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와 삶이 담긴 전통 음식…사라질 위기, 변형돼 유지되기도

음식은 역사다. 당시 사람들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옹기와 같다. 그 안에는 시대의 경제가 있고 정치가 있고 사회가 있다. 특히 전통 음식은 더하다. 여기에 고장 마다의 특색이 담겨 있는 게 우리의 전통 음식이다. 설은 그러한 전통 음식을 푸짐하게 마주할 수 있는 드문 기회다.

시대가 변하고 입맛이 변하면서 전통 음식도 변화한다. 그대로 유지되거나 사라진, 또는 사라질 위기에 있는, 혹은 변형된 형태로 남아 있다. 일부는 전통 음식의 장점이 재발견돼 대중화하기도 한다.

2014년 설을 맞아 전국의 의미 있는 전통 음식들을 만나 본다.

[ 서울ㆍ경기 ]

서울식 해장국

서울식 해장국은 간장이나 소금으로 간을 맞춘다. 국물 맛이 비교적 맑다. 대구 육개장은 고추 기름을 사용하지만 서울 해장국은 맵지도 않다. 할머니가 운영하는 광희문 부근 ‘부부청대문’이 서울식 해장국 전문점. 오후 4시 경에 문을 열고 불규칙적으로 운영한다.

타락죽

조선시대 보양식은 타락죽을 포함한 각종 죽과 수유(치즈)정도였다. 타락죽은 쌀(찹쌀)과 우유를 반반 정도 넣고 끓인 것이다. 우유가 귀했으니 궁중, 고급관리 정도만 먹을 수 있었다. 궁중음식에서 가끔 선보인다. 삼청동 ‘소선재’에서 코스 중 하나로 내놓는다.

주악

조선시대 궁중, 반가의 손님맞이 상에 사용하던 음식. 디저트용으로도 좋고 떡과 더불어 내놓아도 좋다. 찹쌀가루로 피를 만들고 소를 넣어서 송편 모양으로 만들어 기름에 지진 것이다. 서울 서래마을 ‘담장옆의국화꽃’에서 감 모양의 개성 주악을 내놓는다.

어산적

어산적(魚散炙)은 생선과 쇠고기 등을 적당한 크기로 자른 다음 꼬챙이에 꿰서 기름에 지진 음식이다. 주로 민어 등 생선 위주로 만들기 때문에 이름에 ‘어’가 붙었다. 만들기 번거로운 음식이어서 사라지고 있다. 홍대 ‘BOB’에서 ‘어산적 정식’을 내놓는다.

털레기탕

털레기탕은 민물생선과 채소 등을 넣고 투박하게 끊이는 경기도 농촌 음식. 미꾸라지, 채소, 민물 새우 등으로 국물 맛을 낸다. 내륙의 어죽이나 어탕국수와 비슷하다. 수제비를 넣어서 먹는다. 경기도 고양시의 ‘대자골토속음식’ 정도가 정통 털레기탕을 내놓는다.

연포탕

지금 연포탕은 정통 연포탕이 아니라 왜곡된 음식이다. 조선시대 <증보산림경제>에 의하면 연포탕(軟包湯)은 연두부에 새우젓 등을 넣고 끓인 음식이다. 낙지는 필수적이지 않다. 강화도 ‘토가’에서 연포탕을 내놓는다.

[ 충청ㆍ강원 ]

정과

‘정과(正果)’는 법제한 과일류다. 제사상에 올리거나 손님맞이용으로 사용하는 음식은 정해진 방식에 따라 법제한 것이라야 한다. 과일류나 날 채소뿐만 아니라 쇠고기 등도 반드시 일정 과정을 거쳐야 한다. 속리산 ‘경희식당’에서는 쇠고기 정과 등을 내놓는다.

닭 내장구이

닭고기 관련 전문점은 많다. 치맥은 국민 음식이다. 그러나 닭 내장 관련 음식점은 거의 없다. 닭내장은 손질이 까다롭기 때문이다. 춘천의 ‘원조숯불닭불고기집’에서는 모래주머니와 더불어 잘 장만한 여러 종류의 닭 내장을 연탄불 위에서 구워먹을 수 있다.

분틀메밀국수

메밀국수 내리는 유압식 기계가 나오기 전에는 국수를 만들기 위해서 ‘분틀’을 사용했다. ‘분(粉)’은 가루를 말하고 분틀은 가루로 국수를 만드는 기계다. 1960년대까지 사용했던 기계다. 강릉 ‘신동옥옛날분틀메밀국수’에서 분틀과 분틀로 내린 메밀국수를 먹을 수 있다.

[ 호남 ]

전설의 호남 100첩 반상

100첩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반찬이 85개 정도 된다. 장맛과 손맛이 어우러진 호남 식 ‘개미’가 있는 밑반찬 85개 정도가 나온다. 주인할머니가 연세가 많아서 앞으로는 만나기 힘든 밥상이다. 순창 ‘남원집’에서 만날 수 있다.

진석화젓

진석화의 진석화는 ‘眞石花’다. 즉, 진석화젓은 진짜 굴젓갈이다. 1년 이내에 젓갈을 완성시키는 것이 아니라 최소 2-3년에 걸쳐서 젓갈을 만든다. 오래 묵은 굴젓은 굴의 형태가 다 무너지고 누런 액체로 남는다. 순천 ‘대원식당’에서 내놓는다. 밥 비벼먹기 좋다.

닭국

마땅한 먹을거리가 귀한 내륙 지방에서는 닭고기가 주요한 단백질 원이었다. 닭국은 거칠게 자른 닭고기에 무 정도를 넣고 푹 고은 국이다. 백숙과는 달리 국물 음식이고 가난한 시절 여러 사람이 더불어 먹었던 음식이다. 양념은 간장 혹은 소금이다. 남원 ‘내촌식당’닭국은 구수한 고기의 냄새가 나고 시원한 맛이 압권이다.

물짜장
짚불구이삼겹살

돼지고기는 의외로 빨리 익는다. 석쇠를 이용하여 짚불로 돼지고기를 구우면 고기에 짚불의 향기가 밴다. 오래된 전통음식은 아니지만 도시의 건축물에서 만들기 힘든 음식. 호남의 농촌지역에서 만날 수 있다. 무안의 ‘녹향가든’에서 만날 수 있다. 밑반찬도 좋다.

태양건조국수

예전에는 모두 국수를 햇볕에 말렸다. 국수 형태를 만든 다음 가는 대나무 발에 걸어서 실내에서 숙성시키고 햇볕에 내다 걸어서 발효, 숙성시켰다. 국수 질감이 쫄깃하다. 임실의 ‘백양국수’는 태양건조국수 공장이고 인근 ‘행운식당’에서 잔치국수로 만날 수 있다.

토렴비빔밥
짜장의 중국식 원형은 첨면장(甛麵醬)이다. 첨면장은 중국식 콩 발효 된장이다. 퍽 뻑뻑하다. 한국식 짜장면은 첨면장에 녹말과 물을 붓고 끓이듯이 튀긴 것이다. 전북 익산의 ‘국빈반점’이 문을 닫으면서 군산 ‘홍영장’과 서울 ‘마마손만두’에서 을 만날 수 있다.

막걸리

‘송명섭 막걸리’는 쌀, 누룩, 물만 사용하여 막걸리를 만든다. 전통, 정통적인 방식이다. 이외 대부분의 막걸리는 각종 첨가제를 사용한다. 전혀 달지 않고 잘 익으면 시큼한 막걸리 특유의 맛이 살아 있다. 20병 단위로 전화 주문이 가능하다. 전북 정읍 태인양조장.

“시의전서”의 원형 비빔밥은 토렴을 하고 밥을 비빈 다음 그 위에 고명을 따로 얹는 방식이었다. 오늘날 비빔밥은 토렴도 하지 않고 맨밥 위에 고명을 얹어서 내놓는다. 전북 익산 황등면의 ‘시장비빔밥’에서 고기 국물에 토렴하고 고명 얹은 비빔밥을 내놓고 있다.

웅어회

웅어의 또 다른 이름은 위어(葦魚)다. 조선시대 사옹원에서 행주대교 밑에 ‘위어소’를 설치하고 직접 감독, 위어를 잡아 궁중으로 날랐다고 한다. 위어는 회와 구이로 먹는다. 4-5월이 제철. 위어회는 김포 대명리 혹은 전북 익산 웅포의 ‘원조우어집’에서 만날 수 있다.

[ 영남 ]

헛제삿밥

선비들이 제삿밥을 그리워해서 먹었다는 ‘전설’이 있지만 불확실하다. 제사를 철저하게 모시던 안동지방의 음식. 한때는 대구, 진주 등에서도 만날 수 있었다. 현재는 안동 ‘까치구멍집’에서 만날 수 있다. 비빔용 나물과 밥을 제사 음식 한 접시와 더불어 내놓는다.

묵해장국

메밀묵을 넣고 토렴 방식으로 만드는 해장국이다. 대가리를 떼 낸 두절콩나물을 사용하고 국물이 상당히 맑다. 메밀묵은 길쭉하게 썰어서 넣는다. 경주의 ‘팔우정해장국’에서 내놓는 음식인데 주인 할머니가 연세가 많고 몸이 편치 않다.

납작만두

가난한 시절의 추억이 묻어 있는 음식이다. 얇은 만두 피 속에 당면과 파 등을 간단하게 넣고 기름을 넉넉하게 두른 뜨거운 철판에 구워서 먹는다. 대단한 맛은 아니지만 적당히 조미된 간장에 찍어서 추억과 더불어 먹는 음식이다. 대구 ‘미성당’이 유명하다.

반가의 건진국시

국수는 손님맞이나 제사에서만 사용한 귀한 음식이었다. 안동지방의 건진국시는 당시만 하더라도 안동 지방에서 흔하게 잡았던 은어를 육수용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안동의 ‘경당고택’이나 서울 성북의 ‘봉화묵집’에서 내놓는 국수는 멸치육수에 고명이 퍽 화려하다.

잡채

‘雜菜’는 각종 채소모듬이다. 오늘날 당면이 들어간 잡채는 ‘당면잡채’라고 해야 한다. 정확한 원형 잡채는 경북 영양 두들마을 ‘음식디미방 체험관’에서 만날 수 있다. 10여가지 채소를 둥글게 깔고 중간에 닭고기나 꿩고기를 놓는다. 맛이 아주 담백하다.

어만두

어만두는 생선을 포 떠서 겉 피로 삼고 속에는 만두 속을 넣어서 만든다. 생선은 주로 민어를 사용하고 숭어도 사용한다. 고급 음식이지만 이제는 궁중음식 등이 아니면 만나기 힘들다. 목포 등에서도 만날 수 있으나 부정기적이다. ‘음식디미방 체험관’에서 재현했다.

갱시기

경북 김천 등지에서 먹다 남은 김치에 콩나물, 두부 등을 넣고 밥을 넣어서 죽처럼 끓인 가난한 시절의 음식이다. 다시 끓여서 먹는다고 ‘갱식(更食)’이라고 부른다는 설이 있지만 불확실하다. 가끔 특미로 내놓는 식당들도 있지만 이제는 보기 힘들다. 육수는 멸치로 낸다.

미꾸라지전골

추어탕의 원형은 ‘추두부탕(鰍豆腐湯)’. 두부 속에 미꾸라지가 박힌 숙회를 썰어서 넣고 메밀가루(교맥분)을 넣고 끓인 것이다. 미꾸라지 전골은 통 미꾸라지와 채소를 넣고 끓인 것으로 투박한 농촌 음식이다. 경북 예천의 ‘유정식당’에서 만날 수 있다.

태평추

연탄불 위에 양은냄비 등을 올려 놓는다. 듬성하게 썬 돼지고기와 김치, 메밀묵 등을 넣고 끓이면서 적당히 섞는다. ‘태평추’는 탕평채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있다. 탕평채의 서민 버전이다. 다른 곳에서는 만나기 힘들고 경북 예천 ‘동성분식’이 대표적인 식당이다.

모리국수

모리국수는 국수에 잡어를 넣고 끓인 바닷가 선원들의 음식이었다. 모든 것을 모아서 넣는다고 ‘모리’라는 이름이 붙었다. 포항과 인근 동해안에서 널리 먹었던 음식이다. 포항 구룡포의 ‘까꾸네’에서 만날 수 있지만 잡어가 귀해지면서 이젠 거의 사라지고 있다.

유부콩국

30년 전에는 이런 새벽 기차역에 내리면 ‘아부래기 콩국’이라는 이름으로 유부콩국을 팔았다. 기름에 튀긴 유부 등을 크게 잘라서 넣고 설탕을 더해서 뜨거운 콩국을 자전거에서 팔았다. 부산 차이나타운 ‘신발원’에서 만날 수 있다.

장어뼈시락국

채소마저 귀하던 시절, 시장터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배추, 무청 등을 푹 삶아서 만들었던 음식이다. 육수는 인근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장어뼈, 장어 대가리 등이다. 비린내를 잘 없애는 것이 요령. 통영 서호시장의 ‘원조시락국’에서 만날 수 있다.

[ 북한 지역 ]

어복쟁반

평안도, 평양의 전통음식이다. 유통(乳桶)과 양지살, 각종 내장류와 더불어 배춧잎, 대파, 두부 등과 채소를 넣는다. 소의 가슴살인 유통의 독특한 냄새를 싫어하는 이도 많다. 건더기를 먹고 난 후 면을 넣어 먹는다. 충무로 ‘평래옥’에서 만날 수 있으나 전통적인 형태는 아니다.

호박김치찌개

호박김치찌개는 황해도 음식이다. 열무김치 계절이 끝나고 가을배추가 나오기 전 호박으로 김치를 담아서 찌개를 끓인다. 돼지고기와 두부가 사용된다. 시원하고 시큼한 맛이 일품이다. 서울 ‘예술의전당’ 앞 황해도 음식 전문점 ‘봉산옥’에서 만날 수 있다.

가릿국밥

‘가리’는 갈비의 고어다. 가릿국밥은 갈비국밥이다. 한반도 전역에서 갈비, 가리라는 용어를 사용했지만 정작 가릿국밥은 함경도에서만 남았다. 대치동 ‘반룡산’은 지금도 가릿국밥을 내놓고 있다. 잘게 찢은 양지에 두부, 파, 계란지단이 들어간다. 담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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