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여성 행장' 권선주 기업은행장 내정자남성 전유물이었던 금융권 보직 '여성 최초' 타이틀로 모두 넘어서 결혼·출산에도 꿋꿋이 자리 지켜연수프로그램 틈틈이 내공 쌓아 실적 부진 등 해결 과제 '산더미'

권선주 기업은행 리스크관리본부 부행장이 차기 기업은행장으로 내정됐다. 국내 금융권 최초 여성 행장의 탄생에 금융권 안팎의 시선이 집중됐다. 그러나 아직 축배를 들기엔 이르다는 평가가 많다. 기업은행에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어서다.

언제나 '여성 최초' 타이틀

금융위원회는 지난 12월23일 권선주 기업은행 부행장을 차기 은행장으로 임명 제청했다. 국내 은행권 역사상 첫 여성 행장이 탄생한 순간이다. 권 내정자는 그동안 남성의 전유물로만 여겨졌던 금융권에서 유리천장을 부순 첫 사례로 기록됐다.

금융위원회는 제청 이유에 대해 "권 내정자가 최초의 여성 은행장으로서 리스크 관리를 통한 은행의 건전성을 높이면서 창조금융을 통한 실물경제의 활력을 뒷받침할 수 있는 적임자로 판단했다"라고 설명했다.

전북 전주 출신으로 경기여고와 연세대 영문과를 졸업한 권 내정자는 1978년 기업은행에 여성 공채 1기로 입행했다. 이후 방이역·역삼1동·서초지점장을 거쳐 PB부사업단장, 외환사업부장, 카드사업본부 부행장, 리스크관리본부 부행장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권 내정자에게는 언제나 '여성 최초'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첫 여성 공채', '첫 여성 1급 승진', '첫 여성 지역본부장', '첫 공채 출신 여성 부행장' 등이 모두 권 내정자가 보유한 타이틀이다. 그리고 최근 '첫 여성 행장' 타이틀도 추가됐다.

은행권엔 여성 근로자 비율이 높다. 국민·신한·우리·하나·외환·기업 등 6대 국내 은행의 전체 임직원 8만여명 중에 4만명이 여성이다. 전체의 50%에 육박하는 셈이다. 특히 하나은행과 외환은행, 기업은행 등 일부은행의 전체 임직원 가운데 여성 비율이 50%를 넘는다.

하지만 임원으로 시선을 돌리면 얘기가 달라진다. 6대 은행의 본부장 이상 임원급 300여명 가운데 여성은 14명에 불과하다. 비율로 따지면 5%가 채 안된다. 금융권 임원직이 남성의 전유물로 불리는 이유다. 금융권의 '유리천장'은 그만큼 두꺼웠다.

여성의 불모지인 금융권 임원진 가운데 '맏언니'로 통하는 권 내정자는 그 장벽을 깨뜨렸다. 하지만 권 내정자가 처음부터 은행원을 꿈꿨던 건 아니다. 대학 시절 영어교사와 신문기자를 꿈꿨다. 하지만 은행 지점장을 지낸 아버지의 뒤를 밟아 은행원이 됐다.

전형적인 외유내강형

당시는 여성은 결혼하면 곧바로 사표를 내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권 내정자는 결혼과 출산 뒤에도 꿋꿋이 자리를 지켰다. 낮에는 창구에서 눈코 뜰 새 없이 일했다. 퇴근 후에는 금융연수원 교재로 집에서 '통신연수' 공부에 전념했다.

그 끝에 권 내정자는 여성 최초로 기업여신 업무를 맡기도 했다. 이는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을 상대하는 업무다. 때로는 접대까지 해야 한다. 따라서 은행권에서는 '여자는 안 된다'는 게 정설로 통하던 일이었다.

권 내정자의 다른 전력들도 여타 여성 은행권 임원들과 차별화된다. 여성 임원들의 경력은 주로 외환이나 프라이빗뱅킹(PB), 고객만족(CS), 교육 부서 등에 쏠려 있다. 이는 권 내정자가 은행장에 오르는 데 큰 장점으로 작용했다는 평가다.

권 내정자의 성공비결은 피땀 어린 노력이었다. 직원들 사이에서 '퀵러너'로 통한 그는 항상 새로운 업무를 맡을 때 마다 배움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이렇게 쌓은 지식은 임원이 되어 전국 지역본부를 순회하면서 강의하고 네트워크를 쌓을 정도로 탄탄한 기반이 됐다.

전문성을 쌓기 위해 학원을 다니거나 학위를 딸 겨를도 없었다. 그가 활용한 것은 금융연수원의 연수프로그램이었다. 6개월 단위로 과목을 바꿔가며 수업을 들었다. 그러다보니 나중엔 들을 수업이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권 내정자는 전형적인 외유내강형이다. 차분한 말투에 좀처럼 흥분하는 일이 없다. 하지만 업무에서는 그야말로 칼같다. 지점장 시절 지점 규모에 맞지 않는 거액의 예금을 넣으려는 이를 돌려보낸 일화는 유명하다.

권 내정자는 직원들과의 소통을 중요시 한다. 술자리에선 새벽까지 자리를 지키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특히 기업은행 직원들의 상가에선 새벽 2시까지는 기본으로 앉아 있는다. 작은 체구지만 주량도 많다. 소주 2병은 거뜬히 마신다는 전언이다.

각종 해묵은 과제 산적

권 내정자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긍정적이다. 조준희 기업은행장에 이은 두 번째 내부 출신이어서다. 일단 '낙하산 인사'의 악순환을 끊었다는 평가다. 그러나 점점 악화되는 수익성과 경남은행 인수, 내부 조직 장악 등 권 내정자가 풀어야 할 과제는 산더미다.

이를 위한 선결 과제는 '여풍(女風)코드의 수혜자'라는 인식을 불식시키는 것이다. 기업은행 일각에선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 핵심 여성정책 공약인 '여성 인재 10만명 양성프로젝트'에 발맞춰 권 내정자가 선임됐다는 시선이 적지 않다.

따라서 자칫 내부 직원들이 수족처럼 움직여 주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특히 은행 조직은 타 업계에 비해 남성성이 짙고 보수적이다. 그런 은행 조직을 어떻게 장악하고 소통해 나가느냐가 관건이 될 전망이다.

악화되는 실적을 개선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지난 3분기 기업은행의 순이익은 1,905억원으로 1분기 2,749억원에 비해 약 30% 줄었다. 이를 위해 중소기업 대출금리 인하에 따른 역마진과 건전성 우려, 자회사 실적 부진 등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경남은행 인수 여부도 당장 해결해야 하는 과제다. 기업은행은 지난 12월23일 경남은행 인수를 위한 최종 입찰 제안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업계에선 매각 흥행을 위한 '페이스메이커'일 뿐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이번 인수전에서 실질적 성과를 이뤄야 한다는 평가다.

이와 함께 저성장 저금리 기조에서의 성장 요인을 찾아야 하는 동시에 바젤Ⅲ 시행을 앞두고 건전성 관리 강화와 개인고객에 대한 영업활동 강화도 풀어야 할 숙제다. 또한 아직도 활발하지 못한 해외진출을 다변화해 새로운 수익원을 창출해야 하는 것도 권 내정자의 몫이다.

무엇보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창조금융의 적극적인 뒷받침이 가장 큰 임무다. 특히 기업은행은 중소기업의 버팀목이라는 점에서 새로운 형태의 중소기업 지원책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단순히 중소기업 대출만을 늘리는 것은 창조금융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송응철기자 se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