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에 정통한 배포있는 대화일꾼남북 정상회담 막후 주역, 우리측엔 '권민'이란 이름으로 잘 알려져
권호웅 남북장관급회담 북측 신임대표 남한에 정통한 배포있는 대화일꾼 남북 정상회담 막후 주역, 우리측엔 '권민'이란 이름으로 잘 알려져
- 1996년 남북대화에 처음 등장 권 단장은 1996년 미국 버클리대에서 열린 ‘ 한반도 평화통일 심포지엄’에 참석해 자신을 ‘ 김일성종합대 학생대표 권민’으로 소개하며 처음 등장했다. 그해 6월에는 북측의 대남교섭창구 중 하나인 조선아태평화위원회 참사 자격으로 베이징(北京) 남북 차관급회담 북측 대표를 맡아 남측 관계자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권 단장은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하고 해외동포원호위원회 미주ㆍ유럽 담당국장과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참사를 지냈으며 우리측에는 ‘권민’이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졌다. 강덕순 아태평화위 부실장의 측근으로 권호웅이라는 이름은 2000년 7월 장관급회담 때부터 쓰기 시작했다. 권 단장은 남북 간 주요 회담 때마다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 1999년 1~2차 차관급회담과 2000년 1~5차 정상회담 준비접촉에 각각 대표로, 1~5차 장관급 회담에서는 보장성원(실무진) 등으로 회담에 참가했다. 또 2002년 8월 제 7차 장관급 회담 이후부터 남북간 회담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으나, 그 뒤에도 본부에서 회담 관련 업무를 관장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남북 정상회담의 출발점이 된 99년 4월 베이징 회담과 2000년 4월 남북정상회담 준비접촉 대표회담에 실무진으로 활약해 주목을 받았다. 베이징 회담은 대북 비료지원을 통한 남북 간 접촉이 이산가족상봉 문제로 대화채널이 막힌 상태에서 시작된 첫 비공개 접촉으로, 이듬해 정상 회담으로 가는 실무회담의 발판이 됐다. 당시 남쪽에서는 김보현 총리특보와 손인교 통일부 남북회담사무국 국장, 윤정원 통일부 베이징 주재관 등 3명이, 북쪽 대표로는 전금철 부위원장, 강덕순 아태평화위 부실장, 권민 참사 등 3명이 얼굴을 맞댔다. 권 단장은 남북 정상회담 3개월 후인 9월, 김정일 위원장이 남측 인사에게 보내는 송이버섯을 들고 방문한 김용순 노동당비서를 보좌해 서울을 방문하기도 했다. - 유머감각과 유연성 갖춘 인물 97년 북한 고향의 사업 투자를 위해 베이징에서 권 단장을 만난 적이 있는 S기업 J회장은 “ 여느 아태위 사람들과 달리 유머 감각이 있고 배포와 함께 남한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겸비한 인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권 단장을 잘 안다는 정부 관계자는 “ 베이징 아태위 사람들이 대부분 교체됐음에도 권 단장이 실세로 등장한 것은 그의 북한 내 위상을 말해주는 것”이라며 “ 정상회담의 막후 주역으로 융통성도 있어 기대가 되는 파트너”라고 말했다.
입력시간 : 2004-05-19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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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