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 동결·경제파장 등 후폭풍 예고

특검법, DJ까지 끌어내나
남북관계 동결·경제파장 등 후폭풍 예고

정국을 뒤흔들었던 현대상선의 대북 불법 송금 사건이 특별검사의 수사로 진상이 밝혀지게 됐다. 노무현 대통령은 3월14일 “여야가 특검을 하되 조사대상을 제한적으로 하자는데 의견일치를 이뤘기 때문에 법안을 공포키로 했다”고 밝혔다.

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 춘추관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한나라당이 특검법 수정을 약속했는데 그걸 믿지 않고 거부권을 행사하면 여야 타협의 길이 막힐 것”이라고 전제한 뒤 “조사는 하되 국익에 손상이 없도록 조사범위를 제한하는 것에 여야가 합의를 이뤄 한나라당에 놀랍고 깊이 감사하다”고 야당에 대해 우회적으로 약속이행을 촉구했다.

한나라당과 자민련에 의해 2월26일 국회를 통과한 특검법(남북 정상회담 관련 대북 비밀송금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임명법)은 여당내 신ㆍ구주류의 이견과 북한의 반대의사 표명 등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노 대통령의 전격 수용방침으로 햇빛을 보게 됐다.

노 대통령의 특검법 수용은 대북관계와 여야 문제, 경제에 미칠 파장 등 복잡한 ‘후폭풍’을 예고하고 있다. 벌써부터 북측은 “특검제가 수용될 경우 남북관계를 동결상태로 몰아넣을 것”이라며 “대북 송금문제는 절대로 사법처리 대상이 될 수 없다”고 경고한 바 있다.

물론 노 대통령이 ‘남북대화의 신뢰를 손상하지 않는 선’이란 제한을 두긴 했지만 진행되는 조사과정에 따라 이 부분이 명확히 구분되기 어려운 측면이 많다. 일단 남북관계 전반에 상당히 부정적인 영향이 미칠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여야 문제도 간단치 않다. 한나라당은 당연히 쌍수를 들고 환영의 뜻을 표시하고 있지만 민주당은 신 주류와 구 주류간에 표정 차가 현격하게 나타나고 있다. 문석호 대변인은 논평을 내고 “대통령이 고뇌 끝에 내린 결정으로 존중한다”고 밝혔지만 동교동계 중심의 구 주류들은 충격에 휩싸여 있다.

당 안팎에서는 그동안 잠복했던 신ㆍ구 주류 갈등이 폭발할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당사자격인 김대중 전 대통령은 외부와의 접촉을 차단한 채 아무런 반응을 보이고 있지 않지만 측근들은 “(DJ가) 지금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느냐”며 불편한 심기를 간접적으로 전했다.

SK 분식회계 사건으로 휘청했던 경제상황도 우려되는 부분이다. 현대그룹을 수사하면서 대북송금과는 상관없는 정몽헌 회장의 비자금 내역이라던가 계열기업 간 분식회계 등이 (만약 존재할 경우) 밝혀지기라도 한다면 SK 사태에 이어 우리 경제는 겉잡을 수 없는 회오리를 맞을 수 있다. 여기에 정치인에 대한 정치자금 제공 내역 등도 들어 있다면 덩달아 정치권도 태풍의 눈으로 직행할 수 있다.

일반 국민 반응도 양 갈래로 나뉘고 있다. 노 대통령 지지자들은 “고뇌에 찬 결단”이라고 편을 들고 있지만 호남지역을 중심으로 한 김 전 대통령 지지자들은 “누구 덕에 됐는데 배은 망덕…”이란 극한 말도 서슴지 않고 있다. 실제 한 호남 출신 의원은 “지역 민심이 하도 싸늘해져 내려가기가 겁난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 같은 특검제를 비록 제한적이긴 하지만 선뜻 도입하게 된 배경은 무엇보다 노 대통령이 국내정치 상황을 최우선적으로 감안한 데 있다. “불법사실이 드러난 마당에 마냥 덮을 수는 없다”는 원칙론에다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의 정치적 부담은 내년 총선까지 확대돼 결국 정권 전체의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란 현실론이 작용한 것.

또 ‘신뢰의 정치’ ‘상생의 정치’를 강조함으로써 여야의 중간점에서 초당적으로 국정을 운영하겠다는 의지를 밝히는 모양새도 갖출 수 있는 현실적 이득도 고려됐다. 여기에 어차피 전 정권의 산물이니까 확실하게 털 것은 털고 가자는 계산법도 들어 있다.


4월 중순 수사착수 6월말 수사완료

특검제 수사기간은 준비기간 20일을 제외하면 최초 수사기간은 70일이며 대통령의 뜻에 따라 1차 30일, 2차 20일 연장할 수 있다. 우선 노 대통령이 특검법 시행일로부터 15일 이내에 대한 변협에서 추천한 변호사 2명중 1명을 특별검사로 임명하면 본격적인 수사가 시작된다.

이 경우 3월 중순에 국회의장이 법안을 공포하고 3월 말 노 대통령이 특별검사를 선임하면 20일간의 준비기간을 거쳐 4월 중순께부터 수사에 착수할 수 있다. 수사를 1,2차 연장하게 되면 7~8월에 완료되며 수사가 끝나면 특검은 공소제기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국회를 통과한 특검법의 수사대상은 ▦산업은행의 현대상선 대출금 2억 달러가 정상회담을 전후해 북측으로 비밀 송금된 의혹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 주도의 5억5,000만 달러 송금 의혹 ▦현대전자 스코틀랜드 반도체 공장 매각대금 등 1억5,000만 달러 송금 의혹 등이다.

또 여기와 관련된 청와대와 국가정보원, 금융감독원 등의 방조 의혹도 수사 대상이다. 세부적으로는 산업은행의 현대상선에 대한 4,000억원 대출과정에서의 외압과 7대 대북사업 독점을 위한 대금이 5억달러에 그쳤는 지 여부다. 또 김대중 전 대통령은 환전편의 제공사실을 인지했는 지와 5억달러가 순수 경협자금이었는가 등에 초점이 맞춰질 전망이다.


정·재계 관련인사가 모두 수사대상

수사대상에 앞서 과연 누가 특별검사에 임명되느냐가 관심이다. 공안성격이 짙어 일단 대검 중수부장을 거친 검사장 출신의 중견 변호사가 후보로 꼽힌다. 이 경우 부산고검장 출신의 심재륜, 서울지검장 출신의 안강민, 인천지검장 출신의 제갈융우 변호사가 후보로 거론된다.

또 대검 중수부장을 지낸 정성진 국민대 총장과 청소년보호위원장을 지낸 강지원 변호사도 물망에 오르고 있다.

하지만 후보선상에 오른 심ㆍ안 변호사가 “민감한 사안인 데다 여야의 절충 합의안이 도출되기도 전이라 뭐라 말할 수 없다”며 사실상 고사(固辭)의 뜻을 밝힌 상태. 다른 변호사들도 사안의 중요성을 감안해 선뜻 맡기를 꺼려하고 있어 마땅한 적임자를 찾지 못할 경우 변협 측에서 비검사 출신을 추천할 가능성도 있다.

특검이 결정되면 다음 관심사는 누가 수사대상이냐에 쏠린다. 먼저 박지원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임동원 전 대통령 특보, 김보현 국가정보원 3차장 등은 핵심 당사자이므로 0순위로 조사대상에 오르고 현대 측에서는 당연히 정몽헌 회장과 이익치씨 등이 가장 먼저 특검과 만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어 예상되는 수사대상자로는 산업은행 대출외압과 관련해서 이근영 엄낙용 전 산업은행 총재와 외압시비에 휘말렸던 한광옥 민주당 최고위원, 이기호 전 대통령 경제수석비서관 등이 꼽힌다. 대북송금 편의제공 부분에서는 최규백 전 국정원 기조실장과 김경림 전 외환은행장 및 이연수 부행장이 조사를 받을 것으로 보이며, 비밀송금과 관련해 김윤구 현대아산 대표와 김재수 현대 구조조정본부장 이승렬 현대건설 상무 등도 대상에 오르게 된다.


DJ와 정 회장의 신변도 안심 못해

현행법으로 보면 김대중 전 대통령과 정몽헌 회장의 신변도 안심할 수 없는 처지. 먼저 수사대상이 될 정 회장의 경우 실정법을 원칙대로 적용한다면 도무지 빠져 나갈래야 나갈 수 없는 사면초가 신세다. 국가보안법과 외환관리법에 걸리는 데다 주주의 동의없이 회사자금을 유용한 부분에는 배임죄에 횡령죄까지 폭넓게 적용이 가능하다.

정 회장 측은 대북 송금은 민간기업 차원이 아닌 국가차원의 일이기에 이 같은 정상이 참작되기를 바라고 있다. 또 원안대로 공포되지만 앞으로 여야간 추가 협상이 있을 것으로 예상돼 이 부분에도 기대를 걸고 있는 눈치다. 현대측은 정 회장 개인 신변과 함께 대북 관련 사업에 브레이크가 걸릴 것에 대한 걱정도 함께 하고 있다. “개별 회사 차원의 일이 아닌 국가적 대사에 현대가 고리역할을 한 것”이란 점에 초점을 맞춰 변호할 계획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신변도 위태롭다. 이미 불법적 자금제공 사실을 퇴임 직전 인정한 상태다. 물론 김 전 대통령 본인이 자금제공과 직접 관련이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면 그 파장은 말하나마나 일파만파 확대되는 것이고, 방조나 묵인 정도로 조사결과가 나온다 해도 사법적 처리여부와 관계없이 엄청난 정치적 역풍에 휘말릴 수 있다.

이는 노벨평화상 수상과 관련한 로비설과도 직결되는 문제이므로 김 전 대통령의 도덕성에 치명적인 상처로 대두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만일 김 전 대통령이 대북 송금 문제의 전 과정에서 국가 최고지도자로서의 법적인 테두리를 넘지 않은 선에서 직무를 수행한 것으로 밝혀진다 해도 야당 측 공세는 더욱 불을 뿜을 것으로 전망돼 이래저래 김 전 대통령 입장에서는 불안한 나날이 아닐 수 없다.


여야 추가협상도 산넘어 산

비록 제한적 특검법이란 단서를 달고 있지만 어디까지로 제한하느냐는 현실적 문제도 난제로 남아 있다. 3월14일까지 합의된 내용은 수사기간을 100일로 줄이고 수사과정서 드러난 북한 인사의 익명처리 및 북한계좌의 비공개 등이다.

민주당은 여기에다 수사대상의 축소와 함께 김 전 대통령 등 핵심 인사의 면책요구를 추가로 요구하고 있다. 이 부분은 동교동계와 민주당 구 囹廈“?사활이 걸린 문제로 수사대상을 국내 자금 조성에 국한하고 북으로의 송금과정을 제외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호기(好機)를 맞은 한나라당이 호락호락 응해줄 리가 없다. 대선패배이후 문책론과 맞물려 당 전체가 노-소 갈등으로 갈라질대로 갈라져 있는 상태다. 흐트러진 전열을 재정비하기에 바쁜 한나라당 입장에서는 상대방 사정을 생각할 여지가 없는 상태다. 특검제를 계기로 당의 결속을 꾀하는 동시에 이 분위기를 내년 총선까지 이어가려는 속내가 잔뜩 들어 있다.

때문에 민주당은 한나라당으로부터 선심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민주당 구 주류 측이 노 대통령에게 거부권을 행사하라고 통사정하다시피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염영남기자


입력시간 : 2003-10-01 10:47


염영남기자 libert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