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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그리고 '포스트 이건희'… '급환' 찾아온 삼성, 위기는 없나

이재용 '미래 삼성' 역할론 대두
'아무도 2등은 기억하지 않는다.'

1996년 삼성의 그룹이미지 광고에 쓰였던 카피다. 해당 카피를 내걸었던 당시 삼성은 현대에 밀려 재계서열 2위에 머물러 있었다. 다시 말해 그 카피는 '1등으로서의 자부심'을 나타낸 것이 아니라 '만년 2위를 탈출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셈이다. 그리고 삼성의 결심은 채 몇 년이 되지 않아 현실로 드러났다.

2014년 현재 삼성은 한국 경제를 대표하는 기업으로 자리 잡고 있다. 삼성의 매출액이 우리나라 경제의 23%를 차지할 정도로 영향력도 절대적이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 10일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졌을 때 전 국민의 이목이 집중됐던 것도 이 때문이다. 지금의 삼성이 있기까지 이 회장의 카리스마와 리더십이 차지하는 비중이 적지 않았다고 평가되는 만큼 '포스트 이건희' 체제를 걱정하는 시선도 많다.

어릴 적 경험이 지금의 삼성 이끌어

이건희 회장은 1942년 고 이병철 삼성 창업주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당시 이 창업주 내외는 삼성상회를 운영하느라 무척 바빴고 이 회장은 부친의 고향인 경남 의령에서 할머니와 함께 자랐다.

이 창업주는 한국전쟁으로 다섯 번이나 초등학교를 옮겨 다녀 또래 친구들과 쉽게 친해지지 못했던 이 회장을 위해 장난감들을 많이 사줬다고 전해진다. 이 회장은 장난감들을 가지고 논 것에만 그치지 않고 분해ㆍ조립하는 취미를 가졌고 이러한 취미는 성인이 되어서까지 이어졌다.

이 회장은 초등학교 5학년이던 1953년 이 창업주의 권유로 유학길에 올랐다. 낯선 일본땅에서 외로움을 느낀 이 회장은 수많은 영화를 보며 쓸쓸함을 극복했다고 알려졌다. 이후 삼성물산의 영화 및 방송사업, 삼성전자의 음반사업 등을 통합해 삼성영상사업단을 출범했던 것도 영화애호가였던 이 회장의 기호가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일본에서 중학교 1학년을 마치고 귀국한 이 회장은 서울대 사대부중을 거쳐 사대부고에 입학했다. 일본에 있을 무렵 역도산을 동경했다던 이 회장은 사대부고 레슬링부에 들어가서 선수로 활약하기도 했다.

일본 와세다대 경제학과를 거쳐 미국 조지워싱턴대 MBA를 졸업한 이 회장은 1966년 동양방송에 입사하며 경영수업을 시작했다. 1969년 중앙일보와 동양방송 이사로 정식 발령을 받은 이 회장은 10여 년 동안 신생 매체의 정상화에 전력을 다했다. 현재 삼성의 양대 축을 형성하는 반도체 사업에 관심을 갖게 된 시기도 이때쯤이다. 1978년 삼성물산 부회장에 올랐다가 이듬해부터 그룹 부회장을 맡아오던 이 회장은 이 창업주가 별세한 1987년 마침내 삼성의 총수자리에 등극했다.

끊임없는 위기경영 글로벌 기업으로

취임 직후 "삼성을 세계적인 초일류기업으로 성장시키겠다"라고 일갈한 이건희 회장의 제2창업 선언 이후 삼성은 대대적인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경영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그룹과 분리됐었던 전자, 반도체, 통신 등을 삼성전자로 통합시킨데 이어 유전공학, 우주항공 분야의 신규사업을 추진하는 결단을 내렸다. 또한 막강한 정보력과 권한을 가지고 있던 비서실에 대한 대대적인 개혁을 진행했다.

혁신에 대한 이 회장의 의지는 '프랑크푸르트 선언'으로도 불리는 1993년의 '신경영 선언'에서 극에 달했다.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라"는 이 회장의 신경영 선언 이후 삼성은 그야말로 고공행진을 거듭했다. 반도체, 액정표시장치(LCD), 휴대폰, 모니터, TV 등 글로벌 1위 제품을 줄줄이 탄생시키며 전 세계 사람들의 머릿속에 삼성이라는 이름을 각인시킨 것이다.

이 회장 임기 동안 삼성이 이룬 성과를 객관적인 수치로 비교해보면 놀라울 정도다. 지난해 삼성의 매출은 380조원, 영업이익은 39조원으로 1993년도와 비교해 매출은 13배, 영업이익은 50대 가까이 늘어났다. 같은 기간 시가총액도 1조원에서 311조6,000억원으로 311배나 증가했다.

반도체, 삼성의 현재를 있게 한 결단

삼성의 고공행진은 반도체와 휴대폰이 이끌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이 두 분야의 성공 뒤에는 이건희 회장의 전격적인 결단이 자리잡고 있었다.

이 회장은 그룹의 총수에 오르기 전인 1974년 이병철 창업주에게 반도체 사업 진출을 건의했다. 이에 이 창업주가 사업성 검토를 지시했지만 당시 경영진은 매년 수천억원의 자금을 쏟아부어야 하는 반도체 사업은 당시 삼성에게 아직 시기상조라며 반대했다. 그러나 이 회장은 뚝심으로 선행투자를 결심했고 부도 위기에 처했던 한국반도체 인수를 위해 사재를 털었다. 이어 이 회장은 부친을 설득, 삼성의 반도체 사업 진출을 이끌어냈다.

이 회장의 판단은 얼마 지나지 않아 큰 열매를 맺었다. 이 회장 취임 이후 삼성은 전 세계 최초로 64메가 D램을 개발하면서 반도체 업계의 강자로 떠올랐다. 이후 이 회장은 일본 도시바가 선택한 트렌치 방식 대신 스택 방식을 채택하고 반도체 생산라인의 웨이퍼 크기를 8인치(일본은 6인치)로 결정하는 등 혁신을 거듭하며 반도체 사업을 이끌었다. 이때 이후 삼성은 20년 동안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한 번도 1위 자리를 내주지 않고 있다.

삼성의 캐시카우로 꼽히는 휴대폰 사업의 성장도 이 회장의 결단을 바탕으로 이뤄졌다. 삼성은 1994년 애니콜 브랜드의 첫 제품인 SH-770을 출시하면서 휴대폰 시장에 뛰어들었다. 삼성의 휴대폰 사업은 시장 진출 1년 만에 글로벌 1위인 모토로라를 제치고 국내 시장 점유율 51.5%를 차지하며 '애니콜 신화'를 만들었다.

그러나 이 회장은 외적인 성공에 만족하지 않았다. 국내 소비자를 중심으로 통화 불만이 늘어나자 이 회장은 당시 기준으로 500억원 상당의 휴대폰을 삼성전자 구미 사업장에 모아놓고 모두 불사르는 화형식을 진행했다. 이날의 화형식을 계기로 삼성의 휴대폰 사업은 더욱 기지개를 켰다.

삼성 휴대폰 사업의 위기는 또 한 번 있었다. 애플이 2007년 아이폰을 선보이며 스마트폰의 대중화 시대를 열었을 때까지도 여전히 피처폰 수준에서 헤매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폰이 국내에 들어오며 통신시장을 뒤흔들고 있던 위기 상황에서 삼성전자는 미완성작인 옴니아 시리즈로 맞섰지만 역부족이었다. 아이폰과 비교해 모든 면에서 손색이 있었던 옴니아는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았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글로벌 경기침체까지 겹치며 삼성의 휴대폰 사업은 붕괴 직전까지 갔다.

쓰러져가던 삼성의 휴대폰 사업을 되살린 것은 때마침 경영 일선에 복귀한 이 회장이었다. 이 회장은 무선사업부를 전면에 배치하는 체질 개선으로 초강수를 뒀고 삼성 휴대폰 기술의 총집약체인 갤럭시S를 재빠르게 선보였다. 갤럭시S는 7개월 만에 전 세계적으로 1,000만대 판매고를 올리며 삼성 휴대폰 사업을 이끌기 시작했다. 이후 갤럭시S2, 갤럭시S3, 갤럭시S4, 갤럭시S5까지 연달아 성공했고 삼성의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은 1분기 기준 31.2%로 글로벌 1위에 안착했다. 갤럭시S5가 출시 25일 만에 1,000만대 판매를 돌파한 이상 삼성 휴대폰의 고공행진은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장남 어깨에 쏠리는 삼성의 무게

지금껏 삼성을 지탱해온 이건희 회장이 쓰러지며 재계 전문가들은 '포스트 이건희' 시대의 전망을 앞다퉈 내놓고 있다.

'포스트 이건희' 시대와 관련해 가장 주목되는 것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에버랜드 패션부문 사장 등 삼성가 삼남매의 역할분할이 향후 어떻게 진행될 것이냐는 점이다.

우선 이재용 부회장을 중심으로 하는 삼분할론은 앞으로도 힘을 받을 전망이다. 그러나 비중은 이재용 부회장에게 대폭 쏠릴 것으로 보인다. 본래 재계 전문가들은 이재용 부회장이 그룹의 전자와 금융 부문을 맡고 이부진 사장은 호텔ㆍ건설ㆍ중화학 부문을, 이서현 사장은 패션ㆍ디자인 부문을 맡고 멀지않은 미래에 계열분리에 나설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그러나 최근 삼성 계열사 간 구조조정이 진행되며 그림이 조금 달라지기 시작했다. 삼성SDI와 제일모직이 합병하며 이부진 사장의 몫으로 분류됐던 소재, 중화학 부문이 이재용 부회장의 우산 아래에 놓이게 된 것이다. 이는 다시 말해 이재용 부회장이 '포스트 이건희'로서 그룹의 굵직한 사업을 전담한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이 회장의 갑작스러운 병환으로 본래 이부진 사장에게로 넘어갈 것으로 예상됐던 건설 부문도 이재용 부회장의 몫으로 남을 가능성이 커졌다. 이부진 사장이 건설 부문을 넘겨받기 위해서는 삼성물산에 대한 지배력이 있어야 하는데 지분구도를 채 정비하기 전에 승계가 마무리될 확률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현재 지분구조상 자연스레 건설 부문을 맡게 될 것으로 보이는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물산과 삼성엔지니어링의 합병을 주도, 삼성의 주력 사업군으로 만들 것이라는 가능성도 제기된다.

지분 구도상으로는 이미 완성

이재용 부회장이 '포스트 이건희'가 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지분구조는 이미 완성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부회장이 안심할 수 있는 것은 삼성그룹 지배구조의 핵심인 삼성에버랜드 주식 25.1%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그룹은 '삼성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카드→삼성에버랜드'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구조를 지니고 있다. 삼성에버랜드의 최대주주인 이 부회장이 경영권 지분 측면에서는 승계가 끝났다고도 해석할 수 있는 이유다.

이 부회장은 이건희 회장의 남은 지분을 넘겨받기 위한 실탄도 삼성SDS의 상장이 마무리되면 어느 정도 확보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이 부회장이 지분을 갖고 있던 삼성SDS는 마찬가지로 이 부회장이 최대주주인 삼성SNS를 흡수 합병했다. 그 과정에서 11.26%까지 늘어난 이 부회장의 삼성SDS 지분은 상장 이후 최소 1조7,000억원 이상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회장의 보유 지분이 삼남매에 어느 정도 나뉠 것을 염두에 둔다면, 이 부회장 몫으로 돌아올 지분에 대한 상속재원으로는 충분할 것으로 예상된다.

의료ㆍ헬스케어를 제2의 반도체로?

'포스트 이건희'로 본격적인 시험대에 오른 이재용 부회장으로서는 경영능력을 선보이는 것이 관건이다. 그동안 이건희 회장의 옆에서 실무적인 부분만을 맡아왔지만 이제 경영의 전면에 서게 됐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5대 신수종 사업은 이 부회장이 자신의 경영능력을 입증할 좋은 도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 회장이 반도체와 휴대폰 사업을 통해 지금의 삼성을 만들었다면 이 부회장은 미래 먹거리들에 집중, 미래의 삼성을 키워내야 하는 사명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이 회장은 2010년 당시 태양전지, 발광다이오드(LED), 2차전지, 의료기기, 바이오제약 등을 5대 신수종 사업으로 선정, 2020년까지 23조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물론 그때와 상황은 많이 달라졌다. 시장 상황에 따라 태양전지, LED의 비중이 줄어들었고 2차전지, 의료기기, 바이오제약 등의 비중은 커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이 부회장이 중점을 두고 있는 분야는 의료ㆍ헬스케어 사업으로 보인다. 실제로 지난달 9일 중국에서 열린 보아오포럼에 참석한 이 부회장은 "의료·헬스케어 사업과 IT를 접목하면 엄청난 사업 기회를 잡을 수 있다"며 "삼성은 현재 의료 분야에서 새 가능성을 발견하기 위해 많은 R&D 자원을 투입하고 있다"고 의지를 보였다. 현재 주력사업인 휴대폰, 반도체 기술을 바탕으로 의료ㆍ헬스케어 사업에서도 글로벌 기업으로 자리잡겠다는 포부다.

지금의 삼성을 있게 만든 이건희 회장의 부재가 '포스트 이건희'로 불리는 이재용 부회장의 등을 떠밀어 미래의 삼성을 만들어낼지 재계가 주목하고 있다.

●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출생 1942년 01월 09일

학력 서울대 사범대학 부설고등학교(1961)

일본 와세다대 경제학(1965)

미국 조지워싱턴대 MBA(1966)

서울대 경영학 명예박사(2000)

고려대 철학 명예박사(2005)

일본 와세다대 법학 명예박사(2010)

1966 동양방송 입사

1978 삼성물산 부회장

1979 삼성그룹 부회장

1980 중앙일보 이사

1987 삼성그룹 회장

1998 삼성전자 대표이사 회장

2010 삼성전자 회장 복귀

2012 삼성생명공익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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