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노당이 눈엣가시 될줄이야"한·노 의기투합에 우리당 배신감, 신 3국지 정국으로 여권구상 '흔들'

우리당, 야당공조로 속앓이
"민노당이 눈엣가시 될줄이야"
한·노 의기투합에 우리당 배신감, 신 3국지 정국으로 여권구상 '흔들'


민노당 김혜경(가운데) 대표가 한나라당을 방문, 박근혜 대표 등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있다. 이종철 기자

최근 열린우리당이 대단히 이례적인 논평 하나를 냈다. 17대 국회 들어 처음으로 민주노동당을 정면으로 겨냥해 “한나라당과 통(通)하니 행복하십니까? 살림살이는 좀 나아지셨습니까?”라고 비꼰 것이다.

논평은 예결특위의 일반상임위화 문제, 카드대란 국회 청문회 추진, 여당의 연기금관리기본법 개정에 대한 반대 입장으로 한나라당과 의기투합한 민주노동당에 대한 배신감이 역력했다. “의회정치의 기본기부터 배우라”는 충고까지 곁들이면서 ‘진보’ 색채가 확연한 민주노동당이 ‘수구’의 화신인 한나라당과 손을 잡을 수 있느냐는 당혹감이 곳곳에서 묻어났다. 물론 사안 하나하나가 정치권의 민감한 화두이긴 하나, 민주노동당의 행보를 “정략의 정치”라고 까지 몰아붙인 여권의 반응은 과민한 감이 없지 않았다.

여당을 포위한 야당의 공조체제는 다당제 구조의 우리 정치지형에서 이례적인 일은 전혀 아니다. 총선 전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합심해 만든 회심작인 ‘탄핵공조’만 봐도 그렇다. 비록 감당 못할 ‘역풍’으로 돌아왔지만 대통령 탄핵안 가결은 야당 공조의 대표적인 사례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런데도 흔하디 흔한 야당 공조에 열린우리당이 과민반응을 보인 것은 무엇 때문일까. “자라보고 놀란 가슴이 솥뚜껑보고 놀란 것 아니겠느냐”는 신기남 의장의 해명대로 여당의 민주노동당 때리기가 권좌까지 위협했던 야당 공조에 대한 ‘노이로제’ 때문일까?


- 열·노 개혁공조 출발부터 삐그덕

열린우리당이 과반을 차지한 17대 국회의 의석분포상, 야당이 제아무리 찰떡 공조를 한들 대통령의 권좌를 흔들만한 ‘꼼수’를 부릴 리 만무하기에 신 의장의 해명은 엄살기가 다분하다. 게다가 웬만한 법안은 열린우리당의 독자처리가 가능해져 앞서 언급한 사안도 국회에서 ‘법 대로’ 표결에 붙이면 여당의 의도를 관철시킬 수 있다. 야당공조의 숫자상의 의미는 크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열린우리당이 ‘한-노 공조’에 긴장하는 이유는 총선이 끝난 직후 구상했던 정국구도와 크게 어긋난 흐름으로 가고 있다는 데에서 찾아야 할 듯싶다. 사실상 민주노동당과의 개혁공조를 통해 한나라당을 고립무원으로 내몰고, 장기적으로는 정권 재창출로 이어간다는 여권의 기본 구상은 초반부터 무너졌다. 최근 양당 대표회동에선 신기남 의장이 민주노동당을 우당(友黨)으로 칭하며 친근감을 표했음에도, 민주노동당 천영세 대표는 “오른쪽에 있는 우(右)당은 맞지만 친구로서의 우(友)당은 아니다”고 확실하게 선을 그었다. 이처럼 양당이 의례적 덕담마저도 뼈있는 말로 되받아칠 만큼 골이 깊어진 데에는 이라크 파병, 분양원가 공개 문제 등 여권의 개혁후퇴로 비쳐질만한 악재가 크게 작용했다는 게 공통된 인식이다. 열린우리당 지지율 하락의 대표적 이유로 꼽히는 이 양대 아킬레스건을 민주노동당은 그동안 집요하게 건드려왔다.

반면 한나라당은 반사이익을 톡톡히 챙겼다. “정부 고유 권한인 재정 편성권을 크게 제약하려는 저의가 숨어 있다”는 열린우리당의 비난에도 예결특위의 일반 상임위화를 개혁적 조치로 홍보해 내는데 성공했다. 감사원의 ‘카드 특감’ 부실에 대한 비판 여론을 놓치지 않고 이에 대한 국정조사를 이슈로 치고 나갔다. 분양원가 공개를 기본 골격으로 하는 주택법 개정안도 9월 정기국회를 목표로 준비 중이다. 국정 책임성에서 한발 떨어진 상대적 자율성이 공세적 이슈를 제기할 수 있는 기본적 배경이었지만, 이들 사안은 민주노동당을 끌어들여 ‘개혁성’의 외피를 얻음으로써 정당화된 片湧?다분하다. 다시 말해 한나라당-민주노동당 공조의 위력은 바로 17대 국회의 화두인 ‘개혁’ 아젠다를 열린우리당으로부터 빼앗아왔다는 데 있다.

국회 본회의장의 민주노동당 의원들. 17대 들어 한나라당과의 정책공조로 우리당의 속을 태우고 있다. 이종철 기자

역으로 이는 민주노동당의 존재의 방식을 설명하는 말이 된다. 의석수만 따지자면 민주당과 마찬가지로 1.3%에 불과하지만 20%에 육박하는 당 지지율이 과반의 여당과 제1야당의 틈바구니에서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무기라는 것이다. 하기에 노회찬 의원은 한-노 공조의 의미를 “민주노동당의 물만이 아무리 커도 한나라당과는 차마 손을 잡지 못할 것이라는 열린우리당의 오만한 인식에 대한 경고”라고 자신 있게 쏘아붙였다. 심상정 의원은 “‘정책적’ 공조는 소수정당의 원내정치활동의 폭을 넓히는 차원에서 앞으로 얼마든지 할 것”이라고도 말했다.


- 한·노 공조 '오월동주' 시각 지배적

하지만 한나라당과 민주노동당의 공조는 ‘밀월관계’ 보다는 ‘오월동주’와 같아 오래 지속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민주노동당 내에서도 “한나라당과의 공조는 한나라당이 본래의 보수색을 드러내 발을 빼지 못하도록 견인하기 위한 전략적 의미”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이 이심전심인 친일진상규명 문제나 언론개혁, 국가보안법 개폐 문제 등 조만간 현안으로 부상할 이슈에선 ‘열-노 공조’가 이뤄질 게 분명하다. 이는 과거 중장기적 ‘보수연합’ 혹은 ‘진보연합’으로 의미화 되던 정당간의 공조와는 달리, 사안에 따라 ‘정책 공조’로 이합집산을 반복하는 복잡한 17대 국회 정치지형도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사뭇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 모습이지만 각 정당은 나름대로의 고민을 안고 있다. 열린우리당은 두말할 나위 없이 보수와 진보의 협공이 지지기반의 위축으로 이어진다는 부담감을 매 국면마다 고려할 수밖에 없다. 한나라당은 보수와 진보를 넘나드는 좌충우돌의 행보가 당 정체성을 모호하게 해 정작 전투에선 이기고 전쟁에서 지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민주노동당은 독자적 이슈 개발 능력이 뒷받침 되지 못한 채 양자 사이에서의 위험한 줄타기만 반복하면 내부로부터의 강한 반발에 직면할 수 있다.


- 내년 재보선뒤 4각관계 생성 가능성

정치권에선 내년으로 예상되는 무더기 재보선에서 열린우리당이 과반의석을 상실할 경우, 3당간의 제휴와 갈등 관계는 더욱 복잡다단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벌써부터 나온다. 여기에 열린우리당에 식은 애정을 틈타 호남에서 민주당마저 부활하게 되면 물고물리는 4각 관계가 형성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태다.

임경구 프레시안 기자


입력시간 : 2004-07-29 14:57


임경구 프레시안 기자 hifidelit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