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 경영자 대상 수상한 이석채 KT 회장추락하던 KT 구원투수 연이은 혁신으로 매출 '껑충'한국경영인협회 선정 '올해 가장 존경받는 기업인'관료에서 기업가 성공 변신 2015년엔 매출 40조원 달성 목표

'관료(官僚).' 직업적인 관리 또는 그들의 집단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 이 단어는 조직의 규칙과 절차를 무엇보다 중요시하며 변화를 싫어하는 고위공무원들을 꼬집어 말할 때 자주 사용된다. 반면, '기업가(企業家)'는 기업에 자본을 대고 경영을 담당하는 사람이라는 사전적 의미에 더해 좀 더 전문적이고 혁신적인 사람이라는 뜻이 담겨있다.

이처럼 관료와 기업가는 단순히 일하는 곳만이 아닌 일하는 방식, 태도, 마음가짐 등을 기준으로 구분된다. 그러한 차이는 '관료스럽다' 또는 '기업인 같다'는 형용사가 쓰일 수 있게 해준다.

각각의 역할이 요구하는 자질이 다른 만큼 좋은 관료였던 사람이 훌륭한 기업가로 탈바꿈하기는 쉽지 않다. 공기업에 안착한 고위관료 출신들의 '낙하산 논란'이 해마다 불거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물론 어디에나 예외가 반드시 존재하듯, 성공한 관료이면서 기업가 쪽으로도 큰 성과를 냈던 CEO들도 간혹 나타난다. 이석채 KT 회장이 대표적인 인물로 꼽힌다.

이 회장은 얼마 전 열린 '제11회 아시아 경영자 대상'의 주인공이 됐다. 지난 9월 가장 존경받는 기업인으로 선정된 것에 이어 올해에만 벌써 두번째 이룬 쾌거다. 정보통신부 장관, 청와대 경제비서실 경제수석비서관 등 한때 국정을 호령하는 고위관료였던 이 회장이 이제 기업가로서의 명성을 전 세계에 떨치고 있는 것이다.

기업가로서 연이은 호평

이석채(왼쪽) 회장이 지난 7일 꿈 찾기 캠프에 참여한 아이들과 함께 팔씨름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석채 회장이 '아시아 경영자 대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KT는 태국 방콕의 시암 켐핀스키 호텔에서 16일(현지시각) 열린 '제11회 아시아 경영자 대상(ALBA: Asia Business Leaders Awards)'에서 이 회장이 아시아에서 가장 뛰어난 CEO로 선정됐다고 밝혔다.

KT 측은 "이 회장이 2009년부터 4년간 1만3,000여 명을 신규 채용하고 스마트워킹과 창의경영을 도입한 점을 인정받아 인재 부문 수상자로 선정됐다"며 "국내 CEO로는 5년 만의 수상으로 통신기업으로는 최초"라고 설명했다.

이 회장은 ALBA 시상식에서 "사람이 모든 것을 만든다는 철학으로 IT산업의 부흥을 통한 젊은이들의 일자리 창출에 전념해 왔다"며 "스마트 혁명에 따른 가상재화(Virtual Goods) 시장이 우리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주고 미래를 열어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이에 앞서 이 회장은 지난 9월 한국경영인협회가 주관하는 평가에서 2012년 가장 존경받는 기업인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 회장이 받은 '가장 존경받는 기업인 상'은 한국경영인협회가 국가, 경제의 발전에 이바지하고, 국민으로부터 높은 신뢰와 사랑을 받는 기업인과 기업을 선정해 매년 수여하고 있는 상이다.

재경관료로 승승장구

이석채(오른쪽) 회장이 지난 16일 제11회 아시아 경영자 대상을 수상했다.
연임 첫해인 올해, 상복이 터지며 기업가로서의 명성이 극에 다다른 이 회장은 본래 화려한 이력을 지닌 정통 관료 출신이다.

경북 성주 출신의 해방둥이인 이 회장은 7남매 중 맏이로 태어났다. 경복고와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이 회장은 1969년 7회 3급 을류 재정직에 합격, 이듬해 경제기획원 사무관으로 공직에 첫발을 내디뎠다. 공직시절 미국 보스턴 대학에 유학,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이 회장은 1984년 대통령비서실 경제비서관에 발탁되며 엘리트 재경관료로의 길을 본격적으로 걷기 시작했다. 빠른 출세가도는 이 회장의 업무능력에 기반한 것으로 보인다. 과장 시절 뛰어난 기획력과 브리핑 능력으로 전두환 전 대통령의 눈에 띄며 결국 경제비서관에 임명, '장관급 과장'이라는 소리까지 들었던 것은 유명한 일화다.

노태우 전 대통령 임기 당시 대통령비서실 지역균형발전기획단 부단장(1989년), 사회간접자본투자기획단 부단장(1991년)이라는 한직으로 잠시 밀려났었던 이 회장은 김영삼 전 대통령 정권기를 맞으며 화려하게 부활했다. 타고난 능력에 김 전 대통령의 차남인 김현철씨의 경복고 선배라는 인맥까지 더해지며 농림수산식품부 차관(1994년), 제1대 재정경제원 차관(1994년) 등을 역임하게 된 것이다.

이 회장은 역할이 바뀔 때마다 그에 걸맞는 능력도 발휘했다. 농림수산식품부 차관 때는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을 맡았고, 재정경제원 차장 시절에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남북한 쌀협상에 정부 대표로 참석하며 장관 이상의 역할을 수행한 바 있다.

이후 제2대 정보통신부 장관(1996년)을 맡은 이 회장은 KTF, LG텔레콤, 한솔텔레콤(KTF에 합병) 등 개인휴대통신(PCS) 3사를 선정하며 국내 이동통신산업의 초석을 닦기도 했다. 특히 정보통신부 장관 시절 이 회장은 초고속정보통신사업을 추진하고 세계 최초로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방식을 상용화하는 등 우리나라가 IT강국으로 발돋움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결국 이 회장은 재경관료로서 오를 수 있는 최고지점인 청와대 경제비서실 경제수석비서관에 1996년 발탁되며 김영삼 정권의 '막강 실세'로 자리 잡았다.

이석채(왼쪽에서 두번째) 회장이 지난 6월 여수 세계박람회에서 직원들과 만나 이동통신 상태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있다.
호사다마란 말처럼 정상에 올랐던 이 회장에겐 좌절의 시간도 있었다. 정보통신부 장관 재직 시절 PCS 사업자 선정 과정에서 특정 업체를 도왔다는 혐의로 기소되며 1997년 하와이로 도미하는 수모를 겪은 것이다. 3년 뒤 자진귀국 형식으로 돌아와 긴 법정투쟁을 시작, 2006년 무죄 판결을 받으며 명예를 회복했지만 10년에 걸친 야인생활 동안 심한 마음고생을 했던 것은 분명하다.

KT에서 명예회복 기회

야인으로 떠돌던 이석채 회장 인생의 재반전은 KT에서 시작됐다. 관료로서의 삶이 1막이었다면 기업가로서의 2막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때마침 KT 또한 역사상 최대 위기에 직면해있던 터라 이 회장의 부활 장소로는 안성맞춤이었다.

당시 KT는 통신업계의 절대 강자라는 옛 명성이 무색하게 급변하는 통신환경에 전혀 적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급속히 확대되는 이동통신 사업에도 불구, 유선전화 사업에 대한 절대적인 의존도를 낮추지 못하면서 결국 SK텔레콤에 통신업계 수위자리를 완전히 내주게 됐다. 이동통신 사업뿐만 아니라 초고속인터넷, 인터넷TV(IPTV) 등 새로운 영역에 대한 전망도 불투명했지만 뚜렷한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남중수 사장의 비리사건이 터졌다. 당시 남 사장은 2008년 초 열린 정기 주주총회에서 연임에 성공, KT를 이끌어가고 있었다. 차명계좌로 납품업체의 돈을 받았다는 혐의를 받은 남 사장은 2008년 11월 구속됐다. 당시 자회사였던 KTF의 조영주 사장 또한 같은 혐의로 먼저 구속된 터라 가뜩이나 실적 부진에 허덕이던 KT로서는 1, 2인자의 공백을 여실히 느껴야만 했다.

어려운 상황에서 KT가 구원투수로 선택한 사람이 이 회장이었다. KT 사장추천위원회는 두 차례의 공모 끝에 접수된 30여 명의 신청자를 놓고 서류심사와 면접심사를 거쳐 이 회장을 추천했다. 이 회장은 SK C&C 사외이사라는 당시 직함이 KT 정관에 걸리며 중도하차할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그러나 KT 이사회가 정관을 바꾸는 결정까지 내리며 이 회장을 붙잡았다. 이 회장과 KT는 서로에게 꼭 필요한 존재였던 셈이다.

연이은 혁신으로 성과 올려

휘청하던 KT의 최우선 선택지였던 이석채 회장이지만 내부에서는 첫 관료 출신 사장이 취임한 것에 대해 '낙하산 인사'라는 말이 나왔다. 통신사들을 관리ㆍ감독하던 이 회장이 규제받는 입장으로 바뀌었는데 잘해낼 수 있겠느냐는 우려도 발생했다. 그러나 이 회장은 취임 직후 KT의 숙원사업들을 연달아 정리하며 그러한 의혹과 우려들을 불식시켰다.

2009년 1월 14일 주주총회에서 새로운 KT호의 선장을 정식으로 맡게 된 이 회장은 취임 엿새만인 1월 30일 이사회를 열고 KT-KTF 간 합병을 전격적으로 결의했다. 이어 3월 18일 방송통신위원회로부터 승인을 받고 6월 1일 합병을 완료, 통합 KT를 출범시켰다. 오랜 숙원사업이었지만 경쟁사의 반발은 물론 조직 내부에서도 의견이 엇갈리며 제대로 엄두를 내지 못했던 합병 건을 이 회장 특유의 뚝심으로 일사천리로 진행해버린 것이다. 당초 합병 예상비용으로 추산된 1조700억원의 3분의 1 수준인 2,980억원으로 통합을 마무리한 것도 눈에 띈다.

이어 이 회장은 직원 5,992명을 희망퇴직으로 내보내며 공기업 시절 비대해진 조직의 군살을 빼기 시작했다. 창사 이래 최대 규모의 감축이었다. 또한 본사 직원들을 영업일선에 배치하고 상무보급을 대상으로 대규모 권고사직을 시행했다. 30년 동안 유지해온 호봉제를 폐지하고 전 직원을 대상으로 연봉제를 도입했으며 일반직과 별정직으로 나뉜 직종과 직급체계를 없애고 성과에 따른 보상안을 마련했다.

삼성전자 및 여타 통신사들과의 갈등을 무릅쓰고 2009년 11월 애플 '아이폰'을 도입할 수 있었던 것도 이 회장의 결단력 덕분이다. 결과적으로 아이폰 도입은 대성공을 거뒀고 스마트 시대를 연 KT는 SK텔레콤에 빼앗겼던 선도적 사업자로서의 위상을 다시 탈환하는데 성공했다.

공기업 시절 '통신공룡'으로까지 불리던 KT가 '혁신 선도기업'으로 거듭나면서 실적도 뒤따랐다. 오랫동안 11조원 언저리를 맴돌던 KT 매출은 이 회장 취임 2년 만에 20조원을 넘어섰고 영업이익 또한 2조원대로 훌쩍 뛰었다.

신사업으로 확장 중

올해 연임에 성공한 이석채 회장은 KT를 'IT 컨버전스 그룹'으로 만들기 위한 작업에 몰두 중이다. 과포화 상태인 국내 통신시장에서 얻는 성과만으로는 더 이상 미래가 없다는 전망 때문이다. KT의 근간이 되는 정보통신 분야에 클라우드, 콘텐츠, 금융, 자동차 등의 분야를 융합해나가겠다는 것이 이 회장의 목표다.

실제로 이 회장이 취임한 이후 KT는 기존 비통신 분야 중 성장성있는 사업군을 지원하고 새로운 먹거리 창출에 집중해왔다. 금호렌터카, BC카드 등을 인수하며 컨버전스 사업을 하고 있고 IT서비스 사업이나 글로벌 투자 사업까지 비통신 분야를 확장한 것이다. 그 결과 2008년 29개였던 KT 계열사는 지난해 말 50개로 72.4%(21개)나 늘었고 자산총액도 28조4,000억원에서 32조1,000억원으로 13% 증가했다. 렌터카, 금융, 부동산 사업 등에서는 이미 뚜렷한 성과도 내고 있다. 사업간 시너지 효과를 통한 2015년 그룹 매출 40조원 달성이라는 이 회장의 목표가 멀게만 느껴지지 않는 이유다.

■ 이석채 회장 말ㆍ말ㆍ말

이석채 회장은 어느 자리에서나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밝히는 스타일이다. 주요 국면마다 터졌던 이 회장의 발언들을 살펴보자.

"김성근 SK와이번스 감독으로부터 경영기법을 배우겠다."

2009년 6월 통합 KT 출범 기자간담회에서 나온 발언이다. 이 회장은 "얼마 전 SK 관계자로부터 김성근 감독의 야구와 훈련 스타일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며 "강훈련을 시키면서도 부정적인 말을 하지 않는 김 감독처럼 KT도 직원들의 사기진작을 위해 힘쓰겠다"고 전했다. 이어 "SK그룹이 김성근 감독에게 모든 것을 맡긴 채 아무런 간섭을 하지 않고 필요한 지원을 해주고 있다"며 "KT도 자회사 CEO들에게 똑같은 환경을 만들어주겠다"고 밝혔다.

"나폴레옹이 알프스를 넘으며 병사들이 피곤하다고 했다고 쉬었다 갔느냐."

혹독한 체질개선이 이뤄지던 2010년 당시 KT 내부에서 '혁신 피로'에 대한 불만이 불거진 것에 대한 발언이다. 이 회장은 "남들 잘되라고 일하는 거라면 피로를 호소할 수 있지만 우리가 살자고 하는 일에 피로를 호소한다면 듣지 않겠다"고 강경한 입장을 밝혔다.

"기업을 하면서 감정을 가지고 해서는 안 된다."

2010년 4월 무역협회 최고경영자 조찬회에서 삼성전자를 겨냥해 나온 발언이다. 이 회장은 "KT가 애플 아이폰을 국내에 판매한 이후 삼성전자가 KT 경쟁사인 SK텔레콤의 'T옴니아'에만 신경을 쓰고 있다"며 "영원한 친구와 적도 없는 기업 현장에서 그러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공짜 점심은 없다."

지난 3월 서울 광화문 올레스퀘어에서 열린 '올레경영 2기' 출범 기자간담회에서 삼성 스마트TV의 인터넷접속 차단에 대해 언급한 발언이다. 이 회장은 이날 망 대가 이용료를 지불해야 한다는 확고한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이 회장은 "네트워크는 공공재가 아닌 KT가 투자한 사유재산"이라며 "스마트 시대의 인터넷 요금은 사용자뿐만 아니라 기업 공급자도 지불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현준기자 realpeac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