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상ㆍ양궁 등 전통 강세종목 집중골프 박세리 최경주, 탁구 김택수, 역도 장미란도 수상배드민턴 김동문ㆍ라경민 부부 공동 수상감독ㆍ외국인도 청룡장 주인공에

2009 체육발전유공자 포상전수식에서 국민훈장 청룡장을 수상한 국민마라토너 이봉주(왼쪽)와2008년베이징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한 역도의 장미란.
지난 한 주 인터넷은 김연아의 체육훈장 청룡장 수여 문제로 떠들썩했다. '2014 소치 동계올림픽'을 마지막으로 은퇴를 선언한 김연아가 올해부터 바뀐 규정 때문에 청룡장을 받지 못한다는 사실이 알려졌고 이에 분노한 누리꾼들이 들고일어난 것이다. 특히, 체육계와는 별 관련이 없어 보이는 나경원 전 새누리당 의원이 '김연아도 못 받은' 청룡장을 지난해 11월 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논란은 일파만파로 확산됐다.

결국 안전행정부(이하 안행부),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 등 각 부처 간 협의 끝에 특례조항을 적용, 김연아에게 청룡장을 수여하겠다고 발표하며 사태는 일단락됐다. 그러나 관계 부처나 누리꾼, 김연아 모두에게 씁쓸한 뒷맛을 남길 수밖에 없었다.

이번 사건은 그동안 병역 특례 혜택과 비교해 별 관심을 끌지 못해왔던 체육훈장의 존재를 국민들에게 각인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또한, 체육계 최고 명예를 상징하는 청룡장의 주인으로 낙점됐음에도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던 체육영웅들도 함께 떠오르고 있다. 이에 <주간한국>에서는 그동안 여러 공로로 청룡장을 받았었던 체육인들을 분야별로 살펴봤다.

메달밭=청룡장밭?

현역 선수가 청룡장을 받기 위해서는 지난해 기준 1,000점의 훈격점수를 받아야만 한다. 올림픽 메달로 따지면 금메달 2개 또는 금메달 1개에 은메달 2개를 따야 한다는 뜻이다. 올림픽 2연패가 결코 쉽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청룡장이 갖는 위상을 쉬이 짐작할 수 있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왼쪽)이 2010년 10월 종로구 문화체육관광부 회의실에서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서 활약하는 박세리에게 체육훈장 청룡장을 수여하고 있다.
현역 선수 중 청룡장을 받은 이들은 빙상, 양궁, 유도, 배드민턴 등 우리나라가 전통적으로 강세를 보이는 분야에 집중돼있었다. 그중에서도 빙상, 양궁 등은 선수 개인이 나갈 수 있는 종목이 거리별로 다양한 데다 단체종목도 있어 메달을 따기가 상대적으로 수월하다는 장점이 있다.

빙상 부문에서는 전이경과 이규혁이 눈에 띈다. 전이경은 여자 쇼트트랙의 역대 최강자를 논할 때 빠지지 않는 인물이다. '1994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에서 쇼트트랙 1000m와 3000m계주 금메달을 석권한 전이경은 이듬해부터 세계선수권대회 3연패라는 금자탑을 세웠고 '1998 나가노 동계올림픽'에서도 금메달 2개(1,000m, 3,000m계주)와 동메달 1개(500m)를 거머쥐며 명실상부한 세계 1위로 올라섰다. 전이경의 은퇴 이후 우리나라 여자 쇼트트랙이 중국의 양양A에 밀리는 모습을 보인 것도 그의 그림자가 얼마나 컸는지를 보여준다.

스피드스케이팅의 살아있는 전설로 불리는 이규혁은 유독 올림픽과는 인연이 없었다. 그러나 '1994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을 시작으로 20년간 6차례 올림픽에 출전, 매번 유력한 메달 후보로 꼽히며 우리나라의 스피드스케이팅을 전 세계에 알리는 역할을 했다. 1997년 1,000m 세계기록 2차례, 2001년 1,500m 세계기록 1차례를 세우기도 했다.

양궁에서는 윤미진이 눈에 띈다. '2000 시드니 올림픽'에서 18세의 나이로 개인전과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따며 2관왕에 오른 윤미진은 '2004 아테네 올림픽'에서도 단체전 금메달을 차지했다. 그 사이에 '2003 아테네 프레올림픽', 2003 세계선수권대회 등의 굵직한 대회들을 휩쓸었음은 물론이다. 그밖에 '1996 애틀랜타 올림픽'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딴 김조순은 탁구선수인 남편 김택수와 함께 청룡장을 받으며 눈길을 끌었다.

배드민턴에서는 김동문-라경민 부부가 함께 청룡장을 받는 기염을 토했다. 국제대회에서 70연승이라는 신화를 일궈낸 김동문-라경민 부부였지만 유독 올림픽 금메달과는 인연이 없었다. 김동문은 1999년에, 라경민은 2005년에 각각 청룡장을 받았다.

청룡장 이미지 사진
불모지에서 금맥 캤다

어느 분야에나 선구자는 있게 마련이다. 어떠한 성과도 없었던 종목에서 특출난 한 선수의 탄생 이후 후배들이 줄줄이 활약하는 경우가 종종 눈에 띈다. 대표적인 종목이 여자골프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박세리가 있었다.

박세리는 IMF외환위기의 여파로 고통당하던 국민들에게 희망을 보여줬다. 미국 LPGA 데뷔 4개월 만에 메이저타이틀 중 하나인 맥도널드챔피언십을 따낸 것이다. 그로부터 7주 뒤에는 메이저타이틀 중 최고의 권위를 인정받는 US여자오픈까지 들어 올리며 단숨에 '골프여왕'으로 등극했다. 여자골프에 박세리가 있다면 남자골프에는 최경주가 있었다. 2002년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미국 PGA 뉴올리언스 컴팩클래식에서 우승한 최경주는 지금까지 우승 행진을 이어가며 동양인 최다승 기록을 세운 바 있다.

볼링선수인 이지연은 올림픽에 포함되지 않는 비인기종목 선수로는 최초로 2000년 청룡장을 받았다. 1994년까지 아시안게임 마스터스 2연패를 이룬 이지연은 '1998 방콕 아시안게임'에서 개인전과 2인조전에서 금메달을 땄고 1999년 세계선수권 2관왕에 오른 바 있다.

'롤러 여제'로 불리는 우효숙도 2012년 청룡장의 주인공의 됐다.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인라인롤러에서 여자스피드EP 10,000m 금메달을 따낸 우효숙은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셀 수 없을 만큼의 금메달을 가져왔다. 올해 열린 전국동계체전에서는 빙상스피드스케이팅으로 종목을 전환, 3위에 입상하기도 했다.

감독, 단체장도 다수 포진

선수가 아닌 감독이나 협회의 수장으로 청룡장을 받은 이들도 상당수다. 감독 출신으로는 이기식과 노민상이, 협회장으로는 변탁과 신박제가 눈에 띈다.

이기식은 '1988 서울 올림픽'부터 '1996 애틀랜타 올림픽'까지 양궁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았다. 이기식이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우리나라에 안긴 금메달은 무려 7개나 된다. 1997년 오스트레일리아 국가대표팀을 맡은 이기식은 '2000 시드니 올림픽'에서 남자 개인전 금메달을 휩쓸기도 했다. 2006년부터는 미국 국가대표팀을 이끌고 있다.

수영 국가대표팀을 맡으며 박태환이라는 걸출한 인재를 발굴한 노민상은 2011년 청룡장을 받았다. 한국 국가대표팀을 맡아 '2006 도하 아시안게임'과 '2008 베이징 올림픽',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을 성공적으로 치렀다는 평을 듣는다.

협회장 출신으로는 대한스키협회장을 역임한 변탁이 눈에 띈다. 변탁은 1988년부터 2004년까지 대한스키협회를 맡은 공로를 인정받아 2007년 청룡장을 받았다.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 때는 한국선수단장을 맡기도 했다. 신박제는 '숨은 유공자' 규정에 따라 청룡장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1998년부터 2009년까지 대한하키협회장으로 재임하면서 비인기종목인 하키의 발전을 위해 헌신했다.

외국인도 청룡장 받았다

청룡장의 주인 중에는 푸른 눈의 이방인들도 있었다. 축구 국가대표팀의 감독을 맡아 '2002년 대한민국ㆍ일본 월드컵' 4강신화를 이룩한 거스 히딩크가 대표격이다. 허정무 대신 우리나라 국가대표팀의 사령탑을 맡은 히딩크는 파격적인 구조조정을 통해 한국축구를 한단계 업그레이드시켰다는 평을 듣는다. 1998년과 2006년 각각 네덜란드, 오스트레일리아를 이끌고 월드컵 4강, 16강에 안착하기도 했다.

2003년에는 세이크 아마드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 회장이 청룡장을 받았다. 아마드는 '2002 부산 아시아게임'의 성공적 개최에 기여한 공로로 청룡장을 수여했다. 국제축구연맹(FIFA)의 제프 블래터도 2010년 청룡장의 주인이 됐다. 2022년 월드컵을 유치하려는 이명박은 블래터에게 청룡장을 수여하며 관심과 지원을 보내달라고 당부한 바 있다. @hankooki.com

김연아 청룡장 수여에도 논란 여전

문화체육관광부는 17일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국가 위상을 제고한 이상화, 박승희, 김연아에게 관계부처 협의를 거쳐 체육훈장 청룡장 수여를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상화, 박승희와는 달리 김연아는 본래 청룡장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2010 밴쿠버 올림픽'과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각각 금메달, 은메달을 딴 김연아는 7번의 세계선수권대회(주니어 포함)에서 획득한 금메달 3개, 은메달 2개, 동메달 2개를 더해 1,424점의 훈격점수를 기록하고 있다. 청룡장을 받기 위한 1,500점에 불과 76점이 모자란 것이다. 이미 은퇴를 선언한 이상 모자란 점수를 채울 방법도 없었다.

김연아가 청룡장을 받기 어려워진 데는 올해부터 훈격점수 기준이 달라진 것도 크게 작용했다. 체육훈장은 훈장은 훈격점수에 따라 나뉘는데 정부가 올해부터 청룡장(1,000점→1,500점) 맹호장(500점→700점) 거상장(300점→400점) 백마장(200점→300점) 기린장(150점→250점) 포장(50점→150점) 등 각 부문 점수를 대폭 올렸기 때문이다.

'피겨여왕'으로 전국민적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는 김연아가 청룡장을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논란이 커지자 관련 부처들은 바빠졌다. 안행부가 기준 재조정 뜻을 밝힌 데 이어 문체부는 '체육분야 유공자 서훈 기준' 특례 조항을 적용해 김연아에게 청룡장 수여를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김연아는 청룡장을 받게 됐지만 훈격점수 기준이 너무 높다는 지적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딸 경우 600점의 점수를 받는데 청룡장 기준인 1,500점을 채우기 위해서는 단순 계산으로 금메달 2개와 은메달 1개가 필요하다. 양궁, 쇼트트랙 등 우리나라의 메달밭 종목들을 제외한다면 현실적으로 충족시키기 어려운 점수인 셈이다.

한편, 지난해 태릉선수촌장 출신의 이에리사 의원의 제안으로 '올림픽 금메달=청룡장'을 골자로 한 개선안에 정부에 제출됐지만 '엘리트 체육에 집중된 포상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 안행부의 방침이라 귀추가 주목된다.

특별한 혜택 없이 오직 명예만…

김연아가 특례 조항으로 청룡장을 받게 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청룡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에 대한체육회는 17일 공식 트위터에 청룡장의 이미지 사진을 공개했다.

대한체육회가 선보인 청룡장에는 흰색 왕관 모양의 백대지(白大支)가 5개가 별 형태로 붙여져 있으며 중앙에는 개선(凱旋)을 뜻하는 황금색 식판(飾板)이 자리잡고 있다. 식판과 백대지 주변에는 월계수 잎이 둘러 있고 청룡장의 가장 윗 부분에는 무궁화잎들이 반지 모양으로 동그랗게 위치해있다. 훈장을 두르기 위한 주황색의 수는 활력과 약동을 상징한다.

청룡장을 받는다고 해서 특별한 혜택이 부여되지는 않는다. 이는 청룡장이 속한 체육훈장뿐만 아니라 무궁화대훈장, 건국훈장, 국민훈장, 무공훈장 등 어떤 훈장도 마찬가지다. 특정한 분야에서 가장 뛰어난 업적을 기리기 위해 만든 까닭에 오직 명예만 부여한다. 과거 "훈장을 받은 사람은 죽을죄를 지어도 면해준다"라는 소문이 있었지만 낭설로 알려졌다.



김현준기자 realpea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