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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룡들의 소리없는 전쟁
여야 예비 대권주자들 '2007 승천' 위해 용틀임 본격화

‘ 킹과 킹 메이커의 대결’.

삼복 더위를 무색케 한 여야 ‘전면전’의 실질적 주역인 노무현 대통령과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를 두고 하는 말이다. 포문은 박 대표의 ‘정체성’ 시비에서 시작됐지만 노 대통령이 정치 전선의 선두에 서서 정쟁의 담론을 건드리면서 전면전으로 치달았다. 그러다 보니 전쟁의 양상도 박 대표에 대한 흠집내기와 이에 대한 방어전로 변질, 킹 메이커인 노 대통령과 야당의 유력한 예비 킹인 박 대표가 벌이는 대선의 전초전을 방불케 했다.

여야의 실질적 대표격인 노 대통령과 박 대표가 한치의 양보 없는 기싸움을 벌이는 것은 정쟁의 지향점이 2007년 대선에 맞춰져 있는데다 정치권의 고질적인 조기 대권 투쟁 경향과 직결돼 있다. 4ㆍ15 총선과 함께 본격 막이 오른 대권 레이스에서 현재 박 대표의 행보가 두드러지지만 다른 차기 주자들도 수면 아래서 끊임없이 대권 페달을 밟고 있다. 잠룡(潛龍)들의 ‘소리없는 전쟁(silence war)’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상황이다.

여권에서는 대권 레이스의 선두권에 있던 정동영 전 의장과 김근태 전 원내 대표가 각각 통일ㆍ복지부 장관으로 입각한 뒤 표면적인 차기 경쟁은 잠복한 상태. 그러나 두 주자의 대권 야망이 여전하고 양 진영의 세 불리기가 치열해 대리전 양상을 띠고 있다.


- 정동영·김근태, 물밑 세 불리기 대리전



(왼쪽부터) 정동영, 김근태, 이해찬



정동영 장관측은 입각 경쟁에서 일단 김근태 장관에 앞선 상황으로 대권 행보를 자제하는 대신 장관 역할에 충실, 국가 경영의 경험을 쌓는 한편 늘 핫이슈가 돼 온 남북문제를 잘 처리해 남북 관계를 아우를 수 있는 지도력을 선보인다는 복안이다. 정 장관의 한 측근은 “대북 문제에서는 전향적인 자세에 입각한 지원 정책으로 남북 화해 무드를 조성해 지지층을 넓히고, 내년 4월에 있을 재보선을 통해서 대권에 도전할 수 있는 안전판을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며 대권 로드맵을 설명했다.

7월 29일 공개된 ‘ 2005년 국가재정운용계획 및 예산 요구 토의 자료’에 따르면 통일부의 예산이 부처 요구액 3,793억원보다 무려 2,130억원이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뿐만 아니라 주요 증가 항목이 남북 교류와 지원에 집중돼 있어 정 장관의 복안이 이미 실천 단계에 들어간 게 아니냐는 의혹을 낳고 있다. 당에서는 정 장관의 가장 큰 지지기반인 ‘바른 정치 모임’의 핵심인 신기남 의장과 천정배 원내대표가 건재하고, 최근엔 친정동영계 초선 의원들을 중심으로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김근태 장관측은 각료 비중에서는 정동영 장관에 밀렸지만 부처 성격상 국민 생활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기 때문에 국민과의 친밀도나 인지도를 높이는 데 오히려 유리하다고 분석한다. 김 장관이 이사장으로 있는 ‘ 한반도 재단’의 한 고위 인사는 “ 통일부 장관은 대국민 호소력이 크지만 자칫 한 번의 실수로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다”면서 “ 김 장관이 역할을 제대로 하면 그 동안 대권주자로서 지적돼 온 ‘대중성 부족’을 만회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가에서는 복지부 예산이 당초 9조6,171억원에서 당정 협의를 거쳐 6,067억원이 늘어난 것과 관련, 김 장관이 부처 업무 중 사회 소외 계층의 복지 혜택에 중점을 둔 것이 대권행보와 무관하지 않다는 시각이다.

당에서는 김 장관 지지성향의 ‘국민정치연구회’(국정연)가 김 장관이 떠나면서 생긴 구심체 공백을 메꾸고 당내 기반을 공고화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국정연은 7월 30일 5기 총회에서 장영달 의원을 이사장으로 선출해 본격적인 활동에 나서는 한편, 회원인 최규성 의원이 최근 당 사무처장을 맡아 만만치 않은 힘을 과시하고 있다.


- 9월 출범 친노그룹, 새 킹 메이커 집단으로

여권의 대권 기상도에서 주목되는 것은 친노그룹의 급속한 결속이다. 당내 최대 규모의 초ㆍ재선 의원 그룹인 ‘국가 발전을 위한 새로운 모색’과 유시민 의원 등 개혁당 출신이 주축인 ‘참여 정치 연구회’, 이광재 의원 등 친노 소장파 모임인 ‘의정 활동 연구 센터’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노 대통령의 최측근인 염동연 의원이 주도해 9월 초 결성 예정인 ‘ 산업 정책 포럼(가칭)’은 친노 인사를 주축으로 50여명이 참여하는 최대 모임이 될 것으로 알려져 벌써부터 ‘ 킹 메이커 집단’이란 소리가 나오고 있다.

정가에서는 이들 친노 그룹이 내년 2월에 있을 전당 대회에서 당권을 장악하고, 나아가 명실상부한 킹 메이커 역할을 자임할 것으로 전망한다. 또 노 대통령이 남다른 신뢰를 갖고 있는 이해찬 의원을 총리에 임명한 것과 관련, 이 총리가 새로운 대권 주자로 주목 받고 있다.그 밖에 신기남 의장과 천정배 대표, 유시민 의원도 잠룡군으로 분류되나 아직은 대권레이스에서 앞의 주자들에 상당히 뒤떨어져 있는 상황이다.

야권에서는 박근혜 대표의 독주가 두드러진 가운데 이명박 서울시장, 손학규 경기지사가 다크 호스다. 박 대표는 7ㆍ19 전대에서 재선출돼 당내 기반이 단단해 지고 친박근혜 그룹의 외연이 확장됐다. ‘새 정치 수요 모임’으로 대표되는 소장파 그룹과 종래 김덕룡 원내대표, 김형오 사무총장, 이한구 정책위위원장 외에 새로 임명된 임태희 대변인, 심재철 기획위원장, 박진 국제위원장 등도 범주류로 분류돼, 박 대표에 각을 세웠던 이재오ㆍ홍준표ㆍ김문수 등 강성 3선 그룹과 영남 중진들의 저항력이 상당 부분 감쇄됐다.


- 야당, 박근혜 독주에 이명박·손학규 도전

(왼쪽부터) 박근혜, 이명박, 손학규

박 대표는 앞으로 정체성 문제 등 현안은 주로 당에 맡기고 ‘국민 속으로’의 행보를 통해 민심 잡기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8일부터 전직 대통령을 순차적으로 방문, 다른 주자들과 차별화된 모습을 선보이고 있다. 특히 8월 12일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만남을 통해 한나라당의 벽인 호남 민심을 노크하는 한편, 대북 문제까지 함께 논하면서 자연스럽게 지도자의 이미지를 부각시킬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이명박 서울시장은 교통체계 개편과 서울시 봉헌 발언으로 대권가도에 브레이크가 걸렸지만 최근 교통 체계의 혼란이 상당히 진정되고 불교계에 대한 사과를 표명함으로써 최악의 상황은 벗어난 상태다. 이 시장측의 한 관계자는 “ 박근혜 대표는 계속 검증받고 있어 언제 추락할 지 모르지만, 교통 체계가 정착되고 2007년 청계천 복원사업이 완공되면 이 시장에 대한 인식이 달라질 것”이라며 장래를 낙관했다. 그는 “당내 수도권과 영남 의원 중에 이 시장에 우호적인 인사가 많은 것도 잠재적인 힘”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일각에선 이 시장이 89년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과 함께 러시아 사할린을 방문해 에너지 발굴을 모색했던 것을 재연, 서울시에 친환경 에너지를 공급하는 획기적인 프로젝트로 국민적 관심을 도출하려 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손학규 경기지사측은 경쟁자인 박근혜 대표, 이명박 시장 등이 여권의 공세와 개인적 악재 등의 이유로 대선 가도가 순탄치 않다고 판단, 이 기회에 대권 주자로서의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입장이다. 손 지사는 최근 경기도 산하기관인 경기관광공사 사장에 신현태 전 의원을, 수원 월드컵경기장 관리재단 사무총장에 박종희 전 의원, 경기부지사를 지낸 한현규씨를 경기개발연구원장에 각각 임명, 대권을 준비하기 위한 인맥관리에 나선 것이 아니냐는 관측을 낳게 한 바 있다.

손 지사는 파주에 건설되고 있는 세계최대의 LCD 공장인 LG 필립스와 북한 개성 공단을 연계, 개성~파주~고양~김포를 잇는 평화벨트를 조성함으로써 남북이 윈 – 윈 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추진중이다. 이를 위해 북한을 방문할 계획을 구상중인 손 지사가 그 계획을 현실화시킨다면 대권 가도에 엄청난 탄력이 붙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


입력시간 : 2004-08-12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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