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 급진화 두고 볼 수 없다"개혁파 득세에 위기의식, 경륜으로 당 무게중심 잡기

열린우리당 '중도ㆍ보수파' 급부상
"당 급진화 두고 볼 수 없다"
개혁파 득세에 위기의식, 경륜으로 당 무게중심 잡기


열린우리당 386 소장파 의원들로 구성된 "한국경제, 이렇게 살리자" 의정연구센터 창립총회 및 심포지움.

열린우리당 내 ‘중도ㆍ보수파’의 세력화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지난 2일 “앞으로 당 내에서 제목소리를 내겠다”며 공식 발족한 ‘일토삼목회(一土三木會)’가 그 중심에 있다. 매달 첫째주 토요일에 모여 운동을 하고 셋째주 목요일에 모임을 갖는다는 비교적 단순한 뜻에서 만들어진 이름이다. 그러나 숫자상으로 당내 최대인 43명이 참여하고 있고, 그 면면도 간단치 않다. 하기에 모임은 발족 전부터 당 안팎의 비상한 관심이 쏠려왔다.

참여정부에서 경제부총리를 지낸 김진표 의원이 모임의 대표를 맡았다. 김 의원과 함께 ‘경제 수장’ 출신 3인방으로 꼽히는 홍재형 전 경제부총리, 강봉균 전 재경부 장관도 눈에 띈다. 정덕구 전 산자부 장관, 이근식 전 행정자치부 장관, 김한길 전 문화관광부 장관, 김명자 전 환경부 장관 등 전직 장차관 출신 의원 17명이 명단에 들어있다.

청와대 출신으로는 “정국 흐름을 읽어내는 정치인”으로 꼽히는 문희상 전 대통령 비서실장, 유인태 전 정무수석비서관이 함께하고 있다. 또한 노무현 대통령의 국정운영 1년을 청와대에서 보좌했던 이광재ㆍ백원우ㆍ서갑원 의원 등 16명도 이름을 올렸다. 여기에 원혜영 전 부천시장, 이시종 전 충주시장 등 지자체 출신 의원 10명도 포함됐다. 한마디로 중앙정부와 청와대, 지자체에서 경륜을 쌓은 의원들이 총망라된 셈이다.


- "우리당에 86만 있는 게 아니다"

총선 직후 당내 노선 논쟁이 한창일 때도 가급적 입장 표명을 꺼렸던 이들이기에 “제목소리를 내겠다”는 태도 변화의 배경이 관심사다. 국가보안법 논란, 과거사 청산 논란 등을 거치며 개혁성향 의원들의 ‘투지’에 당이 급진화되고 있다는 위기의식이 세규합의 동인이다. “열린우리당에는 386만 있는 게 아니다”는 김진표 의원의 말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국정감사가 시작되기 직전에 모임을 공식 발족시킨 것도 정책 입안과 추진에 있어 무게중심을 자임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이들은 특히 개혁파 의원들의 ‘약한 고리’인 국정경험 면에서 풍부하고 전문적인 식견을 자랑한다. 하기에 사회적 화두인 경제 문제에 대한 당의 대응은 이들이 주도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이를 웅변하듯 강봉균 의원은 “국정 경험을 바탕으로 당면한 현안인 경제 문제를 심도있게 논의하고 안정적 대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당장 공정거래법 개정, 기금관리기본법 등 정기국회 현안이 이들 손에 달려있다고 봐도 무리는 아니다.

‘일토삼목회’는 이광재 의원이 이끄는 ‘신의정연구센터’와 성향이 가깝다. 지난 8월 창립총회를 가진 ‘신의정연구센터’는 노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한 386 의원들이 모여 ‘친노(親盧) 직계그룹’으로 평가된다. 개혁파 386과는 확연히 대조되는 ‘우향우’ 동선을 그려왔다. 지난달 13일엔 삼성경제연구소와 심포지움을 갖고 실용주의 관점에서 경제현안을 논의했고, 연이어 15일에는 전경련 회장단과 만찬을 가져 주목을 받았다.

경제문제를 중심에 두고 중도 실용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두 모임은 국보법 논란이나 과거사 진상규명법 등 개혁 법안에 대해선 드러내 놓고 입장을 밝히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행정관료 출신들의 성향 상, 당내 보수적 시각의 백그라운드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 "개혁엔 완급조절이 필요한 것"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열린우리당 경제정책 대토론회. 홍재형강봉??의원의 모습이 보인다.

국가보안법 개폐논란 등에서 개혁파의 맞수로는 단연 ‘안정적 개혁을 위한 의원모임(안개모)’이 꼽힌다. 추석 직전인 지난달 23일 정식 발족한 ‘안개모’는 “지금은 준비된 개혁안도 완급조절이 필요한 때굡窄?“안정감 있는 여당을 지향하는 우리당 의원들과 함께 보다 적극적인 정치활동을 통해 국민들에게 믿음을 주는 실사구시 정책을 구현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국가보안법 폐지 필요성에 대한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이 나오기 전까지 이들은 폐지가 아닌 개정을 주장했다. 노 대통령의 발언 뒤에도 특별법 형태의 대체입법론을 제기하며 폐지파의 발언권 확대에 제동을 걸고 있다.

유재건 국방위원장, 안영근 제2정조위원장, 조성태 의원 등 당내 외교안보 실세그룹이 ‘안개모’를 주도하고 있다. 참여 의원 수는 20여명에 불과하지만, 정장선 당의장 비서실장, 이계안 제3정조, 안병엽 제4정조, 조배숙 제6정조 위원장 등 정책결정의 방향타를 쥔 인사들이 포진해 있어 발언권이 막강하다. 대체입법 없는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도하는 임종석 의원이 최근 “개혁 주도력의 한계를 스스로 드러낸 것은 아닌지 자문자지 않을 수 없다”고 지도부의 각성을 촉구한 것도 ‘안개모’의 영향력 확대에 대한 경계로 보는 해석이 많다.

‘일토삼목회’ ‘신의정연구센터’ ‘안개모’로 집약되는 열린우리당 내 3대 ‘중도ㆍ보수’ 모임이 향후 당내 역관계에 어떤 파장을 몰고 올지는 예단이 어렵다. 공통적으로 내건 “균형추 역할을 하겠다”는 슬로건대로 이들의 행보가 절제된다면 그간의 좌충우돌하던 정책결정의 혼선은 줄어들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의 행동반경이 넓어질수록 개혁파 의원들과의 신경전 가열이 불가피해 그동안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있던 노선 갈등을 증폭시킬 가능성도 크다.

특히 차기 당권이 달린 내년 2월 전당대회가 다가올수록 개혁-보수 간의 갈등은 정면대결 양상으로 치달을 수 있다. 당내 권력을 양분하던 정동영 통일부장관,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이 내각으로 자리를 옮겼고, 신기남 전 의장의 낙마로 파트너를 잃은 천정배 원내대표나 ‘원외’ 이부영 의장의 당 장악력도 한계가 있다. 포스트가 없는 ‘권력 공백’ 상태에서 치러지는 당권 경쟁은 자연히 세력간의 몸집 대결이 좌우한다. 따라서 개혁파 386 의원들의 모임인 ‘새로운 모색’, 유시민 의원이 이끄는 ‘참여정치연구소’ 등과 대척점에 선 중도ㆍ보수파 모임의 일거수일투족은 차기 당권 창출과 밀접한 관련 하에 조명될 것으로 보인다.

임경구 프레시안 기자


입력시간 : 2004-10-14 15:50


임경구 프레시안 기자 hifidelit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