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지성 실장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

조선시대 영의정을 일컫는 말로 임금이 아닌 사람이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자리를 뜻한다. 재벌이라는 특유의 체제를 지닌 우리나라 대기업들에도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가 있다. 총수를 보좌하면서 그룹 전체를 지휘하는 이른바 '컨트롤 타워'의 역할을 하는 이들이다.

재계 1위인 삼성에도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가 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뜻을 대행하며 인사ㆍ재무ㆍ법무ㆍ기획ㆍ감사 등 그룹의 살림을 도맡아 하는 미래전략실장이다. 다가오는 7일은 최지성 미래전략실장(부회장)이 이 회장 용단으로 그룹 2인자의 자리에 앉은 지 꼭 두 달째 되는 날이다. 그룹의 후계자인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의 멘토이자 오늘날의 삼성전자를 만든 최 부회장이 삼성에 자신의 색깔을 어떻게 입혀나갈지 재계가 주목하고 있다.

2인자로 올라선 최지성 부회장

최지성 부회장이 삼성의 2인자인 미래전략실장에 오른 것은 삼성이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선언 19주년을 맞은 지난 6월 7일이었다. 삼성은 긴급 브리핑을 통해 "미래전략시장에 최지성 부회장을 임명했다"며 "반도체, TV, 휴대폰 이후 그룹을 이끌 주력 신성장엔진을 조속히 육성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에 글로벌 경영감각과 빠른 판단력, 강한 조직 장악력과 추진력을 갖춘 최 부회장은 최적의 카드"라고 설명했다.

재계에서는 최 부회장의 인사 배경에 대해 이 회장의 신수종사업 추진의지가 강하게 작용한 것으로 해석했다. 전신인 전략기획실과 달리 그룹의 미래먹거리인 신수종사업 육성에 중점을 둔 미래전략실이었지만 뚜렷한 성적을 내지 못했던 김순택 체제에 대한 문책이라는 내용이다. 최 부회장에 대한 인사가 이 회장이 3주에 걸친 유럽 순방을 마치고 돌아와 제2의 신경영이라 불릴 만큼 강도 높은 변화와 혁신을 주문한 직후에 벌어진 터라 이 같은 해석은 더욱 힘을 받았다.

미래전략실은 오는 2020년까지 23조3,000억원을 투자, 태양전지ㆍ자동차용 전지ㆍLEDㆍ바이오 제약ㆍ의료기기 등 5대 신수종사업을 지원하는 삼성의 미래먹거리 육성에 온 힘을 다해왔다. 그러나 수익성 저하, 업황 악화 등으로 상당수 신수종사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터라 그룹 최고의 야전사령관으로 불리는 최 부회장이 전격 발탁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최 부회장은 삼성SDI 외에는 사업을 맡았던 경험이 없는 김순택 전 실장과 비교해 현장 경험 면에서 월등하다는 평가다.

재계 일각에서는 최 부회장의 미래전략실장 임명에 대해 '이재용 사장의 후계구도를 굳히기 위해서'라는 해석도 내놓았다. 최 부회장이 1981년부터 4년간 회장비서실 기획팀 근무를 통해 이 사장을 비롯한 총수일가를 보좌한 경험이 있는 데다 삼성전자에서도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오며 이 사장의 '멘토'로까지 불리는 까닭이다.

지분구도상 이 사장의 후계구도는 사실상 거의 완성된 상태다. 이제는 구체적인 실적으로 자신의 경영능력을 입증해 보여야 하는 것이다. 현장 경험이 많은 최 부회장이 미래전략실장으로 앞에서 끌고, 새롭게 삼성전자를 맡게 된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이 뒤를 떠받치면 이 사장의 실적은 어느 정도 보장될 것으로 보인다. 이재용-최지성-권오현 삼각체제가 빛을 발하면 후계구도 정립에 상당한 힘을 발휘할 것으로 전망되는 이유다.

삼성물산에 입사 후 비서실도 경험

스티브 발머 MS CEO와
'보부상', '독일병정' 등 다양한 별명을 지닌 최지성 부회장은 문과 출신임에도 주요 기술에 대해 박학한 현장형 경영자다. 최 부회장이 사업을 맡고 있는 동안 삼성전자는 TV시장에서 글로벌 1위 사업자로 올라섰고 휴대폰 시장에서도 노키아를 제치고 1위로 거듭났다. 최 부회장은 2008년부터 휴대폰, TV, 가전 등을 총괄하며 삼성전자의 실질적인 수장을 맡아왔다.

1951년 강원도 삼척에서 출생한 최 부회장은 춘천중학교를 마치고 춘천고를 1년가량 다니다 서울고로 전학, 서울대 무역학과를 졸업했다. 최 부회장과 서울고를 같이 다닌 인사로는 원세훈 국정원장, 양창수 대법관, 이규형 주중대사 등이 있고 서울대 무역학과 동문으로는 장충기 삼성 미래전략실차장(사장)과 박상진 삼성SDI 사장 등이 꼽힌다. 최 부회장은 서울대 무역학과 시절 김문수 경기도지사, 김상곤 경기도교육감 등과 함께 박정희 정권 반대 투쟁에 뛰어들었던 경험도 있다고 전해진다.

1977년 삼성에 입사한 최 부회장은 삼성물산 잡화수출부 잡화과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1979년부터는 삼성물산 직원으로 유럽에 근무하며 신발, 문구 등 잡동사니 품목을 수출하기 위해 발품을 팔면서 업무를 배웠다.

최 부회장은 1981년 그룹 비서실 기획팀 과장에 임명, 4년간 근무하기도 했다. 이재용 사장과의 깊은 관계가 이 즈음부터 시작됐으며 그룹 전반에 대한 경영 안목을 키운 것도 이때였다.

반도체 맡은 이후 승승장구

왼쪽부터 현명관, 이학수, 김순택
최지성 부회장은 1985년부터 법인이 없던 독일 프랑크푸르트(FFT) 1인 사무소장으로 다시 유럽 무대를 누볐다. 당시 최 부회장은 반도체를 가득 담은 가방을 차에 싣고 유럽을 누비며 열정적으로 반도체 판매를 시도했다고 전해진다. 1,000여 페이지 분량에 달하는 반도체 기술교재를 달달 암기해 부임 첫해부터 100만달러어치의 반도체를 팔았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이때가 '디지털 보부상'으로 불리는 최 부회장의 마케팅 실력이 본격적으로 키워진 시기로 꼽힌다.

최 부회장은 6년여의 유럽생활을 마무리하고 1991년 국내로 돌아왔다. 삼성전자 반도체 기흥관리팀장으로 자리를 옮기고 이듬해에는 반도체판매사업본부 메모리수출담당을 맡아 경영진의 신뢰를 받기 시작했다.

최 부회장의 그룹 비서실 2기는 이건희 회장이 신경영을 선포한 1993년이었다. 현재 남아있는 삼성전자 주요 부회장과 사장단 중에서 비서실에서 2차례 근무한 이력은 최 부회장이 유일하다. 최 부회장이 이번에 미래전략실장에 오른 것에 2번의 비서실 근무가 큰 도움이 됐을 것이라 해석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다.

비서실 전략1팀장을 맡던 최 부회장에게 '삼성전자 반도체 브랜드 가치를 높여보라'는 경영진의 지시가 떨어졌다. 최 부회장은 이 지시를 실행에 옮겨 5년간 반도체판매를 맡으며 삼성전자의 반도체 사업을 확장시켰다.

잠깐의 기획실 2기 시절을 제외하고 13년 이상 반도체 보부상으로 지냈던 최 부회장은 1998년 새로운 분야인 디스플레이 분야를 맡고 2001년에는 고전을 면치 못하던 TV사업까지 떠안게 됐다. 최 부회장은 2006년 보르도 TV를 출시, 삼성전자가 TV사업을 시작한 지 34년 만에 일본 소니를 제치며 글로벌 시장을 차지했다. 삼성전자가 '반도체 기업'을 넘어 'TV명가'로까지 불리게 된 것이다.

이후 최 부회장은 2007년 정보통신총괄 사장으로 자리를 옮기며 정체돼있던 삼성전자 휴대폰 사업을 다시 일으켰다. 최 부회장의 손이 닿은 삼성전자 휴대폰 사업은 2007년 글로벌 2위로 올라섰고 올해 1분기 마침내 1위 자리를 차지했다.

손대는 사업마다 빛나는 성과를 거둔 최 부회장은 승진도 빨랐다. 2004년 사장 직함을 처음 달았던 최 부회장은 5년 만에 대표이사로 초고속 승진을 하게 됐고 올해 초부터는 부회장 직함을 달게 됐다.

스피드경영 중시

함께 일을 해본 사람들은 최 부회장의 '스피드경영'에 혀를 내두른다. 직원들이 밤늦게 이메일로 보고서를 보내도 실시간으로 답신을 보내는 경우가 많고 해외출장 시에도 시차에 관계없이 경영현황을 물어보거나 업무 지시를 전달한다는 것이다. 그룹의 각종 경영지표에 이상 신호가 감지되면 즉시 해외법인과 지방 사업장에 전화를 걸어 궁금증을 해결하는 편이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최 부회장의 질문에 적절한 대답을 하기 위해 임원들이 업무에 더욱 철저해졌다는 얘기도 나온다.

최 부회장의 스피드경영은 미래전략실장을 맡게 된 이후에도 계속됐다. 최 부회장은 오전 팀장회의와 별도로 사안별로 수시보고체제를 강조하며 미래전략실 내 긴장감을 불어넣었다. 미래전략실 임원들이 오전 6시30분까지 출근하는 바람에 그룹 전체 임원들이 도미노식으로 조기출근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신수종사업 집중해야

최지성 체제가 두 달째에 접어들고 있지만 아직 그룹 내에 뚜렷한 변화는 눈에 띄지 않고 있다. 최 부회장이 "미래전략실은 (이건희 회장의) 그림자 역할을 하는 곳이니 계열사에 군림하지 말라"고 했던 자신의 말처럼 회장을 보좌하는 역할에 충실하기 때문으로 읽힌다.

그러나 최 부회장이 이 회장의 보좌역에만 머물러 있기엔 삼성의 현재 상황이 그다지 좋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주력 계열사인 삼성전자가 역대 최고의 성적표를 받아들며 그룹 전체의 실적을 견인하고 있지만 소송리스크 및 미래먹거리 취약 등으로 인한 위험이 남아있다.

삼성은 현재 이 회장 형제간의 상속분쟁과 애플과의 특허분쟁이라는 두 건의 대형 소송에 휘말려 있다. 이 두 건의 소송은 모두 최 부회장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상속소송의 경우 총수일가의 개인적인 분쟁이지만 소송결과가 그룹 전체에 미치는 파급력은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미래전략실장으로서 총수일가의 대소사를 책임져야 하는 최 부회장에게는 큰 부담이다.

애플과의 특허소송은 아예 최 부회장이 삼성전자 대표이사 시절부터 맡아오던 사안이다. 최 부회장은 애플 최고경영자인 팀 쿡과 두 차례 만나 담판을 벌였지만 결국 서로의 입장 차만 확인한 채 회담은 실패로 끝났다. 지난달 30일부터는 미국에서 본안소송이 시작, 본격적인 분쟁상황으로 들어간 상태다.

재계 일각에서는 최 부회장이 결과에 별다른 영향을 미칠 수 없는 소송에 매달리는 것보다 그룹의 미래먹거리 확보에 집중해야 한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최 부회장이 미래전략실장으로 임명된 가장 큰 대외적 이유가 그룹의 신성장엔진 육성에 있던만큼 해당 분야에서 눈에 띄는 성과가 필요하다는 내용이다. 그룹 내에서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사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은 상황이라 사업 다각화를 위해서라도 신수종사업을 강하게 지원해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흥미로운 점은 이재용 사장이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자동차 전장 사업이 새로운 미래먹거리로 꼽히고 있다는 점이다. 최 부회장이 해당 사업을 밀어줄 경우 후계구도 안정화, 새로운 미래먹거리 확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 손에 잡을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최지성 미래전략실장 (부회장)

출생 1951년 2월 2일

학력 춘천중학교(1967)

서울고등학교(1970)

서울대학교 무역학과(1977)

1977 삼성물산 잡화수출부 잡화과

1981 삼성 비서실 기획팀 담당과장

1985 삼성전자 반도체 FFT 사무소장

1991 삼성전자 반도체 기흥관리팀장(부장)

1992 삼성전자 반도체 메모리수출 담당(이사)

1993 삼성 비서실 전략1팀장(이사)

1994 삼성전자 반도체본부 메모리영업 담당(이사)

1996 삼성전자 반도체판매사업부장(상무)

1998 삼성전자 정보가전총괄 디스플레이사업부장(전무)

2001 삼성전자 디지털미디어총괄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장(부사장)

2003 삼성전자 디지털미디어총괄 부사장

2007 삼성전자 정보통신총괄 사장

2009 삼성전자 DMC 부문장(사장)

2009 삼성전자 대표이사 사장

2012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

2012 삼성 미래전략실장

현명관·이학수·김순택 실장등 막강파워
● 삼성의 2인자들

고 이병철 삼성 창업주 시절부터 삼성에는 2인자들이 상당한 권력을 행사해왔다. 그동안 비서실(1959년~1998년), 구조조정본부(1998년~2006년), 전략기획실(2006년~2008년), 미래전략실(2010년~) 등으로 이름이 바뀌는 동안 총 14명의 실장이 근무했다. 이 중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을 거친 비서실장은 총 7명이었다.

비서실이 그룹을 총괄하는 조직으로 자리잡은 것은 고 이병철 창업주의 분신으로 불리던 고 소병해 실장(1978년~1990년) 때부터다. 12년 동안 삼성 비서실장을 맡은 소 실장은 한때 이 회장과 2인자 자리를 다툰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위세가 등등했다. 이 회장이 취임 후 3년간 회사에 나오지 않았을 때도 그룹의 대소사를 책임졌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소병해 실장 이후 이수원 실장(1990년~1991년)을 거쳐 비서실장을 맡게 된 이수빈 실장(1991년~1993년)은 삼성에서 오래 근무, 그룹 내 사정에 정통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이 회장은 신경영을 선포하며 비서실장을 새로운 인물로 교체했고 내부개혁을 위해 감사원 출신의 현명관 실장(1993년~1996년)이 한동안 2인자의 자리에 서기도 했다.

현명관 실장은 대선자금 등의 문제로 이 회장이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교체됐다. 후임으로는 당시 비서실 차장이었던 이학수 실장이 임명됐다. 재무통이었던 이학수 실장은 사업조정, 투자조정 등을 통해 IMF를 극복했고 이 회장의 '복심'이라 불리며 비서실이 구조조정본부, 전략기획실로 이름을 바꿀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이학수 실장이 삼성특검으로 물러난 2008년 이후 삼성은 한동안 비서실 부재의 시간을 가졌다.

김순택 실장(2010년~2012년)은 미래전략실이 부활하는 과정에서 함께 임명됐다. 김순택 실장은 그동안의 비서실장들과 마찬가지로 재무ㆍ기획통이었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 미래전략실장으로 선임된 (2012년~)은 현장 출신의 2인자라는 색다른 특징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재임기간 내 비서실장들

이름 학력 재임기간 명칭
소병해 성균관대 상학 1978년 8월~1990년 12월 비서실
이수원 고대 경영학 1990년 12월~1991년 1월 비서실
이수빈 서울대 상대 1991년 1월~1993년 10월 비서실
현명관 서울대 법대 1993년 10월~1996년 12월 비서실
이학수 고대 경영학 1996년 12월~2008년 6월 구조조정본부, 전략기획실
김순택 경북대 경제학 2010년 11월~2012년 6월 미래전략실
최지성 서울대 무역학 2012년 6월~ 미래전략실



김현준기자 realpeac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