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대선 향배 가늠할 바로미터, 여야3당 호남표 잡기 혈안

호남 껴안기 '황산벌 삼국지'
2007 대선 향배 가늠할 바로미터, 여야3당 호남표 잡기 혈안

노무현 대통령이 29일 오전 목포시청에서 열린 전남지역 혁신발전 5개년계획 토론회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정치권에 ‘황산벌 전투’ 가 한창이다. 여야 3당이 ‘호남’을 껴안기 위해 때이른 혈전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호남전쟁’ 은 3년여 앞둔 대선이 직접적인 배경으로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이 정면 승부를 하는 가운데 민주당은 측면전을 펴는 양상이다.

호남이 차기 대선전의 중심무대로 때이르게 등장한 것은 호남표가 지난 두차례 대선의 향배를 결정한 데다 2007년 대선에서도 바로미터가 될 것이라는 배경에서다. 특히 전문가들은 대선지형이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영ㆍ호남 야권연대로 충청권을 기반으로 한 여권 후보를 압박할 경우 차기의 향배를 가늠키 어렵다고 전망한다. 더욱이 행정수도 이전을 둘러싸고 요동치는 민심이 신(新)지역주의로 발호할 경우 여권이 고전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한다. 이는 호남을 둘러싼 열린우리당-한나라당-민주당의 3국지가 치열할 수밖에 없는 배경이 되고 있다.


- 한나라 "호남 없으면 대권 없다"

황산벌 전투에는 한나라당이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연패를 한 터라 “호남이 없으면 대권도 없다”는 기치로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8월30일 호남에서 의원연찬회를 마치고 박근혜 대표를 비롯한 의원들이 집단으로 광주 5ㆍ18 묘지를 참배한 것은 한나라당의 호남 구애를 단적으로 보여준 예다.

한나라당 전략통으로 여의도연구소 부소장을 맡고 있는 박형준 의원은 “호남의 지지 없이는 마의 38% 장벽을 넘기 어렵다”면서 “호남에 대한 접근으로 당장 당의 지지도가 올라가지는 않겠지만 역사적 부채의식을 갖고 꾸준히 정성을 들이면 언젠가는 호남도 한나라당에 문을 열 것”이라고 말했다.

여의도연구소에서 추진중인 ‘한나라당 3개년 발전계획’ 은 차기 대선의 집권 프로그램으로 호남 껴안기를 위한 ‘서진(西進)’, 청년층 등 젊은 유권자 확보를 위한 ‘청진(靑進)’, 네티즌들을 잡기 위한 ‘전진(電進)’이 핵심을 이루고 있다. 그 가운데 서진 정책의 비중은 상당히 높고 호남에 대한 사과, DJ를 통한 호남 민심잡기, 호남인과의 스킨십 강화 등이 구체적인 내용이다.

한나라당은 박근혜 대표가 당 대표로는 처음으로 광주 5ㆍ18 행사에 참석해 호남의 장벽을 두드린 후 6월17일엔 서진정책을 주도할 ‘지역화합ㆍ발전 특별위원회’ 가 출범하고, 최고위원 경선을 위한 첫 전당대회를 7월12일 광주에서 여는 등 호남민심을 잡기에 전력했다. 8월12일에는 박 대표가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사저를 방문한 것은 ‘서진’의 상징적인 행보다. 이날 박 대표는 DJ를 만나 “아버지 시절에 많은 피해 입고 고생한 것을 딸로서 사과드린다”고 말했고, DJ는 박 대표에게 “그렇게 말해주어 감사하다”고 화답해 외견상 DJ가 사과를 받아들이는 모양새를 갖췄다. 나아가 박 대표가 호남에서 한나라당의 저조한 지지율을 거론하며 관심을 호소하자 DJ는 “동서화합이 가장 중요하다. 박 대표가 제일 적임자시니 수고해주길 바란다”며 덕담을 해 결과적으로 ‘DJ를 통한 호남 민심잡기’가 기대이상의 성과를 거두었다.

특히 DJ는 자신이 추진한 ‘박정희 기념관’ 건립이 노무현 정권에 의해 좌초될 가능성이 높아진 것에 몹시 불쾌해하며 박 대표에게 “꼭 완성시켜달라”고 부탁을 해 박 대표가 ‘서진’에 자신감을 가졌다는 후문이다.

한나라당의 ‘호남속으로’행보도 두드러져 박 대표가 8월24일 태풍 ‘메기’로 수해를 입은 전남 나주의 현장을 방문해 수재민을 위로했는가 하면 의원연찬회 장소를 전남 구례ㆍ곡성으로 정해 지역민들과의 접촉을 시도하는 등 호?정서를 파고 들었다. 이에 앞서 한나라당 ‘새정치수요모임’ 소속 의원과 보좌진 20여명은 7월20일 1박2일 일정으로 전남 강진을 방문해 ‘농활’을 하면서 바닥 여론을 청취하는 등 지역민들과 유대를 강화하기도 했다.


- 우리당, 호남 애정론 펼치며 민심 잡기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24일 태풍 메기 영향으로 수해를 입은 전남 나주시 만봉천 제방붕괴 현장을 방문, 박준영 전남지사의 안내로 피해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열린우리당은 4ㆍ15 총선에서 호남의 일방적 지지에 고무돼 있다가 6ㆍ5 재보선결과 호남 민심이반 현상이 나타나고 ‘호남소외론’이 확산되면서 서둘러 호남 민심잡기에 나섰다. 지난 7월23일과 24일 신기남 전 의장 등 지도부가 총출동해 광주와 나주, 광양, 여수 등을 잇따라 방문해 지역발전 방안을 모색한데 이어 29일엔 노무현 대통령이 광주에서 열린 ‘광주전남지역 혁신발전 5개년계획 토론회’에 참석해 '호남 애정론'을 강조하며 호남 지지세력 결집을 시도했다. 특히 노 대통령은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의 통합을 시사하는 발언을 해 호남에서 민주당이 설 자리를 위협, 호남의 확실한 안주인이 되겠다는 의지를 피력하기도 했다.

당에서는 노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호남의 좌장격인 염동연 의원이 주축이 돼 7월30일 ‘빛고을 포럼’을 창립, 호남 민심을 잡는 교두보를 마련했다. 강금실 법무장관의 후임으로 7월28일 호남 출신의 김승규 전 법무차관을 임명한 것도 호남을 의식한 선임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민주당은 4ㆍ15 총선 참패로 존립이 불투명한 상태서 6ㆍ5 재보선으로 재기해 일단 위기를 넘겼다. 그러나 호남이 유일한 생존기반이어서 호남에 ‘올인’해야 하는 상황이다. 민주당은 열린우리당이 호남 공략에 나선 7월23일 한화갑 대표를 비롯해 이정일 사무총장, 김효석 정책위의장 등 지도부가 광주·전남을 방문해 ‘호남민심’ 붙들기에 전력했다. 하지만 호남 민심이 유동적인 데다 여권 뿐만 아니라 당내서도 통합 목소리가 높아 공세가 호남토박이의 위상은 매우 불안하다.


- 한나라·민주 연대 땐 '태풍의 눈'

호남이 차기 대선의 길목으로 중요성이 점증함에 따라 여야 3당의 호남민심 쟁탈전도 치열해지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결과 호남민심은 열린우리당에 경도된 양상을 보이고 있지만 국정운영 지지율이 낮고 전남북 간에 정당 지지율에 차이를 보여 호남 3국지의 지형은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특히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호남의 새 주인으로 자리잡고 있는 열린우리당에 맞서면서 연대가능성을 남겨두고 있어 2007년 대선의 ‘태풍의 눈’이 되고 있다. 만일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대선 과정서 영ㆍ호남 결합을 매개로 연대하거나 각각 대선과 당의 존립을 위해 손을 잡을 경우 열린우리당은 고립돼 재집권이 물건너갈 수도 있다.

지난 두차례의 대선은 1∼2%대의 득표율 차이로 명암이 갈렸다. 여야 3당이 벌써부터 호남의 지분 확보에 전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여권의 텃밭이 된 호남이 2007년 대선에서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호남 3국지는 날마다 새롭게 쓰여지고 있다.

박종진 기자


입력시간 : 2004-09-02 16:35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