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골프 천재' 리디아 고

지난달 17일(한국시각) 미국 하와이 오하우섬 코올리나 골프클럽에서 열린 LPGA LOTTE CHAMPIONSHIP 1라운드 15번홀에서 리디아 고가 티샷을 하고 있다. 사진=LOTTE 제공
한국 여자골프계에 박세리와 김미현, 신지애, 최나연, 박인비의 계보를 이을 '천재 골프 소녀'가 주목을 받고 있다. 올해 17세인 리디아 고가 그 주인공이다. 리디아 고는 최근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스윙잉 스커츠 LPGA 클래식에서 우승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리디아 고는 지난해 LPGA 투어 CN 캐나다여자 오픈에서 2연패를 하는 등 그해 10월 프로 전향을 선언하기 전까지 프로 무대에서만 무려 4승을 거뒀다. 또 LPGA 투어와 유럽여자프로골프(LET) 최연소 우승 기록도 동시에 세웠다.

아마추어 시절의 전적도 화려하다. 각종 대회를 거의 휩쓸다시피 했다. 그때마다 리디아 고에게는 늘 '최연소' 타이틀이 따라다녔다. 그 누구보다 '골프 천재'라는 수식어가 어울리는 리디아 고. 그의 면면을 들여다봤다.

프로 전향 후 첫 LPGA 우승

리디아 고는 지난 3월28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달리 시티의 레이크 메르 세드 골프장(파72·6507야드)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스윙잉 스커츠 LPGA 클래식(총상금 180만 달러) 최종 라운드에서 최종합계 12언더파 276타로 우승을 차지했다.

이로써 리디아 고는 지난해 10월 프로 전향 이후 처음으로 LPGA 투어 우승트로피를 품에 안았다. 아마추어 시절인 2012년과 지난해를 포함하면 LPGA 투어 통산 3승이다. 이번 우승으로 리디아 고의 세계랭킹은 4위에서 2위로 2계단 뛰어올랐다.

물론 쉽게 얻은 영광은 아니다. 리디아 고는 3라운드까지 미국의 루이스에게 1타 뒤진 단독 2위로 최종 라운드에 들어갔다. 12번 홀(파3)까지 루이스와 공동 선두로 팽팽히 맞서다 13번 홀(파4)에서 버디를 낚아 보기에 그친 루이스를 2타차로 따돌렸다.

그러나 마지막 18번홀에서 루이스가 버디를 성공시키면서 승부는 연장으로 흐르는 듯 했다. 티샷을 러프에 빠뜨린 리디아 고가 버디를 하기에는 무리하게 보였다. 하지만 거친 라이에서 시도한 두 번째 샷을 홀컵 옆에 붙여 버디를 성공시키며 1타 차로 우승을 확정했다.

우승 확정 이후 리디아 고는 "두 차례 캐나다 여자오픈 우승 때는 최종라운드에서 앞서 있었고 이번의 경우 뛰어난 경쟁자들과 경쟁했기 때문에 상황이 달랐다"며 "대회 때 잘 나오지 않는 아버지가 오신 가운데 우승해 더욱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경쟁자들도 리디아 고의 경기력을 극찬했다. 루이스는 "리디아의 플레이는 최고였다. 내가 잘 쳐도 자신이 원하는 샷을 언제나 해냈다"며 "마지막 3개 홀에서는 매우 어려운 상황이 이어졌지만 어렵지 않게 헤쳐 나왔다"고 말했다. 신지은도 "두려움이 없어 보였다"고 했다.

2012 LPGA 투어 CN 캐나디언 여자오픈에서 세계 최연소 우승한 리디아고(15·한국명 고보경)가 고향 방문 기념 기자회견을 한 후 더호텔에서 외할아버지와 포옹을 하고 있다.
6살 때 뉴질랜드로 골프 이민

1997년 서울에서 태어난 리디아 고가 골프채를 처음 손에 쥔 건 5살 때다. 어머니 현봉숙씨를 따라 실내연습장을 찾은 게 계기가 됐다. 리디아 고는 금새 재능을 드러냈다. 골프를 시작한지 48일째 되는 날 첫 라운드에서 130타를 칠 정도였다.

그리고 이듬해인 2003년 리디아 고의 부모는 뉴질랜드로 골프 이민을 감행했다. 뉴질랜드가 본격적으로 골프를 접하기에 최적인 곳이라는 판단에서였다. 이후 골프장 앞에 집을 얻어 본격적인 골프 수업에 들어갔다.

이 과정에서 리디아 고의 부모는 물심양면의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테니스 선수 출신인 아버지 고길흥씨 자신이 고안한 훈련법으로 딸을 직접 지도했다. 또 어머니 현씨는 캐디를 자청하며 직접 라운드를 돕기도 했다.

리디아 고가 본격적으로 대회에 출전한 건 9살 무렵이었다. 그로부터 2년 뒤인 11세 때 뉴질랜드 여자 아마추어 메이저대회에서 최연소 우승하는 등 주니어 무대를 평정하며 '골프천재'의 면모를 보였다. 이후 리디아 고에게는 늘 최연소 타이틀이 따라다녔다.

실제 2011년 12월 호주 버른의 우드랜드 골프클럽에서 36홀 매치플레이로 열린 호주여자아마추어 골프선수권대회 결승전에서 호주의 브리에너 엘리엇을 상대로 4&3(3홀 남기고 4홀 차 승리)로 우승을 차지하며 아마추어골프선수권대회 최연소 기록을 달성했다.

이어 2012년 1월 호주여자골프 투어 뉴사우스웨일스 오픈에서도 14세9개월의 나이로 우승해 일본 내에서 '골프 영웅'으로 통하는 이시카와 료(만 15세8개월)가 보유하고 있던 전세계 남녀프로골프 최연소 우승기록을 갱신했다.

또 2012년 8월 캐나다 밴쿠버골프장에서 끝난 미국여자프로골프 투어 CN 캐나다 여자 오픈에서 우승해 미국의 렉시 톰슨(16세7개월)이 갖고 있던 종전 최연소 우승 기록을 15세4개월로 무려 15개월 이상 앞당겼다.

이처럼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우며 지난 4월24일에는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이 꼽은 '2014년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한국계로선 유일무이하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리디아 고의 17번째 생일이었다.

정확도와 승부사 기질이 무기

리디아 고의 무기는 정확도다. 드라이버샷 정확도와 아이언샷, 숏게임과 퍼팅까지 세계 최고로 꼽힌다. 리디아 고의 평균 드라이버샷 거리는 252.857야드 66위로 중위권 수준이다. 하지만 페어웨이 안착률은 무려 76%에 그린 적중률도 73%나 된다.

여기에 평균 퍼트 수는 29.53개, 16위로 준수하고 평균 스코어는 70.611타로 7위에 올라 있다. 리디아 고 스스로도 "장타는 아니지만 페어웨이를 많이 놓치지 않아 버디 잡을 기회가 많다"며 "100야드 이상 거리에서는 어떤 상황에서든지 핀에 붙일 자신이 있다"고 말한다.

강력한 멘탈도 강점으로 꼽힌다. 투어 경험이 오래된 선수조차 세계적인 선수들과 만나면 엄청난 중압감에 시달린다. 그러나 리디아 고는 전혀 주눅 들지 않는다. 17세의 어린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냉정하고 차분하게 경기를 운영한다는 평가다.

실제 지난해 12월 KLPGA 투어 스윙잉 스커츠 월드 레이디스 마스터스에서 박인비, 유소연과 맞대결을 펼치고도 역전 우승을 했던 강심장의 소유자다. 당시 "선배들과 겨뤄 떨리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리디아 고는 "오히려 영광이었고, 즐기고자 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높이 평가받는 건 승부사 기질이다. 이번 대회에서도 이런 기질은 어김없이 빛을 발했다. 리디아 고는 공동 선두를 달리던 루이스가 13번홀에서 보기를 범하자 승부수를 던졌고 순식간에 선두로 올라섰다.



송응철기자 sec@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