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갈등·세개 경쟁의 중심에 선 세력분화의 당사자

당내 헤게모니·노선대립 격화 "386의 전쟁"
세대갈등·세대 경쟁의 중심에 선 세력분화의 당사자

17대 국회의 첫 막이 내리는 가운데 여야의 대치 전선은 여전히 뜨겁다. 조만간 국가보안법 등 4대 입법안을 놓고 마지막 혈전을 치룰 태세다. 각 당의 전선은 외전(外戰)에만 뻗쳐 있는 것이 아니라 내전(內戰)에도 깊게 드리워져 있다. 그러나 내ㆍ외전 주체 사이에 노선ㆍ이념의 차이가 병존, 전선의 대오는 그렇게 일사분란하지 못하다.

그러한 배경에 세대간 불협화음이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이른바 '세대 갈등'으로, 그것은 최근 4대 입법안을 둘러싼 여야 대립과 당 내부 계파 경쟁의 요체이기도 하다. 386(30대 - 1980년대 대학 학번 - 60년대 출생) 의원은 그런 '세대 경쟁'의 중심으로 같은 세대간, 또는 위ㆍ아래 세대가 노선ㆍ권력 지형 등을 놓고 치열하게 맞붙은 상황이다.('386'은 1990년대 개념이므로 사실상 '486')

386 의원은 1999년 정가에 '젊은 피 수혈론'으로 처음 눈길을 끈 데 이어 2000년 총선을 전후해 각광을 받았고, 17대 총선을 거치면서 신세력으로 부상했다. 특히 여권에서는 노무현 대통령의 집권과 함께 '참여 정부의 주역'으로 등장했다. 당의 이념적 스펙트럼은 더욱 넓어졌고, 그만큼 세대간 이질성도 심화돼 '세대 갈등'의 강력한 동인이 됐다.

17대 국회에 입성한 299명 의원 중 30, 40대 의원은 129명(30대 23명, 40대 106명) 으로 그 가운데 386 의원은 모두 58명이다(열린우리당 40명, 한나라당 18명). 그러나 386 의원들도 정치적 뿌리와 지향점이 다르고 당내 구조의 이질성 등으로 최근 노선 투쟁이 심화, 당내 세력 분화의 직접적인 당사자가 되고 있다.

당 헤게모니 경쟁서 각기 다른 행보

열린우리당의 경우 386 의원 중 운동권 출신이 23명으로 노선과 당 헤게모니 경쟁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특히 '전대협(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간부의 진출이 두드러져 전대협 1기(1987년 6월항쟁 당시 지도부) 출신으로 이인영(서울 구로갑), 우상호(서울 서대문갑), 이철우(경기 연천ㆍ포천), 김태년(경기 성남수정) 의원이 있고, 전대협 2기에는 오영식(서울 강북갑), 정청래(서울 마포을), 최재성(경기 남양주갑), 백원우(경기 시흥갑) 의원, 전대협 3기로는 재선인 임종석(서울 성동을) 의원을 비롯해 이기우(경기 수원권선), 한병도(전북 익산갑), 복기왕(충남 아산) 의원 등이 있다.

1980년대 초ㆍ중반 삼민투ㆍ전민련 등에서 학생운동을 했던 이광재(강원 영월ㆍ평창ㆍ정성군), 강기정(광주 북갑), 정봉주(서울 노원갑) 의원 등도 386 의원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이밖에 80년대 초반 운동권 출신으로 재선인 김영춘(서울 광진갑), 송영길(인천 계양을) 의원과 초선인 이화영(서울 중량갑), 김형주(서울 광진을) 의원 등이 있다.


이들 386 의원들은 지난 1월 전당대회를 비롯해 5월 원내대표 경선, 8월 신임 당 의장 선출 등에서 결집된 힘을 발휘하는 한편 최근에는 주요 현안과 내년 3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각기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3월 전대와 관련, 이인영ㆍ오영식ㆍ우상호ㆍ최재성 의원 등 전대협 출신들은 대체로 김근태(GT)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지하고 있다. 특히 전대협 맏형격인 이인영 의원은 김 장관의 정치적 기반인 '한반도재단'의 동북아전략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고 386 운동권 출신이 중심이 된 '국가 발전을 위한 새로운 모색(새로운 모색)' 이라는 모임을 결성, 당내 현안들에 공통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들 386 재야파는 내년 3월 전대에서 당 헤게모니를 확보하기 위해 GT의 출마가 어려울 경우 대리인을 지원하거나 타 세력과의 연대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노무현 대통령의 직계 그룹인 이광재ㆍ서갑원ㆍ백원우ㆍ이화영 의원 등은 철저하게 노 대통령의 의중에 따라 '형찾?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 1ㆍ11 당 의장 선출 때 4ㆍ15 총선을 위해 정동영 후보를 민 것이나, 5ㆍ11 원내대표 경선에서 '노심(盧心)'을 반영할 수 있는 이해찬 후보를 지원한 것은 대표적인 예.

이들은 '의정 연구 센터(의정연)'라는 모임을 결성해 세 결집을 한데 이어 청와대 및 정부 관료 출신들의 모임인 '일토삼목회', 중도ㆍ보수 인사 모임인 '안정적 개혁을 위한 의원모임'(안개모) 과도 연대를 추진해, 내년 3월 전대에서 당권을 차지하기 위한 수순을 밟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천ㆍ신ㆍ정(천정배ㆍ신기남ㆍ정동영)으로 대변되는 당권파는 386 의원 중 최성ㆍ김현미ㆍ박영선 의원 정도가 당권파로 분류된다. 이들은 정동영 통일부 장관 입각과 신기남 전 의장의 낙마 후 세력이 급격히 약화된 상황에서 내년 3월 전대를 통해 재기를 한다는 입장으로 천정배 원내대표를 지원하거나 타세력과의 연대를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내 진보 진영을 대표하는 '참여정치연구회(참정연)'에는 강기정ㆍ김태년ㆍ김형주ㆍ정청래ㆍ이철우 의원 등이 참여하고 있다. 이들 386 의원은 기간 당원을 배경으로 내년 3월 전대에서 당 의장이나 상임 중앙 위원 등 중심 세력으로 진입한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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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 헤게모니를 차지하기 위한 제 세력간 물밑 접촉도 활발, 친노 386 그룹이 우세를 보이는 가운데 재야파와 당권파, 또는 노선에서 유사성을 띤 재야파와 참정연 그룹과의 연대가 점쳐지고 있다.

386 의원들 간의 노선 분화에 따른 경쟁은 더욱 뚜렷하다. 특히 노 대통령 측근 386 의원들이 주축을 이룬 '의정연구센터'와 80년대 학생운동을 이끈 '전대협' 출신 의원들 사이의 입장 차이가 분명하다.

의정연이 '경제 우선'의 실용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반면, 전대협 출신 의원들은 국가보안법 개폐 같은 정치ㆍ사회 개혁 분야에 집중하고 있는 것. 의정연 소속 386 의원들은 당론과 다르게 현 정권 재벌정책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총액 출자 제한제의 완화를 주장하는가 하면, 국가보안법의 대체 입법화, 이라크 추가 파병에 동의하는 등 재야파나 참정연 소속 386 의원들과 커다란 시각차를 보이고 있다.

이와 관련, '새로운 모색'의 한 386 의원은 "대통령의 측근 386들이 정권의 성공을 위한 경제 살리기에 발벗고 나서는 충정은 이해하지만 당 입장에 대해 국민에게 혼란을 줄 수 있고, 386 내부의 분열을 부추기는 보수 세력에게 빌미를 주지 않을까 우려된다"며 "당의 정체성도 고려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의정연 운영 간사인 이화영 의원은 "지금처럼 삼성ㆍ현대ㆍLG 등 대기업을 백안시하고 과거 기업 집중을 막기 위해 도입됐던 제도나 기업 규제를 그대로 둔다면 국제 경쟁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다"면서 "친재벌이라는 비판을 받더라도 국민이 잘 살 수 있고, 국민과 국가를 위한 것이라면 과감하게 금기를 깨고, 할 말은 하겠다"라고 말했다.

의정연을 주도하는 이광재 의원 등 주도 세력도 "대안 없는 정치, 성명서 정치는 배격한다"며 재벌 그룹과의 접촉을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국가보안법 등에 대해서도 종래 입장을 유지하기로 해 386 의원들 간의 대립은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보수파 목소리에 눌린 386

한나라당은 121명 소속 의원 중 386 의원은 18명으로 개혁 성향의 소장파 모임인 '새정치수요모임(수요모임)'이 386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 한나라당의 386 의원은 7ㆍ19 전대에서 박근혜 대표 2기 체제가 출범하면서 당내 위상이 만만치 않았다.

원희룡 의원이 최고위원인데다 남경필 의원은 원내 수석 부대표를 맡고, 이성권ㆍ김희정 의원이 각각 당내 청년, 네티즌 대표로 상임중앙위원회에 참석하게 된 것. 무엇보다 계파정치를 배제하는 박 대표가 수요 모임을 신뢰, 소속 의원들의 견해를 수용하면서 박 대표의 '친위그룹'이라는 소리까지 나왔다.

그러나 영남 중진ㆍ보수 의원들의 모임인 '자유포럼'을 비롯해 이재오ㆍ홍준표ㆍ김문수 의원 등 3선 중진이 주도한 '국가발전전략연구회(국발연)' 등으로부터 당 노선과 현안들과 관련해 집중적인 공격을 받으면서 386 의원들의 영향력은 급격히 약화됐다. 특히 박 대표가 당내 다수를 이루는 보수파에 기울면서 386의 목소리는 더욱 잦아들 수밖에 없었다.

지난 8월, 5ㆍ18 묘역 참배 문제로 논란이 일었을 때 보수 진영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수요모임의 손을 들어주었던 박 대표는 9월 19일 국가보안법의 '정부 참칭' 조항을 삭제해야 한다고 했다가 당내 반발이 일자 3일만에 입장을 번복했는가 하면, 10월 27일 국회 대표 연설에서는 4대 입법 철회 입장을 밝혀 386 의원들을 난감하게 했다.

급기야 11월 2일 의원총회에서 '보수 원조'를 자처하는 김용갑 의원은 원희룡 최고위원이 TV토론에서 국가보안법의 전향적 개정을 주장한 것을 문제삼아 "최고 위원을 사퇴하든지 차라리 당을 떠나라"며 직격탄을 날렸고, 8일 상임운영위에서는 강경 보수 성향의 정형근 의원이 회의석상에서 원 최고위원이 김형오 사무총장에게 격한 발언을 한 걸 사과하자 "술 먹고 미친 짓을 했는데 이제 와서…"라고 막말을 쏟아내기도 했다.

현재 한나라당의 전선은 수요모임과 자유포럼이 마주하고 있는 가운데 보수 진영에서 원 최고위원과 386운동권 출신인 고진화 의원 두 사람을 공격 타깃으로 삼고 있는 형국이다.

원ㆍ고 두 의원도 보수 진영의 움직임에 맞춰 전열을 정비하고 있다. 고 의원은 "원 의원과 함께 당내 민주 개혁 세력의 연대를 통해 철 지난 이념 공세와 과거사에 대한 불투명한 태도로 표류하는 당의 방향을 바로 잡기로 했다"면서 "4대 법안에 대해서도 기존 입장을 밀고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한나라당의 보ㆍ혁 전선은 여당의 4대 법안 처리 과정을 거치면서 갈등이 첨예화하고 향후 정치 지형의 불씨로 남을 가능성이 있다.

특히 한나라당의 세대 갈등과 노선 투쟁은 차기 대선 주자로 거론되는 박 대표와 이명박 서울시장, 손학규 경기지사 등의 대권 행보와 맞물려 더욱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다. 상대적으로 수요모임 소속 386 의원들이 박 대표나 손 지사와 가까운 반면, 자유포럼이나 국발연 소속 의원들은 이 시장에 우호적인 것으로 전해 진다.

현재 당 주도권 경쟁과 2007년 대권 레이스의 험로에서 열세에 놓인 386의원들이 과연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게 될 지, 아니면 끝내 소수자로 남을 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박종진 기자


입력시간 : 2004-11-23 15:55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