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을 갈아 엎어라"부패정치 척결 국민적 공감대가 힘의 원천참신성 무기로 목소리 높여, "여론몰이 정치" 비판도

소장파의 힘, 그리고 개혁실험
"판을 갈아 엎어라"
부패정치 척결 국민적 공감대가 힘의 원천
참신성 무기로 목소리 높여, "여론몰이 정치" 비판도


“맹랑하고 무서운 아이들이다!”

한나라당의 한 중진 의원은 당내 소장파의 핵인 ‘오-남-원 트리오’(오세훈ㆍ남경필ㆍ원희룡 의원) 얘기를 꺼내자 마자 “소름이 끼칠 정도”라면서 고개를 절레 흔들었다. 아들 뻘인 그들이 “버릇없다”는 얘기로도 들리지만, 역설적으로 그들의 막강한 힘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 중진의 자조어린 푸념이 상징하듯이, 지금 정치권은 그야말로 40대를 주축으로 한 소장파의 무대인 것 같다. 특히 한나라당 내에서 그들의 위세는 정말 대단하다. 지난해 6월 최병렬 대표체제 출범 직후 5ㆍ6공 출신 인사 퇴진과 60대 이상 용퇴 등 인적 쇄신론을 잇따라 제기하더니, 급기야 최근에는 한때 자신들을 총애했던 최 대표의 퇴진을 관철시키는 데 직접 총대를 매고 나섰다.

그들은 더 나아가 3월 18일 임시 전당대회에서 선출하는 새 대표의 기준과 후보군(14명)등 가이드 라인을 직접 발표하는가 하면, ‘소장파 독자후보’ 가능성에 대해서도 주저하지 않는다. 한나라당 소장파에 비해 파괴력은 다소 낮았지만, 추미애 의원과 장성민 청년위원장을 필두로 한 민주당 소장파도 공천혁명과 ‘양태(강운태 사무총장, 유용태 원내대표)’ 퇴진 을 주장하며 지도부와 정면 충돌하는 등 만만찮은 기세를 떨쳤다.

- 소장파의 무기는 젊음과 도덕적 우월성

물론 과거에도 총선 때마다 주요 정당에서 소장파의 목소리가 메아리치기는 했다. 하지만 요즘처럼 소장파의 기세가 등등한 적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소장파들이 ‘나이와 선수 존중’이라는 정치권의 격을 깨고 지도부와 중진들을 향해 거침없는 언행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은 과연 무엇일까.

정치권 인사들은 이에 대해 정치를 둘러싼 급격한 환경의 변화를 주된 요인으로 꼽는다. 무능하고, 비생산적이고, 부정부패에 찌들대로 찌든 기성 정치문화에 대한 국민적 불신이 극에 달한 상황에서, 정치권 내에서 상대적으로 젊고 깨끗한 소장파가 득세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주장이다.

“유권자를 만나보면 정치권 전체가 총체적 불신과 혐오의 대상으로 낙인 찍혀있다. 정치를 오래 한 정치인은 무조건 부패했다는 게 대다수 국민의 생각이다. 원로와 중진급 중에도 유능한 의원들이 적지 않지만, 더 부패했느냐 덜 부패했느냐의 문제가 아니더라. 무조건 정치를 오래 한 정치인은 부패하고 무능하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

한나라당 서울 광진갑 후보로 공천 받은 홍희곤씨는 “젊은 사람들이 나서서 부패한 정치를 확 쓸어버려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두텁게 형성돼 있다”면서 “이 같은 민심이 소장파에 힘을 실어주는 원천”이라고 분석했다. 돈과 조직 중심의 낡은 정치 패러다임을 거부하고 깨끗하고 참신한 정치, 국민(수요자)을 위하는 정치를 갈망하는 시대정신이 깔려있다는 얘기다.

이런 맥락에서 젊음 그 자체와, 상대적으로 흠결이 적은 도덕적 우월성이 소장파의 최대 무기라고 할 수 있다. 특히 한나라당 소장파의 경우 부정부패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만큼, ‘부패 원조당’ ‘차떼기당’ 등 불법대선자금으로 불거진 오명에도 거리낄 게 없다. 열린우리당의 한 당직자는 “중진들은 아무래도 부정부패와 도덕성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덜 자유로운 만큼 방어막을 치기에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면서 “여야를 떠나 초선의 힘은 패션(흐름)”이라고 말했다.

- 새로운 정치대안세력으로 부상

소장파가 지도부와 중진들에게 거침없이 갈기를 세울 수 있는 또 다른 요인으로 50~60대 신화 퇴조에 따른 30~40대의 주류세력 등장이라는 사회현상에서 찾는 시각도 있다. 소장파를 어린애 취급하는 기존 정치문화에 대한 ‘항변이자 도발’이라는 분석이다.

이와 관련, 한나라당의 환골탈태를 주장하며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던 오세훈 의원이 “사법시험 동기생들은 부장판사와 부장검사로 법조계에서 허리 이상의 역할을 하고 있는 반면, 정치권에선 우리를 소장파로 부르고 우리는 소장파의 역할에 대한 의무감을 느껴야 했다”고 목소리를 높인 것은 음미해 볼만한 대목이다.

오랜 정치경륜에 따라 기득권과 낡은 정치의 틀에 젖어있을 수 밖에 없는 지도부의 리더십 결여가 40대~50대 초반의 소장파를 새로운 정치의 대안세력으로 부상시키고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 각 당의 지도부와 중진들이 내부적으로 정치개혁과 지역구도 타파, 구태정치 청산 등을 주장하는 소장파의 요구를 적절히 수용하지 못함으로써, 그들의 목소리를 더욱 키웠다는 것이다.

민주당 장성민 위원장이 최근 당 내분사태의 와중에서, 조순형 대표를 향해 “우리의 요구를 들어보는 포용과 관용을 보여줄 것을 부탁한다”면서 “(조 대표가) 우리의 쓴 소리를 듣지 않는다면 조 대표도 앞으로 쓴 소리를 하지 말길 바란다”고 직격탄을 날린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언론을 활용하는 타이밍과 감각이 뛰어나고 중진에 비해 선제 공격에 능하다는 전술적인 강점도 소장파의 보이지 않는 힘으로 지적된다. 특히 소장파는 자신들이 옳다고 판단되는 사안의 경우, 의원총회와 같은 의견수렴 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언론을 향해 직접 이슈화 해버리기 일쑤다. “5ㆍ6공 세력 물러나라” “최병렬 대표 퇴진하라” “김용갑ㆍ정형근 의원 공천 취소하라” “호남 중진 용퇴하라”는 식이다.

이와 관련, 한나라당의 한 당직자는 “중진들은 ‘(소장파) 두 세 명이 모여서 소리를 꽥꽥 지른다’고 역정을 내지만, 기성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심한 국민들 입장에서는 통쾌하게 내지르는 그들의 직설적 화법에 은근히 정치적 엑스터시를 느낄 것”이라고 말했다.

- 소장파의 반란, 문제는 없나?

하지만 소장파의 ‘앙팡 테리블’ 행보에 대해 우려와 비판의 시각도 적지 않은 게 사실이다. 자극적인 이슈를 갖고 언론에 자주 노출됨으로써 자신들의 주가를 높이려는 입신양명의 한 모습에 불과하다는 극단적인 비판도 제기된다. ‘정치를 선진화 하자’면서 내부적인 합의도출 노력을 게을리한 채 정치를 인민 재판식으로 몰고 가는 경향이 농후하다는 지적도 있다.

한나라당의 한 재선 의원은 “소장파들이 최 대표를 몰아낸 뒤 제2창당이라는 기치를 내걸었지만 당의 이념과 정체성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자리매김해야 할 지에 대한 로드맵이나 청사진은 전혀 제시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이 의원은 “목소리를 높이고 비판을 늘어놓는 것이 정치의 본령은 결코 아니다”면서 “국민을 편안하게 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노력은 부족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 동안 정치권을 주름잡았던 기득권층 붕괴에 따라 소장파들이 대체세력으로 급부상하고는 있지만 경륜이나 능력면에서는 여전히 검증 받을 부분이 많다는 지적이다.

김성호기자


입력시간 : 2004-03-02 22:18


김성호기자 shkim@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