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상 첫 위헌정당해산심판 주심 이정미 헌재 재판관1887년 대전지법서 첫 판사생활 2011년 여성 두번째·40대에 헌재 재판관 임명 주목받아비교적 진보적 판결 많지만 최근 헌법재판 사건서 보수 의견도

헌법재판소에 통합진보당의 운명이 맡겨졌다. 헌법재판소(헌재)는 이정미 재판관을 주심으로 통합진보당(통진당) 해산심판 청구 사건을 배당했다. 법과 원칙에 따라 전자 추첨으로 결정됐다는 게 헌재의 설명이다.

이번 헌법재판에 세간의 이목이 집중됐다. 통진당의 해산 여부가 정치권 초미의 관심사인데다 위헌정당해산심판이 헌정 사상 최초라는 점에서 법조계도 주목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이번 재판의 주심을 맡고 있는 이정미 재판관에게 시선이 쏠리고 있다.

일각에선 헌재 재판에선 9명의 재판관들이 각자 동등한 의견을 내므로 주심인 이 재판관의 역할이 비교적 미미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하지만 주심 산하의 연구관이 사건 내용을 주로 검토해 재판관들에게 보고를 하기 때문에 결정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 또한 주심이 심리가 이루어지는 공개 구두변론과 재판관들의 합의를 이끌어내는 과정을 주도하므로 이 재판관의 임무가 막중하다. 결정문 작성 역시 주심인 이 재판관이 맡는다.

최연소 유일한 여성

헌재는 6일 "정당해산심판청구 사건을 배당한 결과 이정미 재판관이 주심으로 결정됐다"고 밝혔다. 헌재의 '사건의 배당에 관한 내규'에 따르면 사건의 배당은 심판사무국장이 컴퓨터에 의한 전자추첨 방법으로 하도록 돼 있다. 내규상 헌재소장이 사안의 중대성과 난이도 등을 고려해 주요사건으로 분류한 사건은 재판관 협의로 따로 주심을 정할 수도 있다.

당초 이번 사건은 박한철 헌재소장과 재판관들이 협의를 통해 주심을 정할 것으로 관측됐다. 최초의 정당해산심판 청구라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헌재는 이번 사건의 정치적 민감성 때문에 지명 방식으로 주심을 정할 경우 논란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번에 주심으로 결정된 이 재판관은 헌재 사상 최연소이자 두 번째 여성 재판관이다. 울산 출생으로 고려대 법대를 졸업한 후 1987년 대전지법에서 처음 법복을 입었다.

이 재판관의 학창시절 꿈은 수학선생님이었다. 하지만 1979년도 고등학교(마산여고) 3학년 때 대학입시를 앞두고 10ㆍ26사태가 일어난 것을 계기로 장래 희망을 바꿨다. 이 재판관은 "사회가 혼란스러운 모습에 어떤 방향이 사회가 올바로 가는 길일까 생각하다가 법대로 진로를 바꿨다"고 했다.

이 재판관은 1980년 고려대 법과대학에 입학해 84년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여성은 5명으로 그 중 3명이 87년 법관으로 함께 임관됐다. 한국여성변호사회장을 맡고 있는 박보영 변호사와 윤영미 고려대 교수가 사법연수원 16기 동기생들이다.

1987년 대전지법에서 판사생활을 시작한 이 재판관은 이후 서울중앙지법, 부산고법, 대전고법 부장판사 등을 역임했다. 그리고 2011년 3월 이용훈 전 대법원장의 지명으로 헌재 재판관에 임명됐다. 이 재판관은 전효숙 양형위원장에 이은 두 번째 여성 재판관이자 비서울대, 40대 재판관이라는 타이틀로 먼저 주목받았다.

이 재판관은 취임사에서 "국민들의 민주화에 대한 열망으로 탄생한 헌법재판소가 이제는 더욱 굳건한 바탕 위에서 국민들에게 민주주의의 참된 가치와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향유할 수 있게끔 더 많은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또 "다수의 권리가 존중되면서도 소수자와 약자의 권익도 보호됨이 마땅한 만큼 우리 사회 내에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에서 소외된 사람이 없도록 소수자와 약자에 대해서도 따뜻한 배려심을 가지고 그들의 작은 목소리도 크게 듣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당시 다양한 계층의 목소리와 소수자 이익을 대변해야 할 헌법재판관이 서울대 출신 남성 고위 법관들로 채워져 비판의 목소리가 높았다. 법조계는 이 전 대법원장이 이 재판관을 지명한 배경이 이런 상황을 감안한 결과로 보고 있다.

비교적 진보 성향

이 재판관은 박 헌재소장을 제외하고 헌재 내에서 최선임 재판관이다. 박 소장이 인사청문 절차를 거쳐 취임하기 전까지 헌재소장 권한대행을 맡기도 했다. 이 재판관은 과거 판례에 따라 보수 성향의 '5기 헌재'에서 비교적 진보 성향으로 분류된다.

대표적인 판례가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의 '사후매수죄'다. 당시 헌재가 합헌 결정을 내렸을 때도 이 재판관은 송두환·김이수 재판관과 함께 위헌 의견을 냈다. 해당 법률조항에 불명확한 표현이 있어 명확성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이유에서였다.

독신자는 친양자를 입양할 수 없도록 규정한 옛 민법조항에 합헌 결정이 내려질 때도 위헌의견을 냈다. 편부모가정에 대한 사회적 편견은 타파되어야 할 대상인데 이를 이유로 독신자의 친양자 입양을 봉쇄하는 건 타당하지 않다는 입장이었다.

또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인터넷 포털사이트 게시글의 내용을 문제 삼아 포털사이트 측에 삭제를 요구할 수 있도록 한 '방송통신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등에 대해 합헌 결정이 내려질 때도 이 재판관은 반대 의견을 밝혔다.

이 재판관은 당시 해당 법률조항의 '건전한 통신윤리'의 함양에 필요한 사항인지 아닌지에 관한 판단은 사람마다 달라질 수밖에 없고, 행정기관으로서도 그 의미내용을 객관적으로 확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를 들었다.

네팔과 방글라데시 출신의 외국인노동자가 출입국관리소의 긴급보호 및 보호명령, 강제퇴거명령 집행이 기본권을 침해했다며 낸 헌법소원 심판 사건에서도 "긴급보호는 긴급성의 요건을 갖추지 못했고 강제퇴거는 선별적이고 자의적인 법집행"이라며 소수자 편에 섰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 재판관이 많은 헌법재판 사건에서 보수적이고 기존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쪽에 의견을 냈다며 진보보다는 오히려 보수 성향에 가깝다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낙태죄에 대해서는 박한철 헌재 소장과 함께 합헌 의견을 낸 바 있다.

재판 결과 시간 걸릴 듯

이 재판관은 향후 심판 청구 취지 등을 검토한 뒤 헌법재판관 평의에 안건을 상정할 방침이다. 통상적으로 헌재는 주심 재판관이 평의 안건으로 회부하면 나머지 재판관들이 내용을 검토한 뒤 평의에 착수하게 된다.

본격적인 논의에 착수하면 재판관들은 구두변론을 통해 심리를 진행한다. 여기에 제출되는 자료 등을 통해 사실확정을 하게 된다. 심리에선 통합진보당 강령 등을 토대로 목적 및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되는지'가 집중 검토 대상이다.

여기에 정부가 위헌정당해산심판과 함께 청구한 정당활동정지가처분신청 및 의원직 상실 청구도 판단한다. 정당활동정지는 해산심판 청구 때부터 최종 결정까지 청구인의 신청 또는 헌재가 직권으로 결정하게 돼 있다. 따라서 가장 먼저 결정이 이뤄지리란 분석이다.

이번 위헌정당 해산결정은 25년 헌재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헌법 제8조와 헌법재판소법 제55조에 관련 규정만 있을 뿐 실제로 활용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세계적으로도 독일과 터키의 3건만 선례로 있을 만큼 드문 사건이다.

헌재는 해외 사례와 더불어 2004년 한국공법학회에 연구용역을 의뢰한 정당해산심판제도에 관한 연구 결과를 중점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당연히 심판이 쉽지 않을 수밖에 없다. 그러다보니 결과가 언제 나올지도 미지수인 상황이다.

헌재는 심판 접수 후 180일 이내에 결정을 내리도록 돼 있다. 그러나 강제규정은 아니다. 여기에 내란음모 혐의로 기소된 이석기 의원의 재판이 진행 중인 점을 고려하면 결정 시기는 더 늦춰질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통진당이 위헌정당으로 해산이 결정되려면 재판관 9명 중 6명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 법조계 안팎에선 재판관들의 성향이 이번 심판에 영향을 미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국민의 이목이 집중되고 정치적 반향을 가져올 이번 사건에 대해 이 재판관을 포함한 9명의 재판관이 과연 어떤 결정을 내릴지 지대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송응철기자 se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