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연 집유 '파란불'… 구자원 아들 수감 '노란불'… 이재현 4년 '빨간불'

왼쪽부터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구자원 LIG그룹 회장, 이재현 CJ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구자원 LIG그룹 회장, 이재현 CJ그룹 회장 등 총수 3명의 선고공판이 몰려 있어 재계를 초긴장시켰던 2월 셋째 주가 지나갔다. 운명의 장난처럼 세 총수의 명운이 확연히 갈려 더욱 주목됐던 한 주였다.

세 번의 재판 모두 판결이 나올 때마다 장내를 술렁이게 했지만 결과는 전혀 달랐다. 김승연 회장과 구자원 회장은 집행유예 판결을 받고 자유의 몸이 된 반면, 이재현 회장은 징역 4년에 벌금 260억원 형을 선고받고 또다시 철창신세를 지게 됐다. 구자원 회장의 경우, 자신은 자유의 몸이 됐지만 두 아들이 징역 4년, 3년을 받아 마음 편히 기뻐할 수만은 없게 됐다.

검찰과 질긴 악연 이어가

이번에 재판을 받은 세 총수 모두 그다지 편치만은 않은 행보를 밟아왔다. 김승연 회장의 경우 불과 29세의 나이로 총수직을 물려받아 고생을 적지 않게 했고 이재현 회장은 삼성가의 장자였음에도 인정을 받지 못하다가 결국 CJ그룹만을 갖고 분가해야만 했다. 구자원 회장은 두 사람에 비해 비교적 어렵지 않게 총수 자리에 올랐지만 최근 주력 계열사인 LIG손해보험을 시장에 내놓는 등 사상 최대 위기에 직면해있다.

1952년생인 김승연 회장은 1974년 멘로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1976년 드폴대학교 대학원에서 국제정치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부친인 고 김종희 한화그룹 창업주가 1981년 갑작스럽게 타계하며 29세의 젊은 나이에 그룹 총수에 취임한 김 회장은 취임 후 30년 넘게 한화호의 키를 잡고 있다.

물려받은 가업을 망치고 사라져간 2세들이 수없이 많다는 점을 감안할 때 젊은 나이에 한화그룹의 총수를 맡아 10대 그룹 명단에 올려놓은 김 회장의 경영능력은 더욱 주목된다. 취임 이듬해에 제2차 석유파동으로 경영난에 빠져있던 한양화학(현 한화케미칼)을 전격 인수해 그룹의 캐시카우로 삼은 것이나 IMF 외환위기를 앞두고 선도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해 경쟁력을 제고한 것, 대한생명(현 한화생명) 인수로 그룹 제2의 전성기를 맞은 것 등 김 회장이 지니고 있는 총수로서의 승부감은 이미 정평이 나 있다.

물론 한화그룹의 총수로서 검찰과 질긴 악연을 맺고 있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김 회장은 이번 이외에도 두 번이나 재판을 받은 경험이 있다. 1993년에는 외국환관리법 위반으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2007년에는 '아들 보복폭행 사건'으로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벌써 세 번째 구속경험이니만큼 재계에서는 김 회장이 더 이상 감옥신세를 질 일이 없기만을 고대하고 있다.

계열분리 후 명암 갈려

젊을 때 이미 그룹을 물려받은 김 회장과는 달리 이재현 회장은 삼성가의 장손이라는 신분에 걸맞지 않은 삶을 살았다. 부친인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이 경영권 경쟁에서 밀려나며 덩달아 이재현 회장까지 타격을 받은 것이다. 실제로 경복고등학교를 거쳐 고려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한 이 회장은 삼성가 3세들 중 유일하게 해외유학을 다녀오지 않는 등 만만치 않은 어린 시절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에도 이 회장은 삼성그룹으로부터 미행 및 감시를 당하는 등 '비운의 황태자'로 갖은 고초를 감내해야 했다.

1985년 제일제당에 입사한 이후 1993년 삼성전자 전략기획실 이사로 발령받을 때까지 7년 넘게 경리부 및 기획관리부에서 경영수업을 받은 이 회장은 삼성그룹으로부터 계열분리된 제일제당(현 CJ그룹)의 부사장 및 대표이사 부회장을 거쳐 2002년 3월 회장으로 취임했다. CJ그룹이 삼성그룹에서 분가해 나온 1997년 당시 36세였던 이 회장은 자신 홀로 경영 전면에 나서기에는 나이나 경험이 모두 부족하다고 판단, 외삼촌인 손경식 회장과 그룹을 함께 경영했다. 젊은 시절부터 홀로 그룹의 대소사를 떠맡아야 했던 김승연 회장보다는 안정적으로 경영수업을 받은 셈이다.

이 회장이 본격적으로 이끌기 시작한 이후 CJ그룹은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이 회장은 삼성그룹의 전자 및 중공업 위주의 투자 전략에 밀려 성장한계를 보이고 있었던 당시의 CJ그룹에 미디어, 물류, 홈쇼핑 사업 등 다각화된 포트폴리오를 덧입혔다. 이와 더불어 화장품, 음료 사업 등 그룹 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 분야는 과감히 없애버렸다. 2000년 이후에는 미디어분야에 초점을 맞추고 M&A(인수ㆍ합병)를 진행, 이 분야의 최강자로 자리잡았고 2011년에는 M&A 시장의 최대어로 불리는 대한통운을 인수해 물류 1위 업체로 단번에 올라서기도 했다.

구자원 회장은 LG그룹에서 경영수업을 받았다. 1964년 락희화학(현 LG화학)에 입사한 뒤 럭키증권(현 우리투자증권) 사장, 럭키개발(현 GS건설) 사장, LG정보통신(현 LG유플러스) 부회장을 역임한 구 회장은 LIG그룹이 LG그룹에서 계열분리해 나올 때 금융업계에 뛰어들었다.

1999년 LG화재(현 LIG손해보험)를 갖고 독립한 구 회장은 2004년 방산업체 넥스원퓨처(현 LIG넥스원) 설립을 시작으로 2008년 LIG투자증권을 세우는 등 잇따라 외형을 확장하며 현재 21개 계열사를 둔 LIG그룹을 일궈냈다. 그러나 2006년 건영건설, 2009년 한보건설을 인수해 설립한 LIG건설의 부실이 심해지며 결국 그룹의 모태였던 LIG손해보험을 내놓기에 이르렀다. 모그룹에서 분가해 나온 것은 이재현 회장의 경우와 같지만 이후 행보에서는 아쉬움이 남고 있다.

긴 법정투쟁으로 몸도 마음도 지쳐

2월 셋째 주에 연달아 선고공판을 받은 김승연, 구자원, 이재현 회장의 기나긴 법정투쟁은 어떻게 진행돼왔을까.

세 사람 중 가장 먼저 기소된 것은 김승연 회장이었다. 김 회장은 2004~2006년 본인이 차명으로 소유한 위장 계열사의 빚을 갚는데 우량 계열사 자산을 동원하고 특정 계열사 주식을 가족에게 헐값에 넘겨 회사에 수천억원대 손해를 끼친 혐의 등으로 2011년 1월 불구속 기소됐다.

2012년 8월 1심에서 징역 4년과 벌금 51억원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된 김 회장은 이듬해 4월 항소심 선고 전 사비를 털어 피해액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1,186억원을 법원에 공탁하는 등 계열사 손해를 상당 부분 회복하려 노력한 점 등이 참작되며 징역 3년으로 감형됐다. 같은 해 9월 대법원은 배임액 산정 등에 문제가 있다는 이유로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파기환송했다. 수감된 지 4개월 만에 우울증과 패혈증으로 인한 호흡곤란 증세 등 건강악화를 이유로 구속집행정지 결정을 받은 김 회장은 그동안 서울대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왔다. 지난 11일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고 자유의 몸이 됐다.

구자원 회장과 두 아들은 LIG건설 인수 과정에서 담보로 제공한 다른 계열사 주식을 회수하기 위해 LIG건설이 부도 직전인 사실을 알고도 2000~2011년 2,200억원 상당의 기업어음(CP)을 발행한 혐의 등으로 2012년 11월 기소됐다.

지난해 9월 1심 재판부는 구 회장에게 징역 3년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검찰은 지난해 12월 진행된 항소심 결심 공판에서 1심 형량보다 3년 낮춘 징역 5년을 구형했고 지난 11일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구 회장은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이재현 회장은 박근혜 정부 들어 처음으로 구속된 총수가 됐다. 지난해 5월 해외법인 등을 통해 수천억원 상당의 비자금을 조성하고 세금을 탈루한 혐의로 CJ그룹 본사 등을 대대적으로 압수수색한 검찰은 수사 시작 두 달 만에 이 회장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지난달 14일 열린 결심 공판에서 검찰은 이 회장에게 징역 6년과 벌금 1,100억원을 구형했다.

이 회장은 신장이식수술로 구속집행정지 처분을 받아 서울대병원에 입원했다. 지난해 8월 수술 이후 잠시 퇴원했지만 면역 이상으로 인한 바이러스 감염으로 그 해 11월 재입원해야만했다. 연장된 구속집행정지 기간은 이달 28일까지다. 1심에서 징역 4년형이 선고된 만큼 구속집행정지 처분이 한번 더 연장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멈췄던 사업들 다시 시작

재판결과가 나오며 총수들이 이끄는 그룹들은 한동안 바빠질 전망이다. 해외사업, 계열사 매각 등 그동안 총수들이 재판에 묶여 있는 까닭에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던 굵직한 사업들이 속속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한화그룹은 김승연 회장의 집행유예 결정에 쌍수를 들어 환영하고 있다. 김 회장의 구속으로 한동안 중단됐던 이라크 신도시 사업이나 태양광사업 등이 빛을 볼 수 있게 된 까닭이다.

한화그룹에 따르면 이라크 정부는 2017년까지 주택, 교통 인프라 등에 총 300조 안팎을 투자하고 있는데 그 중 상당 부분을 한화그룹이 수주할 전망이다. 한화건설은 2012년 5월 8조5,000억원 규모의 이라크 비스마야 신도시 건설 프로젝트를 수주하고 추가 수주에도 뛰어든 상태다. 이라크 총리가 김 회장을 직접 만나 발전 및 정유시설, 학교ㆍ병원ㆍ군 시설 현대화 등 10조원 규모의 추가 수주를 요청한 사실은 유명하다. 김 회장의 경영공백으로 한동안 제자리걸음만을 해왔던 이라크 신도시 사업도 다시 시작될 것이라고 여겨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때 공격적으로 투자했던 태양광사업도 볕이 들 전망이다. 해외수주와 해당 국가의 정부보조금 지원이 절실한 사업 특성상 그룹 총수가 직접 협상에 나서야 할 때가 많다. 김 회장의 경영복귀 이후 협상력이 제고되며 그룹의 신성장동력인 태양광 사업도 활짝 펴게 될 것으로 보인다.

LIG그룹은 구자원 회장의 경영 복귀 이후 LIG손해보험 매각에 탄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LIG그룹의 경우 구 회장을 비롯해 총수 일가가 대거 구속되며 전문경영인 체제로 유지돼왔다. 총수 일가가 부재한 상황에서 그룹의 근간인 LIG손해보험을 매각하는 것이 쉽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LIG손해보험은 지난해 11월 매각이 발표된 후 12월 골드만삭스를 매각주관사로 선정해 실사를 진행하고 있지만 지금까지 이렇다 할 진전이 없다. 자유의 몸이 된 구 회장이 빠르게 경영에 복귀하지는 않더라도 진행 중인 LIG손해보험 매각작업에는 힘을 쏟을 것으로 관측된다.

한편, 재계 일각에서는 LIG손해보험 매각이 구 회장의 형량을 낮추기 위한 '쇼'였다는 지적도 있다. 그룹 전체의 70~80% 수준인 4,000~5,000억원의 이익을 매년 내는 핵심 계열사를 단순히 기업어음 피해자들의 보상액 1,300억원을 마련하기 위해 매각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는 해석이다. 이번에 집행유예로 풀려난 이상 그리 멀지 않은 시점에 구 회장이 LIG손해보험을 시장에 내놓은 진정성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이번 판결로 CJ그룹은 한동안 더 경색될 전망이다. 앞서 CJ그룹 측은 이재현 회장의 경영공백으로 투자를 집행하지 못한 금액이 지난해에만 6,400억원에 달한다고 밝힌 바 있다. 당초 계획했던 투자의 20% 수준이다. 실제로 CJ제일제당 생물자원사업부문은 베트남 및 중국 기업을 대상으로 M&A를 추진하다가 최종 인수 단계에서 중단했다. CJ대한통운도 미국 종합물류업체의 인수를 검토했지만 협상 단계에서 중단됐다. 이 회장의 부재가 길어지게 된 만큼 향후 CJ그룹의 주요 사업들은 더욱 움츠러들 것으로 보인다.



김현준기자 realpeace@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