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올인' 본격화, 우리당 '굳히기' 한나라·민주 '뒤집기' 안간힘

탄핵이후… "이제부터 생존게임" 배수진
여야 '올인' 본격화, 우리당 '굳히기' 한나라·민주 '뒤집기' 안간힘

총선을 4번 치렀다는 열린우리당 박양수 사무처장은 요즘 만나면 표정관리부터 한다. 지난 2월 중순쯤에는 총선 전망에 대해 “78석은 확실하고 130~140석을 목표로 한다”고 하더니 탄핵사태 이후 확연히 달라졌다. ‘희망사항’이 확신으로, 목표 의석도 크게 늘었다. 박 처장은 “총선까지 큰 변수가 없으면 150석을 훨씬 상회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일부에서는 여론조사 결과에 비춰 299석 가운데 200석 가까이 차지할 수 있다는 수치도 제시한다.

열린우리당은 탄핵 사태 직전인 3월 초에 실시한 자체 여론조사 결과, 정당 지지도에서 한나라당을 두배 가까이 따돌렸으며 민주당은 두자리수 턱걸이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 시점에서 투표를 한다면 원내 제1당이 확실하며, 285석을 기준으로 할 때 대략 120석 내외, 한나라당은 90~100석, 민주당은 원내교섭단체 기준이 되는 20석 확보도 불투명할 것으로 예상됐다.

- 총선 삼국지, 표심잡기에 '올인'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 가결(3월12일)은 이 같은 총선 지형을 일거에 흔들어 놓았다. 열린우리당 지지율은 급상승했고,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곤두박질쳤다. 총선을 20여일 앞둔 현 상황에서도 마찬가지다. 야당은 정치적 패닉 상태에 빠져 좀처럼 보이지 않는 돌파구를 찾고 있다.

하지만 4ㆍ15 총선이 불과 20여일 밖에 남지 않았고, 총선을 향한 각 당의 질주와 뒤틀림에는 일정한 ‘관성’이 있어 총선 지형을 바꾸기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게다가 4ㆍ15 격전지에 나아가기에 앞서 아군끼리의 격렬한 경선 내전으로 일부는 사망하고, 일부는 앙숙이 되고 말았다. 앞으로 총선 판세를 바꿀 특별한 변수가 없는 한, 각 당의 총선 전략에 따라 성적표가 매겨진다. 선거일까지는 아직 20여일이 남아 있지만 한나라ㆍ민주ㆍ열린우리당의 총선 삼국지는 이미 포성이 울린 상태다.

한나라당은 지난 23일 새 지도부 출범과 함께 탄핵 역풍으로 인한 끝 모를 추락을 멈춰 세울 작정이다. 임시 전당대회를 전후해 당 지지율이 상승추세로 반전한 것 정도가 ‘희망’적이다. 한나라당은 탄핵 사태 이전에만 해도 공천 물갈이와 당의 환골탈태를 총선 전략의 두 축으로 삼았다. 공천 물갈이로 당의 중심세력이자 불법 대선자금의 상징인 이회창ㆍ서청원계 인사들이 대거 몰락했다. 그 과정에서 ‘충성 맹세’ ‘전향’ 파문이 일어 하순봉ㆍ김기배ㆍ김용균 의원 등 ‘절대 전향 불가’ 부류에 속한 의원은 철저히 공천에서 배제됐고, 최병렬 대표 등 지도부에 전향했거나 ‘전향 가능’ 부류에 속한 인사들은 충성도에 따라 구제되기도 했다.

- 한나라, 전대통한 환골탈태로 돌파구

그러나 당의 환골탈태는 전략부재로 ‘차떼기’이미지를 탈각시키는데 실패했고, 최병렬 대표의 리더십은 소장파와 반최(反催)그룹의 강한 도전에 밀려 용도폐기됐다. 그 반작용으로 탄핵정국을 강하게 밀어붙였지만 오히려 ‘역풍’만 불렀다.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한국갤럽의 김덕구 상무는 “탄핵정국 이후 총선까지의 최대 변수는 한나라당의 변신 여부인데, 새 지도부 출범을 전후해 지지율이 상승 조짐을 보인 것은 전통적인 지지층이 결집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총선 전망과 관련, 여의도연구소장인 윤여준 의원은 “전대를 통해 당이 확 바뀌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며 “무슨 말을 해도 바닥 표심에 먹혀들지 않는 ‘메신저 거부 현상’이 사라진 게 다행”이라고 말했다. 윤 의원은 “새 지도부가 비전을 제시하고 노무현 정권의 실정이 심판을 받게 되면 승산이 있다”고 낙관했다. 영남의 한 중진 의원은 “총선이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의 양강 구도가 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당 정체성을 분명히 해 40% 대의 보수층에 승부를 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은 총선에서 ‘3자 필승론’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보고 고건 대행체제에 힘을 실어주거나 최근 논란이 된 ‘코드 장관’의 문제를 다룰 때처럼 가능하면 민주당을 부각시켜 총선구도를 ‘3강’으로 끌어간다는 방침도 정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은 대통령 탄핵을 주도했지만 ‘역풍’ 의 최대 피해자다. 무엇보다 전통적 표밭인 호남 민심의 외면은 민주당의 총선 전선에 적신호가 켜졌다. 동교동계의 한 의원은 “호남 표마저 등을 돌리면 민주당은 끝장”이라고 절박한 심정을 토로했다. 광주시 지부의 한 관계자는 “탄핵 발의가 통과되기 전까嗤?해도 광주 지역은 전체 7개 선거구 중에 우리와 열린우리당이 3ㆍ4개 지역을 적당히 분할해서 가져가는 구도로 진행됐는데 탄핵 사태 이후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다”며 “원내총무인 강운태 의원마저 흔들릴 정도다”고 말했다.

- 민주, 고정표에 한가닥 희망

당권파와 비당권파의 대립은 민주당의 총선 전망을 더욱 어둡게 하지만, 조순형 대표가 다시 한번 사즉생(死卽生)의 자세로 나설 경우 극적인 반전흐름도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공천과정에서 호남 중진들이 자기 사람을 미는 등 세대교체 흐름을 거역한 것은 당권파가 ‘호남 자민련’을 각오한 게 아니냐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민주당의 총선 전망과 관련, 탄핵 시나리오의 아이디어를 제공한 것으로 알려진 민주당 국가전략연구소의 황태연 소장은 “민주당은 50년 전통을 가진 정당으로 선거 때면 습관적으로 ‘2번’만 찍는 ‘누룽지 표’가 있다”며 “탄핵 의결은 잘못된 것이지만 선거 때는 2번을 찍겠다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강조했다. 황 소장은 “강금실 장관의 발언에서 보듯 소위 ‘코드 장관’이 고 대행 체제의 안정을 해치면 표심(여론)도 달라질 것”이라고 전제, “고건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가 안정될수록 사람들은 점점 노 대통령의 컴백(직무 복귀)을 두려워하게 될 것”이라며 고 대행 체제를 지지하는 염원이 민주당 표로 연결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민주당은 공격 타깃을 열린우리당으로 삼고 노 대통령과 측근 인사의 비리, 호남의 선두 주자로 나선 정동영 의장의 아킬레스 건을 찾는데 주력한다는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설에는 정 의장이 권노갑 전 고문에게 한 ‘충성 맹서’가 있고, 총선에 임박해 민주당이 그것을 공개할 것이라는 소문도 있다.

- 우리당, 몸 낮추며 지지율 관리

열린우리당은 탄핵 정국의 특수 속에 ‘부자 몸조심’ 행보를 강조하고 있다. 정동영 의장은 탄핵안 가결 다음날인 13일 영등포 시장을 방문한데 이어 14일에는 경제5단체장과 만나 “장외투쟁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등 민생 투어 행보를 계속했다. 또 몸낮추기로 ‘탄핵 발 지지율’을 총선까지 이어가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총선 전망과 관련, 수도권의 한 실세 의원은 신뢰할만한 여론조사를 전제로 “서울의 경우 강남 한두 지역을 제외한 나머지 전체를, 경기도에서는 한나라당 김문수 의원 지역을 제외하고는 싹쓸이도 가능하다”고 귀띔했다. 그는 “한나라당의 텃밭인 PK(부산ㆍ경남)에서도 7~8 곳은 확실하다”고 덧붙였다. 그의 주장 대로라면 열린우리당은 이번 총선에서 전체 의석의 3분의2에 이르는 200석 가까이 석권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럼에도 열린우리당의 총선 전략은 신중하다. 김한길 총선기획본부장은 탄핵 약발을 의식한 듯 이미 가동된 ‘헌정수호와 국정안정을 위한 비상대책위’를 중심으로 야 3당의 탄핵의결을 ‘의회 쿠데타’로 규정하는 등 홍보전을 지속한다는 방침이다. 총선 구도는 모든 대비를 아우를 수 있는 ‘낡은 정치 대 새정치’ 로 해 야당이 조성하려는 ‘반노 대 친노’ ‘안정 대 혼란’ 구도를 무력화한다는 전략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고민은 있다. 공천 과정에서 빚어진 정동영파 대 반정동영파 간의 갈등은 언제든지 폭발할 수 있는 내연성을 지니고 있다. 정 의장이 총선 후(또는 차기)를 의식, 지나치게 자기 사람을 챙기고 장차 라이벌이 될 수 있는 인사들을 견제한 것이 화근이 되고 있다는 전언이다.

- 盧 우리당 입당, 헌재심판 등이 변수

노무현 대통령의 입당도 논란거리다. 정 의장을 비롯한 소장파는 총선 후 입당을 기대하고 있지만 노 대통령측은 총선 전에 입당하겠다는 입장이다. 만일 노 대통령이 총선 전 입당해 총선을 책임지고 치룰 경우 정동영 의장의 위상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 차기 대선을 염두에 두고 있는 정 의장 입장에선 노 대통령의 입당이 껄끄러울 수밖에 없다. 최근 청와대와 당이 노 대통령 측근인 이광재ㆍ서갑원ㆍ정만호씨 등의 공천을 놓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것도 ‘노-정 대결’의 한 측면으로 볼 수 있다.

노 대통령의 탄핵안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심판도 총선의 변수다. 그 시점이 총선 전이면 심판 내용에 따라 여야 한쪽은 치명타를 입을 수밖에 없다.

박종진 기자


입력시간 : 2004-03-23 20:41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