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P 선정 '세계 축구 주간 톱10' 손흥민메시·호날두와 어깨 나란히 만 21세에 한국인 최초 영광 올시즌 9골 폭발… 영양가도 만점축구선수 출신 아버지에게서 축구 배워 차범근 "기술 뛰어나고 대담" 극찬 1차 목표는 분데스리가 득점왕

연합뉴스
세계적 권위의 통신사인 AP통신은 지난해 10월부터 매주 전세계 축구기자 20명의 투표를 통해 최고 선수 10명을 선정하고 있다. 특정리그에 국한되지 않고 잉글랜드(프리미어리그) 이탈리아(세리에 A) 독일(분데스리가) 등 세계 최고 리그에서 10명을 추리는 것이라 그만큼 공신력은 높다.

AP통신은 지난 13일 주간 최고의 활약을 펼친 선수 10명을 발표하면서 세계 최고의 스타인 리오넬 메시(26ㆍ바르셀로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28ㆍ레알 마드리드) 등과 함께 분데스리가를 누비고 있는 손흥민(21ㆍ함부르크 SV)의 이름도 넣었다. '약관(弱冠)' 손흥민이 당대 최고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것이다.

AP통신은 "분데스리가 2위인 도로트문트를 상대로 2골을 뽑은 손흥민이 7위를 기록했다"고 보도했다. 한국선수가 AP통신의 세계 톱10에 선정된 것은 손흥민이 처음이다.

14일 현재 올시즌 21경기에서 9골을 몰아친 손흥민은 지난 10일 지난 시즌 챔피언 도르트문트와 21라운드 원정경기서 풀 타임을 뛰며 전반 26분 결승골(8호)과 후반 44분 쐐기골(9호)을 넣어 4-1 대승을 이끌었다. 손흥민은 올해 9골 가운데 4골을 도르트문트를 상대로 넣으며 영양가 만점임을 다시 한 번 과시했다.

도르트문트전 이후 손흥민의 주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다. 첼시, 토트넘, 리버풀 등 잉글랜드의 대표적인 명문 구단들이 손흥민에게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함부르크 단장은 "어떤 제안이 와도 손흥민을 절대 내줄 수 없다"며 손흥민 지키기에 나섰다.

왼쪽부터 1세대 차범근, 2세대 박지성
신기원을 향해

손흥민은 성공한 축구인 2세다. 손흥민의 아버지 손웅정(51)은 명지대를 나와 K리그에서 뛰었던 프로선수 출신이다. 미드필더였던 손웅정은 체구(170㎝ 61㎏)는 작지만 날렵한 몸놀림과 센스를 앞세워 37경기에서 7골을 터뜨렸다.

유망주였던 손웅정은 한때 분데스리가를 꿈꿨다. 하지만 부상에 발목이 잡혔고 꿈은 결국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손웅정은 꿈나무 육성으로 현역 때 아쉬움을 달래고 있다. 손웅정은 아시아축구아카데미에서 총감독을 맡고 있다. 손웅정의 아들 손흥민도 이 클럽 출신이다.

아버지 밑에서 '혹독하게' 축구를 배운 손흥민은 3년 전인 2010년 1월 독일에 진출했다. 올해로 세 번째 시즌을 맞은 손흥민은 신기원을 향해 질주를 시작했다. 올해 겨우 만 21세인 점을 감안하면 손흥민의 전성기는 아직 시작도 안 됐다고 할 수 있다.

역대로 해외에 진출했던 한국 선수 가운데 최고를 꼽으라면 단연 '차붐' 차범근일 것이다. 1978년 SV다름슈타르로 이적하며 분데스리가에 진출한 차범근은 두 번째 시즌이었던 1979~80시즌에 12골(31경기)을 넣으며 돌풍을 일으켰다.

차범근은 바이엘 레버쿠젠 소속이던 1985~86시즌에는 34경기에 출전해서 17골을 폭발시키며 한국인 유럽리그 한 시즌 최다골을 기록했다. 차범근은 독일 무대 11시즌 동안 208경기에 나가 98골을 기록했고, 5시즌에서 두 자릿수 득점을 올렸다.

유럽에 진출한 한국 선수가 한 시즌 두 자릿수 득점을 기록한 것은 차범근 설기현(2002~03시즌 벨기에 안더레흐트에서 13골) 박주영(2010~11시즌 프랑스 AS모나코에서 12골) 박지성(2004~05시즌 네덜란드 에인트호벤에서 11골) 4명밖에 안 된다.

만 18세에 분데스리가에 데뷔한 손흥민은 첫 시즌에 3골(13경기)로 가능성을 비치더니 2011~12시즌에는 5골(27경기)로 한 단계 성장했다. 그리고 올시즌에는 14일 현재 21경기에서 9골을 터뜨리며 '손흥민 시대' 개막을 선언했다.

함부르크는 올시즌 13경기를 남겨두고 있다. 손흥민이 13경기에 모두 출전해서 지금 같은 골 생산 능력을 이어간다면 15골도 가능하다. 15골이라면 차범근이 1985~86시즌에 기록했던 한 시즌 한국인 선수 최다인 17골에 버금가는 금자탑이다.

차범근 "나를 넘어라"

"손흥민의 뛰는 모습에서 차범근이 보이더라고요." 한국 축구의 '영원한 간판'인 차범근은 지난 12일 서울 종로구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열린 제25회 차범근 축구대상 시상식을 마친 뒤 "손흥민을 보면 내가 독일에서 뛰던 모습과 정말 닮았다"며 "어린 나이에도 축구를 잘한다는 생각이 든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차범근은 이어 "분데스리가에서 그 나이에 그 정도로 한다면 내가 세운 기록도 쉽게 넘을 수 있을 것"이라며 "외국인 선수처럼 느껴지지 않을 정도"라고 혀를 내둘렀다. 이제 갓 스무 살을 넘긴 손흥민이기에 차범근이 자신을 뛰어넘을 것으로 기대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차범근은 "손흥민은 기술이 좋은데다 골도 잘 넣고 대담하기까지 하다"며 "최근 뛰는 모습을 보면 '옛날 차범근'을 보는 듯하다"고 웃었다.

대표팀에서 활약이 다소 아쉽다는 지적에 대해 차범근은 "대표팀은 가끔 합류해서 경기를 치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며 "대표팀과 클럽을 모두 만족시킬 수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또 차범근은 최근 네티즌들 사이에서 손흥민과 호날두가 비교되는 것과 관련해서는 "호날두와는 완전히 플레이 스타일이 다르다"며 "손흥민은 직진 능력은 물론 방향 전환도 유연한 게 장점이다. 둘을 비교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고 설명했다.

손흥민 칭찬에 침이 마르던 차범근은 대선배로서 애정이 듬뿍 담긴 조언도 잊지 않았다. 차범근은 "아주 잘나갈 때는 옆 사람의 충고가 들리지 않는다"며 "경기력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목표를 정해서 앞으로 전진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차범근은 이적과 관련해서도 한마디 남겼다. "(손흥민이) 빅 클럽에서 이적 제의를 많이 받고 있는데 소속팀에서 어떤 팀을 상대로든 자신감 있게 경기를 펼칠 수 있다는 확신이 설 때 팀을 옮겨야 합니다. 선수 스스로가 자신감이 있다면 이적을 반대할 이유는 없지요."

오늘은 득점왕, 내일은 세계 최고

손흥민은 함께 독일에서 뛰고 있는 차두리 구자철 윤주태 등과 두루 가깝게 지낸다. 그렇다고 얼굴을 자주 보기는 어렵다. 거리도 많이 떨어져 있는 데다 경기 일정도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락만은 자주 한다. 이역만리에서 외로움과 싸워야 하는 이들이기에 수화기를 통해 목소리만 들어도 서로에게 힘이 된다.

독일 생활을 오래 한 것은 아니지만 손흥민은 독일어를 제법 잘 구사한다. 완벽한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일상생활에서는 큰 불편함이 없을 정도라고 한다. 손흥민은 "아직 부족하다. 축구를 잘하려면 독일어도 더 잘해야 한다"고 스스로 긴장을 불어넣는다.

경기가 없을 때 손흥민은 평범한 스물한 살 청년으로 돌아간다. 손흥민은 함부르크에 있는 한식당에서 김치찌개 한 그릇 먹는다. 또 집에서 영화를 보거나 조용히 책을 읽기도 한다. 영화나 책이 지루하다 싶으면 게임기를 잡는다. 게임도 축구와 관련된 게 대부분이다. 천생 축구선수 손흥민이다.

손흥민은 "막연할 수도 있겠지만 세계적인 선수가 되는 게 목표"라고 힘줘 말한다. 물론 현 소속팀 함부르크에서 뛰는 동안에는 리그 득점왕에 오르는 게 세계적인 선수에 앞선 1차 목표다.

현재로서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함부르크에서 더 발전하고 더 좋은 선수로 성장하는 게 중요하다. 손흥민이 더 큰 클럽으로 이적에 조바심을 내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손흥민은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좀더 큰 무대에서, 대한민국을 대표해서 뛰겠다는 야망까지 감추지는 않는다. '약관' 손흥민이 축구화 끈을 단단히 조이고 있다.

■ 역대 유럽 진출 한국 선수들
1세대 밭 갈고
2세대 씨 뿌리고
3세대 화려한 꽃



1980년대 독일에서 '차붐' 열풍을 일으켰던 차범근, 네덜란드에서 활약했던 '진돗개' 허정무는 유럽파 1세대이자 한국 축구 해외파의 선구자들이다. 1980년대만 해도 한국 축구가 세계 축구의 변방이던 시절이었던 터라 이들의 활약은 더욱 돋보였다.

김주성 황선홍 최용수 등 1990년대를 대표하는 공격수들이 차범근과 허정무의 대 잇기에 나섰다. 셋 다 당대 국내 최고였다. 그러나 이들은 2부 리그에 머물거나 미숙한 업무 처리 등으로 유럽 무대에 제대로 서보지 못했다.

2000년대 들어 안정환 설기현 등은 각각 이탈리아와 벨기에에서 나름대로 존재감을 확인시켰다. 설기현은 벨기에 리그 시절 한 시즌 두 자릿수 득점(13골)도 기록한 적이 있다. 안정환과 설기현이 한국인 공격수도 유럽에서 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비친 것은 한국 축구의 큰 소득이다.

2002 한일월드컵 4강 신화를 타고 유럽에 진출한 박지성과 이영표는 안정환 설기현과 함께 당당히 유럽파 2세대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박지성은 지난 시즌까지 잉글랜드 최고 명문 구단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주전으로 뛰며 많은 후배들에게 이정표가 됐다.

이청용 기성용 구자철 손흥민 지동원 김보경 등은 한국인 유럽파 3세대라 부를 수 있다. 이들 중 1988년생인 이청용이 맏형, 92년생인 손흥민이 막내다. 이청용 등은 전성기가 아닌 발전기 단계에 있다.

10대 때 해외로 유학을 다녀왔거나 프로에 뛰어들었다는 것도 유럽파 3세대들의 공통점이다. 이들은 어려서부터 '큰물'을 경험하며 유럽 무대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는 한편 자신감을 쌓았다.

플레이 스타일은 서로 다르지만 유럽파 3세대들은 모두 공격수다. 이들이 한국 축구의 현재이자 미래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손흥민은 호날두를 연상시킬 만큼 폭발적인 득점력을 과시하고 있고, 구자철은 팀 공격의 선봉에 서 있다. '쌍용'으로 통하는 이청용과 기성용도 늘 자기 몫은 한다.

차범근 허정무가 밭을 갈았고 박지성 이영표는 씨를 뿌렸다. 이청용 기성용 손흥민은 선배들의 땀을 자양분 삼아 화려하게 꽃을 피우려 한다. 또 훗날 유럽파 4세대가 될 후배들의 길잡이 역할도 유럽파 3세대들의 몫이다.



최경호기자 squeez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