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승장구하던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당내 반대파 바판 도마에 "대표 한 사람 인기에 당이 매달려서야" 곳곳서 딴죽 걸기

박 다르크, 안살림이 더 힘드네…
승승장구하던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당내 반대파 바판 도마에
"대표 한 사람 인기에 당이 매달려서야" 곳곳서 딴죽 걸기


“박다르크의 독주에 제동이 걸렸다.”

최근 크고 작은 암초를 만난 듯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를 두고 하는 말이다. 박 대표는 행정수도 이전문제에서 보인 애매모호한 태도와 여의도연구소장 임명, 국회 원 구성 협상 지연 등에서 드러난 지도력 문제로 당내 각 세력으로부터 공격을 받았다. 얼마 전까지 거칠 것이 없었던 ‘질풍노도’ 시기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7ㆍ14 전당대회를 앞두고 박 대표의 위상에 변화가 예고되면서 ‘차기 주자’ 라는 프리미엄도 확고할지 의문이다. 박 대표의 ‘차기’ 훈장은 4ㆍ15 총선 전만 해도 ‘가능성’이라는 담론 수준에 머물렀다. 지난 3월 임시전당대회에서 새 당 대표가 됐을 때 그의 운명은 ‘12척 배’에 달려 있었다. 박 대표는 대표 수락연설에서 “저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다”며 총선을 앞둔 자신의 각오를 명량해전 직전의 이순신에 빗대어 밝혔다. 그리고 4ㆍ15 격전지에서 탄핵이라는 후폭풍에도 불구하고 121석을 획득, ‘박다르크’(박근혜+잔다르크)라는 별칭과 함께 확실한 ‘차기 주자’로 자리매김했다. 이후 박 대표의 질주엔 거침이 없었다. 6ㆍ5 재보선은 ‘박풍(朴風)’의 위력을 재확인시켰고, 그래서 7ㆍ14 한나라당 전당대회는 박 대표를 위한 요식행사로 치부됐다.

박 대표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그의 보폭도 눈에 띄게 달라졌다. 질주에 속도만 더해진 것이 아니라 방향과 깊이가 교직되면서 진중해지고 여러 무리의 추종자가 생겼다. 12척 배에 펄럭이던 구원의 출사표는 121석 거함과 함께 대권을 향한 야망의 행로로 바뀌었다. 정치권에서 “박다르크의 ‘야망의 질주’가 시작됐다”는 말은 그래서 나왔다. 철저하게 국민속으로 들어갔고, 소장개혁파를 당 전면에 내세워 잠재적 우군세력으로 삼았다.


- 소장개혁파와 ‘국민속으로’

이회창 전 총재의 최측근으로 두번의 대선 패배를 가까이서 지켜본 윤여준 전 여의도연구소장(전 선대위 부위원장)은 “이 전 총재가 ‘구호’로 국민에게 다가갔다면, 박 대표는 ‘실천’으로 국민과 함께 호흡하고 눈높이를 맞췄다”며 두 사람의 차이를 구분했다. 그는 “박 대표가 국민을 향해 ‘온몸’을 던졌다면, 이 전 총재는 그런 점이 부족했다”면서 차기 주자로서 박 대표의 강점(경쟁력)을 높이 평가했다.

박 대표 주변엔 최병렬 체제를 무너뜨리고 초기부터 박 대표를 지지한 남ㆍ원ㆍ정(남경필ㆍ원희룡ㆍ정병국)으로 대변되는 소장 개혁파가 포진했다. 이들 대부분은 ‘수요조찬 모임’ 의 주력군을 형성해 박 대표를 지근거리에서 지원하는 한편, 반 박근혜 기조를 띤 강성 보수그룹의 공격으로부터 박 대표를 방어하는 역할을 해 장차 대권 레이스에서 박 대표와 동행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박 대표는 대여 관계에서도 ‘상생’과 ‘개혁’을 모토로 과거 비판 일색에서 벗어나 새로운 야당상을 제시하고 있다. 대변인들에게 감정적 논평을 자제시키고, 당 정책국에 개혁 아젠다 발굴을 주문한 것은 그러한 맥락이다. 영남의 한 재선 의원은 “지난 두번의 대선에서 패배한 데는 비전 제시 없이 네거티브 전략으로 일관해 국민들로부터 외면당한 측면이 컸다”면서 “박 대표가 그것을 반면교사로 삼은 것 같다”고 말해 박 대표가 대선을 겨냥한 행보를 이미 시작했음을 짐작케 했다.

박 대표가 한나라당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서진(西進)’ㆍ‘북진(北進)’ 전략에 나선 것도 대권 행보의 일환으로 해석된다. 박 대표는 당의 절대적 취약지역인 호남에서 표를 얻지 않고는 집권이 어렵다고 보고 호남 지역에 관심을 기울여왔다. 광주 망월동 5·18 국립묘지에서 열린 5·18 기념식에 참석한 것이나 ‘김대중 도서관’ 등이 주최한 6ㆍ15 남북공동선언 4주년 기념 국제토론회에 참석해 호남의 상징인 김대중 전 대통령을 만나 그의 업적을 평가한 것은 서진정책의 일례들이다. 소장파들이 과거 운동권 학생들이 했던 ‘농활’(농촌봉사활동)과 ‘공활’(공장활동)을 호남지역에서 추진하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15일 그랜드 힐튼호텔에서 열린 6·15 공동선언 4주년 기념 국제토론회에 참석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연설을 마친 후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당내에선 원내총무에 호남 출신의 김덕룡(DR) 의원이 당선된 이면에 호남을 겨냥한 박 대표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박 대표의 브레인 그룹의 일원으로 알려진 박준형 의원이 수요조찬모임에서 DR 지지를 호소한 것도 그러한 차원이라는 설명이다.

박 대표가 대북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北進)은 한나라당에 덧씌워진 ‘수구 꼴통보수’ 정당이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털어내 지지층을 넓히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앞서 박 대표와 당내 일부 소장파가 6ㆍ15 남북공동선언의 의의와 DJ 재평가를 들고 나온 것이나 박 대표가 ‘대북 특사’에 긍정적인 입장을 보인 것은 그러한 일례들이다.

박 대표는 내부 역량 강화와 외부 지형을 유리하게 조성하면서 대권 가도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반드시 순탄한 것만은 아니다. 무엇보다 당내 저항세력의 반발이 가장 큰 걸림돌이다. 이재오ㆍ홍준표ㆍ김문수 등 강성그룹과 강재섭 의원을 중심으로 한 TK(대구ㆍ경북)그룹, 정의화 의원이 앞장서고 있는 PK(부산ㆍ경남)그룹이 대표적이다. 특히 이재오ㆍ홍준표 의원과 김문수 의원은 각각 박 대표와 잠재적 경쟁자로 간주되고 있는 이명박 서울시장과 손학규 경기지사와 가까워 대선 레이스 내내 충돌할 가능성이 있다.


- ‘박근혜 추종문화’ 직격탄

이재오 의원은 지난 18일 당 지도부를 향해 “한나라당이 비판과 토론도 없는 식물정당이 돼가고 있다”고 직격탄을 날린 뒤 “대표 한 사람의 대중적 인기에 목을 매는 꼴이 됐고, 당내 인사들은 대표 눈치보기에 급급하고 있다”고 지적, 당의 ‘박근혜 추종문화’를 비판했다. 영남의 한 중진은 박 대표와 소장파 의원들을 겨냥해 ‘박근혜와 아이들’이라 폄하하고, “박 대표가 어린 사람들(소장파)에 둘러싸여 나무만 보고 숲은 못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정부여당의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을 비판해오던 박 대표가 정작 포퓰리즘에 빠졌다”고 비판했다.

정치권에서는 박 대표가 4ㆍ15 총선과 6ㆍ5 재보선을 통해 대중적 인기를 확인했지만 그 기반이 영남에 집중되고, 당내 확실한 지지세력이 없는 점을 ‘차기’의 약점으로 꼽는다. ‘여성’이란 점도 대선에서 불리할 수 있다는 지적이 있다. 무엇보다 박 대표만의 확실한 리더십이 불분명하다는 게 대체적인 지적이다.

7ㆍ14 전대에서 박 대표는 다시 대표로 선출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한나라당을 구한 ‘잔다르크’의 이미지로 충분했지만 이제는 야당지도자로서의 자질과 능력이 본격 시험대에 올라서게 된다. 진정한 대권 레이스도 그때부터 시작된다.

박종진 기자


입력시간 : 2004-06-23 13:25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