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중출마 불사 의지, 대선파일 공개땐 정국 뒤집어질 수도

정대철 의원, 불면의 밤 "아! 배신의 정치여"
옥중출마 불사 의지, 대선파일 공개땐 정국 뒤집어질 수도

"건강은 괜찮으시고, 하루에 14~15시간씩 독서를 하면서 지내요. 성경은 꼭 읽고요. 할 말은 많지만 하느님이 심판해 주실 겁니다.”

경기 의왕시 포일동 서울구치소에 수감돼 있는 열린우리당(이하 우리당) 정대철 의원을 거의 매일 면회하는 부인 김덕신씨는 그의 결백을 믿고 있다. 김씨가 전하는 정 의원의 일과는 단조롭다. 정해진 구치소내 일정이 끝나면 방(독방)으로 돌아와 매일 책 한권 정도 읽는다. 책의 종류도 다양하다고 한다.

정 의원은 1월10일 검찰에 의해 강제구인된 뒤 수감생활 초기에는 마음을 다스리려는 듯 주로 성경만을 읽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측근들이 건네준 무협지를 받아 정치권의 암투를 연상케하는 ‘무림의 세계’에 흠뻑 빠지기도 했다. 한 측근은 그가 무협지에 손을 댄 것은 현실에서 벗어나 마음의 짐을 잠시 내려놓기 위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정 의원의 현 심정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 버림받은 특 1등공신

정가에서는 정 의원을 노무현 대통령을 만드는데 큰 공을 세우고도 버림받은 ‘토사구팽(兎死狗烹)’의 대표적인 예로 꼽는다. 정 의원이 독서를 통해 끓어오르는 심정을 제어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정 의원은 대선 직후 정치권에 파문을 불러온 새 정부의 ‘살생부’ 사건에서도 ‘특1등 공신’으로 분류됐다. 2002년 9월 노무현 후보가 당 안팎의 흔들기에 비틀거릴 때 민주당 중앙선대위 위원장을 맡아 선거전략을 총괄하고, 보호막 역할을 자임한 탓이다. 민주당이 8·8 재보선에서 참패한 뒤 당내 반노, 비노 세력이 노 대통령의 후보직 사퇴를 요구하자 8인 모임을 결성해 노무현을 지켜낸 끝에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정 의원은 대선후 사퇴한 한화갑 대표에 이어 민주당 대표자리에 오르면서 민주당의 간판으로 우뚝서기도 했다. 그러나 순탄할 것 같았던 그의 위상은 신당 창당을 놓고 노 대통령과 갈등을 일으키면서 내리막 길을 걸었다. 분당을 통한 신당 창당에 반대 입장을 고수했던 정 의원은 이른바 ‘윤창렬 게이트’에 연루돼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주)굿모닝시티 대표이사 윤창열로부터 건축 허가를 신속히 받을 수 있도록 중구청장에게 청탁해 달라는 조건으로 4억원의 뇌물을 수수한 혐의로 영어(囹圄)의 신세가 된 것이다.

정 의원은 하루에 3~4명의 방문객을 맞고 있다고 한다. 그를 찾는 이는 주로 전·현직 의원들과 친구 등 지인들. 정치인들은 특별면회를 통해, 지인들은 일반면회를 통해 그의 얼굴을 맞댄다. 현역 의원 중에는 정 의원의 경기고 후배인 열린우리당 김근태 원내대표와 평소 정 의원과 ‘형· 아우’로 부를 정도로 가까운 김원기 의원이 자주 찾는다. 특히 두 의원은 정 의원이 체포되기 전날 저녁을 같이 했던 것이 ‘마지막 만찬’이 돼 감회가 더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근태 대표는 지난해 7월 윤창렬 게이트와 관련해 정 의원에 대해 영장이 청구됐을 때 “정 대표가 사법처리된다면 우리나라 정치인 중 최소한 3분의 2는 사법처리돼야 할 것”이라며 정 의원을 위로한 적이 있다. 김 대표는 지난 7일에도 임채정·김덕배 의원과 함께 정 의원을 면회했다. 김 대표는 “전보다 여유가 있어 보이고, TV 등을 통해 세상 돌아가는 소식도 많이 접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정치에 관한 얘기는 거의 없고 의례적인 방문이라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지역구(서울 중구) 공천 문제에 대해서도 “부인이 옆에 있어 얘기할 상황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김원기 의원이 정 의원을 면회한 것은 긴급 체포 일주열여 뒤인 1월16일. 아직 포한을 품고 있던 정 의원이 지난 일을 회고하면서 북받치는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눈물을 흘려 마음이 아팠다고 전했다. 정 의원과 ‘술친구’이기도 한 김 의원은 “내가 만난 정치인 중에 인간적으로 정 의원만큼 순수한 사람이 없는데 그런 고생을 하니 안타까울 뿐”이라고 말했다.

△ 정권의 ‘거리두기’에 서운함

청와대 인사중에서는 정 의원의 절친한 고교 후배인 유인태 청와대 정무수석이 1월18일 면회를 가 안부를 묻고 위로의 뜻을 전달했다. 이때 정 의원은 노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해 기대와 염려를 피력하는 등 한결 의연한 모습을 보였지만 냉정한 ‘거리 두기’에 대해서는 서운함도 나타냈다는 후문이다.

정 의원의 심경은 역시 오랜 측근들이 찾아왔을 때 드러내곤 한다. 민영삼 민주당 부대변인이 찾았을 때(1월27일) 정 의원이 신세 한탄과 함께 현실 정치에 대한 큰 관심도 나타냈다는 것이다. 민 부대변인에 따르면 한나라당 서청원 전 대표, 김영일 의원, 우리당 이상수 의원이 자신과 같은 신세가 됐다며 ‘정치 무상’을 토로했다고 한다. 또한 우리당과 민주당과의 관계 등 총선과 관련해 매일 신문을 보면서 각별한 관심을 쏟고 있다고 한다. “민주당이 조순형 효과로 반짝했는데, 지금은 우리당이 정동영 효과를 보고 있으나 이 상태로 가면 한나라당만 유리하게 하니 2월 중순 이후까지 이 상태가 지속되면 연합공천을 해야 한다는 게 정 의원의 생각이라는 게 민 부대변인의 설명이다.

정 의원은 현재 서울구치소에 수감 중인 7명의 의원(한나라당 김영일· 최돈웅· 박주천· 박명환 의원, 민주당 박주선· 이훈평 의원, 열린우리당 정대철 의원) 가운데 구치소 생활에 나름대로 잘 적응하고 있는 편이이라고 한다.

△ 핵폭탄성 발언에 정가 촉각

그러나 정 의원이 한평 남짓한 독방에서 노 정권에 대한 ‘사감’(私感)을 완전히 정리했는지는 알 수 없다. 최근 정 의원을 면회한 한 측근은 “정 의원이 수감되기 바로 전날 군 입대 문제로 미국 유학 중에 귀국한 둘째 아들 얘기를 하면서 ‘반드시 명예를 회복하겠다’는 말을 했다”고 전했다. 정 의원이 지역구인 서울 중구에 공천을 신청해 옥중 출마도 불사하겠다고 벼르는 것도 그와 무관하지 않다는 게 측근의 설명이다.

하지만 정 의원에 대한 공천 여부는 우리당 소장파를 중심으로 비리연루 의원에 대한 공천반대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어 불투명한 상황이다. 정가 일각에선 정 의원이 노 대통령의 ‘10분의 1’ 발언과 관련해 대선자금에 관한 핵폭탄성 파일을 쥐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정 의원은 지난해 7월, 검찰의 사정 칼날이 목까지 접근해 오자 ‘대기업 200억원 지원’ 카드를 슬쩍 꺼내 정국을 긴장시킨 바 있다. 당시 노 대통령은 ‘실언’이라고 했지만 정 의원의 ‘대선자금 200억원’ 발언은 결코 해프닝이 아니라는 게 지배적인 시각이었다. 때문에 정 의원은 주변 판세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갈 경우 ‘대선 파일’을 공개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차가운 총선 정국이 구치소에 앉아 있는 정 의원에게는 ‘분노의 계절’이 될 것인지 두고 볼 일이다.

박종진 기자


입력시간 : 2004-02-10 15:22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