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후 소설 읽으며 심경의 일단 내비쳐백의종군한 이순신의 삶과 동질화 의미, 복귀 후 행보에 주목

盧는 스스로 칼이 되고프다
탄핵 후 소설 <칼의 노래> 읽으며 심경의 일단 내비쳐
백의종군한 이순신의 삶과 동질화 의미, 복귀 후 행보에 주목


노무현 대통령이 다시 ‘칼’을 잡았다. 마음을 벼리는 심검(心劍)이다. 노 대통령은 탄핵 사흘째인 3월14일 첫 휴일을 맞아 ‘칼의 노래’(김훈 저) 란 장편소설을 다시 꺼내 들었다고 한다. 동인문학상을 수상한 이 소설은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백의종군할 무렵부터 노량해전에서 전사하기까지 2년여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노 대통령은 지난해 7월, MBC TV ‘느낌표’에 출연해 이 책을 권장 도서로 추천하기도 했다.

국회에서 탄핵을 당한 노 대통령이 ‘칼의 노래’를 다시 잡은 이유는 무얼까. 외견상 헌법재판소에 자신의 정치운명이 걸려 있는 노 대통령과, 조정을 능멸하고 임금을 기만한 죄로 의금부에서 문초당한 뒤 백의종군한 이순신 장군은 비슷한 측면이 없지 않다. 백성들의 안위는 돌보지 않고 엉뚱한 짓을 해대는 힘과 권력에 대한 절망감을 담은 내용 또한 노 대통령에게는 수백년의 시차를 넘어 동병상련처럼 다가왔을 수도 있다.

‘칼의 노래’는 노 대통령과 ‘코드’가 가장 잘 맞는다는 강금실 법무장관이 2001년 대한변협신문(34호)에 ‘칼의 노래를 읽고서’라는 법조 칼럼을 기고해 화제가 됐다. 노 대통령과 사시17회 동기인 구충서 변호사는 “강 장관의 글에 매료돼 ‘칼의 노래’를 읽게 됐다”면서 “법조인들 사이에 강 장관의 글이 화제가 됐고 책에 대한 관심도 상당했다”고 말했다.

강 장관은 칼럼에서 “이순신은 정치를 두려워하지 않았지만, 그가 정치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기 때문에 정치는 그를 두려워했다”며 “그의 칼은 온전히 칼로서 순결하고, 이 한없는 단순성이야말로 그의 칼의 무서움이고 그의 생애의 비극이었다”고 지적했다. 오늘의 탄핵정국에 비춰보면 노 대통령이 기존의 정치 패러다임을 거부하자, 이를 두려워한 야당이 노 대통령을 탄핵했다는 해석도 나올법하다.

강 장관은 칼럼 말미에 ‘세상을 베어 삶의 순결성에 이르고자 하는 사람에게, 스스로 베이는 칼이 되고자 하는 사람에게 이 책을 드리고 싶다’고 헌사했다. ‘칼의 노래’에서 이순신은 세상을 칼로 베려고 했다. “죽여야 할 것들을 다 죽여서, 세상이 스스로 세상일 수 있게 된 연후에 한없는 무기력 속에서 죽고 싶다”(1권 28면)면서.

- 침묵 뒤의 ‘칼의 노래’ 촉각

노 대통령도 지난 1년 동안 세상을 베는 ‘칼의 노래’를 자주 불렀다. 취임 후 첫 어버이날에 500만명의 네티즌에게 “잡초 정치인을 제거하자”는 이메일 보냈는가 하면, 대선승리 1주년 행사에서는 “떨쳐 일어나 시민혁명을 하자”고 외쳤다. 지난해 10월, 측근들의 비리가 드러나자 재신임 국민투표를 불쑥 던지고는 노사모를 향해 ‘언제나 이기는 길로 가야 한다’는 친필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최근 야당의 탄핵 압박엔 “탄핵을 피하기 위해 사과하지는 않겠다”며 야당을 향해 일검을 휘둘렀다.

다시 ‘칼의 노래’를 쥔 노 대통령은 침묵 속에 국정구상에 들어갔다. 노 대통령이 침묵을 깨고 어떤 ‘칼의 노래’를 부를 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청와대 한 침모는 “그동안 국회의 벽에 부닥쳐 꺼내지조차 못했던 참여정부의 개혁 프로그램을 실천할 것”이라며 “정치개혁과 사회개혁 부문에 집중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국민은 노 대통령이 다시 부를 ‘칼의 노래’가 지난 1년처럼 혼란과 분열이 아니고, 그렇다고 반대세력에 대해 노기를 띤 굉음이 아닌, 이순신의 순일한 삶에 근접하기를 바라고 있다.

박종진 기자


입력시간 : 2004-03-23 20:24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