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대통령 집권 2기 친정체제 강화 심상찮은 드라이브당 지도부·차기주자군 노련한 견제, 검찰 장악 조짐도

‘盧아니면 NO’…독주의 칼 빼들었나
노 대통령 집권 2기 친정체제 강화 심상찮은 드라이브
당 지도부·차기주자군 노련한 견제, 검찰 장악 조짐도


노 대통령의 11일 청와대 기자회견. 집권 2기를 맞아 친정체제를 강화했다.

“ 집권 2기 국정은 구심력을 강화하고 원심력을 억제하는 방향으로 진행될 것이다. ‘ 시간의 한계’ 때문에 불가피한 수순이다.” 지난 5월 14일 노무현 대통령이 탄핵 기각으로 직무에 복귀할 즈음 여론분석가이자 중견 정치평론가인 L씨는 노무현 정부의 국정 2기를 그렇게 전망했다.

‘ 시간의 한계’와 관련, L씨는 노 대통령의 임기 중 2006년 지방선거와 2007년 대통령선거가 노 정권은 물론 대통령 자신의 명운을 가르는 분기점이 될 것이기 때문에 여기에 집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즉 집권 2기의 남은 시간은 2년 내지 2년 6개월로 노 대통령은 두 선거를 위한 기반을 마련하는데 전력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를 위해 당ㆍ정ㆍ청에 확실한 친정 체제를 갖추고(구심력 강화), 이에 상치되는 요인들을 제거하거나 완화할 것(원심력 억제)이라는 게 L씨의 설명이다.

실제 노 대통령은 집권 2기 초반의 당ㆍ정ㆍ청을 노무현 색깔로 치장하는 수순을 밟았고, 이에 장애가 되는 요소들을 제거하는 작업도 병행했다. 최근 여권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파열음은 그러한 과정에서 불거진 불협화음들이다.

노 대통령은 먼저 안방부터 재무장했다. 5월16일 청와대 조직 개편을 통해 사회갈등 조정을 담당하는 시민사회수석을 신설하고 이 자리에 ‘왕수석’인 문재인 전 청와대 민정수석을 임명했다. 건강상의 이유로 문 수석이 고사를 했음에도 노 대통령은 강하게 밀어붙여 결국 승낙을 받아냈다. 또 정책실을 경제정책을 담당하는 정책기획과 비 경제정책을 담당하는 사회정책 등 2수석 체제로 전환해 청와대의 부처 장악력을 강화했다.

다음 대상인 당ㆍ정 장악은 치밀하게 전개했지만 의도한 대로 되진 않았다. 김혁규 총리 카드의 불발은 대표적인 예다. 노 대통령은 친노 인사인 김혁규 전 경남지사를 총리에 앉혀 정부 각 부처를 장악하는 한편, 영남 기반을 넓혀 차기 대선의 유리한 지형을 선점해두려 했다. 그러나 일부 당내 반발과 야당의 반대에다 여론(특히 호남)의 악화로 6ㆍ5 재보선 패배의 빌미만 제공한 채 김혁규 카드는 폐기되고 이해찬 의원으로 대체됐다.


- 정동영ㆍ김근태 신경전

열린우리당 정동영 전 의장과 김근태 전 원내대표의 대화, 차기 유력주자로 부상하면서 노무현 대통령의 견제를 받고있다.

당도 마찬가지다. 노 대통령은 먼저 차기 유력 주자로 레임덕의 단초가 될 수 있는 정동영 전 당의장과 김근태 전 원내대표를 당에서 분리, 원심력의 동인을 제거했다. 동시에 당 장악력이 떨어지는 신기남체제를 지원, 청와대에 맞설 수 있는 힘을 제어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의 의도는 두 잠룡(潛龍)의 저항과 신기남체제의 불완전성으로 적지않은 내상을 입었다. 정 전 의장과 김 전 대표는 입각을 둘러싸고 볼썽사나운 자리 다툼을 벌여 피해는 고스란히 노 대통령에게 전가됐고(6ㆍ5 재보선 패배의 한 원인이 됨), 최근엔 정ㆍ김 모두 입각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며 당 잔류를 고수하려고 해 노 대통령과의 ‘제2 전쟁’도 예상되고 있다.

당을 실질적으로 이끌 원내대표에 천정배 의원이 오른 것도 노 대통령의 의도와는 어긋나는 대목이다. 원내대표 선출과 관련, 노 대통령은 내심 강성인 천 의원보다 깊은 인연이 있고 타협적인 이해찬 의원을 선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신ㆍ천체제는 당청의 역학관계를 놓고 노 대통령과 적지않게 충돌했다.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를 둘러싼 노 대통령과 신ㆍ천 지도부의 마찰은 대표적인 예. 노 대통령이 분양원가 공개에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음에도 천 원내대표는 “ 총선 공약은 지켜야 한다”며 찬성으로 맞받았다. 그러나 양측 충돌의 본질은 당을 장악해 친노체제로 재편하려는 노심(盧心)과 당의 리더로 남으려는 신ㆍ천 간 당청 대결이다.

노 대통령은 한발짝도 물러서지 않고 오히려 이해찬 총리카드를 꺼내 정동영ㆍ김근태의 반발을 무력화시키고 신ㆍ천 당 지도부에 선전 포고를 했다. 정 전 의장은 ‘ 이해찬 총리’ 지명으로 통일부 장관 입각 계획이 물건너 갔고, 대권 스케줄에도 차질이 빚어졌다는 평가가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김 전 대표도 정치적 후배인 이해찬 의원의 총리 지명으로 거취를 정하는데 난감해 하고 있다. 주변에선 입각을 고사하는 쪽으로 방향을 정했다는 얘기도 나오는데 어쨌든 대권가도에 상처를 입은 것은 분명하다.

노 대통령은 당에서 문희상 전 비서실장의 정무특보 역할을 문제삼자 특보직을 폐지했는가 하면, 당 지도부와 사전협의 없이 이해찬 의원을 총리 후보로 지명해 당을 철저하게 무시하는 행보를 취했다. 동시에 문희상 의원을 비롯해 청와대 출신과 친노파 의원들은 노심을 매개로 결집, 당내 최대 파워그룹을 형성하면서 노 대통령의 십자군으로 등장했다. 당에 노 대통령의 그림자가 짙어지면서 신ㆍ천 쌍두마차의 지도력은 급격히 약화됐다. 정가에선 이미 노 대통령과 친노그룹이 당을 접수했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 친노그룹 이미 당 접수?

노 대통령의 친정체제 구축은 정치권 뿐만 아니라 집권 1기 동안 가장 위협적인 존재였던 검찰에도 미치고 있다는 게 중론이다. 따라서 최근 노 대통령과 송광수 검찰총장 사이에 충돌을 빚었던 ‘ 중수부 폐지’ 파문은 상징적인 사건이라는 분석이다. 청와대 비서실의 한 386 인사는 “ 검찰이 대통령 측근 인사를 수사하면서 정도(正道)를 넘어 공명심이 작용한 흔적에 대해 대통령이 화를 낸 적이 있다”고 말해 검찰에 대한 노 대통령의 불편한 시각을 엿보게 했다. 강금실 법무부 장관과 송 총장의 사과로 ‘청(靑)ㆍ검(檢)’간 권력 충돌은 휴전상태로 들어갔지만 대통령 직속기구인 ‘공직자 비리 조사처’ 신설을 둘러싸고 2차 갈등이 예고돼 있는 상태다. 청와대 주변에선 송 총장의 낙마를 전제로 후임 총장으로 16회의 김상희 법무차관과 17회의 정상명 대구고검장, 안대희 부산고검장 등이 거론되고 있어 청와대의 검찰 장악 시도가 계속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노 대통령은 탄핵으로 묶여 있던 4월 11일 청와대 산행에서 두번의 봄(총선 승리, 탄핵 기각)을 맞으면 집권2기를 ‘ 상생의 정치’로 이끌어 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노 대통령의 집권2기는 초반부터 당청, 여야 간에 파열음이 끊이질 않아 상생과는 거리가 먼 상황이다. 노 대통령은 5월 27일 연세대 특강에서 예전의 기질을 그대로 드러내 “달라진 게 없다”는 평가가 뒤따랐고, 한국사회여론연구소(소장 김헌태)와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TNS의 6월 8일 조사에서도 응답자의 56.4%가 같은 입장을 나타냈다.

정가에서는 집권1기의 위기를 ‘ 재신임’ 카드와 ‘ 탄핵’으로 돌파한 노 대통령의 승부사 기질이 집권 2기에도 그대로 발현돼 국정 전반에 ‘상쟁’의 원인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노 대통령의 ‘칼의 노래’가 승부수라면, 집권 2기 국정에 긴장의 파고와 파열음은 더욱 심화될 것이 분명하다.

박종진 기자


입력시간 : 2004-06-23 13:39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