를 맞았고, 팬들의 격한 비난을 받았는데.

"아무 것도 모르고, 웃고 떠들었다가 호되게 당했습니다. 감독대행을 두번 정도 해봤으면 그렇게 하진 않았을 거예요. 이것도 예행 연습이 필요한 것인가라는 생각까지 들었어요. 제가 흑심이 있었으면 말 안 했지요. 그저 순수한 마음에 내 야구를 하면서 SK를 메이저리그의 뉴욕 양키스나 보스턴 레드삭스 같은 명문구단으로 만들도록 하겠다고 한 것인데…. 좌우간 분위기 파악 못한다고 엄청나게 맞았습니다."

- 팬들의 비난은 갈수록 심해졌고요.

"야구장 외야에 10여 개나 되는 플래카드가 붙어 있었습니다. 덕아웃에서 보면 한 눈에 들어오는 위치였어요. 저나 선수, 구단이 제재할 방법도 없었고…. 참 답답하더라고요. 한동안 선수들이나 저나 패닉 상태였어요. '만수, 니가 정말 싫다'라는 글은 김(성근)감독님의 팬들로선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이해할 수 있었지만 '이만수는 예수의 13번째 제자인가'라는 글이나,'유다'라고 부르며 비난할 때는 정말 아찔했습니다. 집 사람도 태어나서 듣지 못할 말을 이 때 다 들었던 것 같아요. 심지어 상대 팀이 안타를 치면 환호하고, 우리 선수들이 안타를 치면 야유를 보내기까지 했어요."

- 왜 팬들이 그렇게 이만수 감독대행을 싫어했다고 생각합니까.

"글쎄요. 김 감독님이 지난 5년 동안 좋은 야구를 했고, 성적도 좋았는데 갑자기 그만두시니까 화가 많이 났겠지요. 나중에 알았는데 김 감독님이 LG를 그만두실 때부터 함께 움직이고, 활동하는 팬들이 있더군요. 선수들도 처음에는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겁니다. 경기는 이겨야 하는데 주변의 잡음은 많고… 하루 하루 이게 뭔가 하는 생각에 빠지곤 했어요. 그래도 저 역시 5년 동안 선수들과 함께 지냈기 때문에 시간이 가면서 진심을 알게 됐고, 소통이 가능해졌습니다."

SK는 2006년 시즌을 끝낸 뒤 김성근 감독을 영입했다. 그리고 메이저리그 시카고 화이트삭스에서 불펜 코치를 하던 이만수를 수석코치로 데려왔다.

그리고 5년 동안의 '불편한 동거'를 이어갔다. 팬티 바람으로 팬서비스를 위해 문학구장을 달리기도 했다. 이만수 수석코치는 지난해 6월19일 처음으로 2군 감독으로 가라는 통보를 받고 8월20일까지 김성근 감독과 떨어져 지냈다. 다시 1군 수석코치로 올해 스프링캠프까지 다녀왔지만 3월8일 또 한번 2군으로 가라는 전화를 받았다.

- SK가 2007년 시즌을 준비하면서 김성근 감독, 이만수 수석코치로 조각을 하면서부터 말이 많았습니다. 많은 야구인들이 두 사람의 성격이나 야구하는 스타일이 아주 다르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극과 극이 맞아요. 물과 기름이라고 볼 수 있어요. 처음에는 제가 미국 스타일로 조금 하다 얼마 안 가서 '아 이게 아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김 감독님을 모시고 있는 동안에는 내 야구를 접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서로 상반된 야구를 하면 배는 산으로 갈 수 밖에 없잖아요. 언젠가 내 야구를 할 수 있는 때가 올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동안 김 감독님에게 많은 것을 배웠어요."

- 미국 생활을 접고 SK로 올 때부터 김성근 감독에 이은 차기 감독으로 약속이 있었다는 설이 쫙 퍼져 있었어요. 올해 김성근 감독이 구단과 마찰이 있었던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는 이야기도 있고요.

"이젠 제가 감독이 됐으니까 지나간 이야기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면 또 이슈가 되고 시끄러워질 뿐 이잖아요. 이 다음에 끝나고 나서 이야기하지요."

- 선수나 코치나 똑같겠지만 2군행을 통보 받았을 때 심정은.

"두 번 쯤 되니까 면역성이 생기더라고요. 내 야구를 할 수 없다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가족 회의를 했어요. 8월말까지 하고 미국으로 다시 가던지, 야구교실을 열던지 해야겠다고 말하고 가족들의 의견을 물었어요. 한결같이 아버지 마음을 다 안다면서 여하튼 시즌 끝날 때까지 최선을 다해달라고 뜻을 모았습니다. 마음의 짐을 덜어놓은 것처럼 홀가분해졌고, 그 때부터 사직서를 품고 살았어요. 김 감독님께도 2군은 경기가 없는 월요일에 모두 훈련을 하지 않겠다고 말씀 드렸구요. 마음대로 알아서 하라고 하셨어요."

이만수의 힘겨운 시간을 지켜준 것은 가족이었다. 아내 이신화씨는 "당신은 세포가 야구"라며 포기하지 못하게 했고, 두 아들 하종과 예종은 늘 평생 야구만 한 아버지를 이해해 줬다.

삼성에서 현역 생활을 끝낸 뒤 1998년 미국으로 야구 연수를 떠날 때도 그랬고,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와 시카고 화이트삭스를 거쳐 한국으로 돌아온 지금도 똑같다.

- 미국 생활도 무척이나 힘겨웠을텐데.

"맨 땅에 헤딩한 거지요. 영어를 제대로 할 줄 아나…. 멸시와 인종 차별을 많이 당했어요. '김치 냄새 난다, 마늘 냄새 난다'며 무시하고 한국으로 돌아가고 비아냥거리는 것을 참고 또 참았습니다. 개리 워드란 흑인 타격코치가 그렇게 저를 괴롭혔는데 나중에는 '자기 자리를 빼앗길까 봐 오해했다'면서 사과를 했고, 그 친구의 추천으로 2000년부터 메이저리그에 올라갈 수 있었으니 참 묘하지요."

이만수는 시카고 화이트삭스 산하 트리플 A팀 '샬론 나이츠'의 1루 코치였다. 한국에서 뛰었던 브리또라는 선수가 소속된 팀이었다. 1할대 타율로 부진하자 개인적으로 이만수를 찾아와선 '한국의 베이브 루스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며 타격 지도를 해달라고 졸랐다. 나중엔 '체드 모톨라'라는 백인까지 찾아왔다.

이만수 코치는 노트북에 자신이 정리한 선수 파일을 보여주며, 손짓 발짓 보디 랭귀지로 장단점을 알려줬다. 브리또는 3번 타자로서 연속 게임 안타를 치며 매서운 타격을 되찾았고, 체드 모톨라는 4번 타자답게 홈런포를 터뜨리며 1999년 우승을 이끌어냈다.

이만수는 평생 일기를 쓰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대구상고 1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야구 일지도 기록하고 있다고 말했다. 덜렁거리고 시끄럽다는 인상과는 달리 꼼꼼한 면도 있다.

- 앞으로 하고 싶은 야구는.

"야구를 통해 우리 사회에 메시지를 던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감동을 주는 야구를 하고 싶어요. 수많은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줘야 한다는 사명감도 있고요. 올해 포스트시즌을 하면서 보여준 우리 선수들의 모습 같은 겁니다. 많이 아프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것이 프로잖아요. 저는 코치들의 전문성을 존중하고, 선수들을 믿습니다. 구단에서 추구하는 스포테인먼트에 맞게 즐거움을 주는 야구도 해야겠지요. 프로는 기본이 이기는 것이고, 그러면서 비즈니스적인 측면에서 감동을 주자는 겁니다."

인천 문학구장의 감독실에는 노트북과 세 권 책이 놓여 있었다.

에세이집 '잠깐 쉬었다가'(손봉호 지음)와 '예일대 명물 교수 함토벤'(함신익 지음), '야구의 심리학'(마이크 스태들러 지음). 지금 이만수 감독이 틈틈이 읽는 책이다.

이제 감독이다. 아직도 다하지 못한 이야기는 이 다음에 다시 하잖다.



글=이창호기자 chang@sp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