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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아 김종숙, 40년 만에 꽃이 돼 돌아오다

● 모국 방문한 佛 플뢰르 펠르랭 장관
생후 6개월 만에 입양 돼 프랑스 첫 한국계 장관으로 성공
박근혜 대통령·경제계 인사들과 잇따라 만나 경제교류 논의 "한국-프랑스 가교 되고 싶어"
  • 연합뉴스
다섯 살 때 미국으로 입양된 제임스 파커. 파커는 화목한 가정에서 잘 자랐지만 핏줄에 대한 그리움은 끝내 떨쳐버릴 수 없었다.

친부모를 찾기 위해 주한미국 자격으로 한국에 온 파커는 친구의 도움으로 입양 전 잠시 머물렀던 춘천의 한 보육원을 방문했다. 그리고 파커는 우연히 TV에 출연해 친부모의 행방을 수소문하게 된다.

마침내 파커는 방송을 통해서 친부의 소식을 듣는다. 하지만 아버지는 10년째 복역 중인 사형수. 그게 파커가 그토록 찾던 친아버지의 실체였다.

그래도 파커는 아버지를 찾아간다. 면회를 통해서 파커는 아버지에 대해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두 사람은 핏줄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서로에 대한 연민의 감정이 커간다. 파커는 22년간 담았던 간절한 마음을 아버지에게 전한다. "사랑합니다."

1975년 여섯 살 때 미국으로 입양된 뒤 22년 만에 사형수 아버지를 만난 애런 베이츠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마이파더'. 이 영화는 2007년 가을 개봉돼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렸다. 주연을 맡았던 다니엘 헤니는 실제 입양아였던 어머니를 보면서 영화에 더 몰입할 수 있었다고 한다.

  • 플뢰르 펠르랭(왼쪽) 프랑스 중소기업·혁신·디지털경제장관이 3월 27일 서울 지하철에서 휴대폰으로 자신의 기사를 검색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플뢰르 펠르랭(40) 프랑스 중소기업ㆍ혁신ㆍ디지털경제부 장관이 지난 23일 4박5일 일정으로 40년 만에 한국을 방문했다. 생후 6개월 만에 서울의 길거리에 버려졌다가 프랑스로 입양됐던 펠르랭의 방한은 처음이다.

'제4회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에 온 펠르랭은 국내에 머문 동안 대기업들을 만나 의견을 여러 교환했고, 지난 26일에는 박근혜 대통령과도 환담을 나눴다.

펠르랭 "한국인들은 해외 입양아들에 대해 죄책감을 느껴서는 안 된다"며 "지금 한국계 입양아들이 세계에서 점점 더 많은 성공을 거두고 있다. 죄책감을 가질 게 아니라 오히려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한국에서 가족을 찾을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서 펠르랭은 "없다. 난 프랑스에 가족이 있는 프랑스 국적의 프랑스 사람"이라고 잘라 말했다.

프랑스 첫 한국계 장관

  • 플뢰르 펠르랭(왼쪽) 장관이 3월 26일 청와대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만나고 있다.
펠르랭이 역경을 딛고 성공 스토리를 쓸 수 있었던 데 양부모의 헌신적인 사랑이 밑거름이었다. 펠르랭이 "자라면서 그 어떤 차별도 받았다는 생각하지 않았다. 아무 문제 없었다"고 자신있게 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양부모는 펠르랭에게 '꽃(플뢰르)'이라는 예쁜 이름을 지어주면서도 한국이름 '김종숙'을 남겨뒀다. 비록 한국부모에게는 버림받았지만 두 번 다시 같은 상처를 입어서는 안 된다는, 한편으로는 '네가 태어난 곳을 잊지 말라'는 사려 깊은 배려였다.

펠르랭은 사업가였던 양아버지 그리고 전업주부였던 어머니와 함께 몽퇴르유에 있는 작은 아파트에서 살다 베르사유로 이사했다. 외조부모가 공산당 계열이었던 터라 어릴 때부터 펠르랭은 자연스럽게 사회당의 영향을 받으면서 자랐다.

펠르랭은 또래들보다 유난히 영특했다고 한다. 펠르랭은 남들보다 2년 빠른 16세 때 바칼로레아(프랑스 대합입학시험)에 합격해서 프랑스 최고 상경계열 명문인 그랑제콜 에섹과 정치계열 명문인 파리정치대학, 국립행정학교(ENA) 등을 거쳤다.

펠르랭은 2002년 대선 당시 연설문 작성 작업에 참여하면서 사회당과 깊은 인연을 맺었고, 2007년 대선 때는 디지털경제 전문가로 활약했다. 펠르랭은 지난해 초 자리를 넘겨주기 전까지 프랑스의 여성 엘리트ㆍ정치인 모임인 '21세기 클럽' 회장으로도 활동했다. 이 모임은 프랑스를 비롯해 유럽 사회 전반의 다양성 제고와 기회의 평등을 목표로 한다.

  • 플뢰르 펠르랭(가운데) 장관이 3월 25일 서울 노보텔호텔에서 한국중소기업중앙회와 한불 상공회의소의 전략적 파트너십 구축을 위한 업무협약식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리고 지난해 5월 올랑드 대통령의 당선과 함께 펠르랭은 프랑스 중소기업ㆍ혁신ㆍ디지털경제부 장관에 발탁됐다. 프랑스에서 한국계 인사가 장관에 오른 것은 펠르랭이 처음이다.

펠르랭은 "프랑스에서 한국어를 배우려는 학생이 많이 늘어나고 있는데 이 점은 정말 새로운 현상"이라며 "게다가 한국 영화에 대한 프랑스 관객의 관심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을 바탕으로 상호 관계를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프랑스 가교 될 것"

펠르랭은 지난 25일 "한국 기업이 유럽 국가 중 프랑스에 가장 많이 진출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중앙회와 한불상공회의소가 맺는 '전략적 파트너십 구축을 위한 양해각서(MOU)' 체결식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에 온 펠르랭은 서울 강남의 한 호텔에서 '혁신적인 성장을 위한 중소기업 협력'을 주제로 강연했다. 펠르랭은 강연에서 "프랑스의 외국인 투자 유치액은 이탈리아나 독일의 약 2배에 이르고 기업도 2,000여개"라며 "프랑스 국내 일자리의 14%를 외국계 기업이 책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펠르랭은 이어 "아시아 국가 중 한국은 프랑스의 가장 중요한 경제협력국이고 한국에 있는 프랑스 기업도 250여개에 이른다"면서 "유럽에서 한국 기업의 투자가 가장 활발한 국가는 독일인데 조만간 프랑스가 첫 번째 투자국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국과 프랑스 양국 간 협력 강화를 위해서는 '문화 장벽 극복'이 가장 중요하다는 게 펠르랭의 생각이다. 펠르랭은 "서로 다른 국가의 기업들이 협력할 때 언어보다 문화가 더 큰 문제"라며 "중소기업들이 자주 교류하면서 서로의 성공사례나 시장의 어려움 등을 나누면 모두가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소기업 부문 장관답게 펠프랭은 프랑스의 중소기업 정책도 소개했다. 펠르랭은 "여러 부처로 나뉘어 있던 중소기업 지원 기능을 한데 모은 공공투자은행을 설립했으며 총 420억 유로를 중소기업 지원에 사용할 예정"이라며 "중소기업의 연구·개발(R&D) 투자비에 대해서는 최대 30%까지 세액공제도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24개 프랑스 중소기업 대표와 한국을 찾은 펠르랭은 강연을 마치고 하성민 SK텔레콤 사장을 만나 양국 정보통신기술 발전에 대해 논의했다. 펠르랭은 프랑스 정부의 디지털 경제 활성화 방안을 설명하고 SK텔레콤에 사업 참여를 요청했다. 강연 후 펠르랭은 한국에 대한 솔직한 감정을 드러냈다. "너무 어린 시절 한국을 떠나서 특별한 기억은 없지만 원망하는 마음도 없습니다, 좋은 프랑스 부모를 만나 행복한 유년 시절을 보냈으며, 한국과 프랑스 간 가교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입양 역경 딛고 성공 스토리
상원의원에 올림픽 메달리스트



프랑스에서 '꽃(플뢰르)'이 된 플뢰르 펠르랭(40) 말고도 입양아라는 고난을 극복하고 해외에서 성공 스토리를 쓴 사례는 더러 있다.

경기 파주에서 태어나 어려서 어머니를 잃고 열여덟 살 때 6ㆍ25전쟁에 참전한 미군 장교의 양아들로 미국에 건너간 신호범(78ㆍ미국명 폴 신).

  • 토비 도슨
폴 신은 검정고시로 미국 대학에 입학해 워싱턴주립대학 등에서 31년간 강단에 섰다. 폴 신은 1993년에는 아시아 입양아 출신 최초로 워싱턴주 상원의원이 된다. 폴 신은 현재 미국 상원 부의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토비 도슨(35ㆍ한국이름 김봉석)도 입양아 신화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다. 부산에서 태어나 미국에 입양된 도슨은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따며 크게 주목받았다.

도슨은 2018평창동계올림픽 유치에도 힘을 보탰다. 도슨은 유치 대표단의 마지막 발표자로 나서 가슴 절절한 성장기를 전하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들의 감성을 자극했다. 도슨은 현재 프리스타일스키 한국대표팀 감독을 맡고 있다.

장뱅상 플라세(45)는 한국인 입양아 출신 첫 프랑스 상원의원이 다. 플라세는 2011년 일드프랑스주의 에손 도에서 상원의원으로 당선됐다. 고아원을 전전하다 일곱 살 때 입양된 아픔을 간직하고 있다.


'고아 수출국' 불명예 여전
많이 줄긴 했지만 아직도 매년 1,000명



미국 국무부의 2011 국제입양 보고서에 따르면 2010년 미국 가정에 입양된 어린이 2,047명 중 한국 어린이가 36%나 차지했다. 36%는 압도적 1위로 한국의 뒤를 잇는 필리핀 우간다 인도 에티오피아 등의 입양아 수를 모두 합친 것보다도 많다.

  • 장뱅상 플라세
해외 입양은 전쟁고아와 혼혈아를 구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1954년에 시작됐다. 정부가 '고아ㆍ양자 특별조치법'을 만듦으로써 입양을 합법화한 것이다. 1955년 해리 홀트 박사가 8명의 한국 아동을 입양한 것이 효시다.

해외 입양은 50년대만 해도 한 해 10여명에 불과했으나 77년 6,159명, 83년 7,263명으로 급증했다. 85년에는 8,837명으로 9,000명에 육박했다.

'고아 수출국'이라는 비난도 무리는 아니었다. 북한까지 나서서 "남한은 이윤을 목적으로 서양인들에게 아동을 팔아 넘기고 있다"고 손가락질했다.

그후 정부가 국내 입양 증진으로 정책을 전환하면서 입양아 숫자는 크게 줄었다. 하지만 지금도 매년 1,000명 정도의 어린이가 외국으로 입양되고 있다.

입양 과정에 적잖은 돈이 오가는 '거래'도 문제로 지적된다. 미국의 입양 전문잡지 '입양 가족'의 조사 결과를 보면 미국인이 한국에서 아이를 입양하는 데 평균 3만1,687달러(약 3,300만원)가 든다. 이 가운데 입양 준비금(3,650달러)과 여행 등 기타 경비(6,160달러)를 제외한 수수료는 2만2,877달러다.

  • 폴 신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남윤인순 민주통합당 의원에 따르면 국내 입양기관이 아동 1명을 국외로 입양 보낼 때 받는 수수료는 적게는 9,000달러에서 많게는 1만4,240달러다.

이에 대해 한 복지회 관계자는 "장애나 질병 등이 있는 아동의 경우 복지회에서 의료 지원을 하는데 영리 목적이라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사업비 예산에서 입양 수수료가 차지하는 비중은 법인 후원금을 합친 것보다 작다"고 항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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