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 괴문서 파문합종연횡에 변화조짐, 당의장 경선기상도 안개 속으로

정동영 독주에 제동 걸리나
열린우리당 괴문서 파문
합종연횡에 변화조짐, 당의장 경선기상도 안개 속으로


당 의장 경선을 위한 전당대회(1월 11일)를 눈앞에 둔 열린우리당이 때아닌 '괴문서'(예비 경선 자료) 파문에 휩싸여 있다. 절대 비밀에 부쳐져야 할 예비경선(12월 29일) 결과가 일부 언론에 보도되면서 당권 주자를 중심으로 당 세력 간 신경전이 과열되고 있는 것이다. 후보간 합종연횡이 당 의장 경선의 주요 변수로 떠오른 시점에서, 괴문서 파문이 또 다른 변수로 등장한 것이다.

유출 의혹을 받고 있는 괴문서에 따르면 예비 경선을 통과한 김정길 전 행자부 장관과 신기남 유재건 이부영 장영달 정동영 의원, 그리고 이미경 허운나 전 의원 등 8명 후보 가운데 정동영(68표) 이부영(66표) 신기남(58표) 후보가 각각 1· 2· 3위를 차지하고 장영달 김정길 유재건 후보는 선두권에서 다소 떨어진 수준이라는 것이다.

이는 예비선거에서 선두권에 진입한 것으로 알려진 김정길 장영달 후보가 후순위로 밀린 것으로 나타나 '의도적' 유출이 아니냐는 의혹과 함께 벌써부터 후보 간 합종연횡에 변화조짐이 일고 있다. 이에 따라 우리당 당의장 경선 기상도도 수정이 불가피하게 됐다.

예비선거에 당선된 8명의 당의장 후보가 당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고영권 기자

정동영 “어떠한 연대도 없다” 자신감

당 의장 경선에 나설 8명의 예비 후보가 선출됐을 때 정가에서는 정동영 후보의 독주 여부와 이부영 김정길 후보의 견제 및 선전 가능성이 최대 관전 포인트로 주목을 받았고 이러한 분석은 아직 유효하다는 게 중론이다. 정동영 후보는 유력한 경쟁 주자로 거론된 김근태 대표가 예선전에 불참함에 따라 당 의장 경선에서 독주가 예상됐다. 실제 당 안팎에선 예비선거에서도 정 후보가 1위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 후보는 민주당 출신으로 기존 민주당표와 호남표, 그리고 우리당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개혁세력의 지지를 받게 돼 가장 광범위하고 안정적인 표를 확보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무엇보다 총선 승리를 위해 정 후보만한 ‘간판’이 없다는 게 당 안팎 분위기라는 전언이다. 정 후보도 그러한 분위기를 활용, “당 대표가 누가 되느냐에 따라 총선이 좌우된다”며 이른바 ‘정동영 대세론’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차기 대권주자 이미지를 앞세워 전당 대회에서 1위를 차지한다는 전략이다. 정 의원측은 “어떠한 연대 없이도 당 의장에 당선될 것”이라며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예비 후보들 중엔 여성 후보가 우호적이고 특히 영남의 한 축인 TK(대구· 경북)쪽에서 정 후보를 지지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정 후보가 오래 전부터 TK 지역에 공을 들여온 데다 이 지역의 키를 쥐고 있는 이강철 중앙위원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게 배경이다. 그렇게 되면 정 후보는 ‘영남 후보 단일화’라는 부담을 상당 부분 감쇄시키는 효과도 거둘 수 있다. 반면 ‘세대교체’ 문제로 당에 영향력이 있는 김원기 의장을 비롯한 중진들로부터 미운털이 박힌 것과 개혁파인 신기남 후보, 호남 출신인 장영달 후보 등과 지지층이 중복되는 것이 부담이다.

또한 영남표가 김정길 후보에게 집중되거나 수도권의 이부영 후보와 영남권의 김 후보가 손을 잡을 경우 정 후보의 당 의장 등극은 물건너갈 수도 있다. 정 후보가 지난 4일 제주에서 열린 첫 TV토론회서 “후보간 합종연횡이나 계파와 파벌을 이용해 선거전에 이용하는 것은 열린우리당 창당 이념에 맞지 않다”고 한 것은 두 후보의 연대를 겨냥한 측면이 강하다.

이부영ㆍ김정길 대항마로 부상

최근 정동영 후보의 대항마로 부각되고 있는 인사는 이부영 후보다. 이 후보는 개혁당 출신의 김원웅 의원이 예선에서 탈락하면서 민주당 외 개혁 세력를 대표할 수 있게 됐고, 최대 표밭인 수도권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당 의?후보로 급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이 후보는 총선 승리가 수도권에 달려있고 범개혁 세력의 지지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이부영 간판’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당의장 경선에 나선 정동영(오른쪽), 신기남의원이 악수하고 있다. 이종철 기자

이 후보측은 “김원기 의장을 비롯한 민주당 중진들이 우호적이고 김근태 대표, 장영달 의원 등 민주화운동세력이 지지할 것으로 본다’며 “기존의 개혁 세력표를 감안하면 해 볼 만한 게임”이라고 낙관했다. 나아가 김정길 후보와 연대해 영남표를 이끌어 낸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계산이다.

반면 이 후보의 지기반이 불확실하다는 반론도 만만찮다. 우리당의 한 초선 의원은 “이 의원이 두루 넓기는 하지만 김근태 대표나 정동영 의원처럼 확실한 깊이를 갖고 있지는 않다”면서 “그의 역량에 따라 ‘대박’을 터트릴 수도 있고, ‘쪽박’을 찰 수도 있다”고 말했다. 우리당에서 ‘비주류’란 점도 이 후보에게 부담이라는 분석도 있다.

김정길 후보는 ‘정동영 대 김근태’라는 빅 매치가 무산된 뒤 새로운 흥행 카드로 주목받고 있다. 예비 경선에서 영남 주자인 김태랑 전 의원과 김두관 전 행자부 장관이 낙마, 자연스럽게 영남의 단일 후보가 되면서 정동영 후보의 파트너로 부각되고 있다. 김 후보는 지난 4일 제주 합동토론회에서 "당 대표가 되겠다는 분들이 민주당과 형제당이라든지, 안정 의석이 안 될 경우 공동 여당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전장에서 장수가 졌을 때 어떻게 하겠다고 미리 말해 사기를 떨어뜨리는 것"이라며 정동영 후보를 겨냥해 은근히 양강 구도를 기대하는 모습을 보였다.

김 후보는 영남 선거인단이 수도권 다음으로 많은 35%에 이르고, 4ㆍ15 총선에서 PK(부산· 경남)지역이 최대 승부처로 떠오르면서 김 후보에 대한 기대도 상승하고 있는 상황이다. PK 지역에 일정 지분을 갖고 있는 김혁규 전 경남지사가 8일 입당한 것도 김 후보에게 큰 힘이 되고 있다. 또한 노무현 대통령, 김원기 의장 등과 통추(국민통합추진회의)를 결성(96년말)하는 등 민주당 출신 중진들과 인연이 깊은 것도 김 후보의 강점이다. 특히 수도권의 이부영 후보와 연대할 경우 당 의장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반면 김 후보가 현실 정치에서 떠나있어 당내 인프라가 취약하고 총선 ‘간판’이란 측면에서 정 후보에게 뒤진다는 지적이 많다. 또한 정 후보는 호남 출신이지만 전국적인 지명도를 갖고 있어 김 후보의 ‘영남’ 메리트가 그렇게 효용적이지는 않다는 분석도 있다.

이합집산 부추긴 괴문서 파문

괴문서 파문은 이합집산을 부추겼다. 후순위에 속한 유재건 후보는 진상이 밝혀지지 않을 경우 사퇴할 수 있다는 의사를 밝혔고 장영달 김정길 후보는 격앙된 반응을 보이며 연대 가능성을 시사했다. 반면 최대 관심사였던 ‘이부영-김정길’ 연대 가능성은 물건너갔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괴문서에 따르면 당 의장 경선이 ‘정동영 대 이부영’의 대결로 돼 있어 이부영 후보와 김정길 후보 모두 양보하기 어렵게 됐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정가에서는 괴문서 파문으로 외견상 이부영 후보가 득을 본 것 같지만 ‘이부영-김정길’ 연대 가능성이 어려워져, 결국 정동영 후보가 최대 수혜자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때문에 정가 일각에서는 정 후보측에 의혹의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그러나 정 후보가 당 의장 경선 레이스에서 아직 선두를 유지하고 있다는 게 당 안팎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박종진 기자


입력시간 : 2004-01-08 16:21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