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당 실세, 진보를 벼랑끝으로…NL계 주사파로 학생 운동 경기동부연합의 핵심부정투표 의혹 당 분열시켜 계속된 종북논란끝 '추락'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이 주먹을꽉쥔채2일국회 의원회관 오병윤 의원실에서 열린 대책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의원실을 나서고 있다. 오대근기자
33년 만에 등장한 '내란음모사태'라는 블랙홀이 국정원 대선개입 논란이 촉발한 민주당 장외투쟁, 박근혜 대통령과 10대 그룹 총수들의 만남으로 시작됐어야 할 경제활성화 조치, 주요 입법과제와 예산확보가 논의될 9월 정기국회 등 평소 같았으면 충분히 이슈가 될만한 주요 현안들을 삼켜버렸다. 통합진보당 당직자와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 10여 명에 대한 국정원의 압수수색으로 시작된 이번 사태는 정국을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갯속으로 몰아넣었다. 그 과정에서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은 가장 주목을 받는 인물로 떠올랐다.

내란음모혐의로 가시밭길

사건은 지난달 28일 새벽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이 이석기 의원을 비롯해 통합진보당 당직자 및 시민사회단체 관계자 10여 명을 대상으로 압수수색을 실시한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국정원은 이들에게 '내란음모와 국가보안법 위반(이적단체구성 및 찬양ㆍ고무)' 혐의를 적용했다. 지난 5월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서 RO(Revolutionary Organization: 혁명조직) 조직원 130여 명과 모임을 갖고 유사시 무력을 동원해 국가기간시설을 공격하는 방안을 논의했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또한 국정원은 이날 홍순석 통합진보당 경기도당 부위원장, 이상호 경기진보연대 고문, 한동근 전 수원시위원장 등 3명을 체포했다.

이번 압수수색은 수원지검이 국정원의 신청을 받아 수원지법에 청구한 영장이 27일 밤 발부되며 진행됐다. 이와 관련, 시진국 수원지법 영장전담판사는 "범죄 혐의가 소명되고 증거인멸 및 도주 염려가 인정되며 사안이 중대하다"고 영장 발부 이유를 밝혔다. 최태원 수원지검 공안부장도 "국정원이 오래전부터 내사를 진행해온 사건이라 일사천리로 진행됐다"고 밝혔다.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이 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국정원 직원들에 의해 강제구인되고 있다. 왕태석기자
통합진보당은 국정원의 조처에 대해 '공안탄압'이라며 거세게 반발했다. 홍성규 통합진보당 대변인은 긴급 브리핑에서 "박근혜 정권이 2013년판 유신독재 체제를 선포했다"며 "어떻게든 감춰보려 모든 권력을 이용하여 애를 썼지만 하나둘 드러나는 지난 대선 부정선거 의혹 앞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직접 책임지라는 국민들의 목소리를 듣는 대신 색깔론과 공안탄압이라는 녹슨 칼을 빼 들었다"고 비판했다.

압수수색 당일 잠시 몸을 피했던 이 의원도 "국정원의 날조"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무엇이 날조인지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아 빈축을 샀다. 대응 초기 국정원이 근거로 제시하는 5월 모임에 대해 "존재하지도 않았다"고 해명했다가 녹취록이 공개되자 그제야 "모임은 열렸지만 발언 취지가 왜곡됐다"고 말 바꾸기한 것도 세간의 의혹을 키웠다.

코너에 몰린 통합진보당이 중앙당과 시도당, 지역위원회 전체를 '비상 투쟁조직'으로 긴급 전환, 배수의 진을 쳤지만 상황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가장 큰 우군이라 믿었던 민주당이 통합진보당이 참가하는 촛불집회에 불참키로 하는 등 발 빠른 '거리 두기'에 나섰고 한때 한 지붕아래 있었던 진보정의당은 더 나아가 "진보당과 이 의원은 수사에 적극적으로 임해야 한다"고 압박하고 있다. 통합진보당과 이 의원으로서는 뚫고 나갈 길이 보이지 않는 상황인 것이다.

당권파 숨은 실세

지난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한 이석기 의원은 국정원의 표적이 된 경기동부연합의 핵심 멤버이자 통합진보당의 실세다. 한 마디로 '종북 논란의 몸통'인 셈이다.

전남 목포에서 태어나 한국외대 용인캠퍼스 중국어통번역과를 졸업한 이 의원은 대학 시절 학내 '가면극무도회' 등에서 이념문제를 접하고 그 인연으로 민족해방(NL) 계열에 편입됐다. 그 시절 한국외대 용인캠퍼스는 '운동권의 백화점'이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운동권 내에서 독보적인 위상을 가진 곳이었다. 한때 17개 운동권 분파가 경쟁하기도 했던 그곳에서 이 의원은 NL계 주사파 운동권인 하영옥씨에게 포섭당했고 이후에도 하씨에게 지도 받았다고 전해진다.

하씨의 오른팔이자 경기동부연합의 핵심멤버로 활동하며 NL 사상을 키워나간 이 의원은 불법시위로 인한 제적과 재입학 끝에 1988년 졸업했다. 이후 이 의원은 이듬해 3월 하씨 등과 함께 '반제청년동맹'을 결성했다. 그해 4월 이른바 '강철서신'으로 대학가에 주체사상을 전파시켰던 김영환씨가 중앙위원으로 합류한 반제청년동맹은 1992년 민족민주혁명당(이하 민혁당)으로 개편됐다.

당시 김영환씨가 민혁당 중앙위원장, 하영옥씨는 중앙위원으로 경기남부위원회에 소속해있던 이석기 의원을 지도했다.

그러나 김씨는 1994년 김일성 사망 이후 주체사상에 회의를 느끼고 1997년 7월 민혁당 공식 해체를 선언했다. 그를 따르는 후배들과 전향한 것이다. 수장의 전향으로 흔들리던 민혁당 조직 재건에 주도적으로 나섰던 사람이 이 의원과 하씨였다. 두 사람은 영남위원회와 경기남부위원회를 중심으로 당 조직을 수습했고 이 의원은 민혁당의 지도부를 맡으며 기반을 다졌다.

이후 이 의원은 1999년 민혁당 간첩 사건 수사 때 수사기관의 추적을 피해 3년쯤 도피생활을 하다가 2002년 5월 결국 체포, 2003년 3월 국가보안법의 반국가단체구성 등 위반으로 징역 2년 6개월 형을 선고 받았다. 그러나 5개월 뒤인 2003년 8월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가석방되고, 다시 2년 뒤인 2005년 8월에는 특별복권을 받아 공무담임권 및 피선거권 제한이 풀려 공직에 출마할 수 있게 됐다.

이 시기 이 의원의 가정사는 원만하지 않았다. 이 의원의 누나인 이경선씨는 국방부 부이사관이었으나 수배 중인 동생에게 생활비를 지원했다는 이유로 정직 처분을 받았다. 이씨는 법적 투쟁 끝에 징계가 부당하다는 판결을 받았으나 일련의 일들을 겪는 과정에서 건강이 크게 악화됐고 2005년 6월에 세상을 떠났다. 당시 이씨의 변호인은 이정희 전 통합진보당 공동대표의 남편 심재환 변호사였다. 아들 때문에 늘 마음 졸이던 이 당선자의 어머니 김복순씨는 암 투병 끝에 2008년 3월 세상을 등졌다.

첫 특사 이후인 2005년 2월, 이 의원은 여론조사분석에 기초한 선거컨설팅ㆍ홍보업체 CNP전략그룹(이후 CN커뮤니케이션즈)를 설립, 진보진영을 물밑에서 지원했다. 자본금 4억원으로 시작한 CNP전략그룹은 서울대학교 등 30여 개 대학 총학생회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동아리 축제 기획 및 홍보사업, 자판기 사업, 졸업앨범 사업 등을 담당해 상당한 수익을 올렸다. 민주노총, 민주노동당, 통합진보당 등 진보계열의 단체들의 홍보업무도 대행한 CNP전략그룹의 수익은 경기동부연합의 조직비용으로 활용됐다는 의혹을 받기도 했다.

통합진보당 분열시킨 주범

경기동부연합의 실질적인 리더인 이석기 의원이지만 국회 입성 전까지 사실상 무명에 가까웠다. 당내에서조차 이 의원의 이름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 대다수일 정도였다. 그러던 이 의원은 당 비례대표 일반명부 경선에서 27%의 지지율로 압도적 1위를 차지하며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지난해 4월 치러진 19대 총선을 통해 국회의원 배지를 단 이후에도 이 의원의 행보는 평탄치 않았다. 통합진보당에 입당한 지 3개월밖에 안 된 이 의원이 최다 득표를 한 것에 대해 부정투표 의혹이 지속적으로 제기됐으며 결국 당 진상조사위원회에서도 "'대리투표', '유령투표'가 있었다"고 공식 발표한 것이다.

이에 통합진보당은 부정선거 파문을 일으킨 이석기ㆍ김재연 제명안을 상정했지만 당권파의 격렬한 반대로 중앙위원회에서 폭력사태까지 발생하는 등 내부분열이 일어났다. 그 과정에서 심상정 진보정의당 대표와 노회찬, 유시민 전 의원 등이 통합진보당을 탈당했고 13석이었던 의석수는 6석으로 쪼그라들었다.

해당 사건에 대해 한때 함께 민혁당을 이끌어갔던 김영환씨는 "이석기는 맡은 일을 끝까지 책임지는 사람이고 조직에 대한 헌신성도 대단하지만 단결력을 과시하다 보니 부정, 부패에 둔감해지는 경우가 있다"며 "언젠가 한번쯤은 일어났어야 할 일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일 뿐"이라 평가하기도 했다.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 의원 30여 명도 이를 문제삼아 지난 3월에 두 의원에 대한 국회의원 자격 심사안을 국회 윤리특별위원회에 제출했고, 현재 윤리 특위 산하 자격심사소위에 계류돼 있는 상태다.

당시 선거 부정 의혹을 한몸에 받았던 이 의원은 해당 사건 관련 검찰 기소 명단에선 제외됐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이 의원은 민혁당사건으로 실형을 선고받은 전력이 재조명을 받고 이른바 경기동부연합의 실세로 지목되는 등 극심한 종북 논란을 겪었다.

이 의원은 애국가 비하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지난해 6월 "미국 등에는 국가가 있지만 우리에게는 국가가 없다"며 "애국가는 그냥 나라 사랑을 표현하는 여러 노래 중 하나"라고 발언해 논란을 일으킨 것이다. 당시 이 의원은 "민족적 정한과 역사가 있으므로 아리랑이 실제 우리 국가 같은 것"이라며 "독재 정권에 의해서 (애국가가 국가로) 만들어졌다"고 주장했다.

어떤 쪽이든 치명적 타격

'내란음모사태'로 수많은 이견과 실권이 엇갈리며 안갯속 정국이 돼버렸지만 결론은 둘 중 하나다. '내란음모' 혐의가 성립돼 이석기 의원을 비롯한 진보당이 갈가리 찢겨나가거나 아니면 별다른 혐의없음으로 밝혀지며 국정원이 그 역풍을 맞는 결과가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까지 상황만 놓고 보면 전자가 우세해 보인다. 4일 열린 국회에서 이 의원의 체포동의안이 가결됐기 때문이다. 이튿날 수원지법에서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통과하면서 결국 이 의원은 앞으로 20여 일간 수원구치소에 구금된 채 국정원을 오가며 조사를 받을 예정이다.

형법 제87조에 따르면 내란죄의 수괴는 사형, 무기징역 또는 무기금고에 처해진다. 모의에 참여 또는 지휘하거나 기타 중요한 임무에 종사해도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형을 받게 된다. 이 의원의 경우처럼 단순히 내란을 음모하기만 해도 3년 이상의 유기 징역이나 금고형으로 처벌된다. 국정원이 내비치는 자신감으로 볼 때, 이 의원으로서는 낮지 않은 형량을 받을 수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정치권에서는 재판에서 어떤 결과가 나오던 이 의원과 통합진보당은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설사 국정원이 갖고 있는 증거가 이 의원 등의 '내란음모' 혐의를 완전히 입증하지 못하더라도 막대한 정치적 타격이 예상된다는 것이다. 오랜 기간 막후의 실력자로 행세해오다 수면 위로 부상한 지 채 2년도 되지 않는 이 의원과 통합진보당이 이번 위기를 어떻게 헤쳐나갈 지 주목된다.

다시 주목받는 경기동부연합은 2001년부터 민노당 대거 입당 주도권 잡아



성남·용인 지역운동 조직과 경기동부총련이 주축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이 '내란음모' 혐의로 수사를 받으면서 '경기동부연합'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이 의원이 실세로 알려진 데다 이번에 국가정보원에 의해 체포 또는 압수수색당한 사람 대부분이 경기동부연합 계열로 분류되는 까닭이다.

경기동부연합은 1991년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전국농민회총연맹,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등 운동권 내 민족해방(NL) 계열이 통합한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의 8개 지역조직 중 하나로 출발했다. 경기 성남과 용인 등지의 지역운동 조직과 전대협 내 강경파였던 경기동부총련이 주축이었다.

경기동부연합이 두각을 나타낸 건 2001년 NL계가 합법정당운동을 결의한 이른바 '군자산 회합' 이후였다. NL진영은 '10년 내 자주적 민주정부 및 연방통일조국 건설'을 목표로 민중민주(PD) 계열이 주도해 창당한 민주노동당(이하 민노당)에 대거 입당했는데, 그 과정에서 경기동부연합은 대학생 당원을 대거 조직해내며 NL진영 내에서 발언권이 커졌다.

경기동부연합은 2006년 1월 광주ㆍ전남연합과 손잡고 범경기동부연합으로 재편되면서 명실상부한 민노당의 주류로 부상했다. 경기동부연합을 향한 종북주의ㆍ패권주의 논란이 본격화한 것도 이때부터다. 실제로 종북논란을 부른 일심회 간첩단 사건, 북한 핵실험 관련 논평 등은 모두 경기동부연합이 당권을 장악한 이후에 벌어진 일이다.

2006년 이후 지금껏 민노당과 진보당의 재정ㆍ인사를 주무른 경기동부연합은 총무파트를 독식했고 당권 장악 과정에선 당비 대납, 위장전입 등 광범위한 불법을 자행했음이 드러나기도 했다. 국정원은 이번에 문제가 된 RO(Revolutionary Organization: 혁명조직)가 조직결성 이후 경기동부연합의 중추세력을 차지했다고 파악하고 있다.



김현준기자 realpeac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