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한 전당대회 전초전, 노정권 후반기 대권레이스 본격화 의미김혁규 행보에 촉각, 정동영 빅딜 고민, 김근태 대리인 내세울 듯

우리당 당권전쟁 점화 '대권 앞으로!'
치열한 전당대회 전초전, 노정권 후반기 대권레이스 본격화 의미
김혁규 행보에 촉각, 정동영 빅딜 고민, 김근태 대리인 내세울 듯


이부영(왼쪽)의장. 김혁규 중앙위원

와신상담(臥薪嘗膽), 오월동주(吳越同舟), 합종연횡(合從連衡). 전란이 끊이질 않았던 춘추전국시대의 단순한 고사성어가 아니다. 국가보안법, 과거사 문제 등 최근 ‘이념정국’의 수면 아래서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여권 내의 때이른 ‘당권(黨權)’ 전쟁의 현주소다.

추석 명절 직후인 9월 30일 여권에서 TK(대구ㆍ경북)ㆍPK(부산ㆍ경남)를 각각 대변하는 열린우리당 이강철 국민참여운동본부장과 김혁규 상임중앙위원이 영남 행보에 함께 나서 눈길을 끌었다. 명목은 지난 총선에서 낙선한 영남권 출마자들을 위로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지만 “우리가 남이가”를 방불케 하는 두 사람의 동행을 두고 뒷말이 무성하다. 내년 2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영남권 교두보를 확보하려는 속셈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10월 1일 대구 인터불고호텔에서 열린 오찬 간담회에는 이재용 대구시당위원장, 박기환 경북도당위원장, 윤덕홍ㆍ권기홍 전 총선출마자 등이 참석해 두 ‘실세’의 위상을 확인시켰고, 김 위원은 다음날까지 대구에 머물며 경남향우회 인사들과 만찬을 갖는 등 영남권 끌어안기에 상당한 공을 들였다는 후문이다.

영남 구애 행렬에는 신기남, 이부영 전ㆍ현직 당의장도 포함됐다. 신기남 전 의장은 지난 1일 대구의 한 식당에서 이재용, 박기환 위원장과 김준곤ㆍ김태일 총선출마자, 당직자 등 2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간담회를 가졌다. 이부영 당의장은 8일 대구에서 개최되는 영남 5개 시ㆍ도당 공동 신행정수도 토론회에 참석할 예정이다.

대구행에 대해 신 전 의장은 “예정돼 있던 총선 노고에 대한 위로 방문”, 이 의장은 “국가 현안에 대해 당 의장으로서 책임있는 자세”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내년초 전당대회의 당 의장 선거와 무관하지 않다는 시각이 적지 않다. 즉 신 전 의장의 경우 당 의장 출마가 불투명하지만 천ㆍ신ㆍ정(천정배ㆍ신기남ㆍ정동영) 트리오로 대변되는 당권파의 지분을 전대까지 유지하려는 것이고, 이 의장은 ‘관리형’ 의장에서 ‘실세형’ 으로의 변신을 꾀하기 위한 사전 정지작업이라는 해석이다.


- 각 계파간 물밑 세불리기

이념정국이 장기전으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여권에서 그와 무관한 전대 전초전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것은 내년이면 노무현 정권의 임기가 후반기로 접어들고 현재 진행되고 있는 대권 레이스에 가속도가 붙을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당 의장의 향배에 따라 대권 지형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다는 계산이 작용하고 있는 셈이다.

당 의장을 향한 전초전이 급물살을 탄 것은 신기남 전 의장이 8월 17일 부친의 친일 전력 시비로 낙마한 게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신 전 의장의 사퇴와 동시에 당권을 고수하려는 당권파와 이에 맞선 비당권파 간의 힘겨루기가 촉발된 것. 그러나 양측의 대결은 당권파의 독주를 견제하려는 당내 개혁당 출신과 친노(親盧)그룹이 비당권파에 가세하면서 싱겁에 끝나 이부영 체제를 출범시켰다. 당내 역학구도도 천ㆍ신ㆍ정의 당권파에서 김근태 계가 주축인 비당권파로 무게 중심이 옮겨졌고, 개혁당 출신과 친노 인사들은 무시못할 ‘제3그룹’으로 자리잡았다.

관리형 이부영 체제는 당권ㆍ비당권파의 전투가 끝나는 순간 또다른 전쟁을 잉태하고 있었다. 가깝게는 2005년 당권, 멀리는 2007년 대권을 향한 전초전이 그것이다. 당권ㆍ대권전은 서로 연계돼 있는데다 당권의 선점 효과는 절대적이라 할 수 있어 특히 잠룡들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최근까지 전초전에 두드러진 행보를 보인 주자는 김근태 보건복지부장관, 김혁규 상임중앙위원, 이부영 당의장, 유시민 의원 등이다. 가장 분명한 잠룡인 정동영 통일부장관은 신분상의 제약으로 선뜻 전장에 나서지 못하고 다른 주자와 합종연횡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근태 장관은 1ㆍ11 당 의장 선출과 5ㆍ11 원내대표 경선에서 대권 경쟁자인 정동영 장관에게 연거푸 패한 이후 와신상담 끝에 이부영 체제를 출범시켜 일단 유리한 고지에 올라선 입장이다. 그러나 장관 신분상 내년초 당 의장 선거에 출마할 상황이 아니어서 ‘대리인’을 내보내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대리인으로는 김 장관의 핵심 정치후원그룹인 ‘국민정치연구회’의 이사장을 맡고 있는 장영달 의원이 유력시되고 있다. 장 의원은 80년대 김 장관, 이해찬 총리 등과 함께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련)을 조직해 초대 부의장을 맡는 등 김 장관과는 막역한 관계이고, 지난 8월 국민정치연구회 신임 이사장으로 선출돼 김 장관의 든든한 후원군이 되고 있다.

올해초 당 의장과 총리 기용이 점쳐졌다가 모두 고배를 마신 김혁규 위원은 이후 조용히 지냈으나 최근 누구보다 바쁜 행보를 거듭하고 있다. 주변 인사들에 따르면 청와대에서 같은 PK 출신인 문재인 시민사회수석이 강력히 지원하고 있고, 당에서는 이강철 본부장 등 영남권 인사들이 적극 밀고 있다는 전언이다.

청와대의 한 386 참모는 “대통령의 집권 후반기가 시작되는 내년에는 개혁보다는 ‘안정’에 비중을 두는 국정 운영을 위해 당과도 보조를 맞출 것”이라고 해 김 위원의 당 의장 가능성을 전망케 했다. 정가의 한 중견 정치평론가는 “김혁규 위원은 영남 출신이고 최근 여론조사에서 차기 대통령 일순위 후보로 거론된 고건 전 총리와 같은 안정감과 행정 경륜이 돋보여 내년초 당 의장에 오른다면 차기 주자로 급부상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 유시민 의원 다크호스로 부상

장영달(왼쪽), 유시민 의원

당 의장 선출과 관련, 가장 주목받는 인사는 유시민 의원이다. 유 의원의 당 의장 도전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고 있는데다 지난 8월말 당권파가 주도한 ‘기간당원 자격 요건 완화’ 시도가 개혁당 출신이 중심이 된 열성 당원들의 저지로 무산돼 유리한 환경이 조성됐기 때문이다.

유 의원 지지세력이 주축인 ‘참여정치연구회’(공동대표 김두관 유시민)는 지난 8월말 경남 남해에서 연수회를 갖고 당의 세력교체 방안 등을 논의했는데 유 의원의 당 의장 출마도 거론됐다는 게 참석자의 설명이다. 정가에서는 내년초 전대에서 결집력이 높은 기간당원이 참여하고 인터넷 선거가 실시될 경우 유 의원이 다크호스로 등장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한다.

이부영 의장은 명실상부한 당 의장으로의 변신을 위해 내년초 전대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념정국에서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와 각을 세우는 것이나 국가보안법 폐지, 과거사 청산에 앞장서는 것도 그러한 맥락이라는 분석이다.

그러나 이 의장은 당내 특별한 지지세력이 없는 게 한계. 정가에선 이 의장이 김근태 장관쪽에 은밀히 지지를 부탁하고 있다거나 한나라당 탈당파 의원과 재야 세력을 중심으로 세불리기에 나서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천ㆍ신ㆍ정 등 당권파의 행보로 신 전 의장이나 천 원내대표의 출마가 어려운 상황에서의 정동영 장관의 선택이다. 정가 사정에 밝은 소식통에 따르면 정 장관은 ‘대리인’을 내세우는 대신 영남 출신의 김혁규 위원을 밀고 반대급부로 대권 도전시 지지를 이끌어내는 방안을 놓고 고민중에 있다는 전언이다.

박종진 기자


입력시간 : 2004-10-06 18:43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