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수경 의원 '막말 파문' 일파만파

단 일주일이었다. '통일의 꽃'으로 제19대 국회의원에까지 오른 임수경 민주통합당 의원은 술 먹고 던진 한마디 말 때문에 단 일주일 만에 이념공방의 중심에 자리 잡게 됐다. 임 의원이 던진 '막말'은 이석기ㆍ김재연 통합진보당 의원들로 불붙기 시작한 종북논란에 들이부은 기름 꼴이 됐다. 대선을 앞두고 서로 흠집내기에 한창인 여야는 재발발한 이념공방에서 유리한 위치에 서고자 거센 싸움을 벌이고 있다. 여야의 싸움에서 의도치 않게 원인을 제공한 임 의원의 입장만 곤란해진 상황이다.

"근본도 없는 탈북자 새끼들이…"

사건은 지난 1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백요셉 탈북청년연대 사무국장이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밝힌 내용에 따르면 백 사무국장은 저녁 9시경 서울 종로구 인사동의 한 식당에서 임수경 의원을 우연히 만나 사진촬영을 요청했고 임 의원도 흔쾌히 승낙했다. 사진을 찍고 자리에 돌아온 백 사무국장에게 웨이터가 찾아와 "잘못된 사진만 삭제하겠다"며 휴대폰에 찍힌 모든 사진을 지웠고 백 사무국장이 항의하자 "임 의원 보좌관들의 요구였다"고 설명했다.

백 사무국장이 보좌관들에게 다가가 따지자 임 의원은 "나에게 사소한 피해가 갈까봐 신경 쓴 것이니 이해해라"라고 설명했다. 이에 백 사무국장이 "이럴 때 우리 북한에서는 어떻게 하는지 아시죠? 바로 총살입니다. 어디 수령님이 명하지 않은 것을 마음대로 합니까"라고 농담을 던지자 임 의원은 정색하며 "너 누구냐?"라고 반문했다.

백 사무국장이 탈북대학생으로 2011년 한 방송사의 토론장에서 임 의원과 논쟁을 벌였다고 자신을 설명하자 임 의원은 "어디 근본도 없는 탈북자 XX들이 굴러 와서 대한민국 국회의원에게 개겨"라며 호통쳤다. 이어 과거에 함께 학생운동을 했던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을 언급하며 "너 하태경하고 북한 인권인지 뭔지 하는 이상한 짓 하고 있다지. 하태경 그 변절자 XX 내 손으로 죽여버릴 거야"라고 언성을 높였다.

왼쪽부터 이석기, 김재연
이에 백 사무국장이 "누가 누구를 변절했냐"며 "당신이 아버지라고 부른 그 살인마 김일성을 하태경 의원님이 그리고 우리 탈북자들이 배반했다는 말씀입니까?"하고 다시 묻자 임 의원은 "개념 없는 탈북자 XX들이 어디 대한민국 국회의원에게 개기는 거냐"며 "대한민국에 왔으면 입 닥치고 조용히 살라"고 협박했다.

백 사무국장은 이날 있었던 내용을 페이스북에 공개했고 논란 확대를 우려한 임 의원은 보도자료를 내고 "변절자라는 표현은 학생운동과 통일운동을 함께해온 하태경 의원이 새누리당으로 간 것에 대해 지적한 것이었을 뿐 탈북자분들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이에 대해 하 의원은 다음 날 아침 보도자료를 통해 "탈북자들이 왜 변절자인지, 누구를 변절한 것인지, 그리고 북한인권운동이 왜 변절 행위가 되는지에 대해 임 의원이 밝히라"고 요구했다. 이어 보수언론들과 새누리당 측은 종북 잣대를 들이대며 논란을 키웠고 사태는 일파만파로 커졌다.

'통일의 꽃' 임수경

이번 사안이 더욱 의미심장한 것은 '통일의 꽃'으로서 임수경 의원이 지니는 상징성 때문이다. 1968년에 서울에서 태어난 임 의원은 한국외국어대 용인캠퍼스 불어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이던 1989년, 북한에서 열린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이하 전대협) 대표로 선발됐다. 당시 임종석 전 민주통합당 사무총장이 의장을 맡고 있던 전대협은 비밀리에 임 의원을 평양으로 보낼 계획을 세웠고 임 의원은 일본 관광을 한다며 출국, 일본 도쿄와 동독 동베를린을 거쳐 1989년 6월 30일 북한 평양직할시에 들어갔다.

평양 순안공항에 첫발을 내딛으며 임 의원은 "백만학도 여러분, 전대협이 평양에 도착했습니다"라며 일성을 발했고 이후 임 의원은 세계청년학생축전 기간 내내 남북과 관심을 한몸에 받으며 '통일의 꽃'으로 불리게 된다.

임수경 민주통합당 의원이 1989년 8월 평양에서 열린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참가, 김일성 당시 주석과 반가움을 표시하고 있다.
임 의원은 북한에 체류한 46일간 고 김일성 주석과 접촉하고 북한의 청년들과 통일 문제를 협의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벌인다. 임 의원은 그해 8월 15일 문규현 신부와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통해 걸어서 귀국한다. 임 의원은 한국전쟁으로 남북이 갈라진 뒤 공개적으로 휴전선을 걸어 내려온 최초의 민간인으로 기록됐다.

임 의원은 귀국 직후 곧바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안기부에 구속, 국가보안법상 탈출과 잠입ㆍ회합과 고무 찬양ㆍ금품수수 등 총 13가지 죄목으로 1990년 6월 11일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3년 5개월의 옥살이를 하고 1992년 12월 가석방으로 풀려난 임 의원은 1999년 사면ㆍ복권됐다.

이후 임 의원은 가석방 중인 1994년, 자주평화통일민족회의 부대변인을 맡고 2001년 8월 15일에는 김대중 정부의 공식적인 허락 하에 평양에서 열린 민족통일대축전에 참여하는 등 민간 통일운동에 몸담았다. 또한 미국 코넬대 동아시아연구소, 오스트리아 빈 평화대학원 등에서 평화학ㆍ인권학을 공부하고 한국외국어대, 성공회대 등에서 강의하기도 했다.

올해 초 민주통합당은 임 의원을 4.11 총선 비례대표로 영입할 계획을 세웠다. 당시 임종석 전 사무총장은 임 의원의 영입이유에 대해 남북화해협력과 여성존중이라는 민주통합당 가치와 부합되는 인물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민주통합당 비례대표 21번에 이름을 올린 임 의원은 결국 제19대 국회의원이 됐다.

종북논란 거세지는 계기로 작용

'통일의 꽃' 임수경 의원의 막말 한 마디는 개원을 앞둔 19대 국회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가뜩이나 통합진보당의 이석기ㆍ김재연 의원을 둘러싸고 재점화된 종북 논란에 여야 모두 자유롭지 못한 터라 임 의원의 강경발언은 가진 바 의미보다 더욱 크게 격화됐다. 이를 의식한 임 의원이 재빨리 사과했지만 이미 과열된 이념공방을 막을 수는 없었다.

사실 임 의원의 발언이 있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들을 향한 종북 논란은 이미 되돌릴 수 없을 만큼 불거졌었다. 심지어 말을 아끼기로 유명한 박근혜 새누리당 전 비상대책위원장조차 이석기ㆍ김재연 의원 거취를 놓고 지난 1일 "국회라는 곳이 국가의 안위가 걸린 문제를 다루는 곳인데 기본적인 국가관을 의심받고 또 국민도 불안하게 느끼는 이런 사람들이 국회의원이 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며 "사퇴가 되지 않으면 국회 제명이라도 해야 한다"고 강도 높게 비판할 정도였다.

이런 상황에서 임 의원의 발언이 불거지자 새누리당 측은 너나 할 것 없이 달려들었다.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는 임 의원과 더불어 북한인권법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밝힌 이해찬 민주통합당 당대표 후보를 묶어 "헌법가치에 배치되는 발언을 한 두 의원에 대해 의원 자격심사에 나설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앞서 이 후보는 '북한인권법'에 대해 "북한에 인권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국가 간에 서로 개입할 일은 아니다"고 의견을 개진한 바 있다.

전광삼 새누리당 수석부대변인도 "임수경 의원은 지금이라도 국민들에게 북한 체제와 주체사상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며 "대국민 전향 선언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 지금 일도 국회의원직에서 스스로 물러나는 것이 그나마 남은 양심을 지키는 일일 것"이라고 강도 높게 질타했다.

이명박 대통령 또한 현충일 추념사를 통해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몸바친 호국영령의 뜻을 받들겠다"며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려는 어떤 자들도 우리 대한민국 국민은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임 의원을 겨냥한 듯한 말을 꺼냈다.

새누리당, 청와대의 전방위적인 이념 압박에 민주통합당은 색깔론이라며 거세게 반발하는 모양새다. 박지원 민주당 비대위원장은 6일 라디오 교섭단체 대표 연설을 통해 "이명박 대통령은 종북세력 운운하고 있고 박근혜 새누리당 전 비대위원장은 국가관을 거론하며 색깔론과 이념대결로 분열과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며 "역사와 국민을 위해서라도 시대착오적인 색깔론과 사상검증을 즉각 멈춰야 한다"고 밝혔다.

김한길 민주통합당 당대표 후보 또한 국회 기자회견에서 "새누리당이 우리 당대표 후보인 이해찬 의원에게 퍼붓는 색깔 공세는 현 정부의 무수한 실정을 감추는 한편 북한인권법을 계기로 신공안정국을 조선하려는 불순한 의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통합당 측의 이 같은 비판에 대해 김영우 새누리당 대변인은 "북한인권을 중시하는 새누리당에 대해 공안정국, 색깔론 운운하는 정치인들은 도대체 어느 시대, 어느 나라 국회의원들인지 모르겠다"고 역공에 나섰다.

여야 모두 대선을 앞두고 발발한 이념공방에서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으며 19대 국회는 개원조차 하지 못한 상태다. '통일의 꽃'으로 20년 이상 통일운동에 몸담아왔지만 말 한마디로 종북논란에 휩싸인 임 의원이 앞으로 어떤 결단을 내릴지 향후 행보가 주목되고 있다.

외국어대 용인캠퍼스 '운동권의 백화점'
■ 한때 17개분파 공존 '경기동부' 핵심 역할 현 총학생회측 "불쾌"

통합진보당 사태의 주범으로 지목되는 이석기ㆍ김재연 의원과 막말로 종북논란에 휩싸인 임수경 의원이 모두 한국외국어대 용인캠퍼스 출신인 것이 드러나며 세간의 관심이 집중됐다. 이들 외에도 윤원석 '민중의 소리' 전 대표, 정형주 전 민주노동당 경기도당 위원장, 우위영 통합진보당 대변인 등도 한국외국어대 용인캠퍼스 출신이다.

한국외국어대 용인캠퍼스는 예전부터 학생운동의 주류 세력으로 꼽혀왔다. 학풍이 외국 사상과 철학에 열려있었던 데다 진보성향의 교수들도 적지 않았기 때문에 단과대별로 다양한 학회에서 운동권 문화를 접할 수 있었던 까닭이다. 실제로 한국외국어대 용인캠퍼스에는 한때 17개의 운동권 분파가 공존하며 '운동권의 백화점'이라 불리기도 했다.

소규모 공장이 밀집해 있어 대도시에서 밀려난 빈민들이 많이 거주했던 '지역적 특수성'과 1970~80년대에는 드물었던 독일어, 일본어 전공 학생들이 좌파 관련 서적과 원전을 해석ㆍ공급하는데 많은 역할을 할 수 있었던 '학업적 특수성' 또한 한국외국어대 용인캠퍼스의 운동권 내 입지 강화에 큰 도움이 됐다. 이후 민족해방(NL)계 운동권이 장악한 한국외국어대 용인캠퍼스는 전대협의 후신으로 1993년 결성된 한국대학생총연합(한총련) 산하 경인총련의 하부 조직인 경기동부의 핵심역할을 했다.

한편, 이석기ㆍ김재연 의원과 임수경 의원이 모두 한국외국어대 용인캠퍼스라는 사실이 주목을 받자 한국외국어대 용인캠퍼스 총학생회는 이례적으로 보도자료까지 배포했다. 6일 공개된 보도자료에서 총학생회 측은 "한국외국어대 용인캠퍼스 총학생회가 이석기 의원, 경기동부연합, 한대련, 통합진보당과 관련 있는 것처럼 일부 언론에 보도돼 불쾌하다"며 "통합진보당이 비례대표 부정선거, 폭력 사태 등을 빚는 것을 지켜보며 과연 올해 대선에서 국민에게 어떤 당위성을 가지고 투표를 호소할지 심히 유감스럽다"고 성토했다.

이현성 한국외국어대 용인캠퍼스 총학생회장은 "외대 출신 의원들이 학교 이름에 먹칠을 하고있다"며 "진보정당이라고 스스로 외치면서 사회의 약자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아닌 자기들끼리 세력다툼 하는 모습이 우스워보였다"고 말했다.



김현준기자 realpeac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