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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 '유탄'에 누가 쓰러지나?
국회 친일진상규명 특별법 개정 논란
검증과정서 '정국 소용돌이' 가능성




열린우리당 신기남 의장이 8월 19일 오전 영등포 당사에서 선친의 친일행적 은폐와 관련 의장직을 사퇴하는 기자회견 중 고개숙여 사화를 하고 있다.
/ 홍인기 기자



국가보안법 개폐, 공정거래법 개정 논쟁 속에 정기 국회 초반이 여야간 난타전 양상으로 흐르고 있다. 이런 가운데 개혁 이미지를 선취하려는 여권의 ‘야심작’인 친일진상규명특별법 개정 논란도 여야 입장 차이가 현격해 또 다시 소용돌이 정국이 예상된다.

양측의 법안이 국회 행정자치위에 상정되기까지의 ‘우여곡절’은 차치하더라도 법리 공방은 벌써부터 달아올랐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각각 제출한 개정안이 과거사를 바라보는 시각 차이에서부터 친일진상규명 방법, 그 속에 숨어 있는 ‘정치적 노림수’까지 절충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열린우리당의 개정안은 16대 국회에서 현행법이 통과되면서 ‘누더기’가 된 부분을 복구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반면 한나라당의 개정안은 “폭력적 친일 청산의 위험성”을 지적하며 현행법을 보완하는 수준을 주장하고 있다. 이 때문에 양측의 개정안은 조사 대상과 조사를 맡을 주체 등에 있어 현격한 차이를 보이는 것이다.


- 조사 대상·주체 놓고 첨예한 대립

우선 열린우리당은 위원회를 대통령 직속의 ‘국가 기구’로 하고, 9명의 위원을 모두 국회 동의를 거쳐 대통령이 임명토록 하고 있다. 민간 기구로 할 경우 진실 규명이라는 목적 달성에 어려움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반면 한나라당은 위원회를 대한민국 학술원 산하의 ‘민간 기구’로 하고 위원은 국회의 추천을 받아 학술원장이 임명토록 했다. 국가 기구로 할 경우 여권의 입맛대로 위원회가 운영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조사 권한에 있어서도 열린우리당은 위원회의 출석 요구에 불응한 사람에게 동행 명령장을 발부하고 이를 어기면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했다. 이와 함께 조사위원이 관계 기관 등에 자료 제출 및 열람을 요구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동행명령권 부여가 “위헌의 소지가 있고 현행 민형사법의 증인 출석 불응 시 과태료 규정 등으로 얼마든지 제재가 가능하다”고 반대 입장이 분명하다.

조사 위원의 자격도 논란거리다. 현행법은 조사 위원의 규정과 관련 친일반민족행위나 친공반민족행위를 하지 않았음을 소명토록 하고 있다. 열린우리당은 “이 조항은 명백한 연좌제로 위헌의 소지가 있다”고 개정안에서 삭제했으나, 한나라당은 “피해 - 가해 당사자가 배제돼야 한다”는 원칙을 내세우며 유지토록 했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가장 큰 논란은 조사 대상과 범위다. 열린우리당은 군인의 경우 일제강점기에 중좌(중령)에서 소위 이상의 장교, 경찰의 경우 경시(총경급) 이상의 간부를 ‘당연범’으로 규정했다. 이와함께 판ㆍ검사, 고등관(군수급) 이상의 관리 등도 조사 대상에 포함시켰다.

이에 반해 한나라당은 언론 문화 예술 학계의 친일 활동은 현행법대로 제외하되, 헌병이나 경찰은 계급 제한 없이 조사 대상으로 삼고 있다. 또한 동양척식회사 식산은행의 ‘중앙조직 간부’를 ‘중앙 및 지방조직 간부’로 확대하는 방안을 주장하고 있다. 다만 ‘지위’가 아니라 ‘행위’로 친일파를 판단하기 위해 ‘당연범’ 규정은 두지 않기로 했다.

양당이 이 대목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유는 조사 범위 규정 속에 ‘정치적 암수’가 들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은 군의 경우 소위 이상으로 확대한 열린우리당의 방안을 수용했음에도, 그 속에 일제 시대 중위를 지낸 박정희 전 대통령을 친일 대상에 포함시킴으로서 박근혜 대표를 흠집내려는 정치적 의도가 있다는 시각을 거두지 않고 있다.

국회 행자위에서 친일진상규명 개정법안상정에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찬성에 기립하자 한나라당 의원들이 퇴장하고 있다.
/ 홍인기 기자

또한 열린우리당이 헌병과 경찰의 경우 기존의 ‘간부’에서 ‘경시 이상’으로 축소 규정한 대목에 대해서도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일제 시대 부친의 헌병 복무 의혹이 제기됐거나, 자진 신고한 신기남 전의장과 이미경 의원 등 여당 중진들을 풀어주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이는 역으로 따지면 헌병과 경찰을 계급 제한없이 조사 대상에 포함시킨 한나라당의 ‘강공’ 배경에 여권 수뇌부를 겨냥한 노림수가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또한 한나라당이 식산은행 간부의 범위를 확대한 것도 부친이 식산은행 산하 지방 금융조합의 서기였던 정동영 통일부장관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해석이 공공연하다.

일단 이 같은 논란이 거듭되자 열린우리당이 “경찰과 헌병의 조사 범위도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한발 물러선 상태다. 또한 현행법이 발효되는 9월23일까지 개정안 처리를 강행하겠다던 열린우리당이 국정 감사 이후로 시점을 늦춘 것도 여야간 대화의 숨통을 튼 측면이 있다.

하지만 국가보안법 논란에서 알 수 있듯, 친일진상규명 논쟁도 시간이 타협을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게 중론이다. 어쩌면 국보법, 친일진상규명법, 과거사 진상규명법 등의 동시다발 처리가 예정된 11월은 여야간 대치 정국이 최고조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 특정인 겨냥한 노림수 될 수도

이와 함께 우려되는 대목은 양측의 법리 공방과는 별개로 ‘친일 정국’이 전면화 될 경우, 어느 누가 ‘난데없는 유탄’을 맞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신기남 전 의장의 낙마가 좋은 본보기다. 정동영 장관, 유시민 의원도 인터넷을 진원지로 한 부친의 친일 의혹으로 홍역을 앓고 있다.

독립군의 자손임을 자랑하던 김희선 의원도 일부 언론이 제기한 ‘부친의 일제하 만주국 경찰 복무’ 논란을 해명하느라 진땀을 빼고 있다. 야당에선 박근혜 대표의 부친인 박정희 전대통령의 친일 의혹이 기정사실화 단계로 접어든지 오래다. 소장파를 대표하는 한 의원도 조부가 일제 때 ‘남작’ 칭호를 받았다는 내용이 인터넷에 유포된 상태다.

친일 검증이 특정 세력이나 특정인을 겨냥한 수단으로 활용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언제든지 현실화될 수 있는 예후에 다름 아니다.



임경구 프레시안 기자 hifidelity@naver.com


입력시간 : 2004-09-23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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