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살아나는 텃밭바람에 盧風 주춤, 한나라·우리당 'PK 전쟁' 가속화

'안상영 후폭풍' "다 된 밥에…" 여권 전전긍긍
되살아나는 텃밭바람에 盧風 주춤, 한나라·우리당 'PK 전쟁' 가속화

‘안상영 후폭풍’이 심상치 않다. 지난 4일 새벽 자살한 안상영 부산시장 파문이 두 달 앞으로 다가온 4.15 총선에 묘한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여권이 이번 총선의 최대 승부처로 삼은 부산·경남(PK) 지역은 물론, 민주당의 기반인 호남에도 이상 기류가 흐르면서 총선 판도 전체에 변화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안상영 후폭풍’은 한나라당과 민주당에게는 호재요, 열린우리당에게는 악재다. 이미 그 바람은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당장 안 시장의 자살이 ‘자연인’의 죽음에서 ‘정치적’죽음으로 해석되면서 기세등등했던 ‘노풍(盧風)’이 주춤하는 모습이다. 반면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텃밭 바람’은 다시 힘을 얻어가는 상황이다.

한나라당 부산시지부의 한 관계자는 “열린우리당의 (한나라당)추격 기세가 거셌는데 안 시장 문제로 지역 민심이 싸늘해지면서 자체 조사결과 한나라당 지지율이 4~5% 가령 상승했다”고 말했다. 한 유력 여론조사전문기관의 대표는 “한화갑 의원과 박광태 광주시장에 대한 표적수사 논란과 관련해 민주당이 지난 3일 광주에서 집회를 열었을 때 만해도 호남표가 유동적인 성향을 보였는데 안 시장 문제가 불거지면서 민주당쪽으로 결집하는 양상을 보였다”면서 “총선이 한나라당과 우리당의 ‘양강 구도’흐름에서 변화를 나타냈다”고 말했다.

열린우리당도 ‘안상영 파문’의 후폭풍을 인정하고 있다. 당 일각에서는 “검찰이 총선을 망치고 있다”면서 노골적으로 불만을 털어놓기도 한다. 한 고위당직자는 “검찰이 한화갑 의원에 대한 영장청구를 미숙하게 처리하고, 안 시장을 무리하게 수사해 자살에 이르게 함으로써 영호남의 지역장벽을 더 높였다”고 말했다. 그는 “마산 MBC가 최근 PK 지역 유권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결과 노무현 대통령의 고향인 김해에서 한나라당 박희태 의원(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 김두관 전 행자부장관의 지지율이 거의 비슷하게 나타나는 등 PK 지역 여러 곳에서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이 박빙 승부를 벌이고 있는데 안 시장 사건으로 된서리를 맞았다”고 말했다.

정가에서는 ‘안상영 파문’을 계기로 한나라당과 우리당 간의 ‘PK 전쟁’은 더욱 거칠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초기 ‘PK 전쟁’에서는 여권의 일방적 공세에 한나라당이 이를 막는 데 그쳤던 게 사실. 전면적인 전쟁 양상은 아니었던 것이다.

△ 노무현 vs 최병렬 생존게임 확전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다르다. ‘안상영 후폭풍’을 등에 업은 한나라당은 제 2라운드에서는 ‘올인 승부’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영남의 총선 결과에 따라 당의 사활이 갈리게 되는 당연한 이유에다, ‘안상영 후폭풍’을 전국으로 확산시킬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열린 우리당도 한나라당의 영남 아성을 무너뜨리지 않고서는 총선을 이길 수 없는 만큼 전력 투구를 할 것이다. 결국 ‘PK 전쟁’은 노 대통령과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 나아가 여권과 한나라당과의 ‘생존 게임’으로 확전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여권의 총선에 대한 집착은 상상을 뛰어넘는다. 2002년 대선 승리 직후 노 대통령이 “총선에서 지면 ‘반(半)통령’”이라며 총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여권은 바로 그 때부터 일찌감치 총선 준비에 나선 것으로 보는 게 옳다. 이와 관련 노 대통령의 한 386 측근은 “당시 총선 전략은 정치권과 정치권 밖의 두 방향으로 수립됐다”면서 “정치권 전략은 ‘신당 창당’과 제1당이 되기 위한 ‘총력전’으로, 정치권 밖의 전략은 ‘시민단체 활용’이 핵심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신당이 창당할 경우 구민주당은 호남당으로 남을 가능성이 높고, 자민련은 무시해도 좋을 정도이기 때문에 ‘영남’이 총선 전략의 핵심 이었다”이라고 덧붙였다. 최근 영남을 겨냥한 여권의 ‘동남풍 전략’이 오래 전부터 수립돼 있었다는 것을 방증하는 언급이다.

‘동남풍 전략’은 PK, 특히 노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부산을 시발로 낙동강을 넘어 대구, 서울까지 ‘노풍’을 재연시키겠다는 것으로 사실상 영남에 총선 승부를 건다는 전략이다. 실제 여권은 영남의 유력 인사들을 영입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는 한편, 총선에서 경쟁력 있는 장·차관, 지자체장 등을 차출해 후보 대상으로 낙점해왔다.

초기 ‘동남풍 전략’은 PK 지역에서 광범위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김혁규 전 경남지사와 안상영 부산시장의 영입에 집중됐다. 이를 위해 노 대통령까지 나서 이들을 청와대에 초청하거나 PK 지역 방문 때마다 만나 신당 합류를 요청했는가 하면, 현지에서는 노 대통령의 부산지역 386 핵심인 정윤재 우리당 부산 사상구 위원장이 이들을 접촉, 노 대통령의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했다. 그 결과 김 전 지사는 지난해 12월 한나라당을 탈당, 우리당에 입당했지만 안 시장은 끝내 한나라당에 남았다.

정가 일각에서는 안 시장 또한 신당 합류를 고려했지만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와의 50년 ‘우정’ 때문에 한나라당에 잔류했다는 얘기가 있다. 즉, 안 시장과 최 대표는 부산고 1학년 때 인연을 맺은 뒤 70년대 말 서울 강남구 H 아파트에 함께 거주하는 등 ‘50년 지기’로 지내왔으며, 노 대통령의 협조 요청에 신당쪽으로 기울었다가 이를 알고 달려온 최 대표의 설득에 결국 ‘우정’을 택했다는 것이다.

△ 여권 '동남풍 전략' 수정 불가피

그러나 노 대통령과 최 대표의 ‘PK 전쟁’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여권의 지자체장 공략이 총선 환경을 유리하게 재편하기 위한 전술이라면, 승산 있는 후보 공천은 한나라당과의 정면 승부를 선언한 것이다. 노 대통령 측근 중 부산에서 이해성 전 청와대 홍보수석(중·동), 김정길 전 행자부장관(영도), 성재도 전 청와대 정무행정(부산진을), 박재호 전 청와대 정무2비서관(남구), 김기재 전 의원(연제), 정윤재 우리당 사상구 위원장(사상) 등이 이미 출사표를 던졌고, 신상우 민주평통수석부의장도 총선 출마를 위해 지난 6일 사표를 냈다. 이밖에 이태일 전 우리당 공동의장(사하을), 이헌만 전 경찰청차장(사하갑), 조영동 국정홍보처장(부산진갑) 등의 출마가 기정사실화하고 있고, 빅카드인 문재인 민정수석도 차출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상황이다.

정가 일각에서는 노 대통령이 4.15 총선을 통해 국정운영의 확실한 지지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우리당을 명실상부한 ‘노무현당’으로의 개편을 시도하고 있고, 그 방법으로 영남권 인사들이 우리당을 접수해 ‘노무현당=영남당’으로 가는 그럴듯한 시나리오도 제기되고 있다. 이에 따르면 부산 연제에 출마하는 김기재 전 의원이 총선에서 당선 된 뒤 6월에 실시되는 부산시장 보궐선거에 출마, 승리할 경우 김혁규 전 지사와 함께 PK를 노 정권의 확실한 지지기반으로 구축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한나라당에서는 최병렬 대표가 부산에 출마해 ‘낙동강 전선’을 사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또한 최근 부산 연제 공천이 유력한 후보로 떠오른 김희정 부대변인의 경우 김기재 전 의원에 비해 경쟁력이 약해 법조인 H씨로 내정됐다는 소문도 있다.

‘안상영 파문’이후 PK 지역은 노 대통령과 최 대표의 대결을 넘어 ‘텃밭’을 유지하려는 한나라당과 새로운 국정운영의 전진기지로 삼으려는 여권 간의 생사를 건 전쟁이 점차 치열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박종진기자


입력시간 : 2004-02-10 15:42


박종진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