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레일 사상 첫 여성 CEO 최연혜 사장'취임 축배'들 겨를도 없이 '수서발…'노사 갈등 중심에누적부채 해소 등 해묵은 과제 산적… 여성 리더십 시험대

최연혜 한국철도공사 사장이 10일 서울 용산구 동자동 코레일 서울본부 기자실에서 수서발 KTX 법인화 관련 임시 이사회 결과 발표를 하고 있다.
시험대 선 신임 사장 ‘파업’ 풀고 ‘철의 여인’ 우뚝 설까

코레일 노조의 파업이 초미의 관심사다. 노조 요구는 수서발 KTX 주식회사 설립 철회다. 반면 사측은 노조의 파업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생업 복귀를 촉구하고 있다. 노조 6,000명 이상이 직위 해제 되는 파국을 맞으면서도 양측의 이견은 좁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주목받는 인물이 있다. 최연혜 코레일 신임 사장이다. 취임 후 축배를 들 겨를도 없이 노사 갈등의 중심에 서게 된 최 사장. 그의 처신에 파업 사태의 향방이 달렸다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이다. 시험대에 오른 최 사장의 면면을 살펴봤다.

사상 최초 여성 CEO

코레일 114년 역사상 첫 여성 CEO인 최연혜 코레일 사장은 지난 9월 말 내정됐다. 그리고 지난 10월 초 청와대에서 임명장을 받은 후 취임식을 가졌다. 코레일은 이로써 정창영 전 코레일 사장이 지난 6월 사임한 이후 석 달 만에 새 진용을 갖추게 됐다.

최연혜(오른쪽 두 번째) 코레일 사장이 10월 22일 대구역을 방문한 가운데 최근 열차사고 관련 안전관리실태.재발방지대책을 집중 점검하고 있다.
당시 코레일은 다행스럽다는 반응이 많았다. 최 사장이 철도 전문가라는 이유에서다. 충북 영동 출신인 최 사장은 한국철도대학 교수로 재직했다. 2007년엔 총장 자리에 올랐다. 한국철도학회 부회장과 세계철도대학교 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그러나 최 사장이 처음부터 철도와 인연이 있었던 건 아니다. 사실 학부와 대학원 모두 독문학을 전공한 문학도였다. 남편과 함께 떠난 독일 유학이 그의 인생을 바꿔 놨다. 당시 최 사장은 우연히 만하임대에서 경영학 공부를 하게 됐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레 철도 선진국인 유럽의 교통체계를 유심히 보게 된다. 당시 12학기에 달하는 학ㆍ석사 통합과정을 8학기 만에 끝낼 정도로 두각을 나타냈다. 이후 박사 과정에서까지 철도를 주제로 논문을 쓰면서 자연스레 ‘철도인’의 길을 걷게 된다.

한국에 돌아온 최 사장은 산업연구원 연구위원과 한국철도대학 운수경영학과 교수를 지냈다. 이후 2002년 참여정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일했던 경험을 인연으로 2004년 여성 최초 철도청(현 코레일) 차장에 임명됐다. 코레일 출범 후엔 초대 부사장을 지내기도 했다.

최 사장은 중간에 잠시 정치권에 눈을 돌리기도 했다. 지난해 4월 총선 때 새누리당 후보로 대전 서구을 지역에 출마했다. 박근혜 대통령과 인연을 맺은 것도 이때부터다. 이후 사장 취임 직전까지 새누리당 대전시당 서구 을 지역위원장으로 활동해왔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최 사장의 임명을 두고 ‘정치적 낙하산 인사’라는 비판도 있다.

반면 청와대를 중심으로 한 정부에서는 최 사장이 ‘철도인’으로서의 전문성, 특히 유라시아 철도 전문가라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주장한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나 ‘남북 및 동북아 공동발전’ 프로젝트에 최적임자 중 한 명이라는 점이다. 최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방한 이후 이들 프로젝트는 더욱 주목받으며 최 사장의 역할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최 사장은 1999년 이후 거의 해마다 러시아를 찾았으며, 코레일 부사장으로 재직하던 2006년에는 ‘시베리아 횡단철도’라는 책을 발간하기도 했다.

해묵은 과제 산적

최 사장은 철도인으로 사실상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기쁨을 누릴 사이도 없이 산적한 해묵은 과제와 맞닥뜨렸다. 당장 빚이 문제다. 코레일의 누적 부채는 올해 6월 말에는 17조6,000억원까지 늘었다. 부채비율도 244%에서 435%로 급증했다.

이런 속도로 부채가 증가할 경우 조만간 부채 규모가 한국토지주택공사(LH)를 넘어서리란 분석이 나온다. 그나마 영업적자 폭은 줄고 있지만 부채 규모가 워낙 커 상황이 녹록지 않다. 경영 개선을 위한 자구책 없이는 부채의 늪을 벗어나기 어렵다는 평가다.

이와 관련해 최 사장은 “KTX와 일반열차의 운행체계 최적화를 통한 수익 극대화, 인력 운영 효율화와 물류 분야의 혁신을 통한 과감한 비용구조 개선, 역세권 개발 사업 등으로 2015년에는 반드시 흑자경영을 달성하자”고 강조한 바 있다.

그러다 보니 인건비 문제도 풀어야 할 과제다. 지난 1월 국토부는 적자의 주요인으로 인건비 비용이 대폭 증가한 점을 지목했다. 인사 고과에 관계없이 자동적으로 7급으로 입사해 3급까지 승진할 수 있게 돼 있는 인사 규정을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숙제는 또 있다. 바로 좌초된 용산개발이다. 최근 코레일은 사업 시행자인 드림허브에 상환한 1조197억원에 대한 토지 소유권을 옮기는 등기 이전 신청을 마쳤다. 이로써 드림허브가 최종 파산하고 용산개발 사업안은 완전 백지화됐다.

만약 용산개발 사업이 재개돼 마무리된다면 8조원 규모의 땅값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적자 문제를 상당부분 해소할 수 있는 셈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당장 서울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 재검토에 들어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다.

최 사장은 자신의 트위터에 “코레일이 용산개발에 대한 결정을 잘못해 4조원가량의 손실이 왔다 갔다 한다”는 내용의 칼럼을 ‘리트윗’한 바 있다. 용산개발의 문제점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는 만큼 해결책 마련에도 적극적이리란 게 코레일 안팎의 지배적인 견해다.

철도 경쟁체제 개편 등 코레일 지주회사 체제 전환도 문제다. 현재 국토부는 2015년 수서발 KTX 개통에 맞춰 철도 경쟁체제를 도입하려고 준비 중이다. 그러나 코레일과 시민단체 등의 반대라는 난관에 봉착해 있는 상황이다.

노조에 엄격한 대응

그러나 무엇보다 큰 산은 따로 있었다. 바로 강성 중 강성으로 통하는 노조와의 관계다. 이미 코레일 노조는 최 사장 내정을 두고 ‘정권 맞춤형 인사’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취임식 날 수서발 KTX 개통 경쟁체제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밝히라며 시위에 나서기도 했다.

특히 취임 1개월이 지난 시점 최 사장이 노조와 임금 협상에서 ‘임금 동결’을 선언하고 나서면서 관계는 한층 냉랭해졌다. 노조는 당시 58세인 정년을 60세로 연장하고 임금 인상을 요구했다. 하지만 최 사장은 모두 ‘수용 불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번 ‘철도노조 파업’과 관련해서도 초강수를 뒀다. 철도 민영화에 반대하며 무기한 파업에 돌입한 노조 집행부와 파업 참가자 4,356명 전원을 직위 해제하고, 노조 간부 143명과 해고 노동자 등을 포함한 노조 집행부 194명을 경찰에 고발했다.

직위해제는 공무원법상의 징계 처분은 아니다. 하지만 사실상의 징계와 같은 목적에 활용되고 직무에서도 배제되며 기본급을 제외한 각종 수당도 받을 수 없다. 특히 직위해제 상태가 6개월 동안 지속되면 자동적으로 해고된다.

이어 추가로 파업에 참여한 철도노조 조합원들을 차례로 직위 해제했다. 직위해제 당한 조합원 수는 점점 늘어났고 어느새 6,000명을 넘어서게 됐다. 그렇다면 최 사장이 노조에 이처럼 엄격하고 냉정한 대응을 하는 까닭은 뭘까.

코레일 안팎에선 최 사장이 노조가 내세우는 명분과 실리 모두가 약하다고 평가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즉 노조가 내세우는 ‘철도 민영화’ 주장과 ‘임금 인상’ 모두 파업을 지속하기에는 미흡한 카드이기 때문에 사측에 우위가 있다는 판단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공기업의 방만경영이 최대 화두로 떠오른 시점이라는 것도 최 사장의 강경한 대응의 한 배경으로 해석된다. 노조는 임금 6.7% 인상안을 내놓고 있으나 올해 부채가 17조원에 육박하는 상황에서 이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요구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노조 길들이기에 나섰다는 분석도 있다. 공기업 개혁 요구가 거세지고 있는 시점에서 강도 높은 개혁을 실현해 취임 초기 제기될 수 있는 유약한 여성 리더십에 대한 우려와 낙하산 인사라는 비판을 모두 잠재우기 위한 행보라는 평가다.

최 사장은 한치의 물러섬도 없다. 지난 9일 코레일 서울사옥 대강당에서 발표한 대국민 호소문에서 최 사장은 “철도 민영화는 노조의 활동 범위도 아니고 협상의 대상도 아니다”라며 “법과 원칙에 따라 한치의 흔들림도 없이 엄정히 대처하겠다”고 못을 박았다.

최 사장은 이어 “수서발 KTX 운영회사는 민영화가 아닌 코레일의 자회사로 설립된다”며 “민간 자본의 지분 참여가 불가능해 민영화 주장은 근거가 없으며 극단적인 상황을 피하기 위해 마지막까지 대화와 협상을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최 사장은 다음날인 10일 이사회에서 ‘수서발KTX법인’ 설립절차를 의결한 뒤에도 “불법파업 가담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 되니 우리의 일터로 지금 당장 돌아오라”고 노조의 파업철회와 직장 복귀를 거듭 촉구했다.

노조 역시 절대로 물러서지 않겠다며 투쟁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노조 관계자는 “법원에 이사회 결의에 대한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을 할 것”이라며 “이사회에 참석한 이사들에 대해서는 배임 혐의로 검찰에 고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어 노조 관계자는 “이사회 결정은 명백히 회사에 손실을 주고 국민에게도 불이익을 주는 결정이고 이런 결정을 내린 이사들은 공기업 이사로서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며 “가능한 모든 법적 조치를 통해 법인 설립을 저지하겠다”고 말했다.

결국 사측과 노조 사이의 갈등이 쉽게 봉합되긴 어려울 전망이다. 최 사장의 결정에 따라 이번 사태의 향방이 결정지어지는 상황. 그의 어깨가 무거울 수밖에 없는 이유다. 시험대에 오른 최 사장이 어떤 모습을 보여줄 지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hankooki.com

●최연혜 코레일 사장 주요 프로필

출생

1956년(충청북도 영동)

학력

1994 만하임대학교 대학원 경영학 박사

1989 만하임대학교 대학원 경영학 석사

1982 서울대학교 대학원 독문학 석사

1979 서울대학교 독어독문학 학사

1974 대전여자고등학교 졸업

경력

2013 한국철도공사 사장

2013 한국교통대학교 교통대학원 교수

2007 한국철도대학 총장

2005 한국철도공사 부사장

2004 철도청 차장

1997 한국철도대학 운수경영과 교수



송응철기자 se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