內訌 소용돌이-방향타 잃은 난파선 형국, 총선 코앞에 두고 '헛발질'만 거듭극에 달한 리더십 부재, 최 대표에 재창당 수준의 결단 압력

한나라당, 여기저기서 판 깨지는 소리
內訌 소용돌이-방향타 잃은 난파선 형국, 총선 코앞에 두고 '헛발질'만 거듭
극에 달한 리더십 부재, 최 대표에 재창당 수준의 결단 압력


“한나라당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최근 서울 여의도 한나라당사에서 만난 한 당직자는 대뜸 이렇게 묻고는, 당의 처지에 대한 절망적 심경을 마구 토로했다. “폭탄을 맞아도 지금 한나라당의 모습보다는 나을 것이다. 완전히 아노미 상태다. 끝이 보이지 않는다. 당 지도부와 의원, 당직자들은 엇박자 놀음에만 열중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 총선을 치를 수 있겠나. 내가 일반 국민이라도 한나라당을 거들떠보지도 않겠다…”

한나라당이 4ㆍ15 총선을 목전에 두고 걷잡을 수 없는 내홍의 소용돌이 속에서 휘청대고 있다. 안개 속에서 방향을 상실한 채 표류하는 난파선의 형국이다. 불법 대선자금 수사로 인한 ‘차떼기 당’ 이미지로 지지율이 급락한 채 바닥을 기고 있는 와중에서도 헛발질만 연발한다. 당내에서는 “창당 이후 최악의 위기”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자연히 당을 이끌고 있는 최병렬 대표도 백척간두의 벼랑 끝 위기에 서 있다.

△ 지도부 리더십 부재가 내홍 확대재생산

한나라당의 위기 상황은 한ㆍ칠레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처리 무산과 서청원 전 대표 석방요구 결의안 가결에 따른 후폭풍이 도화선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그 동안 축적돼 온 당 내부의 문제가 이를 통해 폭발했다는 것이 더 정확할 것 같다. 지난해 6월 출범한 최병렬 대표 체제의 리더십 부재와 미숙한 정국대처 방식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최 대표가 지난해 대표 경선 당시 당의 단합과 개혁, 강력한 리더십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걸었는데, 정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다. 대표가 되면 차기 대선주자를 키우겠다던 ‘인큐베이터론’은 어디 갔느냐?” 한 재선 의원은 “최 대표가 지난 8개월간 말만 번지르르하게 했을 뿐 실천으로 보여준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비판했다. 국민에게 감동을 주기는커녕 변화의 몸짓과 비전을 보여주지 못한 채 아예 무관심의 대상으로 전락시켰다는 주장이다.

당내 최대 갈등 요인 중 하나인 공천 문제만 해도 그렇다. 최 대표가 “나를 믿고 지켜봐 달라”며 과감한 개혁공천과 환골탈태를 누차 외쳤지만, 절반 가량의 공천작업이 이뤄진 현재까지의 결과를 놓고 보면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는 게 일부 의원들의 주장이다. 공천의 기준과 원칙에 대한 논란과 갈등도 끊이지 않고 있다. 김성호 열린우리당 의원이 당내 경선 패배에 승복해 신선한 감동을 준 것과는 사뭇 대비된다.

최 대표 등 일부 지도부 인사들이 서울 강남 등 손쉬운 선거구로 꼽히는 지역에 출마하려는 움직임도 의원들의 반발을 부르고 있다. 이재오 전 사무총장은 “지도부가 양지만을 찾고서 다른 사람들에게 물러나라고 한다면 설득력이 없다”고 비판했다. 부산지역의 한 의원은 “공천심사위는 공정한 심사를 강조하고 있지만 사(私)가 끼어있다는 의구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 “당의 정체성 상실이 더 무섭다”

서 전 대표 석방안 처리에 대한 최 대표의 애매모호한 대응도 연일 도마에 오르고 있다. 여론의 따가운 역풍을 맞을 것을 뻔히 알면서도 손을 놓고 있다가 정작 화(禍)를 당한 뒤에는 책임을 회피하는 데 급급했다는 게 대다수 의원들의 지적이다. 특히 서 전 대표 석방결의안을 주도한 박종희 의원에 대한 공돌窪?방침과 관련, “박 의원을 희생양으로 삼아 여론의 뭇매를 피하겠다는 주류측의 얄팍한 의도”라는 비판이 제기돼 논란을 빚기도 했다. 한 초선 의원은 “최 대표가 서 전 대표 석방안 처리에 앞서 조금만 설득하는 모습을 보였더라면 처리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지도부의 무책임을 꼬집었다.

대여관계나 정국현안에 대한 오락가락식 대응도 지도부의 리더십 부재의 한 단면으로 지적된다. 최 대표의 의중에 따라 당론이 바뀐 FTA 비준동의안 처리 문제가 대표적이다. 최 대표는 한때 FTA비준안은 당론으로 처리하기 어렵다고 자유투표 방침을 고수하다가, 지난 13일 한승주 주미대사를 만난 자리에서는 당론으로 통과시키겠다고 약속했다.

지도부의 리더십 문제와 관련해 더욱 심각하게 지적되는 것은 당의 정체성과 방향성 상실이다. 한 당직자는 “열린우리당의 지지율이 높은 것은 지도부부터 하위 당직자에 이르기까지 각자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그러나 한나라당은 대표와 의원, ?淄?당직자까지 서로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면서 위기를 자초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여론을 읽는 시야와 비전 제시, 이미지 메이킹, 추진력 등 모든 면에서 엇박자만 연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 한나라당 당명은 역사속으로?

사태가 이처럼 걷잡을 수 없이 악화하면서 최 대표는 자신의 정치인생 막바지에서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이재오 전 사무총장에 이어, 홍사덕 총무와 박 진 대변인 등 지도부가 속속 와해된 데다, 소장파들로부터 불출마 선언 등 거취 문제를 포함한 ‘자기희생적 결단’과 제2창당 수준에 이르는 당의 환골탈태 압력을 거세게 받고 있기 때문이다.

소장파의 한 의원은 “최 대표와 지도부는 과반수 정당의 기본 역할 마저 못하고 구태정치를 반복하고 있다”면서 “최 대표는 당을 살리기 위해서는 ‘죽어야 한다’는 자세로 재창당 프로그램을 제시하는 데 모든 것을 바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최 대표가 위기의 본질을 망각한 채 결단을 내리지 않을 경우에는 무슨 일이 벌어질 지 모른다”면서 날을 곧추세웠다.

최 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도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비상대책 마련에 골몰하고 있다. 이와 관련, 최 대표는 지역구 불출마 의사를 굳힌 상태에서 비례대표(전국구)에도 출마하지 않고 전면적 2선 후퇴를 할 지, 비례대표 끝번으로 배수진을 칠 지를 놓고 막판 고심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 대표는 그러나 소장파들이 요구하는 대표직 사퇴는 수용하지 않을 방침이다. 한 측근은 “총선을 2개월 앞두고 대표를 그만두는 것은 무책임하고 비현실적이다”고 말했다. 대신에 조기에 선거대책위를 띄워 대표 권한을 선대위에 대폭 넘기는 한편, 제2창당 준비위를 발족시켜 당헌ㆍ당규를 개정하는 등 체질 개혁을 위한 특단의 대책을 강구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한나라당’ 이라는 당명은 역사 속으로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 홍준표 전략기획위원장은 “공천이 마감되는 2월말이나 3월초 공천자 대회를 겸한 임시 전당대회를 열어 두차례의 연이은 대선 패배와 ‘차떼기 당’ 이미지 등 잇따른 악재에서 벗어나기 위해 당명을 바꾸는 등 전면적인 재창당 작업에 나설 계획”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당 지도부가 조만간 내놓을 수습책을 통해 작금의 위기 사태가 제대로 봉합 될 지는 미지수이다.

입력시간 : 2004-02-17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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