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오대양 사건과 관련 구속후 출소 베일에 가려진 채 준재벌로 성장해외법인 등 자산 2,400억 달해 사정기관 전방위 '칼바람' 예고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이 도마에 올랐다. 세월호의 선사인 청해진해운의 실질적 사주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다. 유 전 회장은 과거 세모그룹을 준재벌급으로 키운 장본인이다. 한때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오대양 단체 변사 사건의 배후로 지목된 인물이기도 하다.

당시만 해도 유 전 회장을 모르는 이는 많지 않았다. 그러나 오대양 사건과 관련된 상습사기 혐의로 구속됐다 출소한 이후의 행적은 사실상 베일에 가려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유 전 회장의 이름은 세인들의 머릿속에서 잊혀져 갔다.

그런 유 전 회장이 최근 다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다. 숱한 의혹과 뒷말들이 끊임없이 양산되고 있다. 여기에 사정기관의 전방위적인 칼바람도 사정없이 몰아치고 있다. 그야말로 인생 최대 위기를 맞고 있는 유 전 회장. 그는 과연 어떤 인물일까.

오대양 사건 배후 지목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은 일본 교토에서 사업을 하던 한국인 부부 사이에서 태어났다. 일본에서 소학교(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가족들과 함께 한국행 선박에 몸을 실었다 이후 부모의 고향인 경상북도 대구시에 정착했다.

침몰한 세월호의 선사인 중소 연안여객사 청해진해운은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일가가 직간접적 지분 관계를 통해 소유중인 것으로 확인됐고 청해진해운의 최대주주는 천해지로 지분율이 39.4%이며 지분 42.81%를 확보한 아이원아이홀딩스의 지배를 받는 구조다.
대구 성광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독립교회 선교사들이 운영하는 성경학교에서 6개월간 성경을 공부하며 신앙생활을 시작했다. 세칭 '구원파'의 권신찬 목사와 인연을 맺은 것도 이때부터다. 권 목사로부터 신임을 얻은 윤 전 회장은 이후 그의 딸과 결혼했다.

1963년부터 선교사들과 관계를 끊고 독자노선을 구축했다. 1971년 서울 약수동 성동교회에서 구원파의 교리에 미혹된 선교사 3명과 한국인 목사 2명으로부터 목사안수를 받았다. 1969년부터 1981년까지는 '평신도복음선교회'라는 간판을 걸고 활동했다.

유 전 회장이 종교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건 1964년 권 목사가 극동방송의 전신인 국제복음주의방송에 방송목사로 부임하면서다. 당시 유 전 회장은 방송부국장을 맡아 '은혜의 아침'이라는 프로를 진행하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이들의 설교는 종교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러다 급기야 정통교단이 유 전 회장의 이단사상에 항의하며 극동방송 청취거부 운동을 벌이기에 이르렀다. 극동방송은 결국 1974년 유 전 회장을 비롯한 구원파 소속 직원들을 모두 해고했다.

이후 유 전 회장은 1974년 '삼우트레이딩'이라는 회사를 인수해 사장직을 맡았다. 교제의 구심점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인수와 운영엔 교인들의 헌금이 투입됐다. 그리고 7년 뒤인 1981년 유 전 회장은 권 목사와 기독교복음침례회를 설립했다.

이후 1979년 무역업을 근간으로 세모를 설립했다. 세모는 구약성경의 출애굽기에 나오는 유대인 지도자 '모세'의 이름에서 비롯됐다. 세모는 1990년대 국내 최대 연안여객업체인 세모해운 등 9개 계열사를 거느린 준재벌로 성장했다.

세모는 5공화국 당시 초고속 성장을 거듭했다. 태권도 고단자인 유 전 회장이 당시 대구권에서 무술계의 실력자로 활약하던 전두환 전 대통령의 동생 전경환씨와 무술을 통해 맺은 인연이 계기가 됐다. 이를 통해 세모그룹은 적잖은 특혜를 누렸다는 평가다.

그러나 승승장구하던 세모는 1997년 부도를 내고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부도 원인은 주력 기업 세모해운의 적자 때문이었다. 당시 세모는 세모유람선과 세모케미칼, 세모화학 등 9개의 자회사를 거느리고 있었으며 금융권 총여신은 2,000억원 수준이었다.

그러나 몰락의 주된 원인을 다른 곳에서 찾는 시선도 많다. 1987년 벌어진 '오대양 집단 변사 사건'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경기도 용인시 공예품 공장에서 박순자 오대양 대표를 비롯한 가족과 종업원 등 32명이 집단 자살한 시체로 발견된 사건이다.

당시 유 전 회장은 사건의 배후 인물로 지목돼 오랫동안 검찰 조사를 받았다. 유 전 회장의 추종자이자 신도들이 집단생활을 하면서 빚을 져 결국 자살을 택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데 따른 것이다. 이 사이 사세가 급격히 기울었다는 분석이다.

일각에선 지속적으로 타살 의혹을 제기되면서 사건은 1987년과 1989년, 1991년 모두 3차례의 재수사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모두 동일하게 집단자살로 결론 내려졌다. 유 전 회장과 사건 사이의 관련성도 인정되지 않았다.

다만 유 전 회장은 1991년 오대양 사건과 관련된 상습사기 혐의로 체포돼 이듬해인 1992년 대법원으로부터 징역 4년 확정 판결을 받았다. 법원은 유 전 회장이 구원파 신도들로부터 종교적 지위와 교리를 이용해 돈을 모은 사실을 인정했다.

청해진해운 실질적 사주

출소 후 유 전 회장의 행방은 묘연해졌다. 기업활동을 재개했다는 소식이 간헐적으로 전해질 뿐이었다. 차츰 유 전 회장은 기억 속에서 사라지는 듯했다. 그런 최근 세월호 사태가 벌어지면서 유 전 회장의 이름이 다시 세인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여기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유 전 회장 일가가 세월호를 운영한 청해진해운의 실질적 사주로 거론되고 있어서다. 청해진해운은 세모그룹이 최종 부도나고 1년 반 뒤인 1999년 2월 개인주주들을 모아 자본금 34억원으로 설립됐다.

청해진해운은 세모에서 1997년 분사된 세모해운의 선박과 사무실 등 유형 자산을 120억원에 사들여 사업을 시작했다. 이 회사는 사업초 인천과 제주항로를 주로 운항하며 한 해 20억원에 달하는 흑자를 달성하는 등 호황을 누렸다.

이후 청해진해운의 주주구성은 개인주주에서 천해지와 아이원아이홀딩스 등으로 점차 넘어가기 시작했다. 청해진해운의 대주주로 알려진 아이원아이홀딩스는 유 전 회장의 아들인 대균씨와 혁기씨가 주축이 돼 2007년 설립한 회사다.

현재 청해진해운의 주요주주는 강선건조 업체인 천해지(39.4%)와 김한식 청해진해운 대표(11.6%), 경영컨설팅업체인 아이원아이홀딩스(7.1%) 등이다. 이 가운데 가장 많은 지분을 보유한 천해지의 최대 주주는 아이원아이홀딩스다. 총 42.8%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아이원아이홀딩스의 최대주주는 혁기(19.4%)씨와 대균(19.4%)씨다. 유 전 회장의 측근인 김혜경도 이 회사 지분 6.3%를 보유하고 있다. 결국 청해진해운은 유 전 회장 일가가 소유한 사실상 개인회사인 셈이다.

유 전 회장 일가는 이밖에도 홍콩과 미국 등 주요 국가에 진출해 설립한 해외법인을 통해 막대한 부를 쌓았다. 현재까지 확인된 주식과 부동산 등 자산가치만 2,400억원 수준에 달한다. 사정기관은 파악 못한 재산이 더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미국서 사진작가로 활동

동시에 출소 후 행적도 밝혀졌다. 유 전 회장은 미국에서 사업가 겸 사진작가로 알려진 '아해'로 활동해 오고 있었다. 과거 취미로 카메라 수집과 사진 촬영을 해온 유 전 회장은 사업에 신경쓰면서 20년간 카메라를 멀리 해오다 2000년대 다시 촬영을 시작한 것으로 전해졌다.

아해가 국제적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한 건 2011년 봄부터다. 당시 미국 뉴욕 맨해튼의 그랜드 센트럴 터미널에서 첫번째 초대전 '나의 창을 통해(Through my window)'를 가진 아해는 이후 런던, 프라하 등에서 잇달아 초대전을 개최하며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이후 2012년 6월 프랑스 파리에서 루브르박물관과 함께 '아해 사진전'을 열었고, 이탈리아 베니스와 플로렌스에서도 동일한 사진전을 개최했다. 지난해 6월에는 프랑스 파리 국립베르사유궁전박물관에서 사진전을 열기도 했다.

아해는 재력가로도 주목받았다. '초대전'이란 작품이 완판된다는 보장도 없이 작가 작품 제작이나 전시 비용을 모두 감당하는 기획전을 말한다. 재정적인 뒷받침이 없이는 불가능한 전시회다. 이때까지만 해도 아해의 정체는 베일에 가려있었다.

그러나 최근 작품활동에 소요되는 모든 비용은 청해진해운에서 댄 사실이 확인됐다. 청해진해운은 지난해 7억9,000만원의 영업손실을 내는 등 몇 년 전부터 재정상태가 악화됐는데, 유 전 회장이 개최하는 국제사진전이 경영악화에 일정 부분 영향을 줬다는 평가다.

이처럼 막대한 부를 축적하며 호화생활을 해온 유 전 회장은 세월호 사태로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검찰과 국세청, 금융감독원 등 사정기관의 전방위적 칼바람이 몰아치고 있어서다. 그야말로 풍전등화 신세가 된 유 전 회장.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인 셈이다.

유병언 전 회장 일가 재산 규모는?
홍콩 등 해외법인 13곳… 수천억원대 자산 보유

청해진해운의 실소유주인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일가의 재산은 얼마나 될까. 이들은 홍콩과 미국, 프랑스 등 주요 국가에 설립해 운영 중인 13개 해외법인의 자산규모는 수천억원대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대표적인 법인은 미국 '하이랜드스프링스(Highland Springs)'와 프랑스 '아해프레스프랑스(Ahae Press France)'다. 하이랜드스프링스는 초기 투자자산이 118억원 규모다. 계열사인 다판다와 문진미디어가 각각 9.90%와 9.07%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아해프레스프랑스는 2012년 설립된 법인으로 청해진해운을 실제 소유한 조선업체 천해지(24.51%)와 아해(10.18%)가 출자했다. 초기 투자자산은 68억4,000만원 규모로 집계됐다. 또 계열사 세모는 전세계에서 8개의 현지법인을 운영하고 있다.

세모의 주요 해외법인은 에스엘재팬(일본), 주하이세모완구(중국), 베이징세모화장품(중국), 세모커니아인도네시아(인도네시아), 세모비나(베트남), 세모홍콩(홍콩), 세모유에스에이(미국), 세모브라질(브라질) 등이다.

이밖에 퍼시픽홀딩스와 큐브러닝시스템, 큐브올개닉스 등은 진출 지역이 모호하다. 퍼시픽홀딩스는 다판다와 문진미디어가 각각 68.50%와 22.60%의 지분을 출자해 설립됐다. 큐브러닝시스템과 큐브올개닉스는 문진미디어와 다판다가 지분 100%를 출자했다.

이들 해외법인은 2003년부터 설립되기 시작했다. 초기 투자 자산 규모는 모두 270억원 수준이었다. 그러나 이들 법인은 현지에서 활발한 부동산 투자에 나서 최근 자산규모가 2,400억원대로 불어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실제 유 전 회장은 2012년 프랑스의 작은 마을을 통째로 사들여 관심을 모은 바 있다. 유 전 회사 일가 개인회사인 아해프레스는 면적 10만㎡에 달하는 프랑스 쿠르베피 마을 경매에 참여해 우리 돈으로 약 7억7,300만원에 최종 낙찰을 받았다.

이밖에 미국 캘리포이나 리버사이드 카운티의 라벤더 농장과 하이랜드 스프링스 리조트도 갖고 있다. 또 뉴욕시 근교 40억원대 고급 저택과 맨허튼 허드슨 강변에 고급아파트, 로스앤젤레스 근교 팜스프랑스 소재 주택 등에도 투자한 것으로 확인됐다.



송응철기자 sec@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