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각 국의 외교관들은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 가치로 하고, 주재국에 살고 있는 자국인을 보호하는 것이 주임무다. 특히 대사는 관련 업무를 총괄하는 수장으로서 막중한 책임이 따르는 자리다.

1882년 한·미 수교 이후 129년 만에 처음으로 한국계 미국인 성김(한국명 김성용·51)이 22대 주한 미국대사(Chief of Mission Ambassador in Korea)로서 지난 10일 아내 정재은씨와 두 딸 에린, 에리카와 함께 금의환향했다.

한국사정 너무 잘 알아

1975년부터 2년 동안 충남 예산중학교에서 원어민 영어교사로 재직했던 인연 등으로 '심은경'이란 한국이름을 갖고 있던 전임 캐슬린 스티븐스 대사에 이어 한국을 너무 잘 알고 있고, 남북한 문제에 가장 정통한 외교관이 부임했다.

성김 대사는 부임하자마자 개인 블로그 '올 어바웃 성김'을 오픈하고 소통을 시작했다. 처음 올린 글에선 가족과 함께 라면과 우동, 김밥을 맛있게 먹었던 분식집 이야기, 대사관 직원들과 친목을 다지며 먹었던 짜장면 이야기, 자녀들의 학교 문제 이야기 등 개인사는 물론 미국 해병대 창군일(11월10일) 즈음에 열린 해병대 댄스 파티 '마린 볼'에 관한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털어 놓았다.

성김 주한미국대사가 지난 3일 미국 국무부서 선서식을 하고 있다.
그리고 '사람들간의 관계, 나라간의 관계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다시 한번 깨달았고, 두 나라의 소중하고 중요한 파트너십을 함께 공유하고 싶다'고 썼다.

성김 대사가 부임한지 열 이틀이 흐른 지난 22일 여의도에선 '최루탄 국회' 속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이 여당 단독으로 처리됐다. 지난 2007년 4월, 노무현 정권 시절 협상이 타결된 이후 4년7개월 만에 입법 절차를 마무리하고 내년 1월1일부터 발효될 수 있는 근거를 만들었다.

성김 대사는 FTA 비준안이 통과된 이틀 뒤인 지난 24일 블로그 '올 어바웃 성김'을 통해 18일 한미 우호의 밤에 참석해 "공통의 가치관과 이해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한미의 우정은 어떤 도전도 극복할 수 있다"고 언급한 것과 '한국에 근무하는 동안 추구할 두 가지 목표가 한·미동맹 강화 및 심화, 양국간 인적 관계 증대'라는 메시지를 분명하게 알렸다.

성김 대사는 부임하자마자 일단 한·미 간의 '뜨거운 감자'였던 'FTA'란 쉽지 않은 산을 순조롭게 넘었다.

강경파 공세로 인준 지연

성김 대사의 한국 부임은 쉽지 않았다.

올해 6월27일 캐슬린 스티븐스 대사의 후임으로 내정됐지만 곧바로 미국 상원의 인준을 받지 못했다. 대북 강경파인 공화당 존 카일 의원이 인준 보류(Hold)를 요청한 탓이었다. 성김 내정자의 개인적인 자질이나 노선 때문이 아니었다.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정책과 관련된 미국 국회 안의 견제 심리가 주 원인이었다. 시간은 늦어졌지만 성김은 결국 7월21일 인준 청문회를 거쳐 주한 미국대사로 확정됐다.

성김은 미국 국무부에서도 '고속 승진'을 케이스로 주목 받았고, 가족사는 더욱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성김은 1974년 주일 공사를 지낸 아버지 김재권(일명 김기완)씨와 함께 미국으로 이주했다. 아버지는 1973년 일본에서 일어난 '김대중 납치 사건'에 깊숙하게 개입된 외교관이었기 때문이다.

절제·자기관리 철저

성김은 이민 이후 펜실베이니아대학교 로욜라 로스쿨을 거쳐 LA검찰청에서 검사 생활을 했다. 성공한 이민 1.5세대였다. 그러다 외교관으로 직업을 바꾼 뒤 2006년에는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부 중에서도 가장 많은 직원을 거느린 한국과 과장으로 근무하는 등 '한국통'으로 입지를 굳혀갔다. 빅터 차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아시아 담담 보좌관, 유리 김(한국명 김유리) 북한 팀장과 함께 한국 전문가로서 자리 잡았다.

성김은 북한 전문가다. 2003년부터 주한 미국 대사관 1등 서기관으로 근무하면서 북한 문제에 대해 깊숙이 다루게 됐다. 6자 회담에 거의 빠지지 않고 참석해 외교관으로서 한반도 주변 국가들의 이해 관계와 정책 방향에 대한 인식을 넓혔고, 북한도 10여 차례 직접 방문하면서 실상을 파악했다. 2008년에는 상원의 인준을 거쳐 '대사' 타이틀을 얻고 6자 회담 수석대표 겸 대북 특사로도 활동했다.

성김은 조지 W 부시 정권부터 오바마 정부까지 직업 외교관으로 승승장구하고 있다. 윗 사람이라면 누구나 좋아하는 인성이 탄탄대로를 만들었다. 늘 엷은 미소를 띠고, 성격은 온화하지만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말을 아끼고 행동을 절제하는 스타일로서 자기 관리가 철저하다.

서울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3학년까지 생활했던 지라 국내에도 많은 지인들이 있지만 공과 사를 분명하게 구분한다.

정진석과는 죽마고우

'성북동 골목 친구'인 정진석 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성김이 결혼할 때 함진아비를 맡을 만큼 각별한 사이다. 정 전 수석은 1993년 언론사 워싱톤 특파원으로 부임할 때 거처를 구하기 전까지 약 보름 동안 성김의 집에서 신세를 질 정도였다. 한나라당 구상찬 의원을 성김이 주한 미국 대사관에서 근무할 때 친분을 쌓은 뒤 오랫동안 교류하고 있고, 정몽윤 현대해상보험 회장도 절친한 사이로 알려져 있다. 성김은 개인적인 친분이 있더라도 공식석상에선 늘 통역을 대동한다. 한국어가 능하고, 글도 쓰지만 직업 외교관으로의 본분을 지키기 위해서다.

이제 성김도 '지천명(知天命)'의 나이를 넘어섰다. 아버지의 불편한 지난 날과 어린 나이에 느낀 이민의 고통, 청장년기에 깨달은 이민 세대의 삶을 두루 겪었다.

지난 3일 미국 국무부 8층 벤저민 프랭클린 룸에선 성김 주한 미국대사의 선서식이 열렸다. 덕담과 농담이 오간 자리였다. '아메리칸 드림'을 일궈낸 성김 대사는 아버지를 비롯한 가족사를 떠올리며 눈물을 보였다.

열한 살에 떠난 고향, 그리고 50년 만에 쉰한 살에 미국 대사로 돌아온 한국.

성김 대사는 '소통하고 싶다'고 간절하게 기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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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호기자 chang@sp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