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락한 둥지 떠나 "밖에서도 통한다" 강한 자신감함께 방송하는 연예인들보다 '낮은 몸값'에 상대적 박탈감방송사 내에선 활동범위 좁아 보다 다양한 경험과 일 원해일부 "돈이 궁했다" 시선도

김성주
지상파 아나운서는 '철밥통' 직업으로 불린다. 연예인처럼 TV에 얼굴을 비치는 일을 하지만 인기가 없어도 진행 솜씨가 조금 부족해도 큰 염려는 없다. 회당 출연료가 2,3만원 정도라고 불평도 하지만 그들은 매월 보통의 직장인보다 높은 월급을 받는다. 사회적 인식도 좋고 지위도 높은 편이다.

하지만 철밥통 직업을 걷어차는 이들이 적잖다. 예전에 비해 요즘 더 많아지는 추세다. 활동 여건도 좋아졌기 때문이다. 케이블채널에 이어 종합편성채널까지 등장하며 프리랜서 아나운서를 찾는 곳이 많아졌다.

하지만 여전히 지상파 아나운서들의 프리랜서 선언을 바라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 왜 프리랜서를 선언할까?

요즘 가장 '잘 나가는' 프리랜서 아나운서로 불리는 . 하지만 MBC에서 나온 직후 호된 시련을 겪었다. 2011년 SBS '강심장'에 출연한 는 "KBS의 전 모 아나운서가 나온다는 루머가 한 번 돈 적이 있다. 깜짝 놀랐다. 사실 나와도 TO가 많지 않다. 말리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가 언급한 는 결국 프리랜서를 선언했고 현재 두 사람은 '투 톱'으로 손꼽힌다.

박지윤
의 발언은 안락한 둥지를 떠난 아나운서의 마음을 단적으로 표현한 말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프리랜서를 꿈꾸는 이들은 많다. 그 이유 중 하나로 A아나운서는 '상대적 박탈감'을 꼽았다.

A 아나운서는 "아나운서라는 특성 때문에 주로 연예인들과 함께 방송을 진행한다. A급 연예인의 몸값은 회당 700~800만 선이다. 내 월급의 두 배가 넘는다. 함께 일하면서도 '이게 뭔가'라고 생각할 때가 많았다"고 토로했다.

친한 연예인의 꼬드김도 한 몫을 한다. A급 MC들은 나름의 '라인'을 만든다. 그들이 출연하는 프로그램에 친한 후배 방송인들을 '꽂아' 넣어 주는 것이다. A 아나운서는 "도와줄 테니 프리랜서를 선언해보라고 권하는 이들이 있었다. 아예 매니저가 찾아와 구체적인 계약금까지 제시하기도 했다. '달콤한 독'이라는 생각에 마음을 접었다"고 말했다.

회사 내 폐쇄적인 분위기가 그들을 밖으로 내모는 경우도 있다. 조직이라는 특성상 부서장이 바뀔 때마다 평소 친분이 있는 아나운서들이 더 많이 기용되는 경향이 생긴다. 방송에서 아예 배제될 때도 있다. 반면 방송을 잘 하는 아나운서들은 같은 월급을 받고 다른 아나운서보다 2,3배 더 많은 일을 한다. 부익부 빈익빈이 심화되니 불만도 생긴다.

프리랜서를 선언한 B 아나운서는 "돈을 버는 것도 좋지만 방송을 하고 싶어 아나운서가 됐다. 그런데 방송사 내에서는 시키는 것 외에는 할 수가 없다. 그래서 좀 더 다양한 활동을 하고 싶어 프리랜서를 선언했다. 그런데 '돈이 궁했다'는 따가운 시선이 많아 상처받곤 한다"며 "그래도 아나운서들이 프리랜서를 선언하는 가장 큰 이유는 '나는 밖에서도 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라고 설명했다.

전현무
▲ 왜 프리랜서 아나운서를 원할까?

요즘은 프리랜서 아나운서 전성시대라 할 만하다. 와 는 지상파와 케이블채널, 종합편성채널을 가리지 않고 맹활약 중이다.

여자 아나운서 중에는 과 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은 MBC '기분좋은날'과 'TV예술무대', TV조선 '강적들'과 채널A '혼자 사는 여자' 등에 출연 중이고 은 출산 휴가를 시작하기 전까지 JTBC '썰전' 외에 와이스타 '식신로드' 스토리온 '100인의 선택' 등에 출연했다. 이 외에 오상진 최송현 오영실 임성민 등은 배우 겸업을 선언하며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다.

프리랜서 아나운서의 쓰임이 많아진 이유 중 하나는 채널의 다변화다. 지상파 3사가 방송가를 좌지우지하던 시대를 지나 이제는 케이블채널과 종합편성채널 역시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이에 따라 프리랜서 아나운서들이 출연할 프로그램 역시 많아졌다.

또한 그들의 몸값은 유명 연예인에 비해 높지 않다. 최근 전문 매니지먼트와 계약을 맺으며 몸값을 높이고 있지만 여전히 '적정가'를 유지하고 있다는 평이다.

김성경
한 종합편성채널 PD는 "종편의 경우 아직 자사 아나운서의 역량이 그리 높지 않다. 때문에 이미 실력을 인정받은 프리랜서 아나운서를 적극 기용하고 있다. 제작비를 고려했을 때 A급 MC를 무리하게 쓰는 것보다 오히려 이익"이라며 "또한 최근 정보와 재미를 결합한 인포테인먼트 프로그램이 많아지면서 신뢰도를 주는 아나운서 출신 방송인들을 원하는 추세다"고 말했다.

▲ 프리랜서 선언의 기준은 무엇일까?

프리랜서를 선언하는 아나운서의 기준은 무엇일까? 한 명의 아나운서를 바라보며 "방송사에 묶여 있기 아쉽다"는 평가가 있는 반면 "프리랜서로 성공하기는 힘들다"고 상반된 의견도 나온다. 결국 명확한 답은 없는 셈이다.

하지만 업계 PD들은 "망가지길 두려워하지 않는 아나운서가 성공한다"고 입을 모은다. 뉴스 진행을 꿈꾸며 방송국에 입사한 아나운서들 중에는 예능프로그램 출연을 꺼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소위 '망가지는 것'을 꺼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프리랜서 아나운서에게 뉴스나 보도 프로그램을 맡기는 경우는 드물다. 그들의 활동 무대는 주로 예능이다. 때문에 제작진의 주문에 스스럼없이 개인기를 뽐내고 자신을 낮출 줄 아는 아나운서가 프리랜서로 두각을 보인다.

MBC 예능국 PD는 "와 의 활약이 큰 것이 그 방증이라 할 수 있다. 이들은 예능감을 잘 익혀 웃음 포인트를 잘 짚는다. 프리랜서 아나운서가 갖춰야 할 큰 덕목 중 하나가 바로 '웃음'이다"고 설명했다.

또한 '2년 안에 10억원 못 벌면 나가지 말라'는 속설도 있다. 이제는 전문 방송인과 연예인을 상대로 경쟁해야 하고, 새롭게 프리랜서 시장에 뛰어드는 아나운서가 나오기 때문에 2년 안에 승부를 지어야 한다는 의미다.

이 PD는 "프리랜서 선언 초반에는 나름의 프리미엄을 갖는다. 이 때 확실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면 도태되기 십상이다. 꼭 방송 출연이 아니더라도 다양한 행사 출연을 통해 적정선의 부를 축적해야 생활고에 쫓기지 않고 프리랜서 생활을 이어갈 수 있다"고 충고했다.

▲ 왜 고향은 그들을 외면할까?

프리랜서를 선언한 아나운서들에게 고향은 가장 멀고도 추운 곳이다. KBS는 공식적으로 프리랜서 선언 후 2년간 자사 프로그램에 출연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규정보다 더 무서운 것은 '배신자'라는 낙인이다. 의 경우 2012년 MBC 장기 파업 기간 중 MBC에 다시 입성하며 연착륙에 성공했지만 이는 드문 경우다.

프리랜서를 선언하는 아나운서들은 대부분 방송사 내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이들이다. 때문에 주위의 러브콜도 많고 프리랜서 선언을 고민하는 것이다. 그만큼 회사를 그만두려 할 때 회유하는 이들도 많을 수밖에 없다.

프리랜서로 활동 중인 C 아나운서는 "사표를 낼 때 '회사에서 나가면 나 볼 생각하지 말라'는 선배도 있었다. 선배와 회사 입장에서는 키워줬는데 배신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결국 프리랜서 선언을 할 수밖에 없었던 심정도 이해해주길 바란다"며 "여전히 내가 몸담았던 방송사는 꼭 다시 가고 싶은 고향 같은 곳이다"고 말했다.



안진용기자 realyong@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