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 개혁파·강경파, 당 주도권 놓고 전면전지방선거·대선 염두에 둔 헤게모니 쟁탈전

한나라는 지금 계파 전쟁 중
소장 개혁파·강경파, 당 주도권 놓고 전면전
지방선거·대선 염두에 둔 헤게모니 쟁탈전


한나라당 소장파 의원, 당선자들이 모임을 갖은 자리에서 원희룡의원(앞줄 오른쪽)이 당의 진로와 개혁방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고영권 기자

이해찬발(發) 대치 정국에서 비롯된 한나라당의 내홍이 좀처럼 가라 앉지 않고 있다. 이해찬 국무총리의 한나라당 폄하 발언에 대한 해법을 놓고 당내 계파 간 이견이 충돌한 가운데 국가보안법 개폐 등 현안들에 대해서도 시각차가 병존하는 것. 한나라당의 갈등은 외견상 대여 전략의 차이에 따른 것으로 비춰지지만 내부적으로는 계파 간 당 주도권, 2006년 지방 선거, 2007년 대선을 향한 중ㆍ장기 수싸움도 내재돼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다.

이 총리가 10월 28일 국회 본회의에서 한나라당을 "차떼기당"으로 비하, 국회가 10여일 넘게 파행을 거듭한 가운데 열린우리당은 단독 국회 강행의사를 표명, 한나라당의 등원을 둘러싼 '선택'에 관심이 모아졌다.

한나라당은 "여권의 성의 있는 입장 표명이 필요하다"며 일단 국회 등원을 거부했지만, 향후 진로를 놓고 내부 진통을 계속했다. 수도권 일부 중진과 영남 의원이 중심이 된 강경파는 "총리를 파면시켜야 한다. 사과로 끝낼 일이 아니다"며 국회 등원을 거부, '강경 투쟁론'을 내건데 반해, 개혁 성향의 초ㆍ재선 의원 등 온건파는 국민 여론을 의식해 일단 국회에 들어가 싸우자는 '조기 등원론'을 주장했다.

- 당내외 현안놓고 사사건건 대립

양측의 대립은 주요 당직자 회의, 상임운영위, 의원 총회 등에서 현안에 대한 견해차로 맞부딪치고 있지만 그 이상으로 상대 진영에 대한 공격도 서슴지 않아 한나라당의 갈등은 세력간 내전(內戰)과 대여 외전(外戰)이 병행하는 모양새다. 지난 11월 2일 열린 의원 총회는 두 진영의 갈등을 극명하게 드러냈다.

이 날 보수 강경파의 대표격인 김용갑 의원은 10월 30일 KBS 생방송 '심야 토론'에서 원희룡 최고위원이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4대 법안 철회를 요구한 것과 색깔론 시비를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고 한 발언을 문제 삼아 "탈당하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원 최고 위원이 당론을 말하지 않고 열린우리당 이종걸 원내 수석 부대표의 입장에 동조하는 모습을 보여줬다는 게 이유였다. 이에 원 최고의원은 "국회 파행에 관해서는 당론을 얘기했고 국보법은 당론 스펙트럼 안에서 발언했다"고 해명한 것.

그러자 이번에는 3선의 안상수 의원이 "당 최고위원으로서 그런 발언을 할 수 있느냐"고 쏘아 붙였고, 영남의 박종근 의원은 "좌파 정권을 좌파라고 하는 것인데 뭐가 잘못 됐느냐"며 가세했다. 상황을 지켜본 초선 개혁파인 고진화 의원은 의원총회 후 "정치인이 자신의 소신을 가지고 발언한 것을 두고 연좌제처럼 가는 것은 정치인으로서 모욕감을 느끼게 한다"며 "원희룡 의원을 만나 중대한 결심을 할 것이다"고 탈당을 시사, 강경파와 전면전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양측의 또 다른 '외전'은 국가보안법 개폐 문제와 남북관계기본법 제정 문제 등 현안에서도 표면화됐다. 당내 소장 개혁파 그룹인 '새정치수요모임'(수요모임)은 지난달 말 국가보안법의 핵심 쟁점인 '정부 참칭' 부분을 삭제 또는 개정하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고, 11월 3일에는 정문헌 의원이 북한의 정치적 실체를 인정하는 것을 골자로 한 '남북 관계 기본 법안' 의 입법 취지와 필요성에 공감을 나타냈다.

그러나 보수 성향 의원들의 모임인 '자유 포럼'은 지난 4일 여의도에서 모임을 갖고 "국보법의 '정부 참칭' 조항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유지시켜주는 국보법의 가장 핵심적인 근거가 되는 조항으로서 어떠한 경우에도 폐지해선 안 되며, '남북 관계 기본법'은 대한민국 헌법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법이므로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최근 한나라당의 대여 투쟁(외전)은 강경파가 주도했다. 이 총리의 문제 발언 직후에 강ㆍ온파 모두 이 총리와 여권을 공격했지만, 지난 2일 오전에 열린 확대 원내 대책 회의에서는 이 총리 해임 건의안을 조기에 제출해 국회를 정상화시키는 방향으로 의견이 모아졌었다. 그러나 오후 의총에서 강경파 의원들이 일제히 제동을 걸면서 분위기는 반전됐고, 4일에는 국회의원 회관에서 '이해찬 총리 파면 촉구 및 망언 규탄 대회'를 개최, 박근혜 대표까지 대여 공격에 나서는 상황에 이르렀다.

- 각 세력간 내전 확대일로

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한나라당의 이해찬 총리 망언규탄 및 파면촉구대회에 참가한 박근혜 대표, 김덕룡 원내대표를 비롯한 의원들과 시민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이종철 기자

주목되는 것은 한나라당의 대여 강경 드라이브 이면에 엿보이는 '내전'의 궤적이다. 한나라당 소장 개혁파 그룹인 '수요모임'과 보수 성향 의원들의 '안보포럼', 그리고 반(反)박근혜의 행보를 보여 온 '국가발전전략연구회'(국발연) 등 당내 대표적 세력 간의 이중적 대립이 그것. 파행 정국과 관련, 수요모임이 조기등원론을 주장한데 반해 안보포럼은 강경 투쟁 지속론을 폈고, 국발연은 의원에 따라 각기 다른 입장을 보였다.

특히 자유포럼과 일부 국발연 소속 의원은 수요모임 의원들에 대한 비판을 넘어 박근혜 대표와 김덕룡 원내대표 등 당 지도부를 공격해 그들이 '또 다른 의도'가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을 불러 일으켰다. 즉 대치 정국을 견인하면서 당 지도부의 대여 투쟁력을 문제 삼아 궁극적으로 지도부를 무력화시켜 당 주도권을 확보하고 , 멀리는 2006년 지방 선거와 2007년 대선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려는 장기 포석이 아니냐는 추정이다.

사실 7ㆍ19 전대를 계기로 제 2기 박근혜 체제가 출범하면서 수요모임은 대표적인 '친박(親朴)' 그룹으로 자리잡았고, 소속의원인 원희룡 의원은 최고 위원, 박형준 의원은 당 싱크 탱크인 여의도연구소 부소장, 김희정 의원은 당 디지털 정당 위원장을 맡는 등 당 중심부를 차지했다. 또 박 대표와 함께 당을 이끌고 있는 김덕룡(DR) 원내 대표는 이른바 'DR계 의원'들에게 당 주요 직책을 맡겨, 다른 의원들의 공격 타깃이 되기도 했다. 상대적으로 자유 포럼과 국발연 소속 의원들은 당 운영에서 소외됐다.

정가에서는 박 대표가 4ㆍ15 총선과 7ㆍ19 전대를 계기로 명실상부한 차기 주자로 부상한 가운데, 수요모임 소속인 원희룡 의원과 남경필 원내 수석 부대표는 2006년 지방 선거에서 각각 서울시장과 경기지사 출마를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덕룡 원내대표는 킹메이커, 또는 당권을 노리고 있다는 후문이다. 반면 영남 출신이 주축인 자유포럼 소속 의원 중 상당수와 국발연 소속 강경파 트리오인 3선의 이재오ㆍ김문수ㆍ홍준표 의원 등은 차기 주자로 이명박 서울 시장에 우호적인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이재오 의원과 김문수 의원은 2006년 지방 선거에서 서울 시장과 경기 지사 출마가 예상돼 원희룡ㆍ남경필 의원과의 한 판 승부도 점쳐지고 있다.

최근 파행 정국에 따른 국회 등원 문제와 관련, 초기에 조기 등원 입장이던 김덕룡 원내 대표와 남경필 수석 부대표 등 당권파가 등원을 늦추려고 한 반면, 강경 투쟁을 주장했던 국발연의 이재오ㆍ홍준표ㆍ김문수 의원 등은 최근 원내 투쟁쪽으로 방향을 틀어 양측의 수 싸움이 첨예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당권파가 대여 대처 능력 약화에 따른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파행을 장기전으로 이끌려는 데 반해 비주류측은 정세 흐름에 따라 국회에 들어가 김 원내 대표 등 ‘지도부 책임론’을 제기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것이다. 강ㆍ온파의 대립속에 중도 입장을 견지해 온 '국민 생각'의 강재섭ㆍ맹형규 의원, '푸른 정책 연구 모임'의 박진ㆍ임태희 의원 등이 최근 목소리를 높이는 것을 두고 점차 당내 입지를 확보하기 위한 수순이라는 해석도 뒤따른다.

여론에 밀려 파행 정국이 일견 수습돼 가는 상황에서 당 헤게모니를 둘러싼 내전은 점차 확전일로에 있는 것이 요즘 한나라당의 내면 풍경이다.

박종진 기자


입력시간 : 2004-11-11 11:01


박종진 기자 jjpark@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