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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총선된 6·5 재보선, 盧·朴 양보없는 기싸움
차기 대권 염두에 둔 정치게임, 김혁규 카드로 상극정치 회귀

1일 천하. 4ㆍ15 총선후 ‘상생의 정치’를 약속한 여야 대표의 신사협정은 단 하루만에 깨졌다.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과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지난 3일 양당 대표회담을 갖고 ‘상생의 정치’를 펼치겠다며 ‘새정치ㆍ경제 협약’체결까지 했지만 꼭 하루만에 상생에는 금이 가 다시 ‘상극의 정치’로 돌아갔다. 그 파경의 중심에는 ‘김혁규 총리설’이 자리잡고 있다.

박 대표는 정 의장과의 회동 말미에 “총리 임명에 있어서 분쟁이 될 만한 사안을 피해야지 분쟁의 불씨가 될 것이 뻔한 인사를 거론하는 자체가 상생의 정치에 어긋난다”고 비판했고, 다음날 한선교 대변인은 공식 논평을 통해 “국민을 위한 상생의 정치를 원한다면 상생의 정치를 해칠 빌미가 충분히 될 수 있는 철새정치인 김혁규 총리 카드를 과감히 버려야 한다”며 김혁규 총리설에 직격탄을 날렸다.


- 정국 주도권 확보 ‘숨은 뜻’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한 여권은 요지부동이다. 김혁규 총리 카드를 강행하겠다는 것이다. 여야를 달구고 있는 김혁규 논란은 당장 눈앞에 닥친 6ㆍ5 재보선, 특히 부산시장과 경남지사라는 빅매치를 앞두고 주도권을 잡기 위한 기싸움의 일환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멀리는 차기 대선을 염두에 둔 고도의 전략 게임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4ㆍ15 총선 직후 청와대의 한 인사는 사석에서 “차기 대권은 영남표가 결정한다”며 단정적으로 말하면서 총선 과정에서 숨겨진 비화 하나를 살짝 귀띔했다. 총선을 보름여 앞둔 4월1일, 정동영 의장의 ‘노인 폄훼’ 발언을 접한 노 대통령은 불편한 심기를 내보였다고 한다. 탄핵 후폭풍에 힘입어 압도적으로 제1당이 되는 것보다는 영남에서 적정 수준의 의석을 확보, 지역주의를 극복하는 ‘전국정당화’를 염원한 노 대통령은 정 의장의 실언으로 영남표가 날아가고 전국정당화가 물거품이 될 것을 우려해 하루종일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는 것이다.

노 대통령이 전국정당화에 집착하는 것은 그 속에 ‘차기’에 대한 고려가 내재돼 있다는 게 주변 인사들의 해석이다. 특히 PK(부산 경남)지역은 차기 대권을 가름할 전략지대라고 한다. 그래서 노 대통령이 6ㆍ5 재보선에서 부산시장과 경남지사는 반드시 확보해야 한다는 뜻을 숨기지 않는 것이라고 한 측근은 전했다.

지난 5일 저녁, 노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주최한 비공개 만찬회동에 참석한 한 중진 의원은 “일부 의원이 한나라당의 반발을 고려해 김혁규 총리 카드를 재고해야 하지 않느냐고 말을 꺼냈다가 노 대통령의 의지가 워낙 강해 다른 분들은 듣기만했다”고 전했다.

노 대통령은 왜 김혁규 카드에 집착할까? 여론분석가이자 소장 정치평론가인 K씨는 “이번 총선은 차기 대선의 ‘길목’이라는 속성을 갖고 있었다”며 “총선을 통해 대권 후보군이 자연스럽게 떠올라 차기 대권의 ‘전초전’성격을 띠었다”고 전제, “집권 2기를 맞는 노 대통령 입장에선 ‘차기’를 고려할 수밖에 없는데, 차기 대선에서는 지역주의가 다시 발호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지역주의의 진원지는 역시 영남이다. 야당의 유력한 대권 주자인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와 이명박 서울시장이 영남 출신인 데다 열린우리당의 차기 선두주자인 정동영 의장이 호남 출신이란 대비점도 지역주의 발호의 단초가 될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 차기 대권레이스의 유력카드

이런 상황에서 열린우리당 김혁규 당선자의 존재 가치는 높다. 김 당선자의 여러 특성이 여야 간 ‘상극 정치’와 총선 이후 대권 레이스의 변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김 당선자는 영남 출신의 유력 차기 주자감이어서 대선 국면에 들어가면 노 대통령에겐 유용한 카드가 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가령 김 당선자를 총리로 기용해 ‘차기 수업’을 쌓게 한 다음 대권전에 후보로 내보낼 수 있고, 또는 한나라당의 텃밭인 영남표를 잠식하는 ‘킹메이커’역할을 부여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반면 대선 2연패로 절치부심하고 있는 한나라당에게 김 당선자는 부담스런 존재다. 그의 영남 기반과 여당 프리미엄이 자칫 박근혜 대표나 이명박 서울시장의 영남 ‘텃밭’을 위협할 수 있고, 손학규 경기지사 등 타 지역 출신 주자들에겐 영남표의 장벽으로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정가에서는 김 당선자가 여당의 대권 후보로 직접 출마하기보다는 노 대통령과 함께 ‘킹 메이커’역할?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는데 이것이 오히려 한나라당 차기 후보들에게 더 파괴력으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한다. 6ㆍ5 재보선 중 부산시장과 경남지사를 둘러싼 ‘PK 혈투’를 노 대통령과 박 대표의 ‘대리전’으로 평가하는 것은 그래서 나온다. 다시 말해 차기 대선을 앞두고 여권의 최대 킹메이커와 현재 야당의 가장 유력한 후보가 ‘전초전’을 치른다는 분석이다.

선공(先攻)은 노 대통령측이 시도했다. 올해 초 김혁규 전 경남지사의 열린우리당 입당이 전국정당화를 위한 ‘총선용’이었다면, 최근 6ㆍ5 재보선의 선대위원장으로 임명하고 집권 2기의 총리로 기용하려는 것은 차기 대선 지형을 유리하게 구축하기 위한 ‘대선용’이라는 측면이 강하다. 총선 후 청와대 ‘식탁정치’에 대한 비판 여론을 감안해 TK(대구ㆍ경북)지역 낙선자들에 대한 청와대 초청을 취소했던 노 대통령이 4월 말 PK 출신의 김태랑(경남 창녕) 조직본부장과 최철국(경남 김해을) 당선자 등을 만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부산시장 후보에 한나라당에서 눈독을 들인 오거돈 부산시장 권한대행을 끌어오고 APEC(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정상회의를 부산에 유치한 대목에선 그 의도가 더욱 극명하게 나타났다.

- PK 혈투, 盧ㆍ朴 대리전 양상

‘노심(盧心)’을 대변하는 이강철 열린우리당 국민참여운동본부장과 문재인 전 청와대 민정수석, 이호철 전 민정비서관 등이 부산시장 보선 지원에 나서는 등 노 대통령식 ‘올인’전략에 뛰어든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이에 맞서 한나라당은 중앙에서 ‘김혁규 총리 불가론’을 계속 쟁점화하고, PK지역에선 박 대표가 앞장 서 ‘박풍(朴風)’을 재현한다는 전략을 펴고 있다. 박 대표는 이미 지난 7일 총선 후 처음으로 부산을 방문, 중소기업체를 돌아보고 부산 서구의 독거노인을 방문해 ‘효도 특별법’ 제정을 약속하는 등 지지층 다지기에 힘을 기울였다. 10일부터는 경남지역 방문에 나서 본격적인 ‘박풍’ 몰이에 들어갔다.

노무현-박근혜의 대리전으로 비유되는 PK 혈투에서 누가 과연 미소를 지을 것인지 당사자 뿐만 아니라 여타 예비 주자들도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다.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


입력시간 : 2004-05-11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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