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순수 국내 출신' 첫 메이저리그 진출 류현진MLB 사상 4번째 높은 공개입찰 금액좌완+강속구+다양한 변화구+강철 체력아시아인 최초 한 시즌 20승도 가능해'제2 박찬호' 아닌 '제1의 류현진' 야망

1990년대 후반 국제통화기금(IMF) 외환 위기 시절. LA 다저스의 선발투수 박찬호와 한국여자골프의 '맏언니' 박세리의 선전은 많은 국민들에게 큰 위안이 됐다.

수많은 국민이 밤잠을 설쳐가면서까지 브라운관을 통해 이들의 경기를 놓치지 않고 지켜봤다. 그 후유증(?)으로 직장에서, 학교에서 졸린 눈을 수없이 비벼야 했지만, 박찬호와 박세리의 경기가 치러지는 날은 어린 시절 소풍날만큼이나 기다려졌다.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이들이 적지 않은 것 같다.

이제는 '대한민국 에이스' 차례다. '대한민국 에이스' 류현진(25)이 꿈에 그리던 메이저리그(MLB)에 진출했다. 메이저리그의 대표적인 명문구단이자 '박찬호의 친정'으로 유명한 LA 다저스가 공개입찰(포스팅)을 통해 2,573만7,737달러33센트(약 280억원)를 제시하며 류현진 '모시기'에 성공했다. 280억원은 공개입찰 사상 4번째로 높은 금액이다.

또 한국인 선수의 다저스 입단은 박찬호 서재응 최희섭에 이어 류현진이 4번째다. 내년부터는 류현진의 선발 등판을 보기 위해 브라운관 앞에 앉는 사람들이 제법 많아질 것 같다. 가장 중요한 공개입찰을 통과한 류현진은 연봉 협상과 정밀 신체검사만 잘 마무리하면 메이저리그 무대에 선다.

1982년에 출범한 한국프로야구를 경험한 뒤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은 선수는 이상훈과 구대성 2명이 있었다. 하지만 이상훈과 구대성은 한국프로야구보다 한 단계 위인 일본프로야구를 거친 후 메이저리그에 진출했다. 말하자면 '순수 국내산'을 기준으로 하면 류현진이 최초인 셈이다.

아시아인 최다승(124승)에 빛나는 '코리안 특급' 박찬호를 비롯해 서재응 김병현 최희섭 봉중근 추신수 등이 미국프로야구에서 뛴 적이 있지만 한국프로야구 경험 없이 아마추어 시절에 곧바로 '입도선매(立稻先賣)'됐다. 이들은 마이너리그를 거쳐서 메이저리그로 올라섰다.

마침내 '꿈'을 이룬 류현진은 "나의 도전이 많은 국민과 야구 꿈나무들에게 큰 희망을 키우는 에너지가 될 수 있도록 철저히 준비하겠다"고 다부진 각오를 밝혔다.

SK의 포기는 전화위복

류현진은 2006년 인천 동산고를 졸업했다. 당시에도 메이저리그에서는 류현진에게 작지 않은 관심을 보였다. 다저스도 류현진 스카우트를 놓고 오랫동안 고민했다고 한다.

류현진은 그러나 고교 2학년 때 받았던 왼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 전력에 발목이 잡혔다. 메이저리그 구단들은 류현진의 장래성보다 부상 재발 가능성에 좀더 비중을 뒀던 것이다.

류현진이 LA 다저스와 입단 협상을 벌이기 위해 14일 (현지시간) 로스앤젤레스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연합뉴스
인천 연고 구단인 SK도 류현진을 포기했다. 메이저리그 구단들과 비슷한 이유에서였다. SK는 1차 지명에서 류현진 대신 인천고 대형 포수 이재원을 택했다. 결국 2차 드래프트 시장으로 나온 류현진은 나승현(롯데)에 이어 전체 2순위로 한화의 유니폼을 입었다.

메이저리그 구단과 SK에서 포기한 류현진은 이를 악물었다. 류현진은 데뷔 첫해 18승6패1세이브 평균자책점 2.23의 눈부신 성적으로 사상 최초로 정규시즌 최우수선수(MVP)와 신인왕을 석권했다.

메이저리그 구단과 SK의 포기가 류현진에게는 전화위복이 된 셈이다. 이 과정에서 한국프로야구의 전설로 통하는 송진우 구대성 문동환 정민철 등 베테랑들은 류현진에게 정신적, 기술적으로 훌륭한 스승이 돼줬다.

2006년 이후로도 류현진의 기세는 거칠 것이 없었다. 7년 통산 성적은 190경기 1,269이닝 98승(8완봉승)52패1세이브 평균자책점 2.80. 개인통산 100승을 채우지 못한 게 조금 아쉽지만 입단 후 7년 만에 이룬 성적이라는 점에서 가치는 실로 어마어마하다.

국제대회에서도 류현진은 '대한민국 에이스'로 조금도 손색이 없었다. 류현진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 때 사상 첫 전승 금메달의 주역이었고, 이듬해에 열린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때는 한국의 준우승에 큰 힘을 보탰다.

다저스가 한국의 젊은 왼손투수에게 아낌없이 투자한 것은 류현진의 무궁무진한 가능성 때문이다. 류현진은 시속 150㎞ 이상의 강속구에다 체인지업, 커브, 슬라이더 등 다양한 변화구까지 겸비하고 있다. 거의 같은 모션에서 여러 구종을 자유자재로 던질 수 있는 투수는 흔치 않다.

또한 188㎝ 105㎏의 당당한 체구가 말해주듯 '마당쇠 체력'도 류현진의 매력포인트다. 류현진은 2006년 입단 후 올해까지 7년 동안 1,269이닝을 던졌다. 1년에 180이닝 이상 소화하는 강행군의 연속이었다.

몸값은 얼마나

류현진은 연봉 2,000만원으로 시작했다. 데뷔 첫해 연봉은 모든 신인에게 동일하게 적용된다. (현재는 2,400만원) 올해 연봉이 4억3,000만원이니 류현진은 입단 6년 만에 21.5배나 몸값을 올렸다.

류현진의 입단 계약금은 2억5,000만원이었다. 입단 동기인 KIA 한기주의 10억원에 비하면 4분의 1에 불과했다. 다저스의 공개입찰 성사로 한화는 원금 대비 112배(280억원)의 고수익을 올린 것이다.

한화는 2006년 입단 당시 류현진의 아쉬움을 달래주기 위해 '1승당 1,000만원 보너스'라는 옵션을 제시했다. 류현진은 그해 18승을 거두며 1억8,000만원의 보너스를 받았다. 옵션을 더해 류현진의 계약금을 4억3,000만원으로 계산해도 한화 구단은 류현진의 가치를 65배나 키웠다.

14일 미국으로 출국한 류현진은 자신의 에이전트인 스콧 보라스와 협상 전략을 상의한다. '협상의 귀재'라는 보라스는 "류현진이 당장 3, 4선발로 뛸 수 있는 데다 일본으로 진출했다면 보다 많은 입찰금액을 받았을 것"이라며 은연중에 다저스를 압박하고 나섰다.

그렇다면 공개입찰 금액이 아닌 류현진의 '순수 몸값'은 얼마나 될까. 일본에서 8년간 36승을 거둔 뒤 올해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천웨인(27)이 '간접 기준'이 될 수 있을 듯하다.

천웨인은 볼티모어와 3년간 1,238만8,000달러(약 130억원)에 계약했다. 천웨인은 올해 연봉으로 307만 달러를 받았고, 내년과 내후년에는 357만 달러를 받기로 했다. 천웨인은 올해 12승(11패)을 거두며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류현진이 천웨인보다 두 살 어린 데다 메이저리그에서도 좀처럼 찾기 어려운 '시속 150㎞짜리 왼손투수'라는 점을 감안하면 내년 연봉이 최소 400만~500만 달러는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일본프로야구에서 최고 자리에 오른 뒤 메이저리그에 입성한 마쓰자카 다이스케(보스턴)와 다르빗슈 유(텍사스)는 6년간 5,200만 달러와 6,000만 달러를 받는다.

하지만 이들이 한국프로야구보다 수준이 높은 일본 무대에서 '검증된' 선수라는 측면에서 보면 류현진이 당장 이 정도까지의 대우는 받기 어려워 보인다. 다만 구단에서 류현진의 장래성을 고려해 성적에 따른 거액의 플러스 옵션은 챙겨줄 가능성은 있다.

스탠 카스텐 다저스 사장은 윈터미팅이 끝난 뒤 류현진과 계약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윈터미팅은 내달 7일에 끝나고 협상마감시한은 12일이다. 5일 안에 류현진의 몸값은 결판난다.

박찬호를 넘어서

박찬호는 한국인 메이저리그 개척자다. 1994년 다저스의 구원투수로 데뷔한 박찬호는 1996년부터 풀 타임으로 뛰었다. 그해 48경기에서 5승5패 평균자책점 3.64를 기록한 박찬호는 1997년에는 붙박이 선발투수로 자리잡더니 14승8패 평균자책점 3.38을 올렸다. 박찬호는 2010년까지 총 17시즌 동안 124승(98패)을 쌓았다.

박찬호의 뒤를 이어 메이저리그 무대에 섰던 김병현은 통산 54승(60패), 서재응은 28승(40패), 김선우는 13승(13패), 봉중근은 7승(4패)을 거뒀다. 또 현재 메이저리그에서 맹활약하고 있는 다르빗슈 유는 올해 16승(9패), 천웨인은 12승(11패)을 기록했다.

박찬호가 풀 타임으로 활약했던 때의 나이는 만 23세로 내년을 기준으로 하면 류현진보다 세 살 어렸다. 류현진이 박찬호를 넘으려면 산술적으로 매년 12승씩 10년 이상 꾸준히 활약해야 한다. 쉽지는 않지만 불가능할 것도 없다. 류현진은 "10승 이상에 2점 대 평균자책점이 목표"라고 힘줘 말하고 있다.

투수로서 전성기를 달리고 있는 류현진은 박찬호를 넘어 아시아 최고를 바라본다. 아시아인 한 시즌 최다승은 대만 출신의 왕첸밍이 2006년과 2007년에 기록한 19승이다. 박찬호의 개인 한 시즌 최다승은 18승이다.

왕첸밍이나 박찬호 그리고 아시아인 최다승 2위(123승)인 일본인 노모 히데오 모두 한 시즌 20승은 이루지 못했다. 류현진이 메이저리그에서 연착륙에 성공하고, 타선의 화끈한 지원이 뒷받침된다면 한 시즌 20승도 꿈만은 아니다.

한국인 첫 월드시리즈 선발 등판과 승리도 류현진이 욕심 낼 만한 기록들이다. 박찬호는 필라델피아 소속이던 2009년 월드시리즈에서 4차례 구원 등판했으나 승리와는 인연이 없었고, 김병현은 애리조나 시절이던 2001년 월드시리즈 무대에서 마무리투수로 활약했으나 역시 승리는 거두지 못했다.

류현진은 "박찬호 선배를 따라가지는 못하더라도 그 정도의 기록을 남겨보고 싶다"고 다부진 포부를 밝혔다. 말은 아끼지만 박찬호의 아시아인 최다승 기록을 깨보겠다는 욕심까지는 숨기지 않는 류현진이다.

내년에 류현진의 나이는 만 26세. 베이징올림픽 금메달로 병역특례혜택까지 받은 터라 걸릴 게 없다. 자기관리만 잘 이뤄진다면 제2의 박찬호가 아닌 '제1의 류현진'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 같다.

● 류현진은 누구

생년월일: 1987년 3월25일

신체조건: 188㎝ 105㎏

가족관계: 류재천 박승순씨의 2남 중 차남

유형: 좌투우타

출신교: 창영초-동산중ㆍ고-대전대

주요경력: 2006년 한화 입단

2008년 베이징올림픽 국가대표

2009년 WBC 국가대표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 국가대표

수상경력: 2006년 정규시즌 MVP, 신인왕

2008년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2009년 WBC 준우승

주요기록: 2006년 다승 평균자책점 탈삼진 3관왕

2009~2010년 29경기 연속 퀄리티 스타트

통산성적: 190경기 1,269이닝 98승(8완봉승)52패1세이브 평균자책점 2.80

"아들 현진이 위해서라면…"
부모도 영양만점 식단 위해 미국 동행

이역만리에서 고군분투하는 선수들에게 가족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천군만마다.

한국인 메이저리그 개척자인 박찬호는 다저스 시절 교민들의 열렬한 지원을 등에 업었고, 나이 들어서는 결혼과 함께 아내 박리혜씨의 내조에 큰 힘을 얻었다.

서재응은 메이저리그에서 뛸 때 아내 이주현씨가 '내조의 여왕'으로 나섰고, 현역 메이저리거인 추신수의 아내인 하원미씨는 '요리의 여왕'으로 통한다.

류현진의 가족이라고 가만 있을 수 없다. 류현진이 한화에 입단한 후로도 전국 각지를 따라다니며 아들을 응원했던 류재천 박승순씨 부부는 아들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갈 계획이다. 류현진의 친형인 현수씨는 이미 미국에서 골프 유학 중이다.

류재천씨와 박승순씨는 2006년부터 대전 홈경기가 끝나면 구장 지정석 출입구 쪽에서 아들과 미팅을 가졌다. 한화 관계자들은 "바로 저곳이 '류현진 존'이에요"라고 귀띔하곤 했다.

박승순씨는 평소에도 아들이 서울 인천 등 수도권으로 원정경기에 나서면 직접 만든 간장게장과 장어구이로 아들의 체력을 챙겼다. 류현진은 "어머니가 해주신 음식이 힘의 원천"이라고 자랑했다.

다저스의 홈인 로스앤젤레스는 미국 내 작은 한국이라 할 만큼 교민들이 많고 또 한국음식도 쉽게 맛볼 수 있는 곳이다. 류현진은 한국에서처럼 어머니가 해준 음식을 어렵지 않게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최경호기자 squeez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