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태원 SK회장 '징역 4년' 원심 확정최 회장 이끈 해외사업 차질 불가피

이변은 없었다. 최태원 회장의 선고결과를 지켜본 SK그룹 관계자들은 예상됐던 결과에 눈을 질끈 감았다. 최근 재계 총수들이 우호적인 판결을 잇달아 받으며 혹시나 하는 기대감이 가져보기도 했지만 결과는 역시나였다. '재벌 양형공식'으로 불리던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기대했던 SK그룹은 계속되는 총수 부재를 앞두고 더욱 분주해질 전망이다. 젊은 시절 SK호의 키를 잡고 굴지의 회사로 키운 최 회장으로서는 철창 안에서 특별사면만을 바라는 처지로 전락한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상고심, 원심 그대로 징역 4년 선고

최태원 회장과 최재원 부회장 형제는 지난달 27일 열린 상고심에서 모두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날 대법원 1부(주심 양창수 대법관)는 SK그룹 계열사 자금 수백억원을 횡령한 혐의(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횡령 등)로 기소된 최태원 회장에 대해 징역 4년의 실형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함께 기소된 동생 최재원 부회장에 대해서도 원심과 같은 징역 3년6월을 내렸다. 이로써 최 회장 형제는 경제민주화 요구와 함께 재벌 총수에 대한 양형이 강화된 후 실형이 확정된 첫 케이스가 됐다.

재판부는 "최태원 회장과 최재원 부회장의 공모사실을 인정한 원심이 정당하다고 판단했다"고 판시했다. 최 회장 형제는 상고심에서 이 사건의 핵심 인물인 김원홍 전 SK해운 고문이 국내로 송환되기 전에 항소심이 이뤄져 추가 심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김 전 고문은 검찰 수사가 시작될 무렵 해외로 도피해 기소 중지됐다가 항소심 선고 직전 대만에서 전격 체포돼 국내로 송환된 바 있다.

최 회장 형제는 항소심에서 김 전 고문에 대한 증인신문이 필요하다며 결심공판 후 변론 재개를 요청했으나 기각됐다. 이와 관련해 재판부는 "김원홍에 대한 증인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은 원심의 조치가 증거 채택에 관한 재량권의 한계를 벗어나 위법하다고까지 평가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또한, 재판부는 최 회장 형제와 김 전 고문 사이의 통화 녹취록을 유죄의 증거로 본 원심 판단도 정당하다고 판시했다. 앞서 최 회장 측은 무죄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해당 녹취록을 제시했으나 항소심은 "최태원 회장은 횡령 범행에 관해 아무것도 몰랐다"는 취지의 녹취록 신빙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최 회장은 SK그룹 계열사에서 펀드 출자한 돈 465억원을 국외로 빼돌려 선물옵션 투자에 사용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돼 1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항소심에서도 같은 형을 받았다. 최 부회장은 최 회장과 횡령 범행을 공모한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무죄, 2심에서 징역 3년6월을 각각 선고받았다.

합리를 아는 경영인으로 성장

고 최종현 SK그룹 선대회장의 장남으로 재계의 대표적인 2세 경영인으로 꼽힌다. 1960년생으로 여타 그룹의 총수들과 비교해 비교적 젊은 나이이지만 재계에서 차지하는 비중만큼은 결코 적지 않다.

수원에서 태어난 최 회장 형제는 부친으로부터 늘 검소하게 살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다고 한다. 미국 유학 시절 생활비가 항상 부족해 가정교사로 뛰고 학교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도 계속했다고 전해진다. 국내에서도 알아주는 재벌가 자제로서는 쉽게 겪을 수 없는 젊은 시절을 보낸 셈이다. 최 회장이 점심지원, 연탄나눔 등 다양한 자원봉사활동을 실천해 오고 있는 것도 선친의 가르침과 유학시절 고생 덕분이었다는 평이다.

1979년 신일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최 회장은 고려대학교에서 물리학과를 선택했다. 향후 경영을 했어야 하는 최 회장이 물리학과로 진학한 데는 부친의 조언이 크게 작용했다고 전해진다. 최 선대회장은 진학문제로 고민하는 최 회장에게 "어떤 직업을 갖든 합리적 논리를 펼 수 있는 객관적 지식을 갖춰야 한다"며 "경제의 기본원칙인 '합리' 관련된 분야로 물리나 화학, 생물 가운데 하나를 공부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이에 문과 지망생이었던 최 회장은 물리학과를 선택하게 됐고 이는 동생인 최재원 부회장도 마찬가지였다.

대학 졸업 후 미국유학을 떠난 최 회장은 시카고대학교에서 경제학 석ㆍ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학위를 받은 후 2년간 실리콘밸리에 있는 정보기술(IT) 벤처기업에서 마케팅, 세일즈 등을 경험한 최 회장은 이때의 경험을 안고 1991년 SK글로벌 미국법인에 입사, 본격적인 경영수업을 시작했다. 이후 1996년 ㈜선경(현 ㈜SK) 경영실장(상무), 1997년 ㈜SK 대표이사 부사장 등으로 고속승진한 최 회장은 1998년 최 선대회장이 타계하며 ㈜SK 대표이사 회장으로 취임했다.

최 회장이 SK그룹을 떠맡게 된 데는 고 최종건 SK그룹 창업주의 장남인 고 최윤원 SK케미칼 부회장의 도움이 있었다고 한다. 최 선대회장의 오일장이 끝나고 최신원 SKC 회장 형제, 최 회장 형제가 함께 자리한 가족회의에서 최 회장은 만장일치로 최 선대회장의 후계자로 선정됐다. 그러나 지분 및 상속 절차, 계열분리 절차 등 후계 작업이 거의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떠맡게 된 총수 직함은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30대 총수, 수차례 위기 딛고 일어서

최태원 회장이 SK그룹이라는 거대 회사의 총수가 된 것은 30대 후반의 일이었다. 경영권 대물림에 대한 비판적인 여론이 높았던 당시, 최 회장은 필연적으로 하나의 선택을 하게 된다. 부친의 최측근이던 손길승 SK텔레콤 명예회장과 '쌍두마차' 체제로 그룹을 이끌기로 결심한 것이다. 수펙스 회의에서 손 명예회장을 SK그룹 회장으로 추대하고 자신은 ㈜SK의 회장을 맡으며 당시로는 이례적이었던 '오너-전문경영인' 체제를 구축한 최 회장은 이후 5년여 동안 이 같은 체제를 고수했다.

최 회장이 그룹 경영을 완전히 이끌게 된 것은 2004년부터였다. 그때까지 최 회장은 적지 않은 마음고생을 해야만 했다. 특히 2003년은 최 회장에게 견디기 힘든 시련기였다. 우선 최 회장은 2000년 5월 SK유통, SK상사, SK에너지판매 등이 뭉쳐 출범한 SK글로벌이 출범 3년 만에 1조2,000억원을 분식회계했다는 사실이 검찰 수사에서 문제가 되며 2003년 2월 법정구속됐다. 영어의 몸이 되자마자 소버린으로부터 경영권 공격까지 당했다. ㈜SK의 지분율을 14.99%까지 끌어올린 소버린 측은 최 회장의 사퇴까지 요구했다. 표 대결에서 간신히 승리하긴 했지만 그룹 역사상 최대의 위기였음은 부인할 수 없었다.

그러나 절체절명의 위기를 딛고 일어선 최 회장은 오히려 그룹의 전권을 틀어잡고 그룹 재정비에 나설 수 있었다. 말 그대로 위기가 기회로 탈바꿈한 셈이다. 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SK의 사외이사 비율을 70%까지 높여 이사회 중심의 경영방식을 채택하고 2007년에는 그룹을 아예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기도 했다. 또한 통신ㆍIT에 에너지ㆍ화학을 접목시켜 현재 그룹의 근간을 완성시켰고 SK에너지, SK텔레콤, SK네트웍스 등을 앞세워 글로벌 경영에 앞장섰다.

그룹의 체질을 갈아엎다시피 한 최 회장의 노력에 힘입은 것일까. 최 회장이 취임했을 당시 5위였던 SK그룹의 재계순위는 삼성, 현대차그룹에 이어 3위로 껑충 뛰어올랐다.

M&A 및 해외사업 차질 커질듯

최태원 회장 형제가 모두 실형선고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은 SK그룹은 망연자실한 모습이다. SK그룹은 이날 상고심 선고 직후 "그동안 많은 노력에도 소명이 받아들여지지 않은데 대해 참담하고 비통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며 "경영공백의 장기화로 인해 신규사업 및 글로벌 사업 등 회장 형제가 진두지휘해 온 분야에서는 상당한 경영차질이 불가피해질 것"이라는 반응을 전했다.

최 회장이 부재하며 한동안 SK그룹을 책임져 왔던 김창근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은 이날 긴급 대책회의를 소집했다. 최 회장 부재에 따른 경영공백을 최소화하겠다는 것이 최대 목적이지만 총수 중심의 경영체제를 유지했던 SK그룹이니만큼 이번 결과로 인한 피해는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최 회장의 수감 생활이 길어지며 SK그룹은 인수합병(M&A)이나 해외사업 등 총수의 결단이 필요한 사업들에서 큰 차질을 빚고 있다. 김 의장을 중심으로 각 계열사 사장들이 개별기업 수준에서 사업을 진행하고는 있지만 큰 규모의 M&A나 해외사업 등은 진행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우선 SK그룹은 호주의 유류 공급업체 유나이티드 페트롤리엄 지분 인수를 검토했으나 의사결정이 지연되는 바람에 본입찰에 참가하지 못했다. SK텔레콤과 SK E&S가 각각 추진하던 ADT캡스와 STX에너지의 M&A도 포기했다. SK이노베이션은 2011년에 브라질 광구를 매각해 거액의 현금을 확보했으나 1년 이상 투자를 못하고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그동안은 최태원 회장이 기존에 추진해 왔던 해외사업들이었기에 상대적으로 여파가 크지 않았을 수 있다"며 "해당 사업들이 올해 상반기 정도에 대부분 마무리되는데 이후 SK그룹이 받을 타격이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hankooki.com



김현준기자 realpeace@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