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생명 걸고 전선 확대, 호남맹주·총선 겨냥한 승부수

한화갑, 정권과 전면전 '檢제치고… 盧와 정면승부'
정치생명 걸고 전선 확대, 호남맹주·총선 겨냥한 승부수

‘‘한풍(韓風)’vs ‘노풍(盧風)’의 한판 승부’

최근 한화갑 전 민주당 대표에 대한 영장집행을 놓고 불거진 민주당과 여권의 전면전을 두고 하는 말이다. 지난 3일 민주당은 호남의 심장부인 광주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고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이하 우리당)을 싸잡아 공격하면서 전의를 불태웠다.

2년 전 광주는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노풍(盧風)’을 점화, 오늘의 노무현 대통령을 탄생시킨 진원지였다. 그런 광주에 최근 민주당과 우리당 간에 한랭전선이 흐르고 있는 것은 4.15 총선과 무관하지 않다.

누구나 동의하듯이 이번 총선에서 호남표의 향배에 따라 민주당은 생사가 갈린다. 호남표는 물론 우리당의 제1당 여부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상황이 이러함에 한 전 대표에 대한 검찰의 영장 집행은 설령 법적 절차에 문제가 없더라도 총선을 앞둔 민주당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할 수 있다. 한 전 대표는 ‘리틀DJ’로 일정 부분 호남의 대표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한 전 대표에 대한 영장청구를 둘러싸고 ‘정치적 음모론’이 제기되고, 이에 대해 우리당과 검찰이 강력하게 반발하면서 ‘한화갑 파문’이 총선에 미칠 영향은 더욱 커졌다.

▼ “호남 죽이기”민주당 격앙

‘한화갑 파문’은 한 전 대표에 대한 검찰의 영장청구가 직접적인 원인이 됐지만 민주당은 여권과 검찰이 공모한 이른바 ‘피의 목요일(1월29일)’과 연장선상에 있다고 주장한다. 즉 한 전 대표가 검찰의 조사를 받은 1월29일, 동교동계의 좌장인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이 중형을 선고받고, 박광태 광주시장이 이례적으로 법정구속된 것 등은 총선을 앞두고 여권이 검찰을 앞세워 ‘호남죽이기’에 나섰다는 것이다. 또한 이날 민주당 사무총장이었던 박상규(한나라당) 의원과 전남 나주 출신인 민주당 박병윤 의원 등 호남 연고 의원들과 기업들이 잇따라 검찰의 소환, 조사를 받은 것과 ‘피의 목요일’ 다음날인 1월30일 우리당 지도부가 광주를 방문해 민주당을 비난하고 박태영 전남지사 영입을 운운한 것 등도 같은 맥락이라고 덧붙였다.

논란이 되고 있는 ‘한화갑 파문’은 한 전 대표가 2002년 민주당 경선 당시 하이테크하우징과 SK그룹 등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 10억5,000만원을 받은 혐의에 대해 검찰이 구속영장을 발부한 것이 빌미가 됐다. 그러나 민주당은 검찰이 한 전 대표의 혐의를 파악한 시점이 지난해 10월인데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영장청구를 한 점, 경선자금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노 대통령과 정동영 의장에 대한 수사를 하지 않은 점, 그리고 한 전 대표를 우리당으로 빼돌리기 위한 공작을 한 점 등을 근거로 검찰수사의 형평성과 정치보복설을 문제삼았다.

그 가운데서 한 전 대표에 대한 ‘표적수사’ 부분은 지난 1월30일 안대희 대검 중수부장이 “손길승 SK 그룹 회장에게서 한 의원에 대한 경선자금 제공 진술을 확보한 시점이 지난해 10월이지만 중간 전달자기 특정되지 않았다가 최근 김원길 의원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구체적으로 확인하게 됐다”고 밝혀 의혹의 상당 부분이 덜어졌다는 시각이다.

따라서 정가에서는 ‘한화갑 파문’의 본질이 총선에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지난 2일 검찰의 영창청구가 무산되고 임시국회라는 방탄이 둘러진 뒤 민주당 안팎에서는 “역시 한화갑이다”라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한 전 대표가 위기의 민주당을 구했고, 총선에서 선전할 수 있다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것이다. 강운태 사무총장은 “이번 일로 민주당 지지도가 3% 이상 상승했다”면서 “앞으로 호남과 수도권에서 지지층이 결집하면 총선을 낙관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한 전 대표가 검찰로부터 영장청구를 받을 때만 해도 “총선은 끝장”이란 분위기가 팽배했다. 민주당의 텃밭이라는 호남에서 우리당과 호각세를 이루고 호남표를 견인할 수 있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남인 김홍일 의원이 탈당한 터에 민주당 회생을 위해 승부수(지역구 수도권 이동)를 던진 한 전 대표마저 치명타를 입을 경우 총선에서 호남자민련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 1일 구속영장이 발부된 한화갑 민주당 의원에 대한 영장 집행을 위해 검찰 수사관들이 여의도 민주당사로 들어가려 하자 당원들이 막아서고 있다. 최흥수 기자

한 전 대표는 1월29일 하루종일 검찰조사를 받을 때만 해도 “내일 저녁은 서울구치소에서 자게 될지도 모르겠다. 반성과 교양을 쌓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며 정치무대를 떠날 각오를 내비쳤다. 그러나 밤늦게 당사로 돌아온 한 전 대표는 “여권의 영입시도를 뿌리치자 보복수사를 하는 것 같다”는 폭탄발언을 해 여권과의 전면전을 선언했다. 다음날에는 “열린우리당 김원기 전 의장이 한 현역의원을 나에게 보내 ‘민주당을 탈당해 교섭단체를 구성한 뒤 통합하자’고 했다”며 여권의 ‘민주당 죽이기’ 실태를 폭로했다.

한 전 대표는 이날 오전 기자회견을 갖고 “노무현 대통령을 포함해 여야 당내 경선에 참여한 모든 사람의 경선자금을 수사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열린우리당 입당 권유를 뿌리친 데 대한 ‘정치보복’밖에 안 될 것이다”고 주장해 직접 노 대통령을 겨냥하기도 했다.

정가에서는 ‘한화갑 파문’이후 한 전 대표가 민주당 안팎에서 확고한 위상을 차지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는 한 전 대표가 의도하든 않았든 민주당의 뿌리인 호남 맹주임을 재확인시켜주었고, 실질적인 민주당 대표라는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다.

▼ ‘한화갑의 힘’ 확인 계기

‘한화갑 파문’은 당내 파워게임에도 영향을 줘 ‘호남물갈이’를 주도했던 추미애·김영환·장성민 등 소장그룹의 입김이 약해지고 강운태·김경재·이낙연 등 중도파의 입장이 강화된 것이다. 물갈이 파문이 가라앉은 대신 ‘한화갑의 힘’은 뚜렷하게 각인된 것이다.

또한 한 전 대표의 대여 투쟁은 우리당이 정동영 체제로 되면서 정 의장이 무주공산 상태인 호남의 맹주로 등장하려는 것을 견제한 효과도 있다는 분석이다. 공교롭게도 정 의장은 한 전 대표에 대한 검찰 조사가 있던 다음날 광주를 찾아 본격적인 호남 주도권 잡기에 나서고, 박태영 전남지사의 입당을 공개적으로 주장했다. “정 의장이 비어있는 ‘호남 주인자리’를 차지하려 한다”는 분석이 나올 만한 정황이다.

그러나 ‘한화갑 파문’이 총선 때까지 민주당에만 유리하게 작용할 지는 미지수다. 검찰이 일단 한발 물러섰지만 아직 칼자루를 쥐고 있어 언제든 부메랑이 될 수 있다. 또한 우리당의 호남 공략이 지속되고 있어 민주당이 ‘정서적 지지’에 기대 호남을 수성할 수 있을 지도 의문이다. 한 전 대표가 과연 호남의 맹주인지, 그리고 민주당의 리더인지는 아직 시험대에 올라있는 상황이다.

박종진 기자


입력시간 : 2004-02-03 17:39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