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변화의 순간이 올 때마다
'선택의 본질'이 무엇인가 생각한다
현재의 일과 미래의 일 사이에서
어느 쪽이 더 의미 있고, 재미있고,
잘 할 수 있을지 따져 본다

그는 선택을 위한 세가지 조건이 있다
첫째 과거를 잊고 판단하라
둘째 주위 평가에 연연하지 마라
셋째 결과에 미리 욕심내지 마라

시나브로 안철수는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좋아하는 유명 인사가 됐다. 기존 정치권에 기웃거리지 않았는데도 여론조사를 하면 수많은 사람들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서울시장 보궐 선거로 뜨거웠던 지난 9월 이후 줄곧 거물 정치인들과 가상 대결을 펼칠 때마다 번번이 완승을 거뒀다. 정치의 흐름을 확 바꿔 놓는 불씨가 됐다. ‘안철수 열풍’이 불면서 민주당은 민주통합당으로, 한나라당은 마침내 박근혜 전 대표를 비상대책위원장으로 내세워 전면적인 당 쇄신을 천명하고 나섰다.

신묘년이 가고 임진년이 오면 총선과 대선을 잇달아 치러야 한다. 왜 직접 정치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있는 대학교수에게 모두가 열광하는 것 일까. 과연 안철수 교수가 정치판에 뛰어들 것인가 궁금해 한다.

안철수는 변화의 순간이 올 때마다 ‘선택의 본질’이 무엇인가 생각한다. 현재의 일과 미래의 일 사이에서 어느 쪽이 더 의미 있고, 재미있고, 잘 할 수 있을지 따져 본다. 오랜 시간 고민한다. 의사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다시 중소기업 CEO로, 그리고 교수로 직업을 바꿀 때마다 한결같은 방식으로 결심을 굳혔다.

그 바탕에는 선택을 위한 세가지 조건이 깔려 있다. 첫째 과거를 잊고 판단하라, 둘째 주위 평가에 연연하지 마라, 셋째 결과를 미리 욕심내지 마라.

1년에 80회에 진행되는 각종 강연에서 “직업을 바꿀 때 어떤 생각을 했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분명하게 밝히고 있는 원칙이다.

안철수 교수는 ‘실패가 발목을 잡듯이 성공도 발목을 잡는다’고 말한다. 실패를 떠올리면서 결단을 주저하는 것처럼 크든 적든 어떤 성취를 이루고 난 뒤 놓고 싶지 않은 것도 똑같은 심리라는 것이다. 그래서 지난 시간을 잊고 본질만을 따져보면서 내가 먼저 행복할 수 있는 일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치료 의사가 아니라 기초 의학을 선택한 것은 병의 원인 규명이나 치료 방법 개선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힘을 될 수 있다는데 의미를 뒀고, 컴퓨터 바이러스의 퇴치를 위한 백신을 만드는 프로그래머는 의사로서 안철수는 없어도 괜찮지만 백신 개발 프로그래머는 유일했기 때문에 선택했다고 했다. 그리고 프로그래밍이 재미있었기에 의사의 길을 포기할 수 있었다.

안철수(왼쪽) 교수와 박원순 서울시장.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와튼스쿨에서 경영학을 공부한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작은 회사지만 직원이 늘어나고, 경영을 해야 하는 위치에 있다 보니 프로그래머란 자리를 떠날 수 밖에 없었다.

안철수는 스스로 ‘한 눈 파는 스타일’이 아니라고 평가한다. 주어진 일, 해야 할 일이 있으면 뛰어난 집중력을 보이며 파고 든다. 대학원생으로 의학을 공부하면서 새벽 3시부터 6시까지 6개월여 동안 컴퓨터에 매달려 처음으로 백신 프로그램을 만든 것이 대표적인 모습이다. 호기심이 생기고, 재미가 붙으면 악착같이 매달린다. 그 안에서 행복을 찾는다.

1962년생인 안철수는 베이비붐의 끝 세대다. 의사인 아버지를 둔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책 읽기를 즐기며 성장했다. 부산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의대에 입학한 뒤에도 보통의 의대생들과 비슷한 학창 시절을 보냈다. 기초 의학 연구의 효율성을 높이고 싶은 욕심으로 컴퓨터를 배웠고, 우연히 컴퓨터 바이러스라는 것을 알게 됐다. 의대 졸업 후에는 동기생 중에서 가장 먼저 대학 교수로 임용되는 등 순탄한 인생을 걸었다. 늘 마음 속에는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책임감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A학점을 줄 수 밖에 없는 똑똑한 학생들이 있었는데 10년 후에 보니 대부분의 학생들이 감옥에 가 있었다”는 와튼스쿨 교수의 이야기를 통해 사회적 책임이 무엇인지 다시한번 스스로에게 다짐하면서 젊은이들에게 알려주고 있다.

‘안철수 열풍’은 컴퓨터 세대인 젊은이들과 함께 한다. 아무도 하지 않았던 바이러스 백신을 개발하고, 자신이 세운 기업에서의 기득권을 포기하고, 조건 없이 많은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는 행동에서 도전 정신과 창의성, 청렴함을 배우고 느끼면서 ‘열광’하고 있다. 꿈과 희망을 이야기하는 젊은이들의 멘토로서의 또렷한 이미지가 사회 전체를 아우르는 소통의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 서울시장 후보를 박원순 아름다운 재단 이사장에게 양보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안철수(오른쪽)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지난 9월7일 경북 구미 금오공대에서 열린 희망공감 청춘콘서트에서‘시골의사’ 박경철씨와 함께 대담식 강연을 하고 있다.
기성 정치권에 실망하고 있는 세대들은 안철수의 말과 행동이 신선한 자극제였고, 안철수를 통해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갈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됐다.

안철수 역시 세상 속에서 숱한 시행착오를 겪었고, 좌충우돌 어려움과 부딪혔다. 그런 와중에 얻은 깨달음과 교훈이 생각과 행동과 운명을 바꿔 놓았다. 수직적으로 살아온 삶이 전부가 아니며, 수평적 네트워크의 중요성이 더 강조돼야 함을 알게 됐다. 한국의 기업 문화와 애플을 비교하면서 “세상은 두 눈으로 봐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아이팟이나 아이폰은 단순한 기술 혁신의 산물이 아니라 디자인과의 융합으로 일궈낸 ‘창조물’이란 것이다. 말콤 그래드웰이 경영학에 심리학과 사회학을 접목해 경제 현상을 분석하는 것처럼 기술과 기술, 기술과 문화의 융합이 필요한 시대임을 가르친다.

융합은 소통이 선결 조건이다. 아무리 뛰어난 전문성을 지녔어도 상대가 이해할 수 없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라면 무의미하다.

시골의사 박경철과 함께 하는 ‘청춘 콘서트’에서, 대학 강단에서, 크고 작은 강연회에서 새로운 시대의 리더십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있다. 거창한 이론이나 담론이 시대의 흐름을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의 가치가 소중함을 인정하면서 수평적 네트워크를 넓혀가는 세상이 왔다고 말하며 ‘리더의 조건’을 젊은이들에게 알려주고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다리가 될 수 있는 사람이 진정 이 시대에 필요한 인재라고 말한다. 다른 분야에 대한 상식과 포용력을 갖춰야 소통할 수 있고, 창의적인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정치권에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여야 할 것 없이 ‘러브 콜’을 보낸다. 지금 안철수 교수는 세상의 평가에 관계없이 어느 것이 의미 있는 일이고, 잘 할 수 있는 일인지 고민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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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호기자 chang@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