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숨바꼭질' 손현주12일 만에 400만 관객 돌파 2012년 '추적자'로 연기대상올해 영화 잇따라 히트 행진 이젠 '믿고 보는 배우'

영화 ‘숨바꼭질’
브라운관 평정하고 스크린에서도 대박 행진

이 여름 시즌 극장가에서 최대 반전 드라마를 만들어 내고 있다. 제작비 20억 원의 저예산 영화인데다 티켓파워를 지닌 톱스타가 출연하지도 않지만 최근까지도 극장가를 양분했던 ‘설국열차’와 ‘더 테러 라이브’를 개봉과 동시에 잠재우고 고공행진을 지속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숨바꼭질’에는 ‘설국열차’의 제작비 400억 원도 ‘더 테러 라이브’의 충무로 대세남 하정우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제 갓 30대에 접어든 신인감독이 메가폰을 잡았으니 소위 말하는 ‘흥행 감독’의 영향도 아니다. 그럼에도 ‘숨바꼭질’이 승승장구할 수 있던 것은 바로 ‘믿고 보는 배우’ 손현주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장르 한계 넘어선 대박 행진

누군가 내 집에 들어와 몰래 살고 있다면 어떨까. 그 사람이 평소에는 숨어 있다가 내가 출근하거나 장보러 시장에 갔을 때만 나와 활동하고 있다면, 밖에 수많은 좀비들이 돌아다니는 것보다 오히려 더욱 무섭지 않을까. 집이라는 개인적인 공간은 나에게 안락함이 아닌 극도의 불안감과 공포감을 주는 곳으로 변하지 않을까.

이 같은 설정을 바탕에 깔고 있는 ‘숨바꼭질’은 최근 몇 년간 국내외에서 일어난 흥미로운 사건들을 모티브로 만든 영화다. 실제로 2008년 도쿄에서는 1년간 남의 집에 숨어 살던 노숙자가 체포됐고 이듬해 뉴욕에서는 남의 아파트에 숨어 사는 여자의 모습이 CCTV를 통해 포착됐다. 2009년에는 서울을 중심으로 집 초인종 옆에 수상한 표지를 발견했다는 주민신고가 동시에 속출하기도 했다. 현실에 존재해 왔던 괴담을 소재로 했기에 ‘숨바꼭질’에서는 더욱 실제적인 공포와 스릴이 느껴진다.

저예산 영화인데다 공포라는 장르의 특성상 ‘숨바꼭질’이 대박을 칠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별로 없었다. 주연배우인 손현주마저 “관객이 손익분기점인 150만 명이라도 모였으면 좋겠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러나 개봉한 지 불과 64시간 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한 ‘숨바꼭질’은 5일 만에 200만 관객, 10일 만에 300만 관객을 돌파했으며 12일 만에 400만 고지까지 넘어섰다. 공포 장르로는 전무후무한 기록이고 그 범위를 전체 영화로 넓혀 봐도 만만치 않은 성적이다. 최단기간 400만 관객 돌파로 따지면 역대 한국 영화 중 여섯 번째 기록이고, 흥행 3위에 오른 ‘7번방의 선물’(2012년)이나 4위 ‘광해, 왕이 된 남자’(2012년)보다도 빠르다. 그 여세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세간의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숨바꼭질’의 성공 배경은 다양한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흥미로운 소재이기도 하고 탄탄한 시나리오 또한 강점이다. 그러나 충무로 인사들이 첫손가락으로 꼽는 ‘숨바꼭질’의 성공요인은 바로 주연배우인 손현주다. 수많은 TV드라마에서 주연과 조연을 가리지 않고 활약해 왔지만 영화판에서는 별반 모습을 드러내지 않다가 올해 출연한 두 편의 영화를 통해 명실공히 1,000만 배우가 된 손현주가 ‘숨바꼭질’의 질주를 만들어 낸 것이다.

최진실과 호흡 맞추며 눈도장

1965년생으로 올해 48세가 된 손현주는 ‘준비된 영화인’으로서의 계단을 차근차근 밟아 올라왔다. 대원고등학교를 마치고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에 입학하기 전까지만 해도 손현주는 신학을 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러다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를 보고 성극의 새로운 가능성에 눈을 뜬 손현주는 여러 교회에서 성극을 열어주며 자연스럽게 무대를 접하게 됐고 이후 그의 인생은 송두리째 변해버렸다.

무대의 맛을 알게 해준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를 마치며 올린 졸업연극 ‘햄릿’에서 손현주는 주인공을 맡았다. 3주 동안 진행된 오디션에서 햄릿 역을 따낸 손현주의 선택은 외국배우처럼 폼을 잡지 않은, 한국적이면서도 소박한 햄릿이었다. 이후 손현주의 연기 스타일로도 꼽히는 ‘소시민적인 연기’가 이때부터 시작된 셈이다.

대학교 졸업 이후 손현주는 마당극을 주로 하는 극단 미추에 들어가 연기 내공을 쌓았다. 모두가 주인공이기에 역설적으로 주인공이 존재할 수 없는 마당극의 특성때문일까. 이때의 경험은 이후 TV드라마에 데뷔하고도 오래도록 주연을 꿰차지 못했던 손현주에게 인내하고 기다릴 수 있는 능력을 키워 줬다.

손현주는 1991년 KBS 14기 공채 탤런트로 입문했지만 오랫동안 별로 눈에 띄지 않는 존재였다. 동기인 이병헌이 데뷔하자마자 스타대접을 받았던 것과는 사뭇 다른 행보다. 탤런트로서 처음 얼굴을 드러냈던 농촌드라마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를 시작으로 여러 작품에서 단역을 맡았지만 시청자들에게 이름을 알리지는 못했다. 소위 말하는 ‘한방’이 부족했던 것이다.

그런 손현주가 시청자들로부터 눈도장을 받기 시작한 것은 1995년부터 방영된 일일드라마 ‘바람은 불어도’였다. 당시 최고 시청률 55.8%를 찍은 ‘바람은 불어도’에서 손현주는 “황씨 아저씨”라는 유행어를 낳은 김반장 역할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당시 이 드라마의 극본을 맡은 문영남 작가와의 인연으로 손현주는 이후 ‘애정의 조건’(2004년), ‘장밋빛 인생’(2005년), ‘조강지처 클럽’(2007년), ‘폼나게 살거야’(2011년) 등에도 연달아 출연하게 된다. 그 중 ‘장밋빛 인생’은 손현주 연기인생에 한 획을 긋게 한 작품으로 꼽힌다.

‘장밋빛 인생’에서 손현주는 당시 이혼의 아픔으로 활동을 중단했다 복귀한 고 최진실과 호흡을 맞췄다. 손현주는 ‘장밋빛 인생’ 초기 바람둥이 철부지 남편 역을 맡으며 여성 시청자들의 공분을 사다가 아내의 시한부 인생을 알게 된 이후 헌신하는 남편으로 변신하는 ‘국민남편’을 연기, 한방에 주연급으로 도약했다.

이후에도 손현주는 드라마 ‘조강지처클럽’(2009년), ‘솔약국집 아들들’(2009년), ‘이웃집 웬수’(2010년) 등과 영화 ‘연리지’(2007년), ‘펀치레이디’(2007년), ‘더 게임’(2007년) 등에서 주ㆍ조연을 맡으며 ‘믿고 보는 배우’로서 자신의 존재를 아로새겼다.

‘추적자’부터 초대박행진

손현주에게 있어 2012년은 잊지 못할 한 해가 됐다. 지난 20여 년간 영화와 드라마 합해 50편이 넘게 출연한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드라마 ‘추적자 THE CHASER’(이하 ‘추적자’)를 만났기 때문이다.

‘추적자’는 스타급 연기자가 없는 드라마라는 점을 오히려 마케팅 포인트로 삼을 만큼 시청자들의 관심에서 벗어난 채 시작됐다. 그러나 억울하게 죽은 딸의 무죄를 주장하기 위해 거대 권력과 처절한 사투를 펼치는 슬픈 아버지 역할을 한 손현주의 ‘추적자’는 그해 소위 말하는 대박 드라마로 거듭났다. 주인공인 손현주 또한 데뷔 21년 만에 처음으로 연기대상을 거머쥐는 기염을 토했다.

손현주의 출세작이 된 ‘추적자’는 고통 또한 안겨줬다. ‘추적자’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이에 손현주는 ‘추적자’에서와 전혀 다른 역할을 맡으며 부담감을 떨쳐버렸다.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와 ‘숨바꼭질’, 드라마 ‘황금의 제국’ 등 손현주는 ‘추적자’ 이후 다양한 캐릭터를 맡으며 스크린과 브라운관 모두에서 최고의 존재감을 뿜어내고 있다.

변함없는 겸손함으로 이후 행보 기대

연기대상을 받으며 TV드라마 배우로서 정점을 찍었고, 두 편의 영화로 1,000만 관객을 동원하며 영화계에서도 러브콜이 끊이지 않는 진정한 ‘스타’가 됐지만 손현주는 여전히 겸손함을 잃지 않고 있다. 누구를 만날 때마다 90도로 허리 숙여 인사하는 그의 모습은 인기와 그에 따른 출연료가 아무리 치솟아도 변하지 않을 것임을 예상하게 해준다.

언제나 그대로일 것 같은 손현주를 있게 한 것은 그의 성격과 삶에 대한 태도이다. 스스로도 “언제나 나태해질까 봐 스스로 채찍질을 멈추지 않는다”고 할 정도로 ‘약속’과 ‘부지런함’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그의 모습이 앞으로의 손현주를 기대하게 하는 것이다.

등산은 손현주가 가장 좋아하는 운동이다. 시간이 날 때마다 일본, 중국, 네팔에 있는 산으로 떠날 정도로 등산을 좋아하고 자연히 산악인들과의 친분도 두텁다. 손현주가 산에 오르고 산을 좋아하는 이유는 등산이 연기와 비슷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등산이나 연기나 얼마나 빨리 정상에 오르는지보다 어떻게 오르느냐가 중요”하다는 그의 말은 ‘숨바꼭질’ 이후에 맞이할 손현주의 행보를 더욱 기대하게 만들고 있다.



김현준기자 realpeac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